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최고!




남편의 죽음을 알리는 통지서를 받았을 때, 저는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을 확인한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 영혼의 일부는 아직도 그 숲 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일은 제가 인생을 꾸려온 모든 영위를 초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 P187

"〈갱부〉라………." 하고 오시마 씨는 희미한 기억을 더듬듯이 말한다. "도쿄의 학생이 우연찮게 광산에서 일하게 되고, 갱부들 사이에 섞여서 혹독한 체험을 한 후, 다시 바깥 세계로 돌아온다는 이야기지? 중편소설이고, 아주 오래전에 읽은 적이 있어. 그것은 그다지 소세키답지 않은 내용이고 문체도 비교적 거칠어서, 일반적으로 말하면 소세키 작품 가운데서도 가장 평판이 안 좋은 것 중 하나인것 같은데…………. 그 책의 어디가 재미있었을까?" - P188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는 부분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습니다. 잘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만." - P190

요컨대 어떤 종류의 불완전함을 지닌 작품은 불완전하다는 그 이유 때문에, 인간의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긴다―적어도 어떤 종류의 인간의 마음을 강렬하게 끌어당긴다는 거야. 예를 들어, 넌 소세키의 <갱부>에 마음이 끌린다고 했지. 《마음》이나 《산시로》 같은 완성된 작품에는 없는 흡인력이 미완성의 작품에는 있기 때문이지. - P198

인간은 이 세상에서 따분하고 지루하지 않은 것에는 금세 싫증을 느끼게 되고, 싫증을 느끼지 않는 것은 대개 지루한 것이라는 걸. 그런 거야. 내 인생에는 지루해할 여유는 있어도 싫증을 느낄 여유는 없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두 가지를 구별하지 못하는 게 보통이지만. - P201

모든 것은 상상력의 문제다. 우리의 책임은 상상력 가운데에서 시작된다. 그 말을 예이츠는 이렇게 쓰고 있다. In dreams begin the responsibilities. 그 말대로다. 거꾸로 말하면, 상상력이 없는 곳에 책임은 발생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 아이히만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 P235

그녀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는다. "하지만 널 알다가도 모르겠어, 그런 건 잠자코 마음대로 상상하면 되잖아? 일일이 내 허락을 받지 않아도, 네가 무엇을 상상하고 있는지, 그런 걸 나는 어차피 알 수 없으니까 말이야." - P237

너는 상상력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꿈을 두려워한다. 꿈속에서 짊어지기 시작할 책임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잠을 자지 않을 수는 없고, 잠을 자면 꿈이 찾아온다. 깨어 있을 때의 상상력은 어떻게든 억제할 수 있다. 그러나 꿈을 막을 수는 없다. - P246

"그렇기 때문에 자네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네. 이건 전쟁이다, 라고. 그러니 자네는 군인이 되어 있다고 생각해야 하네. 지금 이 자리에서 결단을 내려야 한단 말일세. 내가 고양이를 죽이느냐, 아니면 자네가 나를 죽이느냐, 둘 중의 하나지. 자네는 지금 여기서 그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네. 물론 그것은 자네 눈으로 보자면, 참으로 불합리한 선택일 걸세.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게. 이 세상의 대부분의 선택은 불합리하고 도리에 어긋나는 것 아닌가." - P255

"눈을 감아서는 안 되네" 하고 조니 워커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도 규칙일세. 눈을 감아서는 안 되네. 눈을 감아도 사태는 조금도 좋아지지 않으니까. 눈을 감았다고 해서 무엇인가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아니, 오히려 다음에 눈을 떴을 때, 사태는 더 악화되어 있을 거라네. 우리는 그런 세계에 살고 있는 걸세, 나카타씨, 눈을 똑바로 떠야 하네. 눈을 감는 것은 약자가 하는 짓이야. 현실에서 눈을 돌리는 것은 비겁한 자가 하는 짓이란 말일세. 자네가 눈을 감고 귀를 틀어막고 있는 동안에도 시간은 가고 있단 말이야, 똑딱똑딱하고." - P263

"경험적으로 말한다면, 인간이 무엇인가를 강렬하게 원할 때 그것은 대개 찾아오지 않지. 인간이 무엇인가를 필사적으로 피하려고 할 때, 그것은 저쪽에서 자연히 찾아오고 말이야. 물론 그것은 일반론에 지나지 않지만 말이야." - P275

"나는 지금부터 너를 도서관으로 데리고 갈 거야. 그리고 너는 도서관의 일부가 되는거야." - P279

행복은 한 종류밖에 없지만, 불행은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야. - P282

