토지 17 - 박경리 대하소설, 5부 2권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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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 나라가 없는 설움 모른다. 난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지 않았으니 그렇구나. 어릴 때 내가 일제 강점기에 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 조금 했지만 모르겠다. 사는 게 쉽지 않아도 그냥 살지 않았을까 싶다. 세상은 어떻게 될까 조선은 독립을 할까, 그런 생각 조금 했겠다. 독립운동 하던 사람은 조선이 독립한다 믿고 힘들어도 그걸 했겠지. 자기 대에 이뤄지지 않으면 다음엔 되겠지 했을까. 독립운동은 쉬운 게 아닌 것 같다. 드러내놓고 한 사람도 있지만 보이지 않게 독립운동 한 사람도 많았겠다. 그런 사람은 그저 조금 돕는다고 여겼을지도. 한복이가 그렇게 보이기도 하는구나. 그동안 한복이 힘들었겠다. 아버지나 형 죄를 갚는 마음으로 했겠다.


 몇해도 아니고 거의 마흔 해가 흘렀으려나. 《토지》 1권에서 《토지》 17권까지. 엄청나다. 이런저런 사람을 보고, 처음에 어렸던 길상은 아들이 둘에 쉰이 넘었나. 큰아들 환국이도 아이 아버지다. 그런 거 보면 재미있기도 하다. 어두운 시대 때문에 때로는 사람 때문에 힘든 사람들. 사람은 거의 그렇게 살겠다. 《토지》 17권, 5부 2권을 보았다. 동학을 하던 사람이 대를 이어 의병에 독립운동도 했는데, 관수가 죽고는 더는 사람을 묶어두지 못하게 됐다. 이제는 동학과는 상관없는 몇 사람만 남았다. 길상은 한번 감옥에 갇혀서 또 잡혀갈 수 있는가 보다. 일본은 대체 왜 그랬는지. 길상이 여러 사람과 만나고 이제 동학으로는 흩어지자고 한다. 그런 거 시원섭섭했을 것 같다. 겨우 몇 사람이 뭘 하기는 어려웠겠지. 만주는 멀고. 남쪽 사람과 뭉치기도 그렇고. 일본은 전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진주 술도가 집 이도영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아들인 이순철이 아버지 마음을 모르겠다고 해서. 그때 사람은 금을 가지고 있으면 안 됐나 보다. 가지고 있는 금은 나라에 팔아야 했다. 금을 사고 조선을 빠져나가면 밀수로 여겼다. 홍이 아내 보연은 몸이 아파 쉬러 친정에 갔다가 금장신구를 사 왔다. 그 일로 홍이와 보연은 조선으로 와야 했다. 금보다 돈으로 갖고 있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다행하게도 홍이는 쉽게 풀려나고 보연도 집행유예로 풀려난다. 홍이는 식구들과 통영이나 진주에 살려나 했는데 보연과 아이들은 조선에 남겨두고 홀로 만주로 가려 했다. 그런 홍이를 보니 실제 그때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 있었겠다고 생각했다. 홍이도 만주에 관수가 있어서 괜찮았던 것 같은데. 주갑은 죽었을까.


 관수 아들 영광은 어머니가 홍이를 만나러 가라고 해서 통영에 간다. 관수가 죽었을 때 홍이가 여러 가지 도움을 줘서. 영광은 우연히 양현이를 만나고 함께 기차를 타고 간다. 비슷한 상처를 가진 사람은 거의 잘 안 되는데. 양현이와 영광이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양현이보다 영광이가 그걸 넘지 못할 것 같다. 양현이는 최참판집에서 살고 지금은 의전에 다니고 의사가 될 테니. 두 사람 이야기는 아직 크게 나오지 않았는데 벌써 생각했구나. 조금 다르지만 인실과 오가타는 다시 만난다. 찬하가 우연히 인실이 일하는 약국에서 약을 샀다. 그런 일 일어날 수 있겠지. 찬하는 인실과 오가타 아이를 자신이 기르게 됐다고 말하고 아이 이야기를 오가타한테 말하라고 한다. 그건 언제까지나 비밀로 하려나 했는데. 오가타는 인실이 아이를 버린 것에 충격받았지만 자기 아이가 있고 자주 만났다는 걸 알고 기뻐한 듯하다. 전쟁이 끝나면 두 사람은 만날지.


