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미술 : 미완의 미학
정해광 지음 / 꼬마심포니(다빈치기프트)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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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완의 미학으로 성립한 미술

아프리카의 미술을 미완의 미학이라고 정의한다. 왜? 아프리카의 미술이 그 종족적 열등감 때문에 낮은 단게에서 발전이 정지해 있기 때문에?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제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프리카 미술을 바라보던 관점이었다. 그러나 그 관점은 틀렸다.

아프리카 미술에서 많은 영감을 받아 자신들의 작품에 아프리카적인 요소를 차용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피카소도 아프리카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모티브만 차용해 왔을 뿐이다. 그들은 아프리카 미술에 깃들어 있는 진정한 것, 즉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을 놓친 것이다. 아프리카 미술을 바라보는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저자는 아프리카 미술을 이해하는 키워드는 바로 인간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아프리카 미술에서 그 의미를 읽지 못하는 것은 사람들이 아프리카적인 방식으로 생각해보려고 노력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예술은 거창하거나 화려하지가 않다. 그것은 예술적인 미감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생각하는 관점이 인간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서구적인 사고방식처럼 고도의 장인정신으로 세련미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의 모습이 잘 우러나는 것이 진정한 미의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에는 대규모 건조물이란 것이 없다. 대규모의 건축이 없다는 것이 문화적 수준이 낮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서구적 사고의 편견일 뿐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자신들과 닮지 않은 것은 미개한 것이라고 아프리카를 타자화시킨 결과일뿐이라는 것이다. 아프리카인은 인간의 관점에서 세상을 본다. 그것은 아프리카의 여러가지 전승이나 문학작품에서 잘 드러난다. 그러기에 소박한 작품들에서 인간을 위주로 한 미술이 주로 나타나는 것이다. 진정한 아프리카를 발견하려면 눈높이를 아프리카에 맞추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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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ricarho 2013-04-28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프리카 미술에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갤러리통큰에서 두츠전을 현재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미술을 사랑하시는 여러분의
많은 성원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두츠_아빠의 그림일기展 (갤러리 통큰)

#제목 : 두츠, 아빠의 그림일기展
#기간 : 2013.4.24(WED) - 5.28(TUE)   
#장소 : 갤러리 통큰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74번지 2층)
#문의 : 732-3848 (담당자: 큐레이터 김나영)
 
유난히 큰 자동차가 눈에 띈다.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크기이다.
이는 두츠가 자동차를 마련했다는 경제적 안정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에게 있어서 자동차는 아이와 함께하고픈 시간의 크기와도 같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의 표현인 것이다. 이렇듯 이번 전시는 부성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동심을 특유의 서정성으로 표현한 것도 주목할만한 일이다.
2013년 두츠는 프랑스 국적으로 바뀌면서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작가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물고기의 등장으로 연결시켰다.
그의 성(姓)인 Ndoye는 아프리카어로 물고기란 뜻이다.
결국 이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두츠, ‘어떤’ 확장된 모습으로, 또 ‘다른’ 그의 이야기가 시작될지 궁금해진다...

#동영상>>> http://www.youtube.com/watch?v=JPmRUrXHf5U&feature=player_detailpage

**따스한 봄기운을 품은 이번 두츠전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www.africarho.co.kr
 
지중해학 : 세계화 시대의 지중해 문명 살림지식총서 160
박상진 지음 / 살림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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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시대에 지중해를 어떻게 바라보는 시선

지금은 누구나 인정하는 세계화 시대이다.  국가와 국가, 대륙과 대륙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정보와 물자와 돈이 모든 경계를 허물고 빠르게 교환되고 있는 시대이다. 세계화는 우리가 사는 시대를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이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생활 양식이다. 우리는 인류의 역사상 처음으로 진정한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첫 세대이다.

전지구적인 규모의 세계화는 지금이 처음이다. 그러나 세계화의 경험 자체가 지금이 처음인 것은 아니다.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에서는 지중해를 둘러싸고 오래전부터 활발한 교역과 교류가 일어났었기 때문이다.  지중해는 유럽과 소아시아, 이집트, 북 아프리카로 둘러싸인 문화권간의 교류의 장이었다. 일찌기부터 지중해는 페니키아와 이집트, 유대인들의 배들이 자유롭게 왕래하면서 문화와 물자를 실어 날랐어다. 지금과는 형태가 다르지만 또 다른 의미의 세계화였던 셈이다.