"다무라 군, 우리 인생에는 되돌아갈 수 없는 한계점이 있어. 그리고 훨씬 적기는 하지만,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한계점도 있지. 그런 한계점에 이르면 좋든 나쁘든 간에 우리는 그저 잠자코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는 거야." - P290

"고마워" 하고 오시마 씨가 말한다. 그리고 내 어깨에 살며시 손을 얹는다. "분명히 나는 다른 모든 사람과는 조금 달라.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같은 인간이야. 그것을 네가 좀 이해해 주었으면 해. 나는 괴물이 아니야. 보통 인간이지. 다른 모든 사람과 똑같이 느끼고 똑같이 행동하지. 그러나 그 사소한 차이가 때로는 끝없는 심연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 그야 물론, 생각해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말이야." - P322

"세계는 나날이 변화하고 있다고, 나카타 씨. 매일 때가 되면 날이 밝지. 그러나 거기 있는 건 어제와 똑같은 세계는 아니지. 여기있는 건 어제의 나카타 씨가 아니란 말이야. 알겠어?" - P338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즉 네 선택이나 노력이 헛수고로 끝나도록 운명 지어져 있다 하더라도, 그래도 너는 조금도 어김없는 너인 거고, 너 이외의 아무도 아닌 거야. 너는 너로서 틀림없이 앞으로 전진하고 있어. 걱정하지 않아도 돼." - P352

"아니, 그런 일은 없지 않을까. 설사 나를 만나지 못했어도, 너는 틀림없이 다른 길을 찾아냈을 거야.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그런 느낌이 들어. 너라는 사람에게는 왠지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거든" - P354

"나는 꿈을 통해서 아버지를 죽였는지도 몰라요. 특별한 꿈의 회로 같은 것을 통해서, 아버지를 죽이러 갔을지도 모른다는 말이죠." - P361

"그것은 ‘생령‘이라고 불리는 존재지, 외국의 예는 잘 모르지만, 일본에서는 종종 그런 것이 문학 작품에 등장하곤 해. 예를 들어, 《겐지 이야기>의 세계는 생령으로 가득 차 있어. 헤이안 시대에는, 적어도 헤이안 시대의 사람들의 심적 세계에서는, 인간은 어떤 경우에는 살아 있는 채 영혼이 되어 공간을 이동하고, 그 상념을 이룰 수 있었어. <겐지 이야기>를 읽어본 적은 있어?" - P397

"사랑이라는 것은 세계를 다시 세워가는 일이니까, 사랑이란 어떤 일이든지 일어나게 할 수도 있어." - P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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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이 네번째 읽는 것일듯. 다시 읽어도 좋고 새로운게 보인다.










"여행은 길동무, 세상은 인정"

"우연한 만남이란 인간의 감정을 위해서 꽤 소중하다, 라는 얘기일 거야. 간단히 말해서" - P47

"전생의 인연 - 설사 하찮은 일이라도 이 세상에 완전한 우연은 없다는 뜻이야." - P64

그녀는 나에게 무척 강하고, 그러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그리운 인상을 준다. 이 사람이 내 어머니라면 좋을 텐데, 하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아름다운 (혹은 느낌이 좋은 중년 여성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한다. 이 사람이 내 어머니라면 좋을 텐데, 하고, 두말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사에키 씨가 실제로 내 어머니일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론적으로 말한다면 조금은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나는 어머니의 얼굴, 이름조차 모르니까. - P76

안내를 해주는 사에키 씨라는 사람은 사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날씬한 여성이다. 그 나이치고는 키가 큰 편인지도 모른다. 푸른색의 반소매 원피스를 입고 그 위에 연한 크림색 카디건을 걸치고 있다. 매우 자세가 좋다. 머리칼은 길고 뒤에서 가볍게 묶었다. 고상하고 지적인 얼굴이다. 눈이 아름답고 언제나 그림자처럼 엷은 미소를 입가에 띠고 있다. 잘 표현할 수 없지만 어딘지 완결된 느낌의 미소다. 그것은 나에게 조그만 양지를 연상시킨다. 어떤 종류의 깊숙한 장소에만 생기는 특별한 형태의 양지 같은 것을. 내가 살던 노가타의 집 뜰에도 그런 장소가 있었고, 그런 양지가 있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그 양지바른 곳을 좋아했다. - P76

"자네의 문제점은 말이야, 이건 내 생각이지만, 자네 그림자가 조금 희미한 게 아닐까? 처음 보았을 때부터 생각한 건데, 땅바닥에 있는 그림자가 보통 사람의 반 정도밖에 안 보였거든." - P96

"왜냐하면 넌 이 세상에서 가장 터프한 열다섯 살 소년이니까." - P100

지금부터 백 년 뒤에는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예외 없이(나를 포함해서) 지상에서 사라져, 먼지나 재가 되어버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상한 기분이 든다. 거기 있는 모든 사물이 허무한 환영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바람에 날려 당장이라도 흩날려 없어질 것처럼 보인다. 나는 내 두 손을 펼치고 가만히 들여다본다. 나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악착같이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 왜 이렇게 필사적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 P103

"다무라 카프카라고?"

