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다 좋다. 완전 내취향이다~!!




어쨌든 쁘리와 다른 사람 모두가 그 그림에 관심이 없는 것은 당연했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그림이라고 쁘리가 말했듯 말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 그리고 오직 나 혼자만이 - 그 사람들과는 정반대로 생각했다. 나는 그 그림의 이면에는 인생이 있고, 그 인생이 나의 마음에 새겨져 있음을 잘 알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 그림의 이면은 판지 한 장이고, 그 뒤는 벽이다. - P9

나는 작가가 정성을 쏟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인생을 담아 그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나는 지극히 평범하게 보이는 고요한 그림 속의 모든 움직임을 본다. 첫 장부터 바로 최근에 아주 슬프게 막을 내린 마지막 장까지, 모든 장면, 모든 순간의 움직임을 말이다. - P10

한 사람이 내 인생에 들어와 착 달라붙은 첫날의 일들과 여러 감정은 내 기억에서 잊힐 날 없이 살아 있을 것이다. 자그마한 하얀 꽃송이가 있는 남색 복장에 흰 모자, 그리고 하얀 신발은 내 마음에 들어와 아로새겨진 숙녀의 첫 옷차림이었다. 내가 우아하고 매우 품위 있다고 느낀 차림이다. - P18

여하튼 나는 끼라띠 여사의 경호원과 마찬가지의 명예를 부여받은 데에 특별히 높은 자부심을 느꼈다. 내 느낌으로는 끼라띠 여사 스스로도 모든 사람이 그녀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고 있는 듯했다. 그녀는 시종일관 조용하고 온화한 자태를 보였지만, 누구든 옅은 분홍빛 얼굴 전체에 어린 그녀의 즐거움을 볼수 있었을 것이다. - P22

"그만, 그만해." 그녀는 내가 입을 다물도록 손을 내저었다. "자네와 더 이상 이 이야기는 하지 않겠네. 아는가? 놉펀, 자네는 계속해서 나를 격찬하려고 해. 그렇게 행동하는 건 자네를 망칠 걸세." - P38

결국 집으로 돌아와 몸을 뉘었을 때 나는 자문했다. 무슨 이유로 나는 끼라띠 여사의 사생활을 골똘히 고민하고 있는가? 그문제를 반드시 풀어야 할 어떤 의무나 필요성이 내게 있는가? 당시 내가 스스로를 그녀의 친한 친구라고 여겼던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녀 자신이 어떤 걱정이 있다고 전혀 표현하지 않았고, 나에게 그녀와 관련된 어떤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요청하는 말을 입으로 꺼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녀의 개인적인 일을 깊이 고민해야만 할 무슨 이유가 있는가? 스스로에게 이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래서이 말도 안 되는 생각을 떨쳐 내어 벗어나고자 노력했다. 이는 상당한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 P40

나는 그녀의 얼굴을 마음을 강하게 잡아끄는 그녀의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시간에는 다른 것을 떠올린 적이 없노라고, 다른 것을 생각하기가 어렵다고 대답하고 싶었고, 거의 말할 뻔했다. 하지만 감히 직설적으로 말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무슨 이유에서 그렇게 생각했는지 나 스스로도 아직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P44

"아름다운 것은 무엇이건 간에 나는 모두 좋아해. 하지만 바로 그거야. 나는 아름다움을 보는 경향이 있어. 거의 모든 것은 관찰할 만하고 구경할 만해. 예컨대 이 호숫가의 잔물결이 이는 수면 역시 나에게는 흥미로워. 나는 아름다움을 사랑해. 왜냐하면 아름다움은 결점과 시듦이 없는 상쾌한 감정을 발생시키기 때문이지." - P47

"왜냐하면 그분의 사랑은 그분의 노년과 함께 말라 버렸기 때문이야. 사랑할 나이는 이미 그분을 지나가 버렸지. 이제 그분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몰라. 그분은 나를 사랑할 수 없어. 그분에게는 사랑—내 이상 속 사랑으로 만들어 낼 것이 없기 때문이야." - P64

나는 아직도 그날의 감정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내가 얼마나 행복하고 기뻤는지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어떤 감정이 나의 행복을 방해했다. 그것은 시시각각 가장 강렬한 무엇인가가 일어날 거라는 두려움으로 내 심장을 빠르게 뛰게 했다. 두려움이 가슴속을 오르내렸다. 나는 그걸 꽉 눌러서 밖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노력했지만 상당히 힘에 부쳤다. 그것을 완전히 막기는 어려웠다, 그저 기다릴 수밖에. 나는 지쳤고 피곤했고 행복했다. - P77