그러나 그렇게 서로 다른 문화와 국가들이 서로의 산물과 문화를 교류하던 지중해의 세계화는 그리스에 이어서 로마의 패권이 굳어지고 지중해 전체를 둘러싸는 제국이 완성되면서 사라지고 말았다. 문명간의 교류는 사라지고 패권주의의 영향하에 감시받고 통제되는 교역이 이루어지게 도었다. 자유로운 만남의 바다였던 지중해는 이제 유럽의 내해가 되고 만 것이다. 지중해는 이제 유럽의 호수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후 로마의 멸망으로 이슬람세력의 영향권이 확대되면서 지중해는 다시 유럽인의 호수에서, 세계인의 바다로의 지위를 되찾는 듯했다. 그러나 16세기 이후 유럽의 주도권이 강해지면서 지중해는 유럽이 이끄는 세계화의 물결에 물든 바다가 되어 버렸다. 만남과 교류의 바다가 아니라, 지배와 착취를 위한 통로로서의 기능을 하는 바다가 된 것이다. 이 책은 줄곧 이런 관점으로 지중해를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지중해에 관해 말하는 책이지만,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개념으로서의 지중해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지중해를 말하면서도 지중해가 아닌 다른 것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이름이 지중해의 역사라거나 지중해의 중요성이 아니라, 지중해를 바라보는 관점으로서의 학문이라는 뜻인 지중해학이란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지중해학이란 지중해라는 특정한 바다에 대한 학문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명권들 사이에 놓인 바다 둘러싸고 벌어지는 세력과 세력의 관계에 관한 학문이라는 뜻이다. 그러기에 저자는 지중해학은 지중해뿐 만이 아니라 동아시아에 위치한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서해와 동해라는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일본과 중국과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그 바다는 중화의 바다가 되기도 했었고, 일본이 대륙지배를 위해 강점하던 바다이기도 했지만, 이제 우리가 새로이 만들어나갈 역사에서 그 바다는 아시아의 나라들이 평화롭게 공존을 이루어나가는 바다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특정한 패권에 의해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지배되는 바다가 아니라, 진정한 공존과 번영의 세계화를 이루어 나가는 상생의 바다를 추구하는 책인 것이다.

이만한 책이 우리나라 사람에 의해 쓰여졌다는 것이 기쁘다. 이 조그만 책이 포함하는 내용은 깊고도 크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시대가 세계화를 향해 나아간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진정한 세계화는 일방적 패권에 의해 지배되는 세상이 아니다. 서로 다른 나라와 문화가 서로를 인정하고, 공존과 상호존중을 실천할때 그때 비로소 만들어지는 진정한 지구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그런 모습을 지중해라는 바다에서 발견한 것이다.

이 책은 오늘날 전세계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문명인 서구문명의 고귀한 발상지로서의 지중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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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평화 - 한대수 사진집
한대수 지음 / 시공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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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찾는 시각

한때 한국음악계를 휩쓸던 괴상한 목소리의 주인공이 있었다. 시대를 대변하는 감성을 담았던 그 목소리는 긴 시간이 지나고 들어도 여전히 구성지다. 그 목소리와 노랫말에 담긴 깊은 정서는 아직도 녹슬지가 않았는가 보다. 젊은나이, 한창의 청춘에 그는 인생을 노래하고 삶의 아픔을 노래했었다. 그리고 그의 노래에 깊이 빠진 사람들, 그의 노래에서 삶의 위안을 받는 사람들을 남겨두고 그는 훌쩍 떠나 버렸다. 생의 절정에서...

그리고 긴 세월이 지난 후 그는 다른 모습으로 우리 앞에 훌쩍 나타났다.  떠나갈 때와 마찬가지로 홀연히... 그는 이번에는 사진작가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작은 평화라는 이름을 붙인 이 사진집에는 그가 세상을 보는 방식이 나타나 있다. 그는 나이가 들고, 예전과는 다른 음색으로 나타났지만, 사진을 통해 바라보는 그의 감성은 여전히 예전과 같은 모습을 띄고 있다.

