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티미스트 - 인생의 ‘되도록 밝은 면’ 탐구 보고서
로렌스 쇼터 지음, 정숙영 옮김 / 부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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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소위 ’긍정의 힘’이라는 말하는 낙관주의. 그런데, 그렇게 세상을 좋게 긍정적으로 낙관적으로만 볼 수 있을까.. 작금의 고도화된 산업문명 속에서 자고 일어나는 순간부터 뉴스로 시작해서 뉴스로 끝나는 일상의 반복.. 그 뉴스에서 들려오는 각종 사건과 사고의 연속에서 터지는 안좋고 나쁜 소식들, 물론 좋은 소식도 있지만 나쁜 소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많은게 현실이다. 그래서 여기 아침에 깰때마다 라디오와 TV를 통해서 들려오는 각종 나쁜 뉴스(자연재해, 테러, 살인등)에 열받아 하는 이가 있다.

그는 매일 생각한다. ’왜이리 세상은 지랄 맞은거야..’ 이게 다 비관주의로 점철된 세상탓으로 돌리며 비록 30대에 변변한 직장없는 백수지만 비관적 세상을 타파할 낙관주의자를 홀로 찾아 나서겠다며 소위 ’낙관주의 프로젝트’를 표방한 사람이 있으니 바로 <옵티미스트(Optimist)>의 저자 ’로렌스 쇼터’(이하 쇼터)다. 그런데, 이 친구 참 재밌다. 30대 젊은 나이답게 공상가, 몽상가 기질이 다분해 가만히 붙어 있는 성격이 아니다.

그래서 그는 근 2년을 지구촌을 헤매며 낙관주의자를 찾아 나서게 되고.. 그 낙관주의자들과 좌충우돌하며 격은 탐방기를 이 책에 오롯이 담아냈으니 바로 소제처럼 인생의 ’되도록 밝은 면’ 탐구 보고서다. 이 보고서에는 어떤 내용이 있을까 먼저 간단히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다.

우선은 지구촌에 맹활약중인 정치적, 사회적 저명한 인사들을 만난다. 그들만 열거해 봐도 후덜덜하다. 회의적 환경주의자 비외른 롬보르를 만나려다 인터뷰를 거절당하며 처음부터 난항을 겪었지만 이후 에덴 동산 프로젝트 CEO 팀 스미트를 만나고, 적어도 와인에 대해서는 낙관적인 200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헤럴드 핀터, 비관주의 진영 최고 사령부 ’서스테인어빌러티’ 창립자 존 엘킹턴, 미국의 승리를 낙관하는 미국 네오콘의 중심이자 전 유엔 대사 존 볼턴, 인도에서 기아와 성매매 현장을 보며 한 차원 높은 낙관을 주시한 할리웃 여배우 애슐리 주드까지..

또 쇼터의 체계없는 낙관주의를 예리하게 지적한 매킨지의 CEO 이언 데이비스, 세계가 바라보는 ’걱정거리 중국’에 대해서 안심하라고 말한 <대륙의 딸>의 저자 장융, 긍정심리학과 행복론을 주창한 <학습된 낙관주의>의 지은이 마틴 셀리그먼, 우리 모두 젊어질 수 있다는 케임브리지 대학의 노인학자 오브리 드 그레이, 불교계의 가장 행복해 보이는 마티유 리카르, 낙관이 아닌 희망을 가지라는 남아공의 성공회 신부이자 노벨 평화상을 받은 인권 평화 운동의 거물 데즈먼드 투투까지.. 그의 저명인사들의 낙관주의 탐방은이렇게 굵직굵직했다. 하지만 그들을 통해서 얻은 결론은 모두 낙관만은 아니었고 그들만의 세상을 보는 관점에 빠져 있었다.

이후 쇼터는 이런 저명 인사들 말고 일상속에서 활약이 대단했던 낙관주의자들을 또 찾아나선다. 자기계발서 저자들과 르완다 학살에서 살아 남은자, 영국 노동당 당수와 나치 홀로코스트의 생존자, 암 투병환자와 경제학자, 그리고 무정부주의자로 넷상에서 인식된 최고의 닷컴기업 구글 회사의 탐방과 결국 인도 탐방을 통해서 자기 수련과 명상을 통한 자아의 발견.. 그 속에서 여자 친구 ’자라’와의 연애담속에서 찌질스러우면서도 슬픈 이별까지..

