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을 찾아서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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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에게 권력이란 무엇일까, 아니 권좌에 오르려는 욕심은 어디서부터 나오는 것인지. 이 책은 1996년도 나왔다가 절판된 것을 재판한 것이다.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라 그런지 전개에서 약간 매끄럽지 않은 면도 보이지만 남성들의 약육강식의 세계를 잘표현해 놓은 것 같아 한편으로는 씁쓸하면서 재있게 읽었다. 모두가 오르려는 힘을 가진 최고의 자리, 그곳에 오르면 무엇이 좋을까, 그것도 자그마한 도시에서. 다른 곳과는 구별되듯 항아리처럼 생긴 지형인 그 작은 곳에서 모두의 부러움의 대상인 자리 ’왕’ 이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어찌보면 참 무모한 것이 ’힘겨루기’ 일 것이다. 그런 것을 싫어해서이기도 하지만 권력을 가졌다고 권좌에 올랐다고 그 힘을 남용하는 이들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인지 그런 자리를 싫어한다. 우린 꼭 남보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그 자리를 잘 지키는 것이 아닌 제멋대로 남용을 하기에 어찌보면 아름다운 자리이기 이전에 피로 얼룩지고 뇌물로 얼룩진 자리가 그런 자리라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꼭 그런 자리에 올라야만 할까.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기 보다는 벼가 익을수록 더욱 고개가 빳빴하게 서는 자리, 그런 자리는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어느 누군가 아랫사람이 또 노리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권력은 그런 것이다. 그 자리에 오르고 나면 세상을 다 가진것처럼 호령하고 싶은 것이다.

이 소설에서처럼 ’마사오’ 란 인물은 그의 다른 이름보다도 ’마사오’라는 이름이 그냥 굳어진 명사처럼 쓰인다. 누구에게나 마사오인 것이다. 그는 부모의 뒷배경이나 그외 다른 배경은 가지지 못했지만 남성이 가져야 하는 ’외적인 힘’ 을 어린시절부터 가지게 된다. 그런 그가 어렵게 지역의 왕의 자리에 앉아서 지역을 통치하듯 하고 호령을 하다가 너무 어이없고 힘없게 죽었다는 부고를 듣게 된다. 삶은 모두가 힘이 그의 것이었지만 죽음은 그에게서 힘을 빼앗아 버렸다. 아니 정상의 자리에서 물러서야 할 순간이 왔을 때, 다른 사람에게 그 자리를 내주어야 했을 때 그는 이빨빠진 호랑이처럼 모든 힘을 잃었다. 힘이란 살아 있는 동안 그가 누릴 수 있던 최고의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젠 누가 그를 기억해줄까.

어린시절 그의 힘이 부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던 수컷들, 재천과 원두는 그가 심부름을 시킨 것만으로도 그와 친구가 된 것처럼 전설을 만들어냈다. 그는 그런 인물이었다. 사실이 아니어도 그와 관련된 이야기들은 전설처럼 혹은 신화처럼 소문은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나 그를 부풀렸다. 그러지 않아도 나이가 들수록 점점 단단해지는 팔근육만큼이나 그에 대한 소문은 무성했고 지역에서 그를 따라올자가 없었다. 경찰도 누구도 그 앞에서는 맥을 못추었다. 그의 아우라는 대단했듯이 그를 따르고자 했던 이들도 있었다. 그야말로 그의 이름 하나로 지역을 평정하고 수컷들의 위계질서를 확립해주던 이름 마사오, 그런 그가 죽었다. 그렇다면 그 지역에 왕의 자리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마사오의 대를 이어 왕이 될만한 인물이 있을까.

원두가 졸음운전을 하는 버스기사의 곡예운전을 보면서 지난 시절을 추억하는  그 속에 마사오는 그의 왕이기도 했다. 모두의 왕이었고 그이 왕이었던 마사오, 그의 죽음으로 인해 들여다보게 된 지난날과 현실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원두와 재천은 한날 한시에 태어난 쌍둥이 같은 친구였지만 그와 원두는 너무 달랐다. 재천은 경찰인 아버지와는 다르게 늘 자신의 이익에 대하여, 권력을 빼앗기 위한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 또한 그 자리를 원했지만 힘이 없거나 능력이 없으면 자연도태가 되듯 강한 자 앞에서 스러져 버리는 그런 삶을 산다. 강한 자만 살아 남을 수 있는 야생수컷의 세계, 그리고 한사람만 차지할 수 있는 최고의 자리. 그 자리를 향한 피튀기는 싸움을 해도 늘 마사오란 인물이 늘 지키고 앉아 있었는데 어느날 그도 또한 세월과 함께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죽음이 그를 혼자만 비껴갈 수는 없는 것이다. 그 자리를 놓고 이인자들끼리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보다 한수위엔 다른 인물이 있다. 대통령이 되고 싶었던 인물, 세계는 남자가 지배하지만 남자를 지배하는 것은 여자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누구일까.

’그러면 그 소문 알아요? 마사오가 자살했다는 거요. 병원 의사 입에서 나온 말인데 맞는가봐요. 마사오가 몇 년을 앓았잖아요. 그때 누굽니까.거 다리에서 사고로 떨어져 죽은, 그 악독한 깡패 놈한테 당해서 폐인이 됐잖아요. 그다음부터는 그 사람이 전혀 힘을 못 썼지요. 그러다가 비관해서 자살을 했다 이거지요.’ 왕이 죽는 순간 그가 가졌던 힘도 죽어야만 했다. 새로운 왕을 위한 왕에 의해 이젠 세상이 돌아가야 했다. 힘이란 그런것이다. 영원한 자리도 영원한 힘도 영원한 사람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늘 그자리는 피튀기는 싸움을 하게 한다. 오직 한자리를 위하여 얼마나 많은 희생이 뒤따르는가. 위만 쳐다보며 자리에 오르려고 한 사람들에겐 친구도 그 누구도 수평의 것이 보이지 않는다. 오직 수직의 그 높이만 보이기에 그것을 깨달았을때는 모든것이 늦는다. 뒤돌아보면 잠깐인것 같은 시간들이 인생을 모두 허비하고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고인물처럼 한 지역에서 서로를 밟고 올라가야만 사는 사람들,하지만 그들보다 더 높은 곳에서 그들을 손아귀에 쥐고 좌지우지 흔들어 놓았던 여자,누가 진정한 왕일까.