"네, 그런 이름입니다."

"이상한 이름이군."

"하지만 그것이 제 이름입니다" 하고 나는 주장한다.

"물론 너는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을 몇 편 읽었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소설 《성》과 《심판>과 <변신>, 그리고 이상한 처형 기계가 나오는 이야기…………."

"<유형지에서>"라고 오시마 씨가 말한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이야. 세상에는 많은 작가가 있지만, 카프카 이외의 어느 누구도 그런 이야기는 쓸 수 없지."

"저도 단편 중에서는 그 이야기를 제일 좋아합니다." - P106

나는 나 혼자가 되어 페이지 사이의 세계에 몰입해 간다. 나는 그 감각을 무엇보다도 좋아한다 - P108

이상한 표현일지도 모르지만, 그릇으로서의 육체만이 임시로 거기에 남아 집을 지키고 갖가지 생체 레벨을 조금씩 저하시켜서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능을 유지하는 동안, 본인은 어딘가 다른 곳에 가서 무엇인가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유체이탈‘이라는 단어가 제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그 말을 알고 계십니까? 일본의 옛이야기에 자주 나오는데, 혼이 일시적으로 육체를 떠나 천릿길을 뛰어넘어 어딘가 먼 곳으로 가서, 거기에서 중요한 볼일을 보고 다시 본래의 육체로 돌아온다는 얘기입니다. - P122

이윽고 나는 소나무 밑에 놓아둔 배낭을 발견한다. 왜 나는 그런곳에 짐을 놓아두고 일부러 덤불 속으로 들어가서 쓰러진 것일까? 도대체 여기는 어디란 말인가? 기억은 얼어붙어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어쨌든 소중한 배낭을 찾았다는 사실이다. 배낭 주머니에서 소형 손전등을 꺼내 대충 배낭 안을 확인한다. 없어진 물건은 없는 것 같다. 현금을 넣은 주머니도 그대로 있다. 나는 휴우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쉰다. - P127

이윽고 나는 소나무 밑에 놓아둔 배낭을 발견한다. 왜 나는 그런 곳에 짐을 놓아두고 일부러 덤불 속으로 들어가서 쓰러진 것일까? 도대체 여기는 어디란 말인가? 기억은 얼어붙어 있다. 하지만 중요한건 어쨌든 소중한 배낭을 찾았다는 사실이다. 배낭 주머니에서 소형 손전등을 꺼내 대충 배낭 안을 확인한다. 없어진 물건은 없는 것 같다. 현금을 넣은 주머니도 그대로 있다. 나는 휴우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쉰다. - P127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그냥 고양이를 못살게 굴고 고통을 주고 싶은 것뿐이에요. 그렇게 함으로써 즐거운 기분이 되는 거지요. 그렇게 비뚤어진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버젓이 살고 있다니까요." - P147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를 만큼 무서워. 기억을 빼앗긴 그 네 시간 동안에, 나는 어딘가에서 누군가를 다치게 했는지도 모르겠어.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 그렇지만 어쨌든 나는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어. 만일 내가 실제로 범죄에 관여했다면, 설사 기억을 잃어버렸다고 해도, 법적으론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겠지, 그렇지?" - P159

장황하게 두서없는 글을 썼습니다만,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남편이 종전 직전에 필리핀에서 전사했을때, 사실 저는 그다지 충격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때 제가 느낀 것은 그저 깊은 무력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절망도 분노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한 방울의 눈물조차 흘리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남편이 어딘가의 전쟁터에서 젊은 목숨을 잃게 되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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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11-06 23: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해변의 카프카는 김춘미 교수님의 번역이네요.
생각해보면 이 시기만해도 하루키 선생의 신작을 자주 만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시간되면 다시 읽어봐도 좋겠어요.
잘읽었습니다. 새파랑님,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새파랑 2022-11-07 06:26   좋아요 1 | URL
전 하루키 작품중에 해변의 카프카가 너무 재미있더라구요. 다시 읽어도 너무 좋습니다 ^^ 서니데이님 즐거운 한주 시작하세요~!!
 