결국, 마지막에는 전직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의 연설회장을 찾아서 듣게된 21세기의 새로운 확신의 패러다임까지 그는 이렇게 지구촌을 2년동안 떠돌아 다닌 것이다. 낙관을 찾아서 말이다. 이렇게 저자 쇼터는 이 낙관주의 보고서를 통해서 낙관을 때로는 도식화 하기도 하고 비관주의자를 포함한 모두의 충고를 실으며 가이드 역할을 하려고 했지만 낙관주의를 딱히 결론 내기는 힘든건 사실이다. 자신의 아버지조차 비관주의에 매몰된 분이었고, 그런 아버지조차 낙관으로 전향도 못시켰으니 말이다.

하지만 자기 스스로도 낙관주의 매너리즘에 빠지며 세상을 제대로 못 본 것은 아닌가 성찰하기도 한다. 그래서, 사실 어찌보면 낙관과 비관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지만 그 양면은 언제든 뒤집어 질 수 있다는 점도 간과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소위 낙관에 빠져 살면 세상살이를 모르는 나부랭이 멍청이고, 비관주의자는 소위 ’쿨’하다는 인식과 함께 냉소적 분위기에 현실적인 감각의 소유자로 비쳐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양태들은 자세히 보면 바로 모든 것에 대한 집착에서 온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집착을 버려야만 제대로 된 낙관과 비관의 모습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여기 저자 쇼터도 2년간 세상의 낙관주의자를 찾아 나서 그들을 만나봤지만 그들이 모두 낙관주의자들이 아니었거니와 낙관도 비관도 아닌 자신의 방식대로 치우치지않게 세상을 바라보는 현실적인 감각의 소유자들이었다. 그것이 낙관이든 비관이든 말이다.

결국, 쇼터는 2년 동안 낙관주의자 탐방을 통해서 낙관주의 결론은 못내렸지만 마지막 아버지의 대화속에서 이제는 세상을 비관으로 보든 낙관으로 보든 신경 쓰지 말고 각자 알아서 잘 살면 된다는 아주 평범한 진리를 깨닫는다. 그러면서 그의 아버지는 "우리는 우리의 밭을 가꿔야 하는 거니까.."(볼테르의 소설 <캉디드>의 마지막 대사)로 대신하며 쇼터도 이렇게 말하며 맺는다. 낙관주의에는 참 많은 것들이 있지만 내가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아무것도 중요한 게 없다는 것이다. 결국 낙관이든 비관이든 어떤 관념의 차이이자 허상일뿐 매 삶에 충실하자는 메세지 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여담인데 이책은 반듯한 책은 아니다. 넷상의 용어 사용등.. 소위 학자나 교수님이 집필한 정신학적 심리학적으로 낙관주의를 분석한게 아니라 저자 쇼터의 나이와 경력답게 탐방기를 통한 보고서다. 그래서 재밌기도 하지만 좌충우돌하며 낙관주의자 탐방하는 이야기와 모습은 마치 한 인물이 계속 생각이 났다. 바로 우리나라 전국백수연대 대표 ’주덕한’씨가 생각나는건 왜일까.. 둘은 너무나 닮았다. 그 행동반경이 찌찔함의 극치라고나 할까.. 물론 까는건 아니고 재미로 말이다.

암튼, 쇼터를 보면서 영국의 ’주덕한’이라 하고 싶다. 그리고, 사진도 둘이 닮았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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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의 제국 - 새로운 중국, 마오쩌둥을 넘어서
필립 판 지음, 김춘수 옮김 / 말글빛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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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국가 풀네임 ’중화인민공화국’ 이 인민공화국을 1949년에 선포한 ’중국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마오쩌둥(Mao Zedong 1893~1976, 이하 마오) 이른바 모택동이자 줄여서는 마오.. 그가 집권한 중국 공산당은 중국 근현대사에 많은 족족을 남겼고 또한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점철된 영욕의 역사이다. 그런 마오가 만든 제국은 어떠했으며, 그 제국속에서 펼쳐진 투쟁의 역사는 어떻게 평가 받고 있을까.. 또한 아직도 마오의 그림자에 갇혀있거나 벗어나려는 노력등 진정한 중국의 모습은 무엇일까.. 

바로 여기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중국 베이징 대학에서 수학하며 2000년부터 2007년까지 <워싱턴 포스트>의 중국 특파원으로 활동한 저자 ’필핍 판’이 중국을 수년간 좇으며 기록한 이야기들이 생생한 증언과 함께 펼쳐진다. 이에 간단히 각 내용을 정리해 보면 이렇다. 