 평사리에 오래 살고 남의 안 좋은 말을 하던 봉기노인이 죽었다. 봉기노인은 오래 살았구나. 조준구는 아직 살아 있지만 얼마 안 남았단다. 홍이는 만주로 가기 전에 평사리에 들렀다. 많은 사람이 홍이를 반겨주고 아버지 용이를 떠올리기도 했다. 누구나 알고 반겨주는 모습 좋아 보였지만, 난 그런 건 싫을 것 같다. 석이 어머니와 야무네 그리고 천일네는 함께 모여 홍이 점심을 했다. 그 모습이 따듯해 보이면서도 슬프게 보였다. 따듯한 것만 생각해야 하는데 슬픔도 느끼다니. 세 사람 삶이 생각나서였을지, 딸이나 며느리 눈치 안 봐도 된다는 말 때문이었을지도.


 사람들은 일본이 전쟁에서 질 거다 여겼다. 일본도 그런 거 느끼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더 빨리 전쟁을 끝내지 왜 더 끌었을까. 17권은 1941년이다. 일본에서도 전쟁에 나간 사람 많을 거다. 앞으로 조선 사람도 강제로 전쟁에 나가야겠지. 남자뿐 아니라 여성, 아니 여자아이도 끌려가겠다. 평사리에도 군에 간 사람이 있다. 바로 죽은 우서방 막내다. 둘째 개동이는 면사무소 서기가 됐는데 그걸로 마을에서 목에 힘을 주고 다닌다. 이름이 개동이라니. 개한테는 잘못이 없지만 이름대로 가는 느낌이 들기도, 여기에는 개동이가 대표처럼 나왔는데 일제 강점기 때 별거 아닌 힘을 가지고 그걸 휘두른 사람 많았겠다. 일본 사람보다 조선 사람이 더 악독했다. 같은 민족이고 사람인데 그러다니.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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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04 0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9-04 2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9-04 1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9-05 0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9-05 2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9-06 0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カインの傲慢 (5)
나카야마 시치리 / KADOKAWA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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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의 오만

나카야마 시치리



 




 나카야마 시치리 소설에서 내가 가장 먼저 만난 건 《살인마 잭의 고백》이다. 그건 이누카이 하야토 형사 시리즈에서 첫번째로 이누카이는 의료 사건을 자주 맡는 것 같다. 처음 봤던 거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 책에서 생각나는 건 장기이식 정도다. 거기에 나온 피해자는 장기이식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 책을 봤을 때 생각한 건 장기이식이 정말 좋은 걸까였다. 장기이식을 받으려는 사람은 많지만 장기는 모자라다. 뇌사한 사람 장기를 빼낼 때 그 사람은 아픔을 느끼지 못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단다. 그런 거 생각하면 장기 받는 거 쉽지 않을 것 같다. 아픈 아이를 둔 부모는 조금 다른 마음이겠다. 이누카이는 형사면서 신부전으로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딸이 있는 아버지기도 하다.


 지난번 책 《닥터 데스의 유산》에서 이누카이는 ‘안락사’가 정말 안 좋은 걸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형사로서 그게 법을 어기는 거니 범인을 잡기는 했지만, 딸 사야카가 안락사를 바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했다. 이번에 본 《카인의 오만》에서 이누카이는 형사보다 아버지 마음이 앞선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이건 마지막 부분을 보고 생각한 거다. 이누카이는 형사지만 아픈 아이가 있는 부모기도 하니 흔들리기도 하겠지. 그러다 잘못하면 선을 넘을 텐데. 그렇게 되지는 않겠지. 그러기를 바란다. 이누카이가 경찰이 아닌 아버지 마음이 된다 해도 사야카는 기뻐하지 않을 거다. 어떤 형편에 놓이든 사람은 도덕 윤리를 버리면 안 될 것 같다.