저번달에 프란츠 카프카도 읽었으니 이번달에는 해변의 카프카를 다시 읽어야지






"넌 지금부터 이 세상에서 가장 터프한 열다섯 살 소년이 되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네가 이 세상에서 살아나갈 수 없으니까.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정말로 터프하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네 스스로 이해해야만 하는 거다, 알겠지?" - P18

그리고 그 모래폭풍이 그쳤을 때, 어떻게 자기가 무사히 빠져나와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너는 잘 이해할 수 없게 되어 있어. 아니, 정말로 모래폭풍이 사라져버렸는지 아닌지도 확실하지 않게 되어 있어, 그러나 이것 한가지만은 확실해. 그 폭풍을 빠져나온 너는 폭풍 속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의 네가 아니라는 사실이야. 그래, 그것이 바로 모래폭풍의 의미인 거야.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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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cutta 2022-11-04 0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1월의 고전 일력(쓰기) 계속 기대하겠습니다!

새파랑 2022-11-04 09:01   좋아요 2 | URL
넵 감사합니다~! 두달만 하면 처음으로 일년목표를 달성하네요~!!

바람돌이 2022-11-04 16: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진짜 새파랑님 화이팅입니다. 대단하세요. 저라면 두달만에 실패했을 듯한데 말입니다.

새파랑 2022-11-04 16:34   좋아요 2 | URL
제가 작년에 실패했어어 올해는 다 쓰는게 목표입니다~!!
 

오랜만에 멋진 단편집을 만난것 같다.
너무좋네.










<구멍>

나이가 들수록, 경험하고 하루이틀 지난 일보다 수년 전에 있었던 일을 더 생생하게 기억하게 된다고 한다. 그 말은 사실인것 같다. 나는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정확한 순간을 더이상 기억할 수 없다. 그러나 잔디 쓰레기봉지를 놓치던 순간의 탈의 표정은 여전히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 P11

<코요테>

아버지에게 분명히 있기는 했던 조금의 재능은 단지 좌절의 원천으로만 작용하며, 실현되지 않은 막연한 잠재력을 끊임없이 상기시켜줄 뿐이었다. - P18

<코요테>

"아직은 아니야. 시내에 머무르고 있었어. 처음에는 떠날 수가 없었거든. 하지만 지금은 떠날 수 있어." 아버지는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이번에는 깨끗이 청산하려고 한다."

"깨끗이 청산한다고요?"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깨끗이 청산한다는 아버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직감적으로, 아버지가 한동안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P33

<코요테>

"사람 죽여본 적 있어요?" 어느 날 밤, 나는 저녁을 먹으러 온 그에게 물었다. 어머니가 나를 노려봤다. "아니." 그가 말했다. "내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우리 편이 철수하고 있었거든. 그즈음 전쟁은 끝났으니까." "하지만 그러라고 했으면 그랬을 거예요?" "그래. 그랬을 거다." - P36

<코요테>

"인생 최악의 일이야.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그런 형편이 되어버린 모습을 본다는 것은." - P44

<아술>

"있잖아, 폴." 그녀가 말한다. 가끔씩은 긴장을 푸는 것도 괜찮아. 그건 죄악이 아니잖아."
"뭐가 죄악이 아니야?"
"행복한 거." 그녀가 내 손을 잡으며 말한다. "그건 죄악이 아니야." - P57