우선, 책 구성은 총 3부(회상, 부패, 투쟁의 계절)로 구성되어 있다. 1부 ’회상’편에서는 1989년 민주 개혁을 외치는 시위 학생들에게 정부가 총칼을 들이댄 천안문 사태.. 이 엄청난 유혈사태 중심에는 당시 공산당 총 서기로서 당 서열 3위의 자오쯔양(조자양, 1919~2005)이 있었다. 그는 바로 공산당의 진압 명령을 거부하고 시위대에 나서 그들을 돌려보내려 애썼던 인물로 이 사태 이후 무려 17년동안 가택 연금을 당했다. 그 과정속에 대중들은 그를 잊어갔지만 2005년 병사하면서 그를 찾아오는 수많은 사람들로 인해 조촐한 장례식을 치르며 민주화 투쟁의 당 간부로 그는 인민들 마음속에 남았다.

또 이런 맥락과 같이 한 사람이 있으니 당 간부는 아니었지만 베이징 대학에서 수학한 젊은 여성 ’펑 린자오’의 투쟁의 기록이 가열차게 적혀있다. 어린 시절에는 마오를 자신의 아버지라 부르며 뼈속까지 공산당을 지지했던 그녀가 대학시절 그 사상의 괴리감에 빠져 마오의 사상을 비판하면서 적이 되고 만다. 결국 반주자파운동의 일환으로 극우주의자로 몰려 수감되고 혈서를 쓰는등 수감내내 가열차게 당을 향한 가열찬 비판은 계속 이어졌고 1968년 36세의 일기로 총살형에 처해졌으니 바로 생생한 증언과 기록을 통해서 린자오의 투쟁과 정신을 기리자는 메세지가 강하게 전달돼 있다.

그리고, 회상의 마지막 이야기 ’홍위병의 무덤’ 이른바 문화대혁명속에서 ’마오의 아이들’이라는 닉으로 불리며 학생들로 구성돼 반체제 인사들을 처단하는데 앞장선 그들.. 그들의 활약은 중국 남서부의 경제도시인 충칭시에서 전쟁을 방불케 할 정도로 벌어졌고 급기야 세력이 확산되면서 각종 홍위병이 생기며 세력들간에 피튀기는 살육의 현장으로 수많은 참상을 빚었다.

결국, 그들은 충칭시 샤핑공원에서 좀 떨어진 한켠에 공동묘지로 남았고, 중국 정부는 이것을 문화대혁명의 과오이자 거울로 삼기 위해서 문화 유산으로 지정하며 그들의 원혼을 달랬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과거 회상을 통해서 마오의 제국이 펼쳤던 사상과 운동의 중심에서 피해자로 때로는 가해자로 기록된 그들을 담아낸 1부였다.

2부는 바로 ’부패’다. 지금의 거대 중국도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문제로 심각한 수준이다. 바로 1976년 마오가 죽고 덩샤오핑이 정권을 잡으면서 서구의 자유시장경제 도입으로 인한 80-90년대의 중국의 부패의 자화상을 제대로 그려내고 있다. 노동자의 삶의 편에서는 중국 공산당이 오히려 그들의 이념처럼 노동자 계급을 보호해야 할 판에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특히 당시 광부들의 처절한 삶도 여기에 펼쳐진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2000년대에도 불합리한 노동자들 탄압으로 인해 노동자들이 궐기하고 그 속에서 가열찬 투쟁속에 지금 중국의 노동 현주소를 되짚고 있다. 

이렇게 노동자들의 삶은 바로 자신들이 살고 있는 주택문제로 까지 이어지며 대규모 재개발 프로젝트였던 ’진바오 대로 프로젝트’때문에 길거리로 나 앉게된 이야기를 통해서 그 중심에는 2001년 포브스지가 뽑은 중국의 거부이자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 마담 ’천리화’의 일화를 소개한다. 한마디로 부동산 땅부자로 그녀의 재산 형성과정에는 당 간부와의 검은 커넥션과 개발 호재를 틈탄 각종 비리로 얻은 결과물들 그러면서 그녀을 위시한 중국의 부자들 자화상이 나열되며 노동자들은 그렇게 자본앞에 퇴거 당하고 마는 현실을 고발한다.

이런 현실은 도시 노동자들 뿐만이 아니라 농촌에까지 눈을 돌리는데.. 특히 농촌은 도시 근로자보다 몇배의 세금 부담이 가중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조세저항운동을 펼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대거 구속되고 조세 폭등에 대한 항거는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어느 부부가 저술한 <중국 농민에 대한 탐구>라는 책자가 일약 베스트셀러로 오르며 공산당 지배의 어두운 이면을 솔직히 밝히며 저항은 확산되었고 또 그 과정에서 어느 공산당 간부의 고소로 법정까지 갔지만 아직도 판결이 나지 않고 있다는 현실을 말한다. 이렇게 80년대부터 극심해진 부패의 자화상의 모습들은 지금까지 이어져오며 그 중심에는 도시와 농촌 노동자들의 처절한 삶의 현장이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 3부 ’투쟁의 계절’에서는 말 그대로 투쟁의 기록이다. 아직도 중국 공산당은 건재하고 하지만 자유시장경제의 도입으로 눈부신 경제 성장속에 가려진 이면들.. 바로 지금도 자행되고 있는 공산당의 통제와 억압에 관련된 이야기들이다. 2003년 중국에서 싸스(SARS)가 발생했음에도 쉬쉬하며 감추려던 정부와 이를 알고 앞에 나서서 싸스의 위험성을 제대로 폭로한 어느 의사의 이야기, 또 언론의 중심에 있는 수많은 신문들은 여전히 감시를 받고 이른바 나쁜 기사를 쓰면 안되는 상황에서 어느 신문기자의 진실된 보도의 이야기..