’그는 오래전에 내 마음의 지평선 너머로 떠났다.영원한 왕으로서 위엄과 광채에 들러싸여, 그가 떠난 자리는 흉터처럼, 말 발자국처럼 자국만 남아 있다.’ 원두 그는 이제 그 세계에서 떠났지만 아직도 그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그곳에서 맴을 돌고 있다. 마사오가 누렸던 왕의 아우라를 얻기 위하여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한 사람들, ’누구도 나를 보고 웃을 수 없게 하겠어. 나를 존경하게 만들고 내 말에 복종하게 만들고 나를 다시 대통령으로 뽑게 하겠어.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겠어.’ 오랜시간이 흐르고 마사오란 왕도 죽음에 이르러 힘을 잃고 말았듯이 세상은 변했지만 사람의 권력에 대한 욕심이란 변하지 않는 법이다. 예나지금이나 그 한자리를 차지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사건과 사고가 범람을 하는가. 이 소설 또한 그런 의미에서 재판되지 않았을까.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권력에 대한 자리다툼으로 인한 눈살을 찡그리게 하는 일과 사람들, 사람의 욕심이란 죽어야 비로소 욕심도 죽는다. 

등잔밑이 어둡듯이 자리에 앉아 있기에 자신의 자리 밑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 자리를 노리는 많은 사람들의 싸움이 보였다면 잠시 앉아 있다 순순히 물러나 다음 사람에게 인계를 하여 무리를 빚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사람이란 자리에 앉으면 더욱 욕심을 부리기 마련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도 있듯이 한번 자리에 눌러 앉게 되면 자신의 힘을 부려보고 싶고 자신의 힘이 어디까지 미치는지 그 범위를 가늠해보고 싶은 것이 인간이다. 그 자리에서 내려 온 자신의 뒷모습을 생각하지 못한다. 마사오, 그는 풍문은 많았지만 그래도 정의를 실천한 왕이었다. 강도를 만났거나 다친사람을 보면 병원에도 데려가고 치료를 받게 해주는 선행을 베풀기도 하여 엄청난 병원빚이 있다. 하지만 그의 아우라만 보았던 이들은 마사오란 인물의 힘을 빌어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싶어한다. 자신의 힘의 위용처럼 번듯한 호텔을 짓고 싶어하기도 한다. 하지만 마사오에겐 번듯한 것이 없었다. 그의 이름 하나만으로도 그게 힘이었고 세계였다. 전망대의 망원경처럼 한쪽에만 설치하여 한쪽만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닌, 망원경만이라도 밝고 어두운 세상 모두를 공평하게 설치해주어야 하듯 힘이란 어쩌면 수직이 아닌 수평이라고 말하고 있기도 하면서 혼자만의 자리가 아닌 함께 누리는 자리여야 함을 말하고 있다. 마사오란 인물이 죽음에 이르고나서야 비로소 그가 재평가되듯 자리에 있을 때 잘해야 하기도 하지만 자리보다는 밑에 있는 것이 더 편안하고 평화이다. 소설을 통해 새삼 현실을 들여다보게 하기도 하고 남성들의 세계를 살짝 엿볼 수도 있었던 작품이며 작가의 다른 소설로 만나고 싶게 만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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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블루 - 언젠가, 어디선가, 한 번쯤은...
김랑 글.사진 / 나무수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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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서는 읽기 전에 먼저 한번 사진을 쭉 훑어본다. 그렇게 사진으로 먼저 만나는 느낌을 가지고 읽으면 잠시지만 그곳에 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크로아비아 블루는 겉표지부터 만나는 ’블루’ 에 진하게 빠져들게 만들었다. 블루라기보다는 블루와 초록의 어우러짐인 터키석색이라고 해야할까 정말 에멀랄드빛도 진한 블루의 색도 온통 눈에 들어오는 것은 구름 한 점 없이 하늘도 바다도 그 구분이 가지 않는 진한 파란색이니 괜히 가지 못하는 곳에 대한 그리움이 더 커진다. ’언젠가.어디선가, 한 번쯤은...’ 그 말에 해당되는 것은 하나도 없지만 괜히 그가 가지고 간 이별 때문인가 블루라는 색이 더 짙어 보인다. 