그분의 시간은 당신이 인생에서 어떤 이상을 만들어 내기에는 너무 적게 남았어. 그분은 달빛이나 호수 그리고 구애의 말에도 관심이 없어. 그분은 아름다운 것을 동경할 마음이 없어. 그분에겐 미래가 없어. 과거와 현재만 있을 뿐이야. 자네는 거기에서 어떻게 사랑이 생겨나기를 기대할 수 있지? 시멘트 길에서는 장미꽃이 피어나지 않는다네, 그대여." - P93

"저는 굉장히 난처합니다. 여사님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제가 만회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사랑이 저를 능가하는 힘을 가졌다는 사실만 확실히 압니다. 제 행동이 윤리에 어긋났다고 해도 저는 자연법칙의 통제에 놓여 있을 뿐입니다. 피하려고 노력했지만 사랑과 마주했을 때 저는 피해 나올 수 없었고 궁지에 몰렸습니다. 여사님께 부탁드립니다. 제발 이유를 가져와 말하지 마세요. 제발 윤리를 가져와 말하지 마세요. 저는 응수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것들은 자연법칙 이후에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언제나 자연법칙의 통제 안에 있습니다." - P96

"저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왜 제가 순수하게 저절로 생겨난 사랑, 불쌍하고 애처로운 무고한 사랑을 억눌러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저는 사랑을 그렇게 대할 수 없습니다." - P107

"내 좋은 사람이여. 마지막으로 내 조언을 받아들이길 바라. 자네는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학업을 위해 조국을 떠나 일본에 왔어. 자네의 목표를 정확하게 기억해야 하고 견고하게 잡고 있어야 하네. 지난 두 달 동안 자네와 나 사이의 관계는 잊어버리게. 그건 꿈이라고 생각하게." - P111

나에 대한 강렬한 감정은 적당한 때가 되면 점차 사라져 갈 것이고, 결국 나는 자네 인생에서 중요한 무엇이 아니게 될 거야. 그러면 족쇄 없이 아름답고 순수한 청년의 감정과 행복이 예전처럼 놉편의 마음으로 돌아올거야. 나는 그 시간을 기도하며 기다려. - P124

나는 끼라띠 여사가 그 편지 속에 어떤 심오한 감정을 숨겼음을 전혀 알아차리고 인식하지 못했다. 인생의 세심함과 은밀함이란, 그 당시에 알기에는 나의 이해력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 P135

그런데 나는 그다지 확신할 수 없다고 봐. 왜냐하면 아티깐버디 공이 죽은 이후에 여사가 사교 활동을 즐기지 않는 것 같다고 들었거든. 그녀는 조신하게 생활하면서 아티깐버디 공의 친한 친구들 모두의 칭찬을 받고 있어. 최근에는 누군가가 그녀에게 관심을 보였고 결혼을 타진했을 정도였는데 여사가 거절한것 같다고 들었고, 사람들은 그녀가 마음속에 은밀한 뭔가를 간직한 사람인 것 같다고들 말해. - P142

"생각해 보면 스스로에게 이상함을 금할 수 없어. 왜냐하면 지나온 시간에 내 행복을 이루었던 중요한 부분은 나에게 일어난 실제의 일이 아니라 오히려 단지 어떤 것에 대한 희망 또는 기대였기 때문이지. 지금에 와서도 내 삶은 아직 예전과 달라지지 않았다네. 진정한 행복은 여전히 앞날에 표류하고 있어. 나는 그것을 잡으려고 쫓아가고 희망하지. 그리고 기다리고 있어." - P151

"맞아, 자네는 이해하지 못할 거야. 왜냐하면 자네는 우리가 알게 된 첫날부터 나를 이해한 적이 없었으니까." 그녀의 눈빛에 비웃는 듯한 감정이 보이는 듯했다. "제가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또 뭐가 있는지 제발 저한테 말씀해 주십시오." "자네는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해. 전부 이해하지 못해. 자네 자신조차도 이해하지 못해." - P170

"자네의 사랑은 그곳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죽었지. 하지만 다른 한 사람의 것은 죽어 가는 몸에서 여전히 자라나고 있어." - P171

나는 나를사랑하는사람 없이 죽는다. 하지만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족하다. -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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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먼다는게 어떤건지 간접체험했다.


















