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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
김인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평점 :
조선시대 오백년 역사를 장식한 수많은 임금과 세자들이 있지만 두 차례 호란을 격으며 볼모로 끌려가 그의 짦은 인생 마지막 10여년을 적의 땅에서 살다가 환국후 죽은 ’소현세자’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아니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이런 ’소현’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 광해군을 내몰고 반정으로 오른 인조의 맏아들이자.. 청에 볼모로 잡혀가 10년 가까이 지내고 환국후 의문의 죽음을 당한 임금의 아들..
그는 바로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으며, 그의 굴곡진 삶 만큼이나 드라마틱한 요소때문에 얼마전 끝난 길거리사극 ’추노’에서도 그는 극의 중심 소재이자 큰 그림이었다. 이제는 이런 ’소현세자’가 비주얼이 아닌 책속에서 오롯이 살아나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났으니.. 여성 작가 ’김인숙’ 특유의 섬세한 터치로 그려낸 역사 장편소설 <소현>이다. 과연 그녀가 담아낸 ’소현’은 어떠했을까.. 먼저 간단히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다.
명말청초. 때는 1644년.. 명나라 말기와 청나라 초기 말 그대로 혼란한 정국이 관통하는 중국 ’심양’땅.. 명나라의 명운은 다했고 누르하치가 ’대금’을 세운 청나라는 파죽지세로 명의 명줄을 끊는 전장을 벌이는 현장의 연속이다. 그런데 그런 전장에 ’소현’도 함께 있다. 적국의 볼모로 잡혀 왔기에 그도 두 대국의 전쟁에 자연스레 종군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소현’의 전투적 활약상을 이야기 하지는 않는다. 그만큼 그가 처한 위치가 그러했음이다.
바로, 명나라의 국운과 새로 일어나는 청나라의 국운을 계속 이야기한다. 특히 그 이야기의 중심에는 바로 누르하치가 가장 총애한 아들이자 청태종 홍타이시의 동생인 ’도르곤’ 다른식으로는 ’구왕’, ’예친왕’, ’섭접왕’으로 부르는 인물로 이 책의 또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더군다는 그는 ’소현’과 동갑이었고 소현이 볼모로 잡혀올때 인도한 대장군으로 청나라 초기 역사의 중심에는 그가 있음이다.
이것은 여담인데 개인적으로 ’도르곤’하면 중국사극 ’대청풍운’에서 도르곤으로 열연한 배우 ’장풍의’가 생각난다. 이분은 영화 ’적벽대전’에서 조조역을 한 배우이기도 하다. 그리고 명말청초의 상황 전개는 또 다른 사극 ’강산풍우정’의 그림이 살아나는 느낌이다. 책의 마지막에서 그려지지만 원숭환의 처형과 명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 자결, 산해관 전투때 오삼계의 청으로 투항등 말이다. 암튼, 이런 두 사극에 봤던 그림들이 생생히 살아나는 명말청초의 이야기들이었는데.. 각설하고..
여기 소현은 이렇게 그 혼란한 적국의 땅 중심에 서 있었고, 그런 정국이 전개될때마다 가슴 졸이며 그들의 시국을 바라봐야 하는 그는 지극히 약한 존재일 수 밖에 없었다. 특히 그가 겪었던 볼모로서 삶은 더이상 임금의 아들이 아닌 한 인간으로 버텨내는 적국에서 가열찬 삶이었다. 그렇다고 엄한 대접을 받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비루한 삶만은 부정하지 않을 수 없다. 동생 봉림, 인평과 함께 말이다. 더군다나 이런 소현의 중심에는 조선에서 볼모로 잡혀온 수많은 민초들과 대신들 그리고 그런 대신의 질자들이 있었으니..
바로 청의 대학사 ’비파’의 작은마님으로 바쳐진 ’흔’이라는 여인네와 그녀의 몸종이자 신기를 받은 ’막금’.. 특히 흔은 회은군 이덕인의 딸로 소위 뼈대있는 종친의 여인네였다. 또한 조선에서 건너온 어떻게보면 조선을 배신한 천한 사내 ’만상’ 그는 바로 소현을 충의로 모셨던 젊은 지개 ’석경’을 주살하려던 놈이었다. 특히 석경은 소현과 같이 청에 볼모로 잡혀와 지근에서 소현을 모셨던 가신이었고, 그는 조선의 늙은 대신 ’심기원’의 아들로 나중에 아비의 역모로 인해 그 역시 생을 마감하고만 비운의 젊은 지개였다.
이렇게 소현이 명말청초의 상황이 가져다준 정복자들의 전쟁의 틈바구니속에서 고독과 싸우며 청의 움직임에 자중자애를 펼치는 가운데.. 이들 네명의 주변 인물들은 바로 전쟁의 폐허로 비루한 삶을 살아가는 조선 민초들의 모습을 투영시키며 절정을 향했다. 그런 가운데 펼쳐지는 역모와 관련돼서 서로간에 주고받은 ’서찰’의 숨은 진실까지 그려내며 읽은이로 하여금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했다. 그런데, 그런 긴장감의 유지는 바로 직관적인 모습이 아니라.. 문학적 수사와 고독을 씹어내는 발호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특히 ’소현’을 그려낼때는 이 느낌이 배가 될 정도로 전면을 휘감는다.
결국, 역사적 기록대로 소현은 긴 9년간의 볼모 생활끝에 명나라 멸망과 함께 섭정왕 도르곤의 지시로 1645년 2월 볼모의 신분이 풀려 조선으로 영구히 환국하게 된다. 청이 북경을 점령한 후, 약 1년 만의 일이었고.. 이 이야기에서 그려낸 볼모 생활의 마지막 2년의 방점을 찍는 순간이다. 하지만 그런 마지막 방점을 찍기까지 소현은 적국에서 말수가 적은 자중자애하는 모습으로 비록 비루한 삶일지라도 살아남아서 돌아가야 한다는 신념과 굳은 의지로 관통하고 있다.
이렇게 본 작품은 ’소현’의 모든 삶을 다룬 역사소설은 아니다. 청나라에서 볼모로 잡힌 9년의 기록중(1637~1645)중 환국하기까지 마지막 2년.. 특히 1644년 명나라가 멸망하는 순간 청나라가 펼쳐낸 야만적인 전장과 혼란스런 정국의 중심에서 때로는 도르곤의 환대속에 때로는 방관자로 지내온 역사 문학의 기록이다. 그런데, 그 기록은 직관적인 모습이 아닌 자신과의 고독과 싸우며 그 고독속에 한없이 아파하며 떨쳐내고자 했던 소현의 마지막 몸부림이자 ’울림’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더군다나 김인숙 작가도 소설을 쓰는 내내 소현의 고독이 내 몸속에 들어와 늘 어딘가가 아팠고, 만약 그가 온전히 허구적인 인물이었다면 나는 그의 고독을 덜어줄 수 있었으리라 말하지만 실재했던 역사의 실존했던 인물이라 그렇게 할 수 없었다고 언급한다. 그래서 직관적인 사료가 줄 수 없는 섬세한 터치로 그려낸 역사 문학의 방점이자 절정의 순간.. 소현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조선의 세자, 임금의 아들이다. 부국하고, 강병하리라. 조선이 그리하리라. 그리되기를 위하여 내가 기다리고 또 기다리리라. 절대로 그 기다림을 멈추지 않으리라. 그리하여 나의 모든 죄가 백성의 이름으로 사하여지리라. 아무것도, 결코 아무것도 잊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