’그리워서 떠나는 게 여행이라지만, 떠나고 보면 그리운 것은 언제나 사람이었다.’ 여행은 혼자 떠나는 것이다. 여럿이 떠나다 보면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 혼자 떠나서 하나하나 채우거나 혹은 비우거나 하는 것이 진정한 여행인듯 하다. 이렇게 혼자 떠나다보면 좀더 여유를 가지고 느긋하게 많은 것을 둘러볼 수 있다. 이별의 아픔을 간직한 그에게 크로아티아의 온통 파란색은 치유의 색이 된 듯 하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에게서 또 다른 정과 인연으로, 사람으로 인해 만들어진 가슴의 빈자리를 채우고 자신과 닮은 아픔을 간직한 나그네를 보면서 좀더 단단해지는 그에게 중세역사를 간직하고 단단한 돌로 이루어진 건물들에서 세월이 흘러도 결코 변하지 않는 무상의 시간들을 채우며 왠지 모를 그리움에 함께 여행하는 기분을 잠시 느껴본다.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지구상에서 천국을 찾으려거든 두브로브니크로 가라’ 고 했다는 말처럼 어디 한곳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사진속의 풍경은 모두 한 장의 엽서같이 멈추어 버린 시간들이 고스란히 아름답게 담겨 있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건물과 종탑과 그리고 좁은 골목과 창가에 내 걸린 화분 하나 창문 하나도 그림이 되어 멈추어 버렸다. 계획에 없이 십분이면 충분한 곳을 하루 이틀을 발을 묶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여유와 욕심을 버리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많이 가지지 않아도 행복하고 여유롭게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고 때론 영화의 한 장면속을 걷는 듯한 기분이 드는 대목도 만나게 된다. 미미코와의 만남은 <카모메 식당>에 나오는 미도리와 같은 인상을 받게 만든다. 사무실 책상앞에 걸려 있던 사진을 보고 오게 된 곳, 그리고 그곳에서 이별의 아픔을 게워내고 새로운 자신으로 채워나가는 그녀를 보면서 왠지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져 들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여행은 한 편의 시가 되기도 한다. 지나다 만난 석양에 물든 자연이 한 편의 시가 되기도 하고 그리움이 되기도 하고 그렇게 편안하게 그의 여행길을 따라가게 한다.지명을 모르면 어떤가 낯선 이름에 그곳이 어딘인지 몰라도 그가 잔잔하게 읊조리는듯한 시처럼 울림이 있는 표현으로 한 장 한 장 이어 놓은 듯한 그림 속 사진들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나 또한 왠지모를 그리움에 빠질것만 같다. 어떻게 보면 ’블루,바다, 하늘’ 이란 것은 보면 시적인 공간들이고 표현이다. 파란바다에 빨간 지붕들이 주는 정열적인 색감과는 달리 ’대륙의 반대편에서 사는 당신과 내가 어울리는데, 춤이 탱고든 왈츠든 무슨 상관이오? 탱고가 뭐 별거요?’ 라는 말로 그저 춤 하나로 거듭나길, 음식을 나누는 것에 뜻을 담고 있는 여유를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여행자에게는 부담이 없는 곳이면서 풍부한 자연을 느끼고 체험하기 좋은 곳인듯 하다. 편안하게 그야말로 무계획으로 머물고 싶으면 좀더 머물고 떠나고 싶을때 아무때나 가방을 훌쩍 메고 떠날 수 있는 계획이 필요없는 여행지인듯 하다. 그런 곳에서 가끔 혼자만의 여행으로 진정한 자신과 만나고 싶다. ’내가 사랑해줄 무언가를 찾아 떠나는 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것을 찾아가는 것..그게 여행이니까.’ 자연앞에서는 사람이 주고간 빈자리는 빈약할 수 있다. 플프트비체의 호수를 따라 길게 난 산책길을 걷다 보면 무엇이든 다 잊고 새로운 것으로 마구 채워 넣고 싶은 욕심이 날것만 같다.

여행은 새로운 인연을 만드는 것이다. 그곳에서 푸른눈동자를 가진 외국인에게서 우리말이 나올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혼자 스스로 익힌 언어라지만 대단하다. 로코의 때묻지 않은 미소와 함께 아름다운 말이 남겨진다. ’길 위의 인연이라도 인연을 맺었으면 친구지요. 친구는 내것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기다린 거죠. 당신도 나와 당신의 시간을 나눴으니 이제 우리도 친구가 된 거에요.’ 라는 말처럼 잠깐 스친 인연들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고 새로운 인연으로 채운 여행에 괜히 감동에 젖어보게도 한다. 어찌 한사람에 국한되겠는가 모텔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나 길에서 만난 아이들 그리고 공원에서 만난 할아버지등 정말 인상깊은 사람들이 여행의 길목을 지키고 있다고 불쑥불쑥 나타나 작은 감동을 주니 그냥 물흐르듯 읽다보면 여행이란 어쩌면 새로운 인연을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풍경이란 사진으로 담을 수 있지만 인연이나 사람이란 마음에 담을 수 있는 것으로 지우려해도 지워지지 않는다. 그렇게보면 새로운 풍경을 만나는 기쁨보다 사람에게서 얻는 기쁨이 더 큰 것이 여행일지 모른다. 따듯한 사람들을 많이 만난 여행일수록 더 값지게 느껴지고 정감이 간다. 지나는 풍경만 담긴 여행이라면 겉만 핥은 것과 같은 여행일지 모르는데 그 속에 숨어 있는 진주와 같은 사람들을 느끼고 체험했기에 크로아티아의 파란색이 더 깊게 느껴진다.