"눈은 영혼의 거울이다"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어쩌면 눈은 영혼속으로 선명하고 반짝이는 다채로운 세계의 인상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창에 가까울 것이다. 우리의 정신 구조의 어떤 부분이 빛의 지각에 의존하는지를 누가 말할 수 있을까? - P249

그리고 운명은 어두운 구름처럼 몰려왔다. 해가 지날수록 소년의 천성적 활기는 썰물처럼 어렴풋하게 점차 사라졌지만, 영혼 속에서 끝없이 울리는 슬픈 기운은 소년의 기질로 드러나며 점점 강해졌다. 어린시절에 특별히 명확한 새로운 인상을 받을 때마다 들을 수 있었던 웃음소리는 이제는 점점 드물어졌다. - P251

우정은 상호 간에 충만되어 더욱 두터워졌다. 에벨리나가 그들의 상호 관계에 평안과 고요한 기쁨을 가져오고, 맹인 소년에게 주위 삶의 새로운 뉘앙스를 전해주었다면, 소년은 자기 나름대로 소녀에게 자신의 슬픔을 안겨주었다. 소년과의 첫번째 만남은 어린 소녀의 예민한
마음에 피투성이 상처를 남긴 듯한데, 충격을 안긴 칼을 상처에서 빼내면 소녀는 피를 흘릴 것이다. 초원의 작은 언덕 위에서 맹인 소년과 처음으로 만난 뒤 어린 소녀는 날카로운 공감의 고통을 느꼈으며, 이제 소녀에게 소년의 존재는 점점 더 필연적이 되었다. 그와 헤어지면 상처는 다시 드러나고 고통이 재발하는 듯하여, 소녀는 자신의 고통을 부단한 보살핌으로 달래기 위해 자기의 어린 친구에게로 줄달음치곤 했다. - P253

"다시 꿈을 꿨어요. 요즘 꿈을 자주 꾸는데...…… 아무것도 기억할수 없어요...." - P317

"그래, 내가 괴롭히고 있지. 난 이런 식으로 평생을 괴롭힐 거야, 괴롭히지 않을 수 없지. 나 자신도 몰랐었는데, 이제는 알겠어. 내 잘못은 아니야. 내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 때 시력을 앗아간 그 손길이 나에게 악의를 집어넣었어. 태어날 때부터 맹인인 우리는 모두 같아……… 날 내버려둬…… 나를 그냥 버리라고. 너의 사랑에 대해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고통뿐이야………… 난 보고 싶어, 이해하니? 난 보고 싶고, 이 열망에서 벗어날 수 없어. 내가 이렇게 어머니, 아버지, 너 그리고 막심 삼촌을 볼 수 있다면, 난 만족할 것이고………… 기억할 것이고, 이 기억을 남은 생애 동안 어둠 속에서 간직할거야......" - P319

"그렇지 않아." 막심이 날카롭게 대답했다. "너에게는 소리도, 온기도, 움직임도 있고……… 너는 사랑으로 둘러싸여 있어…… 많은 사람이 네가 엉터리라고 멸시하는 것을 위해 시력을 포기하기도 하지....하지만 너는 지나치게 이기적으로 자기 슬픔만을 간직하고 있어...…… - P326

그가 무엇을 보았고, 어떻게 보았으며, 정말로 본 것인지 등에 관해서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많은 사람이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말을 해도, 그는 하늘과 땅, 어머니, 아내 그리고 막심 삼촌을 보았다고 확신하며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 P344

그래, 그는 눈을 떴어………… 어둡고 괴로운 이기적 고통의 자리에‘그는 이제 삶의 지각을 가져왔고, 인간적 슬픔과 기쁨을 느끼며 눈을떴고, 이제 행복한 사람들에게 불행한 사람들을 상기시킬 수 있어...… - P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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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이 제일 좋았다





그러는 사이에 말은 주변 일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작은 언덕 위에 썰매를 끌어다 놓았다. 달빛을 머금은 눈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때때로 달빛은 마치 녹아내리는 듯했고, 눈은 어두워졌다가 금방 그 위로 북극의 오로라가 찬란하게 반사되었다. - P17

그는 눈 위에 누웠다. 추위는 더 심해졌다. 오로라의 마지막 빛줄기가 흐릿하게 가물거렸고 타이가 숲의 정상을 통해 마카르에게로 비추면서 하늘로 퍼져 나갔다. 종소리의 마지막 메아리가 멀리 찰간에서 울려왔다. 오로라가 확 타오르더니 이내 사그라졌다. 종소리도 잦아들었다. 그리고 마카르는 숨을 거두었다. - P25

마카르가 누군가로부터 총애, 환대 혹은 기쁨을 경험한 적이 있었던가? 그의 아이들은 어디에 있는가? 아이들이 죽어갈 때 그는 괴롭고 힘겨웠으며, 그들은 다 자랐을 때 홀로 힘겨운 가난과 싸우기 위해 그를 두고 떠나갔다. 이제 그는 두번째 아내와 단둘이 늙어버렸고, 기력이 쇠해지고 의지할 데 없는 노년이 찾아든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사방에서 몰아치는 잔혹한 눈보라를 맞으며 초원 속에 서 있는 두 그루의 쓸쓸한 전나무처럼 외롭게 서 있었다. - P47