자신이 세상에 대해서 느끼는 감성. 그것을 다른 장르로 다르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 아닌가. 자신이 부른 노래를 과감히 던져버리고 끊임없이 새로운 노래를 노래할 수 있다면 그것도 멋진 일이 아닌가. 그래서 과거 화려했던 한때를 팔아먹으며 추레하게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의 삶에 새로운 감성으로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은 참 신나는 일이 아니겠는가.

한대수의 이 사진집에는 많은 것들이 들어있다. 거리의 노숙자들, 반핵시위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들... 그런 모습을 통해 그가 노래하고 싶은 아픔을 보여준다. 그가 찍은 사진들에는 그의 노래가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그의 감성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사진을 통해서 그의 감성을 느낄수 있는 경험을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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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카파 - 그는 너무 많은 걸 보았다
알렉스 커쇼 지음, 윤미경 옮김 / 강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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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의 세기를 살다간 아픈 가슴을 가진 사람

이 책은 그의 가장 유명한 사진인 노르망디 상륙전에서 쓰러지는 병사의 모습을 담은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 아픈 모습을 생생하게 담은 '카파의 손마저도 떨리게 만들었던' 사진을 보는 참전용사들의 감회에서부터 시작해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카파의 생애를 조명하는 책이다.

그는 평생 다섯차례의 전쟁에 참가했다. 한번의 전쟁경험도 무시무시한 것이다. 아무리 전설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라고 하더라도 무려 다섯번에 걸친 전쟁에의 참가는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남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는 마음에 큰 정신적인 외상을 입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아픔을 딛고 전쟁이 벌어질때마다 전쟁터를 누빈 것은 그의 불굴의 고발정신 때문일 것이다. 한장의 사진이 백마디의 말보다 더 강렬하다는 말이 있듯이 그가 찍은 사진들을 통해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도 전쟁의 아픔을 느끼고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 그를 알게되었지만, 그의 사진들은 낮설지가 않았다. 그것은 그의 유명한 사진들이 내가 어릴적에 보았던 사진 화보집을 통해서 이미 나와 익숙한 사이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저널리즘이 무엇인지, 작가정신이 무엇인지, 카파의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는 학창시절의 나에게까지 그의 사진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으니 말이다.

많이 아파하고 많이 힘들었을 것 같은 그의 삶도 그만하면 보람된 삶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전쟁이란 이름의 폭력앞에 무력해지는 것이 사람이라면, 그는 그 전쟁에 대항하여 불꽃처럼 살아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사람이 무려 다섯번의 전쟁을 경험하게 만든 20세기는 찬란한 문명의 세기가 아니라 야만의 세기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전쟁을 인간에 대한 따뜻한 감성으로 기록한 카파의 존재는 우리에게 전쟁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인간의 힘'이라고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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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해사본과 쿰란 공동체
천사무엘 지음 / 대한기독교서회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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쿰란공동체의 이해

흔히 '사해사본'으로 알려진 쿰란지역에서 발견된 여러 문서들은 성서연구에 여러모로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구약에 대한 문서외에도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구약의 사본들을 통해서 구약이 어떤식으로 형성되었는가를 알 수가 있기 때문이다.

사해사본에는 또 구약의 외경에도 포함되지 않는 전혀 새로운 문서들이 있다. 일부는 정경이나 외경으로 채택되지 않고 우리에게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구약문서이다. 그리고 일부는 사해사본을 만들고 보존하던 공동체에 관한 문서이기도 하다. 바로 쿰란지역에 존재하던 그 문서를 만들던 공동체 말이다.

흔히 쿰란지역은 엣세네파의 거주지였다고 알려져 있다. 이 책은 쿰란공동체가 엣세네파와 매우 비슷하긴 하지만 약간 다른 형태의 집단이라고 주장한다. 역시 쿰란에서 발견된 문서들을 분석함으로써 알게된 내용이다. 사독계열의 제사장의 일파들이 이스라엘 성전에서의 권력투쟁에서 밀려나 쿰란지역에 자리를 잡고 그곳에서 자신들의 문서를 보존하면서 자신들이 다시 제사장의 직분을 맡을  새로운 시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쿰란문서는 우리에게는 그 이름과 신비롭기도 한 발견과정만 알려져 있을 뿐, 그 내용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책을 검색해 보아도 나오는 것이 이 책외엔 거의 없다. 그래서 우리에겐 이 책이 예수시대의 유대지방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는 매우 소중한 자원인 셈이다. 쿰란공동체를 이해함으로써 그 당시의 유대교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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