어차피 내겐 모두가 그리움의 대상이다. 풍경이건 사람이건 물건이건 모든것 하나하나가 가서 직접 느끼지 못한다면 그저 책으로 만족해야 할 그리움의 대상이지만 그 그리움은 겉도는 그리움이 아닌 사진과 글에 모두 푸른색으로 녹아나 있는 듯한, 한장의 그림이 된 듯하여 다시금 크로아티아를 새겨볼 기회를 가져본다. 서두르지 않고 여유를 가지고 여행하였기에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담아낸듯 하다. 한 곳 한 곳 오롯이 담아내고는 그곳에 대한 여행족을 위한 알짜배기 팁까지 꼼꼼하게 정리가 되어 두고두고 볼 수 있을 듯 하다. 언젠가 여행을 간다면 가방속에 쏙 넣고 가기에도 좋을 듯 하고 크로아티아 그곳에 가진 못해도 푸른 자유와 여유가 그리울땐 한번씩 꺼내어 사진들을 펼쳐 보며 또 다른 여유에 빠져볼 수 도 있을 듯 하다. ’여행에서 많이 보는 것만이 중요한 것은 절대 아니다. 때로는 향기든, 기억이든, 마음이든, 무엇인가 남겨두는 편이 훨씬 더 좋을 때가 많다.’ 그런가 하면 다음을 위한 무언가 아쉬움을 남겨 놓는 것, 그것이 또한 여행인듯 하다. 어찌 한 권에 크로아티를 다 담을 수 있을까 아직 못다한 이야기도 더 담을 것도 많겠지만 책으로 보여지는 것만으로도 크로아티아를 조금은 맛보지 않았나싶다. 그 푸른 바다와 하늘에 깊게 빠져들었다 나온 듯 하다. 여행서를 읽다보면 그곳엔 가지 못해도 어딘가로 떠나고 싶게 만든다. 자유를 느낄 수 있는 바람과 만나 내 속 깊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기만 하다. 몇 번을 다시 봐도 정말 좋은 블루이야기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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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 장수 문순득, 조선을 깨우다 - 조선 최초의 세계인 문순득 표류기
서미경 지음 / 북스토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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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왜 그를 선택했을까, 그였기에 더 다행한 역사가 되지 않았을까,그가 아니고 만약에 양반이나 좀더 신분이 높은 이였다면 조선을 흔들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더불어 그런 인재를 알아보는 탁월한 눈을 가진 인재인 정약전과 정약용 그리고 실학자들이 있었기에 그의 3년 2개월의 표류가 새로운 세상을 보는 그야말로 광명과 같은 눈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 내용에 대한 다큐를 본 느낌이 있어 읽으면서 자꾸 머리속에서는 그 다큐가 생각났다. 이백여년간 촌부의 다락에서 숨쉬고 있었던 '역사' 의 값어치가 비로소 세상에 나와 빛을 보는 순간이기도 했던 것 같은데 왜 좀더 그의 시각이 일찍 세상에 나왔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가져보지고 했다.

작은 섬 우이도의 일개 홍어 장수였던 문순득, 일자무식이라 해도 남보다 뛰어난 호기심과 기억력 그리고 생명력으로 처음으로 새로운 세상과 만난 '천초' 인 그가 홍어를 나주장에 가져가 백섬의 쌀과 바꾸어 돌아오던 길, 뜻하지 않은 풍랑을 만나게 되고 망망대해에서 거친 파도와 비바람을 이겨내기엔 너무 작은 일엽편주와 같은 배로 지금과 같은 고도의 GPS도 없는 그런 항해에서 죽지 않고 살아 남아 그래도 남의 땅이지만 밟게 되었다는 것은 어쩌면 선택이다. 새로운 세상은 벌써 그의 앞에 기다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남보다 더 뛰어난 호기심과 친화력 기억력 덕분에 가는 곳의 언어 생활양식 모든 새로운 것들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여 차곡차곡 저장해 둔 문순득, 좀더 빠른 통신망이 있었다면 바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겠지만 닫힌 세계에 살고 있었던 조선과 그리고 그곳을 벗어나지 못했던 민초였던 이들에게 새로운 세계와 사람들 그리고 이상한 언어는 받아 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곳에서 끈질긴 생명력으로 버티어 가면서도 모든 것을 담아 두었기에 후세에 빛을 보는 '역사' 를 남겼다는 것은 어쩌면 그야말로 지금의 '여행서' 에 버금가는 이야기꾼이며 여행가의 면모를 보여준듯 하다. 그렇다고 그가 표류한 이야기들이 그냥 혼자 담아 두었다면 빛이 되지 않았을터인데 그를 알아본 '정약전' 이라는 비범한 인물이 있어 그의 표류기는 더욱 조선을 흔들어 놓을 수 있었던 듯 하다.

'나는 사방의 나라는 문자가 같다고 알았다. 그런데 문자도 다르단 말인가?' 이 얼마나 닫힌 생각과 닫힌 나라에서 살고 있었다는  말인지. 제주도에 표류해온 사람들을 가리켜 '해귀' 라고 했다. 나와 다르다고 나와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고 바다에서 온 귀신이라고 했으니 어이가 없지만 어쩌겠는가 이 나를 벗어나보지 않고 안방만 지키며 살았으니. 그런 모두의 눈을 놀라게 하는데 '홍어 장수 문순득' 이 있으니 한참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던 '실학' 과 만나 더 큰 빛을 보게 되지 않았을까. '문순득은 이제 일개 변방 작은 섬의 홍어 장수가 아니었다. 표류가 그를 변화시켰다. 류큐,필리핀,마카오,중국 땅 곳곳을 3년 2개월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떠돌면서 이방인들과 소통하고 보고 들은 지식과 경험이 그를 바꾸어 놓았다. ...조선 사람 최초로 필리핀 통역사 역할을 자청했다.' 자신이 오랜 기간 이역땅을 돌며 표류생활을 해 보았기에 낯설고 물설은 곳에서의 고생을 알고 있기에 제주도에 표류한 이들의 통역을 자청하여 그들을 본국으로 돌아가게 해 주었던 최초의 통역사가 된 문순득, 그와 언어가 통한다는 것 하나로 그들의 9년간의 표류생활이 한바탕 울음으로 이어지던 장면이 꼭 보지않아도 느낌으로 마음이 짠해진다. 얼마나 반가웠을까,언어가 통하고 자신들을 알아봐준다는 그 하나가 이렇게 반갑다는 것이. 문순득 그도 그랬을 것이다. 좀더 일찍 자신과 조선이 알려졌다면 본국으로 돌아오는 날이 앞당겨졌을텐데.