 앞부분만 쓰고 그만 쓰고 싶기도 하지만, 그러면 안 되겠지. 비가 온 뒤 사람과 산책하던 개가 공원 숲에서 시체를 파냈다. 어린 남자아이로 간이 반 정도 없었다. 아이는 수술하다 죽은 것 같았다. 그 사건을 경시청 수사1과와 관할서가 함께 맡게 된다. 검시관이 남자아이 시체를 보고 이누카이를 불렀다. ‘살인마 잭 사건’ 때문에. 그렇다 해도 그 사건과 이번 사건은 상관없었다. 남자아이는 중국 사람이었다. 이누카이 짝인 아스카가 중국에 갔다 온다. 사건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번엔 일본 사람으로 중학생 아이였다. 그 아이도 장기 반이 없었다.


 소설에서 봤지만 중국에서는 장기매매가 일어난다고 하지 않나. 중국은 사형수 장기를 이식할 수 있는가 보다. 사형수나 식구한테 동의를 받기는 한다. 그걸로 끝이 아니다. 사형수 식구한테 돈을 준단다. 한때는 중국에 사형수가 많아서 중앙에서 그걸 관리하게 됐단다. 그전에는 다른 나라 사람도 중국에서 장기이식을 받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러지 못한단다. 여기에서 본 거지만 맞는 말이겠지. 중국은 사람이 많고 빈부격차가 심하다(이건 어느 나라나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처음 발견된 아이 집은 아주 가난했다. 엄마는 아이를 일본에 양자로 보냈다고 했는데, 그건 거짓말이었다. 엄마도 아이 장기를 팔았다는 걸 알았다. 중국에만 가난한 사람이 있는 건 아니다. 일본에도 가난한 사람은 많다. 피해자 아이 공통점은 가난하다는 거다. 한 아이는 부모가 아이를 그냥 내버려 두었다. 자기들이 진 빚에 허덕이고 집안은 쓰레기로 가득했다. 아이가 집에 오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다.


 가난이 모두 부모 탓은 아니고, 가난해도 부모와 아이가 잘 지내기도 한다. 이런 거 보니 한국도 마찬가지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돈을 가진 사람은 뭐든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여긴다. 정말 그럴까. 그런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아야 할 텐데, 돈을 가진 사람은 그러지 않겠지. 자기 돈으로 뭘 하든 자기 마음이다 할 것 같다. 무서운 세상이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아지면 안 될 텐데. 돈이 없는 사람은 자기 몸(장기)을 팔다니. 그거야 말로 세상이 그렇게 만든 거 아닐까. 자본주의 사회.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건 장기이식을 받아야 하는 가까운 사람이 없어설지도 모르겠다. 나와 가까운 사람에 그런 사람이 있다 해도 난 아무것도 못하겠지만. 그래도 돈으로 장기를 사고 싶지는 않다.


 장기를 사고 파는 일을 한 중개인이나 의사 정보를 준 사람은 죄의식이 별로 없었다. 그게 뭐가 나쁘냐고 하는 것 같았다. 그건 돈이면 목숨도 사고 팔 수 있다고 생각해서가 아닐까. 부자는 돈을 주고 장기를 사고, 가난한 사람은 장기를 팔고 돈을 받아서. 소설에 나온 이야기지만, 이 세상에서 이런 일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 못하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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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3-08-31 08: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본어 원서로 읽으셨군요.
일본 작가의 책도 우리 나라에 엄청 많이 소개되고 있는 것 같아요.

희선 2023-09-01 23:44   좋아요 2 | URL
나카야마 시치리는 히가시노 게이고 만큼 소설을 많이 씁니다 소설가가 된 건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는데... 한국에도 책 많이 나왔어요 이 책도 곧 나오겠지요


희선

scott 2023-09-02 1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카야마 시치리 작품 정말 다양한데
어느 순간 부터 쏟아져 나와서 읽다 멈춘적이
장기를 사고 파는데 의사도 정보를 주다니
한국에도 이런 일이 있을 것 같습니다.