그리고 앞에서 밝힌 <중국 농민에 대한 탐구>가 법정 소송까지 가며 그들의 변호를 맡은 인권 변호사의 중국 사법제도에 대한 가열찬 비판과 마지막으로 맹인인 한사람이 당이 내걸었던 점진적인 인구 억제 계획의 일환인 ’한 자녀 운동’을 통한 불법 강제시술과 낙태들의 행태에 반기를 들어 구속까지 당한 이야기까지 그들의 투쟁은 계절에 상관없이 계속 되고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투쟁은 계속되고 있지만 돌아오는 결과물은 아직도 요원한 것이 작금의 중국의 모습이라 볼 수 있다.

그 모습은 바로 60년전 마오에 의해서 세위진 그들의 제국.. 그 제국은 사상과 체제를 통제하고 억압해 오며 수많은 희생자와 영욕의 역사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80년대부터 급변하는 세계화의 물결속에 중국도 그들의 시장과 자본을 받아들였지만 그것은 제대로 된 모습이 아닌 그들의 일당 지배체제처럼 바로 권위주의에 물들은 그들만의 수정적, 권위적 자본주의 양태로 나타난 결과물이다. 그 결과는 수 많은 폐단과 부패를 낳으며 인간의 기본 인권까지 침해되는 사태의 속출로 연결되고 있다.

물론, 눈부신 경제 발전과 부를 축적하며 세계 경제 대국의 면모를 갖춘 중국이지만.. 그 이면에는 도전과 시련에 직면해 있고 마오에서 시작된 일당지배 체제에 물든 권위주의적 국가체제는 아직도 건재하기에 이 책의 소제처럼 ’중국은 과연 마오쩌둥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라는 화두를 던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저자가 생각하는 중국의 모습을 써내려 간것이 아닌 생생한 증언을 통한 기록의 산물답게 보여준 저널리즘의 성과는 놀랍도록 중국을 제대로 해부하고 있다. 그러면서 새로운 중국, 마오쩌둥을 넘어서라는 부제 즉 ’Out of MAO’s Shadow’ 처럼 바로 그 그림자를 넘어서야 새로운 전망이 보인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래서 지금의 중국은 두 얼굴을 가진 모습일 수 밖에 없고 그 두 얼굴은 시시때때로 변모하며 국가를 지배 운영해 오고 있기에 그들이 만들어낸 제국은 자신들을 투영시킨 거울이자 자화상이다. 물론 그 거울에 비친 모습을 어떻게 보는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거울은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사실을 잊으며 안 될 것이다. 그래서 거울에 비친 그들의 제국의 모습을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강추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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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 펭귄클래식 13
허균 지음, 정하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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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홍길동전' 하면 생각나는 그 유명한 문구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나니.. 이 어찌 통탄하지 않으리오.. " 그렇다. 누구나 알고 있고 홍길동이 서자 출신으로 가열차게 내질렀던 통탄의 한마디가 사실은 홍길동전의 주제이자 작가 허균의 소명 의식이자 당시 시대상을 가늠케 하는 발호의 표현이다. 하지만 홍길동전의 내용을 전체 다 아는 이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이에 '펭귄클래식(이하 펭클)'에서 제대로 번역해 내놓았는데.. 우선은 줄거리를 살펴보면 이렇다.

조선 세종때 재상인 홍씨 가문에 아들이 둘이 태어나니 하나는 본부인이 낳은 인형(완판에서 길현)이고, 시비(侍婢, 시중드는 계집종)가 낳은 길동이 있었다. 길동은 어려서부터 똑똑하고 재주가 비범했음은 다 아는 사실. 하지만 천한 여자 몸에서 태어난 죄로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며 통탄해 하는데.. 이에 아비는 받아들이지 않고 그의 첩이 자객을 들여 죽이려 하다가 실패하고 결국 길동은 그들을 죽이고 아비와 어머니에 죄를 말하고 집을 떠나게 된다.