문순득 그의 표류가 주는 의미는 크다. 새로운 세상을 최초로 본 사람이기도 하지만 그 모든 기억들을 담아 놓았고 그의 기억을 다시 끄집어 내어 책으로 낸 정약전의 <표해시말>과 그의 영향을 받은 정약용의 <경세유표>와 그가 선진국의 배에 관한 관심과 자신이 표류를 하게 된 것 또한 선박제조에 뒤떨어진 기술 때문이라는 관점에서 더 자세하게 보았던 선박기술에 대한 것을 정리해 놓은 이강회의 조선 최초의 선박논문인 <운곡선설> 뿐 아니라 우이도의 문순득의 집은 표류후 실학의 산실이 되었다니 대단하다. 일개 홍어 장수에서 새로운 문물을 보고 받아 들인 실학자나 선구자가 되었으니 그의 운명을 표류가 바꾸어 놓았다고 볼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면 표류자가 되었다면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시름시름 앓거나 혹은 죽기도 했을 터인데 그의 강인한 뱃사람으로의 생명력과 장사로 다져진 호기심은 그를 새로운 사람으로 바꾸어 놓은 듯 하다. 작은 섬 우이도에서 홍어 장사를 하기만 했던 그에게 새로운 나라와 문물은 얼마나 값진 보물처럼 다가왔을까.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커다란 배나 지금까지 보지 못해던 꼬불꼬불한 실같은 글씨, 어느것 하나 놓치지 않고 '우리화' 시켜서 저장해 놓은 그의 복원력도 뛰어나지만 그런 새로운 것에 눈을 뜨고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더 다행이다.

한승원님의 <흑산도 하늘길> 정말 감동적으로 읽었는데 작가는 그 소설에서 정약전을 마중나온 작은 어선의 선주를 문순득으로 추정했다니 나 또한 기억을 뒤져 새롭게 그를 떠올려 보기도 했다. '가치를 제대로 알아준 정약전 같은 실학자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문순득의 표류는 한낱 어상의 모험담 정도로 잊혀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그가 표류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와 이런 신문물을 만난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면 정말 어상의 모험담으로  점점 커져 부풀려지고 무슨 전설화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를 알아본 대단한 실학자 정약전에 의해 체계화되고 책으로 쓰여지게 되면서 그의 표류는 단지 개인의 이야기가 아닌 '역사' 가 된 것이다. 류큐,오키나와에서조차 사라진 언어와 역사가 그의 표류기에는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의 표류기인 <표해시말>은 문순득의 이야기이면서 류큐의 역사책이라 볼 수 있다. 일본과는 동떨어져 다른 역사오 언어를 가지고 있었던 류큐, 그곳에서 정확하게 그들의 언어를 알아들었고 그것을 기억하고 토해낸 홍어 장수 문순득, 그 모든 것을 기록없이 기억해냈다는 것도 정말 대단하다. 아마 글씨를 알았더라면 남겨진 역사는 얼마되지 않았을터인데 그가 신분도 그렇고 글씨를 모르는 사람이었기에 모든것은 더욱 자세하게 그의 뇌리에 박혔던 것이라니 흥미롭다.'문순득은 무기는커녕 모든 것을 잃고 흘러들어온 표류민이었다. 그런 약자의 시선으로 그는 순수한 이방인 관찰자가 되어 우리나라에는 물론이고 일본에도 소중한 역사 기록을 남긴 주인공이 되었다.' 

일개 홍어 장수 문순득에서 표류생활 후 새로운 문물을 보고 느낀 것이 조선을 흔들고 선구자들의 눈과 귀에 바퀴를 달아주듯 잘 굴러가에 하여 실학자가 아닌 실학자로 거듭난 문순득, 새로운것에 대하여 빗장을 걸어 대문을 꼭 걸어잠그기 보다는 받아 들일것은 받아 들이고 배울것은 배우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정말 그의 삶으로 보여준 사람이다. 어쩌면 너무 일찍 세계화에 다가간 사람인데 역사속에 묻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찌보면 갇힌 세상에서 살던 모두에게 일침을 가하는 '표류기' 이지 않았나싶다.좀더 그와 같은 이들이 많이 있고 새로운 것에 눈을 돌릴줄 아는 시선을 가진,자신의 자리를 빼았길까 전전긍긍하는 위사람이 아닌 열린눈과 귀와 마음을 가진 윗사람이 있었다면 우리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일개 홍어 장수도 역사를 흔들어 놓았는데 만약에 그것이 위에서 그런 일이 발생했다면 그 파장은 무척 컸을 것이다. 요즘 자주 접하게 되는 정조시대의 역사, 읽어도 읽어도 흥미롭고 재밌다. 역사란 알면 알수록 자신도 모르게 더 깊이 파고 들어가는 우물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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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1-03-17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전해듣고 책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가,
바쁜 일상속에서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여기서 또 만나네요.

일깨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얼른 보관함에 넣어야겠어요. ^^

서란 2011-03-18 22:1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저도 재밌게 읽은 책이랍니다.
즐거운 독서가 되길 바랍니다.
 
[eBook]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최제훈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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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제훈 작가의 책은 처음이다. 첫 만남이었는데 느낌이 좋다.미스테리와 추리소설을 좋아하는데 그의 소설은 독특하다. 요즘 젊은 작가들중 스토리텔링이 대단한 작가들이 많은데 그중에 한사람 천명관 작가의 <고래>를 생각나게 하는 작품이다. 이야기가 끝이 없을것처럼 이어질것만 같다. 그렇다고 계속 되는 이야기도 아닌 것이 무언가 교집합을 가진 이야기들이 숙주에게서 새로운 것으로 파생되어 새로운 이야기로 재탄생되어 정말 숨은그림찾기나 퍼줄맞추기처럼 독특한 재미를 준다. 어딘가에서 나왔더라 하고 지난 이야기를 곱씹어 보게 하는 재미도 있고 끝이 날것만 같은 아니 처음과 끝이 다시 하나로 연결되어 서로의 이야기들이 하나의 완전한 고리로 연결된 '환' 아니 끝이 없는 '파이' 를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소설중에도 나오는 '단 한편의 완벽한 미스테리 소설'...'단 한편의 완벽한 미스테리소설.....그게 어떤 건데?' '그게 바로...... 그 소설의 핵심 미스터리야.' 라는 말처럼 작가는 '단 한편의 완벽한 미스테리 소설' 을 정말 끝이 없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교묘하게 연결시켜 놓았다. 잠깐 한눈을 팔다보면 삼천포로 빠질듯 위험하기도 하고 더욱 집중해서 읽어야만할 것 같은 적재적소의 '교집합' 들이 이야기마다 숨어 있어 그 또한 찾는 재미가 있다.