희선 2023-09-03 23:01   좋아요 1 | URL
나카야마 시치리 많이 쓰죠 여전히 책이 자주 나오는 듯합니다 일본에서도... 지난달에 이거 다음 것도 문고로 나왔는데, 그걸 놓쳤네요 이달에 사야겠네요 새로운 시리즈도 쓰더군요 한번 쓰면 멈추지 않는 걸지, 대단합니다 그렇게 늘 쓰는 작가... 높은 자리에 가면 여러 가지 좋은 점이 있는지, 자식 문제도 덮고... 돈과 힘은 늘 함께 하는 건지... 그러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요


희선
 
カインの傲慢 (5)
나카야마 시치리 / KADOKAWA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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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의 오만》. 의학이 발달하고 장기를 이식하게 된 건 좋은 일일까, 안 좋은 일일까. 돈이 많은 사람은 장기를 사기도 하다니. 어떠한 때라도 사람은 도덕과 윤리를 버리지 않아야 할 텐데.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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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6 - 박경리 대하소설, 5부 1권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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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이 바뀌기를 바라고 뭔가 한다 해도 그 일은 쉽게 나타나지 않을 거다. 사람이 지구를 망친 것도 처음엔 조금씩 나타났을 텐데, 지금은 엄청 빨리 나타나는구나. 다시 돌아가기는 어렵겠지. 사람이 쓰는 걸 줄여야 할 텐데. 과학이 발달해서 살기 편해졌지만 그것 때문에 지구는 병들었구나. 몇 해 동안 사람을 힘들게 한 코로나19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처음보다는 심하지 않다 해도 코로나 걸리면 조금 아프겠지. 다른 사람한테 감염시키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토지》에서는 예전에 많은 사람이 호열자 그러니까 콜레라로 죽었다. 그게 또 나타나는가 보다. 물을 끓여 먹어야 하는데.


 스무권인 《토지》에서 이번에 16권을 봐서 앞으로 네권 남았다. 이번엔 5부 1권이다. 지난 15권 보고 1938년부터 나올까 했는데, 시간이 흘렀다. 5부 1권은 1940년이다. 이걸 보면서 조선 독립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구나 했다. 난 그걸 알아도 책 속 사람은 아직 모르는구나. 그러니 오랜 시간 독립운동을 하다 지치기도 했겠지.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친일한 사람도 있겠다. 신분제도가 사라졌다 해도 여전히 백정은 차별 받고, 그것 때문에 관수는 형평사 운동을 했다. 관수는 만주로 떠나야 했다. 지난번에 관수 아들 영광이 만주로 공연하러 갔는데, 관수와 영광은 서로 기다리기만 했다(영광이는 색소폰 연주자가 됐다). 한사람이 먼저 찾아갔다면 좋았을 거 아닌가. 때를 놓치면 다시 기회는 오지 않는다. 관수는 호열자로 죽는다.


 홍이는 영광이가 만주로 또 공연하러 오자 이번에는 꼭 아버지를 만나라 한다. 영광이는 아버지 어머니 식구를 만나려 했는데. 결국 만나지 못한다. 관수는 화장하고 뼛가루는 고향 평사리로 가져가 강물에 뿌린다. 그렇게 해줄 자식이나 식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관수는 복 받은 걸까. 또 한사람이 죽었구나. 한 많은. 만주에 있는 사람은 다시 돌아올지. 죽지 않으면 돌아올 길이 있기는 할 텐데. 어떨지 모르겠다. 조선에 사는 사람은 편하지 않구나. 일본은 조선말을 쓰지 못하게 하고 창씨개명을 하게 했다. 군에 지원하라는 것도 있다. 지금은 지원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강제가 되는구나. 일본은 기울어 가는데 그걸 억지로 들어올리려는 건가. 그것도 조선 사람으로.