그러면서 집을 떠난 길동은 바로 산적의 우두머리가 되어 탐관오리를 벌하고 가난한 백성을 구제하는 활빈당의 당수로 두목으로서 이른바 의적 활동을 본격적으로 벌인다. 하지만 조정에서는 나라를 뒤숭숭하게 만든 그를 가만두지 않고 잡아들이려 하고 그의 아비와 형까지 불러들여 그를 끌여들이지만 그는 손오공처럼 똑같은 길동을 만들어 여러 사람들을 농락한다. 그냥 쉽게 잡히지 않는다거.. 

이렇게 그를 잡기가 싶지 않은 상황에서 길동은 병조판서 제수 받기를 원하고 이에 조정에서는 그에게 병조판서 교지를 내리고 그는 본격적으로 사회에서 인정받으며 군대를 이끄는 한 무리의 수장이 된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의적 활동을 그만두고 부모님을 찾아뵙고 잘못을 인정하고 조선을 떠나 심기일전하더니 이웃나라 율도국을 점령하면서 이상 국가를 건설하고 늙어 죽을때까지 자자손손 태평성대를 구가하며 살았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맺은 홍길동전.. 누구나 대충 알아도 한번쯤 읽어보면 그가 서에 번쩍 동에 번쩍 활약속에 양반 나리들과 탐관오리를 벌하는 모습은 통쾌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홍길동은 그렇게 의적으로만 그친 것이 아니라 때로는 나라 조정에 수긍하고 또 아비와 형에게 효와 우애를 다하는 모습은 인간 본연의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의적으로만 그친 모습은 절대 아니라는 사실..

이런 내용적 평가뒤에 홍길동전은 사실 여러 이본(異本)들이 있다고 한다. 그중에서 작품성이 뛰어나면서 각 판본의 특징을 비교하며 읽기 적합한 경판 24장본과 완판 36장본을 이번 '펭클'에서 소개했다. 그런데, 홍길동전을 허균이 안 지었다는 학계의 또 다른 설을 제기하는데.. 예를 들면 허균 저작설에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 <택당집>의 기록이 저자의 사후에 편집된 것이어서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견해와, 허균이 역모죄로 처형될때 <홍길동전>의 저작 사실이 죄목에 포함되었어야 하는데 그런 언급이 없었다는 점, 또 허균의 인품이 간사하고 음흉하여 <홍길동전> 을 지을 위인이 못 된다는 주장까지..

하지만 택당(澤堂) 이식(李植, 1584~1467)의 문집에서 <홍길동전>이 처음 언급된다는 점을 든다. 이 근거로 초창기 국문학자들은 허균을 <홍길동전>의 작자로 확인하였고 이를 토대로 작품의 의미와 가치를 평가하였다. 하지만 택당의 기록과 허균의 문학 활동을 통해 볼때 <홍길동전>은 연산군 때의 역사적 실존인물 홍길동(洪吉同, 실제 조선왕조실록에 그의 강도행각으로 처형 기록이 있다.)을 주인공으로 한 한문 전(傳)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결국, 허균이 역모에 연루되어 불행한 죽음을 당한 까닭에 그의 저작은 세상에서 사라지게 되었고, 국가의 정체성을 비판한 <홍길동전>은 금서가 되어 더 이상 세상에 전해질 수 없었다. 그런데, 우리가 읽고 있는 지금 작품은 수백년이 지나서 1890년경에 처음으로 세상에 나온 것이라고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어떤 변이가 이루어졌는지 허균의 원작이 과연 국문으로 된 것인지, 아니면 한문으로 지은 것을 후대의 누군가가 국문으로 번역해서 전한 것인지등에 대한 추론이 난무하다고 언급한다.

또한 <홍길동전>의 초기 이본들은 목판본으로 간행되었는데 간행 지역에 따라 하나는 서울 지역에서 간행된 경판계이고, 다른 하나는 전주 지역에서 간행된 완판계이다. 물론 두 계열의 기본 줄거리에는 큰 차이가 없으나 세부적으로 다소 차이가 있는데, 완판 36자본이 좀더 상황 묘사가 디테일 하고 사투리가 많이 사용돼 다소 번다한 편이다. 꿈속의 내용이라든지 전개 과정속에 홍길동이 율도국을 치는 상황 묘사등이 말이다.  

이렇게 여러 모로 봤듯이 홍길동전은 당시 조선 중기 사회의 아니 조선 시대를 관통하고 있는 사회적 병폐였던 적서 차별에서 재기된 신분 차별 문제를 지적하고 있고 이를 통해서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성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가열차게 설파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바로 허균의 삶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가 비록 양반집 자제였지만 스승 이달 선생 또한 서자 출신으로 뛰어난 학식적 재능에도 불구하고 빛을 못봤듯이 그가 스승을 위해 지은 <손곡산인전>을 통해서 말하고 있다. 