<아술>

괜찮을 거야. 나는 다시 말한다. 그냥 찰과상이야. 그러나 나는 뻣뻣하게 굳어버린 그녀의 척추를, 등의 긴장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렇게 몇 분여를 보낸 후에야, 우리는 마침내 뒤로 돌아 우리의 지나간 행동을 직면한다. - P87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이것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느낌과는 아주 다른 감정이다. 나는 내가 그를 사랑하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잠든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가 남은 생을 그와 함께 보낼 수 있으리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와 함께 가정을 일구고 그의 곁에서 늙어갈 수 있었다. 그와 함께라면 그런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리란 것을 불행하지 않을 수 있으리란 것을, 나는 알았다. - P99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진실을 말하자면, 로버트를 만난다는 결정을 내리기란 어렵지 않았다. 나는 12월의 그날 저녁 이래 줄곧 그를 생각하고 있었고, 우리가 만난다는 얘기를 콜린에게 할 마음은 없었지만, 내가 무슨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처럼 생각되지도 않았다. 나는 혹여나 콜린이 길에서 로버트와 나를 스쳐지나더라도 그가 그 상황에 대해 두 번 생각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나의 행동이 배신임을 아는 것은 나 자신의 마음, 어쩌면 나 자신의 가슴뿐이었다. - P100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난 당신과 얘기하는 것이 좋아요. 그는 마치 내 말을 듣지 못한 듯이 말을 이어갔다. "그게 다예요 나는 우리의 대화가 즐거워요. 당신 역시 즐거워한다고 생각하고." - P102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우리가 나누는 이런 대화에는 자유가 있었다. 우리가 그곳에서 하는 얘기는 절대 그 밖으로 나가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콜린에게 언급할 수 없었던 일들을 로버트에게 말할 수 있었다. 나는 어떤 일도 아무리 우스꽝스럽고 부끄러운 일이어도, 모두 다 말할 수 있었다. 우리가 그 아파트에서 나누는 모든 말들은 그 바깥의 세상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을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 P106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당신이 언젠가 이것 때문에 나를미워하게 될까봐 두려워요, 헤더. "무엇 때문에요?" "이런 만남." 그가 말했다. "당신이 언젠가 이런 만남을 되돌아보며 나를 미워하게 될까봐 두려워요." 나는 그를 보았다. "내가 두려운 게 뭔지 알아요, 로버트?" 나는 그의 손을 만지며 말했다. "나는 내가 당신을 미워하지 않게 될까봐 두려워요." - P108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나는 그제야, 우리 사이에 지금껏 말을 넘어선 교감이 존재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하리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 P119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죄의식은 우리가 우리의 연인들에게 이런 비밀들을, 이런 진실들을 말하는 이유다. 이것은 결국 이기적인 행동이며, 그 이면에는 우리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진실을 밝히는 것이 어떻게든 일말의 죄의식을 덜어줄 수 있으리라는 추정이 숨어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죄의식은 자초하여 입는 모든 상처들이 그러하듯 언제까지나 영원하며, 행동 그 자체만큼생생해진다. 그것을 밝히는 행위로 인해, 그것은 다만 모든 이들의 상처가 될뿐이다. 하여 나는 그에게 말하지 않았다.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그 역시 내게 그러했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 P126

<머킨>

그녀는 내가 밖에 나와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기나 했는지, 그녀가 거기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 내게 한없는 위안이 되었음을 알기나 했는지, 나는 가끔 그런 것들이 궁금하다. - P185

<머킨>

이 순간 내게 중요한 것은, 그녀가 내게 허락하는 동안 그녀를 곁에 안고, 그곳에 린과 함께 서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우리 둘은 다만 멀리서 지켜본다. 호세의 입술을, 갑작스레 치몰리는 그의 이맛살을 아무도 알지 못하는 언어를 말하여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소통할 수 없는 한 소년을.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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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11-02 08: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랫 동안 절판되어 있다가
다시 나온 모양이네요 :>

네이버 블록 제 리뷰에 어떤
분이 책을 팔라는 댓글을 달
아 주셔서 기억이 나는 책이
네요.

새파랑 2022-11-02 12:12   좋아요 1 | URL
아하 그런가요? 이책 좋네요. 체호프 느낌도 좀들었습니다 ㅋ 중고로 샀는데 득템했습니다~!
 

역시 헤르만 헤세 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 다만 너무 어려웠다.

당신은 이제 이 다른 세계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당신이 찾는 것은 당신 자신의 정신 세계라는 것도 아십니다. 당신이 동경하는 저 다른 현실은 오직 당신 자신의 내면에만 있습니다. 나는 당신 속에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당신에게 줄 수 없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열어드릴 수 있는 건 오로지 당신 자신의 영혼의 화랑뿐입니다. 내가 당신에게 드릴 수 있는 건 기회와 자극과 열쇠일 뿐, 그 밖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당신 자신의 세계를 볼 수 있도록 도와드릴 뿐입니다. -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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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10-28 16: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려운 책도 척척 읽으시는
새파랑님, 빠이팅팅팅 !!!

새파랑 2022-10-28 23:16   좋아요 2 | URL
이 책 정말 좋았는데 너무 어렵습니다 ㅋ 미치는줄 알았습니다 😅

scott 2022-10-28 22: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담 번 독서는 하루키옹!
୧⁎ᵕᴗᵕ⁎୨

새파랑 2022-10-28 23:16   좋아요 2 | URL
앗 하루키 ㄷㄷ 소세키 읽고 있는데 😆

mini74 2022-10-30 11: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헤세. 어릴적 폼 잡는다고 들고 다녔는데 ㅠㅠ 커서 읽으니 새파랑님 말씀처럼 참 어려운 책들인듯 합니다 ㅠㅠ

새파랑 2022-11-01 06:13   좋아요 1 | URL
전 나이들고 나서야 제대로 읽는거 같아요 😅 어렵지만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