 어느새 환국이도 결혼했다. 서울에 있는 황태수 막내딸과 결혼시켰다. 환국이는 서울에서 미술을 가르치고 그림도 그리는가 보다. 명희는 조병하와 이혼한 건 아니어서 조병하 유산을 조금 받았다. 법으로 하면 명희가 유산을 받아야 할 텐데. 그때는 그런 게 그렇게 엄하지 않았구나. 부모와 친척이 가만히 있지도 않고, 명희가 집을 나간 것도 있다. 조병하 동생 조찬하가 힘을 써서 명희가 조병하 유산을 받게 했다. 명희는 조병하가 죽고 다섯해 뒤에 서울로 오고 유치원을 열었다. 명희는 유치원 원장이다. 그것도 대단하구나. 양현이하고도 잘 지내는 듯하다. 그건 누구한테 좋은 걸까. 명희와 양현이 둘 다 한테 좋은 거겠다. 예전에는 정말 이런 사이 많았을까. 친척이 아니어도 서로 알고 친하게 지내는 사이. 지금이라고 아주 없지는 않겠다. 내가 그걸 못하는 것뿐이다. 양현이는 의전에 다녔다.


 최참판집 재산을 가로챘다가 다시 빼앗긴 조준구는 여든이 넘었다. 여든까지 돈을 다 쓰고 자신이 버린 아들 병수를 찾아왔다. 조준구는 나이를 어디로 먹은 건지 모르겠다. 그렇게 나이 들면 안 될 텐데. 난 찾아갈 사람은 없구나. 난 혼자 조용히 살다 조용히 가야지. 자식도 남인데 조준구는 병수를 자식보다 하인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조준구는 병수한테 미안한 마음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뻔뻔할 수가 있다니. 조준구는 병수를 괴롭혔다. 그건 일부러라기보다 치매여설지도. 치매에 걸리면 사람 성격이 아주 바뀌지 않나. 아주 심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병수는 아이들은 내 보내고 자신이 혼자 조준구 시중을 들었다. 정말 힘들겠구나. 병수가 어렸을 때도 조준구는 그리 좋은 아버지가 아니었는데. 이때는 요양원도 없고. 요양원 같은 게 있다 해도 조병수는 조준구를 거기에 보내지 않았으려나. 조준구 얼마 안 남기는 했을 거다. 몸이 아픈데도 살려는 집착 대단하다.


 다행한 일도 있었다. 그건 숙이와 결혼한 영호가 마음을 고쳐먹은 거다. 영호와 숙이는 통영에 나와 살았는데 영호 성격이 좀 이상해졌다. 열등감 때문인가. 말이 많아지고 의처증 초기증상도 보였다. 그건 예전부터 그랬으려나. 이웃에는 영선과 휘가 살았다. 영선과 숙이는 친했지만, 영호가 휘와 숙이 동생 몽치를 얕봤다. 영선이가 관수 딸이라는 걸 알고는 휘를 다시 보고 지금까지 자신이 한 잘못을 깨달았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지만, 가끔 바뀌는 사람도 있다. 영호가 그렇구나. 여전히 숙이 동생 몽치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그것도 시간이 가면 괜찮겠지. 이때 조선 사람은 일본 사람보다 가난하고 돈도 제대로 못 벌었다. 그건 일본이 그렇게 만들어서구나. 고기도 많이 못 잡았다. 몽치는 어장 아비가 꿈이었다. 어장 아비 잘 모르겠지만 조선 사람은 되기 어려운 걸지도. 몽치는 되지 않을까.