또 자신 스스로 민중의 삶과 유교적 터울에 얽매힌 규제에 대한 타파등 그는 단순히 비판의 대상이 되는 적서 차별에 국한되지 않고, 인간이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는 물론 개인적 차원을 넘어선 만인 평등의 미래 사회를 갈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조선소설사(朝鮮小說史)>의 저자 김태준은 <홍길동전>이 허균의 사상과 삶이 강하게 투영되며 허균의 자서전이자 주인공 길동은 허균의 자화상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결국, <홍길동전>을 통해서 허균이 설파한 이상사회에 대한 갈구는 김시습의 <금오신화>에서 제시된 사회 비판 의식을 그대로 계승하면서 그것을 좀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전개하여 대중적으로 큰 호응을 얻었고.. 이것은 문학사적으로 사회의 메세지적 최초의 한글 소설임과 동시에 한국 소설사상 중요한 가치와 함께 기념비적 작품임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의적 홍길동이라는 기본 개념에서 탈피해 그 이면에 숨겨진 가치를 진중하게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그 가치가 무엇이었는지 말입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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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신화 펭귄클래식 14
김시습 지음, 김경미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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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만 멋스럽고 고풍스럽고 환상적이고 엘레강스하며 패러독스한 고전만 있는게 아니다. 우리 고전에도 이런 작품이 있었으니 학창시절 김시습하면 금오신화, 금오신화하면 김시습만 외웠지 사실 정작 '금오신화'를 읽어보지는 못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이자 한문소설인 금오신화 그의 생애와 이력도 정리했지만 생애 중반이후 1470년 즈음에 금와산에 들어가 도 닦으며 세상을 향해 외친 그의 한문 소설 금오신화(金鰲新話).. 어떤 내용이고 어떻게 전해졌을까?

우선은 <금오신화>의 이본(異本)은 현재 8종(조선 목판본 1종, 일본 목판본 4종, 필사본 3종)이 남아 있다. 그종 조선 목판본이 1종이 중국 대련 도서관에서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조선 명종때 문인이었던 윤춘년(尹春年, 1514~1567)이 편집한 것으로 김시습이 죽은지 오십 년쯤 지나 출간된 것이다. 특히 8종의 이본들 가운데서 윤춘년이 편집한 이 조선 목판본은 가장 먼저 출간되었고, 가장 좋은 이본으로 인정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펭클'에서 나온판은 바로 이 조선 목판본을 완역한 작품으로 그 소개를 하면 이렇다. 먼저, 금오신화는 하나의 이야기로 되어 있지 않고 총 5개의 옴니버스식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앞의 세가지는 남녀간의 운우지정을 다루었고, 뒤의 두편은 염라왕, 용왕님과 세상사 돌아가는 토킹 어바웃 이야기다. ㅎ 주인공들도 다 생(生)자 돌림으로 순서대로 양생, 이생, 홍생, 박생, 한생이다. 간단히 줄거리는 이렇다.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소제는 '저포놀이가 맺어준 사랑'이다. 저포가 무엇이냐면 주사위 같은 것으로 나무로 만들어 던져서 그 끗수로 승부를 겨루는 놀이로, 지금의 윷놀이와 비슷하다. 여기 주인공 고독한 남성 문사 '양생'이 부처님 앞에서 저포놀이로 해서 얻은 여인네와 운우지정을 다룬 이야기로 양생의 절대 고독과 사랑에 대한 열정으로 이계를 넘나드는 모습이 마치 불후의 러브 영화 '사랑과 영혼'같은 스타일로 비극적 결말의 사랑의 아픔을 잘 이야기하고 있다.