여러개의 단편소설들이 하나의 장편소설이 되는 소설들이 꽤 있다.하나의 주제를 향해 나아가는 단편적장편소설도 있는가 하면 이렇게 단편이 연결되어 장편이 되는 소설 한강의 <채식주의자>도 단편이 연결되어 장편이 되었는데 이 소설은 그와는 또 다른 재미를 준다. 무언가 씨실과 날실이 교묘히 배배꼬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문양의 한벌의 멋진 옷이 완성되듯 소설은 계속적으로 숙주의 몸에서 숙주를 갏아먹면서도 새로운 놀라운 개체를 만들어 낸다. 그렇다고 그것이 앞의 이야기를 다시 반복하는 것도 아니면서 새로운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를 탄생시키고 그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의 발판이 되면서 다른 이야기를 탄생시킨다. 정말 미스터리이다. 그렇다고 결론이 딱불어지게  '이것이다'  하고 제시하는 것이 아닌 독자의 몫으로 남겨 놓았다. 독자가 어떻게 결론을 내리느냐에 따라 이야기는 또 달라질 수 있는 정말 수없이 많은 이야기로 파생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이야기다.

죽음이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고 우리 또한 그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는 영원한 숙제이다. 그렇지만 어느 예능프로의 말처럼 '나만 아니면 돼' 라고 외치면 그 죽음이란 울타리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지만 연쇄살인범과 평범한 우리의 차이는 생각을 간발의 실천으로 옮기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는 문제처럼 늘상 죽음은 우리 옆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살인범은 아니지만 인터넷 동호회 '실버해머' 에서 살인에 대하여 연쇄살인범보다 더 이론적으로 죽음과 살인에 대하여 능통한 사람들, 그들이 단지 경험하거나 체험하지 못한 것은 실제상황에 접해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 6인을 산장에 모이게 하는 '악마' 라는 사람,갇힌 밀실인 산장에서 벌어지는 그들이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것을 실제상황에서 경험하게 되는데 꿈을 통한 살인 그리고 현실에서 보게 되는 시체를 보게 된다. 그들은 닉네임으로 활동했기에 그들이 오프라인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밝혀지지 <여섯번째의 꿈>에서는 밝혀지지 않는데 <복수의 공식>외 이야기들에서 밝혀진다. 

'그들과 우리를 구분 짓는 양심이라는 게 생각만큼 단단한 벽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방아쇠를 당기는 건 한순간이니까요.' 살인자와 그렇지 않은 평범한 보통의 사람은 정말 양심이라는 그 얇은 벽 하나 차이로 어쩌면 세상은 달라질지 모른다. 정당방위가 되었든 자신이 살기 위하여 저지른 어쩔 수 없는 살인이라 해도. '죽음' 이란 무엇일까. 멀리하려 해도 결코 우리의 삶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물음표에서 계속적으로 만나는 사람들과의 인연속에서 또 다른 물줄기가 파생되듯 또 다른 이야기로 접어 들면서 다른 이의 삶을 통해 다시금 환상처럼 마주하게 되는 죽음의 이면, 그렇다고 그 속에서 누가 범인이고 어떤 사건이 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연결고리를 통해 많고 많은 사람들이 연결되고 모두의 삶이 한번쯤 교집합이 될 수 있는 그런 상화에서 죽음 또한 떼어 놓을 수 없음을 보여주는 환상적인 미스테리 소설.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세마리의 고양이가 있다면 당연히 눈이 여섯개가 되어야 할 텐데 <여섯번째의 꿈>처럼 일곱명이 되어야 할텐데 '악마' 라는 주선자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보이지 않는 검은망토의 악마' 가 나타나 살인을 하게 되고 여섯명이면서 일곱명처럼 된 '여섯번째의 꿈' 과 마찬가지로 세마리가 일곱개의 눈이 된것이라 한다면 '비현실성' 혹은 '환상' 이라 말할 수 있으며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여섯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고 아직 닥쳐오지 않는 미래의 '죽음' 을 넣는다면 일곱이 된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해 본다. 소설의 결말이나 평은 각기 다를 수 있고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리 다른 해석을 할 수 있지만 모든 이야기들을 통해 그는 '죽음' 이라는 것에 도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먼 이야기처럼 알고 있지만 실은 늘 우리곁에 달라 붙어 있는 죽음이 어떤 상황을 만나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또 다른 모습으로 보일 수 있는 환상. 