 사람은 결혼해도 다른 사람을 조금 좋아하기도 할까. 그게 사람인 건지. 그런 마음이 들어도 지나가는 바람이겠지. 《토지》에 그런 게 조금 나오는구나. 서희는 의사인 박영효를 조금 좋아했나 보다. 마음은 받아주지 못해도. 서희는 박영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걸 알고는 슬퍼했다. 박영효가 죽은 건 서희 때문은 아니겠지. 서희는 양현이를 딸로 사랑하는가 했는데, 윤국이와 결혼시키고 싶어했다. 양현이 호적을 옮기게 한 건 이 생각 때문이었구나. 어쩌다가 그런 생각을. 윤국이도 마음이 좀 이상한 듯하다. 그렇게 안 써도 됐을 텐데. 이복 오빠도 양현이를 좋아할 뻔했구나.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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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 - 어느 여성 청소노동자의 일기
마이아 에켈뢰브 지음, 이유진 옮김 / 교유서가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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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못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가장 못하는 건 청소 같다. 정리정돈. 집에서는 못해도 다른 곳, 보기를 들면 학교에서는 그런대로 했다. 학교에서 하는 청소라고 해봤자 쓸기 정도니 어렵지 않았구나. 가끔 유리창도 닦아야 했다. 유리창 닦기도 그렇게 어렵지 않다. 학교 교실에는 쓸데없이 쌓아둔 물건이 없으니 청소하기 어렵지 않구나. 집은 여러 가지 쌓아둬서 청소하기 어렵다. 물건 정리정돈도 청소에 들어가겠지. 바로 치우면 좋은데, 나중에 치워야지 하고 자꾸 쌓아둔다. 쌓인 게 많으면 그걸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모른다. 그러지 않아야 할 텐데. 청소, 정리정돈 배우고 싶다. 배우기보다 날마다 조금씩이라도 정리하면 물건이 쌓이지 않을 텐데. 아쉽게도 정리정돈하는 버릇은 잘 안 든다.


 언젠가 텔레비전 방송에서 환경 미화원 시험 보는 걸 잠깐 봤다. 시험 보는 게 나온 건지 그 방송에 나온 사람이 환경 미화원 시험을 본 건지. 그건 시에서 뽑는 거겠다. 시험은 체력을 보는 거였던 것 같다. 청소는 어느 정도 힘이 있어야 하겠다. 청소 일자리도 괜찮을까. 나도 모르겠다. 청소가 세상에서 가장 밑바닥 일은 아닐 거다. 젊은 나이에 청소를 하고 그걸 그림으로 그린 사람도 있던데. 그 책은 못 봤다. 청소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자유가 있는 것 같다. 아파트 같은 곳은 주민이 뭔가 안 좋은 말 할지도. 일하러 가는 시간과 일 끝나는 시간은 정해졌겠다. 어디든 그렇겠지만, 일찍 일터에 가야 하거나 늦게까지 일하는 데도 있다. 청소 일 돈은 어느 정도나 받을지. 회사나 아파트 길거리 여기저기를 깨끗하게 만드니 돈 많이 주면 좋겠다.


 요즘은 전문 청소를 하는 곳도 있지 않던가. 특수 청소던가. 그런 곳은 청소를 잘 하면 큰 일이 들어오고 다음 계약으로 이어질지도. 그런 거 잘 모르지만. 청소도 여러 가지가 있겠다. 이 책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를 쓴 마이아 에켈뢰브는 남편과 헤어지고 아이 다섯을 기르려고 오랫동안 청소부 일을 했나 보다. 여기 실린 일기에서는 아이들이 거의 다 자란 것 같다. 아이가 자라서 마이아는 야간 학교에 다니지 않았을까 싶다. 마이아는 초등학교만 정규 교육을 받고 그 뒤는 야간 학교에 다녔나 보다. 공부는 때를 놓치면 하기 어렵다고 하기도 하지만, 공부 좋아하는 사람은 제 때 못해도 시간이 지나고 어떻게든 한다. 그런 거 대단하다. 아마 난 그렇게 못할 거다. 게을러서. 정리정돈도 게을러서 못하는 거구나. 학교 공부 적당히 했다. 집이 잘살지는 알았지만, 제 때 학교에 다닌 건 행운이구나. 그걸 이제야 깨닫다니.