「이생규장전(李生窺牆傳)」소제는 '이생이 엿본 사랑'이다. 제목처럼 또다른 고독한 남성 문사인 '이생'이 아름다운 최씨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고, 행복한 결혼생활은 고려말 전쟁으로 무참히 깨지며 아내와 가족을 잃고 혼자 남게된 이생이 귀신으로 다시 나타난 최씨와 못다 이룬 운우지정을 나누며 사라진다는 이야기다. 대신 여기서 이생은 앞에 양생과는 다르게 소극적인 반면에 여주인공 최씨는 사랑에 적극적이지만 홍건적의 위협앞에서 저항하는 정절 의식도 보인다.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소제는 '부벽정에서의 짧은 만남'이다. 여기서도 고독한 남성 주인공 '홍생'이 부벽루에서 기씨녀를 만나 함께 엄청난 시문을 주고받으며 정서적 공감을 얻는 이야기다. 그 공감은 바로 기씨녀는 위만에게 나라를 잃은 기자(箕子)의 딸로 나라가 망한뒤 자살하려다 선계로 인도되어 항아의 시녀가 된 인물이고 홍생도 고려말 개성 상인으로 둘다 망국의 비애를 경험했다는 점에서 쉽게 정서적으로 교우하며 고국의 흥망에 대한 회고의 정을 진하게 담은 이야기다.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 소제는 '염마왕과의 대화'다. 유학을 공부하는 '박생'이라는 문사가 꿈에 남염부주를 다녀오는 이야기다. 즉, 꿈속에서 이계를 다녀오는 몽유록적 양식을 띄며 문답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염라왕과 귀신, 천당과 지옥, 윤회, 정치까지 철학적인 문제부터 현실 정치까지 서로 토킹 어바웃한 이야기다. 그래서 여기서는 시문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김시습의 현실 인식 태도를 보이며 그의 사상이 집약적으로 잘 표현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소제는 '물거품처럼 사라진 용궁 잔치'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역시 남성 문사 '한생'이 꿈속에서 용왕님 초대로 용궁에 가서 용왕님과 한바탕 즐겁게 노닐다 왔다는 이야기다. 즉, 문사답게 시문도 써주고 또 주고받고 유쾌하게 노래와 춤추고 잔치도 하며 즐겼다는 이야기로 앞에 <남염부주지>와 비슷하지만 대신 여기서는 유일하게 웃음이 배어있다. 하지만, 한생이 꿈에서 깬 뒤에는 세상의 명리를 구하지 않고 자취를 감추는 것으로 되어 있어 웃음 뒤의 비애를 남겼다.

이렇게 김시습의 한문 습작인 <금오신화>는 총 다섯편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모두 다 그의 세상에 대한 부조리와 비타협적인 성정답게 현식 인식이 짙게 배어 있는 작품들이라 할 수 있는데.. 특히 고독한 남성 문사들을 중심으로 그리며 그들이 처한 결핍과 부재의 상황이 부각됐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그들은 모두 고독하고 부정적인 현실의 도피를 꿈꾸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 김시습의 정치적 좌절에서 비롯된 또 현실 인식의 발호로 볼 수도 있다.

또한 앞의 세편은 애정 전기소설(傳奇小說)의 형식을 띄며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나드는 남녀간의 사랑을 환상적으로 초현실적으로 그리며 때로는 판타지스럽고 형이상학적인 몽환적 분위기를 전달해 주었다. 그런 분위기는 바로 각 편마다 넘쳐나는 시문과 산문의 조화속에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미학적 기반을 둔 메세지적 작품이라는 점이다. 물론 남성 문사의 의리를 중시하고,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는 것도 모두 김시습의 현실 인식과 깊이 관련되어 있음이다. 

그리고, 뒤의 두편인 <남염부주지>와 <용궁부연록>은 두 주인공 박생과 한생을 통해서 소외와 고독의 감정은 더욱더 문학적으로 형상화되며 염라왕과 용왕님과의 대화속에서 세상에 대한 외침이 바로 투영된 것이라 할 수 있으니 바로 그의 비극적 현실 의식의 발호로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막연히 비극적이라 할 수 없는게 시문과 산문이 적절히 조합된 미학적 분위기는 읽는 이로 하여금 때로는 고리타분함을 안겨줄 수 있지만 멋스럽고 고풍스런 맛은 분명히 주고 있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오백여 년전 그가 쓴 작품을 이렇게라도 대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지 않은가..
수험식으로 무슨 작품이 있다 외우지 말고.. 그의 작품을 진중하게 함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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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경찰의 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정말 오랜만이다. 이런 추리소설을 읽은지가 스릴감으로 무장한 추리소설을 나름 좋아하는지라 한창때는 셜록홈즈와 뤼팽, 국내 김성종 작품에 빠진적도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나니 그런 기분이 되살아는 나는 느낌이다. 일본 미스터리 소설계의 거장 ’히가시노 게이고’ 국내에는 <용의자 X의 헌신>과 <백야행>으로 더욱더 알려진 인기 작가이다. 본 작품은 그가 10년전에 이미 발표한 것으로 일본에서 중판되고 국내에는 지금에서야 소개된 책.. 

주제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자 문명의 이기인 자동차를 통해서 겪게되는 교통사고에 얽힌 여섯편의 옴니버스식 추리소설이다. 그래서 작금의 시대에 자동차가 인간에 주는 편리함과 때로는 무서움을 안겨주는 흉기로 돌변하며.. 어느 순간 자신이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가해자가 되기도 하는 우리네 교통 현실을 사실감있게 그렸으니 간단히 소개해 보면 이렇다.