처음엔 밀실추리소설인줄 알고 약간은 허무함을 느꼈지만 두번째 이야기에서 완전히 매료되어 읽게 되었다. '아 이런 작가도 있구나' '이런 미스터리도 있을 수 있구나' '단 한편의 완벽한 미스터리' 를 위해 작가는 얼마나 많은 자유발상을 했을까? 생각의 가지를 계속 쳐나가면서 끝없이 이어지는 이야기들, 그 속엔 우리가 모르지만 의연중에 교집합이 있을 수 있고 모르고 지나지만 타인과도 교집합이 있을 수 있는 삶속에서 죽음 또한 나는 느끼지 못하지만 내가 그에게 영향을 미쳐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는 것. 불교의 인연과 윤회처럼 계속적인 이야기 속에서 인연 또한 무시할 수 없음이, 남에게 빚은 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가져 보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살인이 직접적인 영향의 살인만이 있는 것이 아닌 번역가라면 작품속에서 할 수도 있고 쌍둥이라면 의연중에 동생을 혹은 형을 죽기를 바라는 상대로 생각하고 살수도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 자신의 마음에 달려 있다. 표면화 시키지 않을 뿐이지 늘 죽음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양심의 벽이 무너지는 순간에 살인자가 될 수도 있는 환상적 현실의 이야기들, '모든 건 연결되어 있어.' '내가 환영 속을 헤매고 있는 거라면, 사라져야 할 건 현실이다. 현실이 별건가, 내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곳일 뿐.' '완성되는 순간 사라지고, 사라지는 순간 다시 시작되는 영원한 이야기, 무한대로 뻗어나가지만 결코 반복되지 않는 파이처럼.' 그리곤 ' 자, 이야기를 계속해봐,잠이 들지 않도록.' 잠이 들면 이야기도 끝이 나고 죽음과 맞닿을듯 하다. 그렇다면 끝이 없는 숙주의 몸에서 새로 탄생한 '맵시벌' 이야기처럼 계속되어야 한다. 손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흡인력과 강한 집중력 그리고 무언가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환상속을 걷는 듯한 돌고 도는 이야기들 속에서 결말없이 파생되는 이야기들 속을 배회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는 소설로 그의 다른 작품을 찾아 읽어보고 싶게 만들며 그를 눈여겨 보게 하는 작품이 되었다. 원주율의 파이처럼 한동안 무언가 알 수 없는 끝없는 이야기속을 배회했지만 답이 없어 허무한 느낌, 하지만 무언가 확실하게 단단히 발목을 잡는 매력덩어리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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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모메 식당 디 아더스 The Others 7
무레 요코 지음, 권남희 옮김 / 푸른숲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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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모메 식당은 몇 년전에 영화로 먼저 재밌게 보았기에 선택을 하게 되었다. 눈으로 드립커피와 시나몬롤 오니기리(삼각김밥)을 맛보았다면 지지직 보글보글 하는 소리까지 맛있어 귀 기울이게 하는 영화였다. 정갈하면서 욕심내지 않고 자신의 꿈을 소박하게 이루어 나가는 그런 여자들의 사랑방 같은 영화라고나 할까. 원작은 사치에 미도리 마사코가 왜 일본이 아닌 낯선 ’핀란드’ 에서 모이게 되었는지 그 지난날을 모두 이야기 해주고 있다. 자신의 평범하거나 일상적인 삶에서 무언가 정말 절실하게 돌파구가 필요했던 그녀들, 목적이 있거나 목적이 없거나 그곳에 가면 치유가 될 것만 같은 생각에 음식냄새에 이끌리듯 ’카모메 식당’ 에 이끌리는 여인들이 커피 한 잔에 시나몬롤을 앞에 두고 맘껏 수다를 떨 수 있는 동네사랑방 같은 그 곳, 그곳이 바로 카모에 식당인 것이다.

무술인이었던 아버지 밑에서 어머니가 살아 계실때는 무술을 배우고 또 남들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자연적으로 집안 살림을 맡아 하면서 무술이 아닌 요리에 더 뜻을 두게 된 사치에는 점점 요리에 빠져들게 되고 자신만의 요리세계를 펼칠 수 있는 그런 가게를 갖고 싶어한다. 하지만 일본에서 그런 가게를 한다는 것은 아버지의 간섭이 있을것 같아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보다가 아버지의 제자중에 핀란드에 살던 사람을 생각해 내고는 그곳에서 가게를 할 수 있는지 도움을 요청한다. 가게를 하자면 많은 돈도 필요했는데  뽑기에 행운이 늘 따랐던 그녀가 복권을 사게 되고 어마어마한 금액이 당첨된다. 이제 모든것은 다 준비가 된 것이다.핀란드로 떠나기만 하면 된다. 한편 아버지는 무뚝뚝한듯 해도 운동회나 소풍에는 꼭 사치에게게 손수 싸주셨던 아버지,떠나기 전날 말씀 드렸더니만 떠나는 날 아침에 손수 상을 차려주시는 따듯함을 보여주신다.별어려움없이 핀란드에 도착하여 아담한 가게를 열지만 손님은 늘 아무도 없다. 그래도 날마다 깨끗이 그릇을 닦고 시장을 보고 음식을 만든다. 그런 어느 날 첫 손님이 들어오는데 그는 일본 에니매이션 마니아이다. 겨우 더듬거리며 말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일본어실력이지만 그는 사치에에게 ’독수리 오형제’ 노래를 알고 싶어한다. 하지만 사치에의 입안에서 맴도는 노래는 모두가 기억이 안나고 다음에 알려주겠다고 해도 그 손님은 날마다 찾아온다.유일한 손님이 별볼일없는 대학생이었던 것이다.그는 곧 자신의 지정석까지 생겨나게 된다.

한편 토미에게 독수리오형제 노래를 가르쳐주겠다고 한 후 우연하게 시내를 둘러보다가 책방에 가게 된 그녀는 그곳에서 일본인 여자를 만나게 되고 그녀에게 첫만남에 ’독수리 오형제’ 주제곡을 묻게 되고 그녀가 노래 전부를 알려 주면서 그들은 대화를 하게 된다. 미도리를 처음 만나게 된 것이다. 미도리 역시나 지금까지 부모의 뜻 한번 거스르지 않고 부모가 정해주는 학교에서부터 직장까지 그렇게 달려왔지만 부모님이 가시고 부모님이 남겨주신 유산을 남동생에게 빼앗기듯 하고 직장도 문을 닫고 나니 갈곳이 없다. 뭔가 새로운 돌파구가 자신의 인생에 필요함을 느끼고 세계지도를 펼치고 짚은 곳이 ’핀란드’ 그래서 무작정 이곳으로 오게 된 것이다. 사치에의 권유에 함께 하게 된 그녀들 지금까지 자신의 속에 잠재되어 있던 새로운 능력을 보게 되고 함께 카모메 식당을 꾸려가게 된다. 손님은 하나 둘 늘어가게 되고 일본식 삼각김밥이아닌 핀란드식 삼각김밥을 만들어 보게 되고 시나몬롤도 만들어보게 되고 미도리가 가게에서 일하게 되면서 하나가 아닌 둘이 되어 더욱 새로움으로 한 둘 바뀌고 나니 손님이 점점 늘어가게 된다. 밖에서 늘 맘을 보듯 가게안을 들여다보던 핀란드 할머니들까지 손님이 되어 시나몬롤에 홍차를 마시게 되고 그야말로 동네 사랑방 같은 가게가 되어 간다.그러다 공항에서 가방을 잃어버린 마사코가 합류하게 된다. 이곳은 그러니까 한가지씩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맛있는 음식과 수다로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곳이다. 남편이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가게 된 핀란드 리사 아줌마까지 이곳에서 진정한 마음의 치유를 얻어가 밝은 삶은 되찾게 되고 전직 도둑이었던 마티 아저씨의 친구는 호시탐탐 카모메 식당을 노리다 어느날 그곳에 도둑이 들지만 사치에가 누군가 무술을 하는 아버지에게 배운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해주는 사치에와 한팀이 된 미도리의 힘으로 도둑을 잡게 되고 그들은 유명인사가 되어 식당은 더욱 북적북적, 하지만 역시나 그때까지도 오니기리는 인기가 없다. 오니기리는 사치에게는 일본과 고향의 맛 아버지를 느끼게 해주는 음식인데 이상하게 생긴 음식을 핀란드인들은 꺼렸던 것이다.