 사람이 어떤 일을 하든 글을 쓴다면 좀 나을 것 같다. 누군가를 만나고 일을 하면 쓸 게 더 많을지도. 난 쓸 게 없어서 쓴 거 또 쓰지만. 마이아는 청소 일이 힘들어도 불평 불만은 쓰지 않았다. 돈이 얼마 안 돼서 안 좋다고는 했던가. 여기 담긴 일기는 1965년에서 1969년까지 쓴 거다. 여기에는 몇 해 동안 쓴 게 실렸지만, 마이아는 1965년 전에도 1969년 뒤에도 일기를 썼을 거다. 마이아는 책읽기뿐 아니라 글쓰기도 좋아했다. 마이아는 정치에도 관심이 많았다.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에도. 전쟁이 일어나거나 굶어 죽는 사람을 어떻게 하면 도울까 하는 생각도 했다. 1960년대에는 지금보다 정보가 빨리 전달되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때 텔레비전이나 라디오가 있어서 정보는 빨리 전달됐을지도. 지금보다는 좀 느렸겠지.


 예전 일이 쓰였는데, 이걸 보면서 난 지금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여기저기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먹을 게 없어서 굶어 죽는 사람도 많다. 차는 1960년대보다 훨씬 많아졌다. 마이아는 개인이 차를 갖게 하면 안 된다 여겼다. 플라스틱도 안 써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생각한 사람이 마이아뿐이었을까. 그럴 것 같지 않은데. 플라스틱을 덜 써야 한다거나 다른 걸 쓰자고 한 사람이 더 많았다면 지금과 같은 세상이 안 됐을까. 기후변화가 심한 지구. 빙하와 얼음은 빠른 속도로 녹는다. 마이아가 지금 세상을 본다면 깜짝 놀라고 한탄할 것 같다. 이런 세상이어도 마이아는 희망을 찾아내고 살았을 것 같다.


 청소는 마음을 닦는 거기도 하다고 한다. 그걸 일로 하면 좀 다를까. 꼭 그렇지 않을지도. 청소 하는 사람이 있어서 세상이 쓰레기로 덮이지 않겠다. 그 쓰레기는 어딘가 한곳에 모여 있을지라도. 쓰레기 덜 나오게 해야 할 텐데.




희선





☆―


 책……. 책을 곁에 둔다면 외롭지 않다. 독방에 갇혀도 고독하지 않다. 책을 가지고 다녀서 책과 함께 하지 않아도 내면에는 책이 있는 셈이다. 책의 세계에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바라는 곳 어디든지 갈 수 있다.  (2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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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3-08-28 09: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청소는 매일 해야하는 루틴인데 그게 쉽지 않죠. 집 안에서는 각자 청소를 하지만 바깥에서는 누군가가 해 주는거잖아요.
청소는 마음을 닦는 것인데 사실 귀찮기도 해요.

희선 2023-08-29 01:51   좋아요 1 | URL
날마다 못해도 날을 정해놓고라도 하면 괜찮겠지요 잘 안 보여도 먼지는 날마다 쌓이겠습니다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바깥에서 조금씩 들어오겠지요 버릴 건 바로 버리는 게 좋은데, 나중에 한번에 버려야지 하다가 큰일이 되기도 하네요 쓰레기는 모아서 버려야 하지만... 청소로 마음을 닦는다면 좋을 텐데, 쉽지 않네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3-08-28 09: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청소는 조금만 미루면 해야 할 양이 늘어나서 괴로워지더라구요^^; 그래서 사실 매일 하는게 좋은데 매일은 커녕 한 주에 몰았다가 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ㅠㅠ
그래서 정리나 이사, 청소 관련 일을 하시는 분들이 무척 대단하게 느껴져요.
저도 책이 곁에 있을 때 외롭지 않은 것 같습니다ㅎㅎㅎ

희선 2023-08-29 01:55   좋아요 0 | URL
가게 같은 데는 시작하기 전에 청소부터 하겠지요 그러니 날마다 하고 먼지가 덜 쌓이겠습니다 집은 그렇게 날마다 하기 어렵군요 어려운 게 아니고 게을러서 못하는 거군요 제가... 조금일 때 바로 하는 게 좋기는 한데, 몰아서 하네요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청소를 하면 하루가 좋을 것 같은데... 알아도 그러지 못하네요 책이 세상에 있어서 다행입니다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