첫번째 포문은 「천사의 귀」로 한밤중에 교차점에서 경차와 외제차의 충돌사고로 경차 운전자가 죽고 동승한 여동생이 증인에 나선다. 그런데, 이 여동생은 앞을 볼 수 없는 맹인. 즉, 귀로써 모든것을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고, 반대의 외제차 운전자는 자신은 초록불일때 지나갔다며 주장하는데.. 분명 어느 한쪽이 신호위반으로 거짓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둘다 거짓이었을까.. 하지만 무서울 정도로 눈보다 정확한 귀의 능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는데.. 하지만 여기에도 숨은 반전이 있었다.

「분리대」는 트럭 운전자는 과속하고 난폭 운전한다는 통념이 아닌 평범이 운전을 하던중 트럭 운전자는 핸들조작의 실수로 도로 분리대를 들이받고 차가 쓰러지며 마주온 차에 치여 숨진다. 목격자의 증언을 찾아야 하는 상황속에서 트럭 운전자 부인은 당시 남편이 핸들을 갑자기 꺽게된 도로에 불법주차를 한 중년 부인을 알고 그녀에게 복수?를 하는데.. 과연 교통법규는 완벽한 것일까..

「위험한 초보운전」
은 제목 그대로 앞서가는 초보 운전자를 위협한 능숙한 운전자.. 자신은 장난일지 몰라도 초보에게는 진땀이 나는 상황에 운전 미숙으로 당하게 되는 사고다. 그 사고가 작든 크든 초보자에게는 큰 충격이 아닐 수가 없다. 그러면 그 초보자는 능숙한 운전자에게 운전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본때를 보일지도 모른다. 조심해야 한다.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하며 살자. ㅎ

「불법주차」어찌보면 가장 많이 와 닿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작금의 도로 상황을 감안해 본다면 말이다. 즉, 누구나 불법주차를 어떠한 상황때문에 도로변에 아니면 갓길이든 주택 골목길에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불법주차로 막혀버려 다른 차가 못지나갈때 어느 한 사람이 죽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 순간 당신은 가해자가 될 수 있으니 조심해라.. 피해자가 선의로 다가와 복수 할 수도 있다.

「버리지 마세요」
도 와닿는 이야기중에 하나다. 내 경우는 아니지만 가끔 보면 운전중에 차창 밖으로 담배 꽁초나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 간혹 있다. 그런데 그 쓰레기중 묵직한 캔을 버려서 후미차량의 사람에게 맞아 그 사람 눈이 실명했다면 어떻게 될까.. 그 캔이 당신을 찾아 나서 곤경에 빠트려 결정적 단서가 될 수 있다. 게이고만의 응징이 돋보이는 내용이다. 암튼, 차창밖으로 절대 쓰레기를 버리지 말자.

「거울 속에서」는 어느 밤에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부딪쳐 오토바이 운전자가 숨진다. 그런데, 이 자동차 남자 운전자는 순순히 자신의 잘못을 모두 시인하는데 무언가 미씸쩍고 사건을 무마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에 교통 경찰관이 수사를 해보니 자동차 운전자와 동승한 한 여자가 있었으니 그녀는 운전 미숙자로 더군다나 외국에서 온지라 일본의 운전 상황과 반대로 된 거울을 보고 운전한 꼴이다. 두 사람의 관계속에 죄값을 치르려는 코치와 운동선수의 이야기다.

이렇게 여섯 편의 교통사고를 다루고 있는 본 이야기들은 충분히 공감가는 이야기들이 많다. 작금의 우리네 교통 현실에서도 많이 바온 그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는등 교통사고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또한 어느 한쪽이 큰 사고로 죽었을시 목격자의 진술에만 의존해야 하는 상황등 답답한 사건의 연속이며 그런 사고를 동분서주하며 수사하는 교통 경찰관들의 노고도 있음이다.

이런 교통사고들은 사소하게 자기 안일주의에 빠진 운전이나 행동이 상대방에게는 크나큰 위협이나 죽음까지도 몰고 갈수 있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래서, 운전대를 잡은 사람이라면 그 순간 자동차는 친구이자 적으로도 돌변할 수 있으니 아무리 운전에 익숙하다고 자만하지 말자. 이렇게 ’히가시노 게이고’는 여기 여섯편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렇게 메세지를 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누구라도 ’사람을 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길 바라며.. 항상 방어운전을 생활화 하자. 
물론, 초보 운전자를 괜히 위협하지 말고 말이다. 그러다 한방에 훅가는 수가 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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