 그런 어느 날 리사 아줌마가 오니기리를 먹게 되고 그 맛에 빠지게 된다.’언제나 네가 만들어서 네가 먹지 않냐, 오니기리는 남이 만들어준 게 제일 맛있는 법이다.’ 라고 하시던 아버지, 그랬다. 자신이 손수 만들어 제일 맛있는 맛을 남들에게 선물하듯 하고 싶었지만 그것을 몰라주었던 핀란드인들, 하지만 이젠 그녀의 맛에 서서히 빠져 들고 있는 것이다. 핀란드에 와서 치유를 받기를 원했던 사람들, ’ 자연에 둘러싸여 있다고 모두 행복하다고는 할 수 없지 않을까요, 어디에 살든 어디에 있든 그 사람 하기 나름이니까요. 그사람이 어떻게 하는가가 문제죠. 반듯한 사람은 어디서도 반듯하고, 엉망인 사람은 어딜 가도 엉망이에요. 분명 그럴 거에요.’ 사치에의 말처럼 일본이 아니어도 자신이 똑바르면 핀란드에서도 행복을 얻을 수 있고 치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이 없는 사람이 건성으로 만든 것과 마음이 있는 사람이 정성을 담아 만든 것은 맛이 다르답니다.’ 정성을 다하고 억지로가 아닌 자신이 하고 싶어서 하는 음식만들기이기 때문에 맛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음식에도 마음이 들어가야 맛이 난다는 이야기인데 정성과 주인장의 마음이 깃들어져 있고 남다른 솜씨까지 가진 사차에가 만든 음식이니 맛있지 않을수가 없다. 그러니 핀란드인들이라도 카모메 식당에서 ’맛있다’ 를 연발하며 음식을 먹게 되었다는, 카모메 식당(갈매기 식당)은 주인장부터 마음을 열어 놓고 모두를 대하니 그곳을 들어오는 사람들 또한 마음을 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분명 그곳은 사치에에게도 미도리에게도 마사코에게도 낯선 곳이다. 인연이 하나도 없던 그곳에서 그들은 ’음식’ 이라는 하나의 주제에 마음을 열고 하나가 된다. 맛있는 음식을 함께 모여 앉아 먹게 되다보면 자연히 마음에 쌓인 것들을 풀언 놓게 된다. 요란한 음식점이 아닌 그곳은 동네사랑방 같은 곳이었고 맛있는 음식이 있고 늘 사람냄새가 나는 곳이었으니 당연히 사람이 모이게 된 것이고 그곳에 들어오는 자, 마음의 병을 치유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영화에서는 전식당 주인이 커피내리는 기계를 가지러 왔다가 ’환상의 커피’ 를 내리는 법을 알려준다. ’코피 루악’ 에 대하여 말해주며 좀더 따듯한 그야말로 냄새가 진한 음식영화로 발전하는데 원작은 사람냄새와 치유에 비중을 두었는지 전식당주인이 아닌 전직도둑이었던 마티아저씨가 등장하고 도둑이 등장한다. 환상의 커피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지만 영화를 먼저 보아서인지 무언가 따듯함이 그 뒤에 숨겨져 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 그곳에 가서 맛있는 소리와 함께 맛있는 냄새가 가득한 그곳에서 소리까지 맛있는 오니기리와 시나몬롤을 맛봐야 할 것만 같다. 물론 세아줌마들과 함께 홍차를 앞에 두고 앉아 진한 수다를 나누면서 말이다. 어찌보면 별 내용이 없을것 같지만 담백하면서도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을것만 같은 오니기리처럼 겉모양과는 다른 한입 베어물면 속에 숨은 정말 알짜배기의 맛이 입안에 감돌것만 같은 그런 따듯함이 숨겨져 있는 치유의 소설이다. 그것이 음식과 만나 더욱 따듯함을 연출해 낸다. 사치스럽지 않게.산다는것 또한 요란하거나 사치스럽지 않아도 가득찬 수레의 묵직함처럼 가만히 있어도 빛이나는 그런 향기로운 사람은 결코 많은 것으로 치장을 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을 즐기는 것 뿐이다.타인의 의지로 가는 그런 삶이 아닌 자신이 잘할 수 있고 자신이 그 일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면 카모메 식당에서 서빙을 해도 좋고 설거지를 해도 좋은 것이다. 겉치레가 아닌 내면을 보여준 소설로 그런 곳을 갖고 싶게도 하고 그런 곳에서 친구들과 모여 한번 삶을 풀어헤치며 진한 수다를 나누고 싶게 만든다. 그곳에선 영원히 끝나지 않을 수다가 넘쳐날 것만 같다 맛있는 음식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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