토이온이 말하는 신실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지상에서 마카르와 같은 시기에 부유한 목조 가옥에 살던 그들이라면 마카르는 그들을 알고 있다………… 그들의 눈이 맑은 것은 마카르가 흘린 만큼 눈물을 흘리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들의 얼굴이 밝은 것은 향수로 닦았기 때문이며, 의복이 깨끗한 것은 다른 사람들의 손으로 지은 것이기 때문이다. - P48

그런데 마카르가 다른 사람들처럼 땅과 하늘이 비치는 맑고 순수한 눈과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에 기꺼이 열어 보일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사실을 그는 알지 못한단 말인가? 지금 그가 자신의 음
침하고 수치스러운 모습을 땅 밑으로 숨기고 싶어 한다면 그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구의 잘못인가? 그는 이것에 대해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 인내가 바닥났다는 사실 하나만은 알고 있었다. - P48

아마도 산모는 헤어날 길 없는 무거운 슬픔이 갓난아이와 함께 세상에 나타나 바로 무덤까지 새 생명을 따라다니려요람 위에 걸려 있다고 직감하는 듯했다. 어쩌면 이것은 완전히 허튼소리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어쨌든 간에 어린아이는 눈이 먼 채로 태어났다. - P176

"불행히도, 마님, 당신이 옳았습니다.…… 아이는 실제로 맹인이고,‘게다가 희망이 없습니다……" 엄마는 슬퍼하면서도 차분하게 이 얘기를 받아들였다.
"저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답니다."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 P178

「그러나 당시에는 가까운 사람들조차도 그가 어떤 문제에 골몰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들은 단지 푸른 연기에 둘러싸인 막심 삼촌이 흐릿한 시선으로 짙은 눈썹을 음울하게 찌푸리며 때로는 꼼짝하지 않고 몇 시간이고 앉아 있는것을 보았을 뿐이다. 그런데 사실인즉슨 이 불구의 전사는 인생이란 투쟁이며, 그곳에 불구자가 설 자리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이미 대오에서 영원히 이탈했고, 이제는 헛되이 호송 열차에 몸을 싣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삶에 의해 말안장에서 떨어져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 기사인 것 같았다. 짓밟힌 구더기처럼 티끌 속에서 몸을 뒤척이는 것은 비겁한 짓이 아닌가. 자기 존재의 하찮은 찌꺼기를 구걸하며 승리자의 등자에 매달리는 것은 비겁한 짓이 아닌가? - P181

"으음.....… 그렇군." 어느 날 그는 어린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말했다. "이 작은 아이도 역시 불구자로군. 우리 둘을 하나로 합치면 아마도 한 명의 초라한 작은 인간이 만들어질 텐데." 그때부터 그의 시선은 훨씬 자주 어린아이에게 머물기 시작했다. - P182

소리들은 차례로 날아올랐다 떨어졌으며, 너무나 복잡하고 너무나 강력했다. 아이를 사로잡은 파동은 울리고 구르는 주변의 어둠에서 솟아나 그 어둠을 넘어 새로운 파동과 소리로 교체되면서 더욱 긴장되게 일렁거렸다.……… 파동은 더 빠르게, 더 높이, 더 고통스럽게 아이를 일으키고, 흔들고, 달랬다……… 또다시 이 어렴풋한 혼돈 위로 길고도 슬픈 사람의 외침 소리가 들려왔고, 곧이어 만물이 고요해졌다. - P191

때때로 무더운 한낮에 주위가 고요하고, 사람들의 움직임이 뜸해 자연 속에서 오직 끝없고 조용한 생명력의 질주만이 감지되는 독특한 정적이 드리울 때, 맹인 아이의 얼굴에는 독특한 표정이 나타났다. 외부의 정적으로 인해 아이 영혼의 심연에서는 오직 그만이 이해할 수 있는 어떤 소리가 일었고, 아이는 바짝 긴장하여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듯했다. 그런 순간에 아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아득한 노래 선율처럼 어렴풋이 생겨나는 사고가 그의 심장에서 울리기 시작했다고 여기게 되었다. - P197

아이가 피리 부는 사내에게로 달려가 잠자리에 들기 전 그의 마구간에서 두어 시간이나 죽치고 앉아 있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제 이 시간은 아이에게 더없이 행복한 순간이 되었고, 엄마는 아이가 심지어 이튿날까지도 전날 저녁의 인상에 파묻혀 있고, 자신의 사랑에 전처럼 충실하게 응하지 않으며, 자신의 팔에 안겨 포옹을 하면서도 이오힘의 저녁 노래를 떠올리는 것을 질투심에 불타며 바라보았다. - P205

소년의 눈동자는 자신이 행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없이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는데, 저물어가는 태양이 그것에 야릇하게 반사되고 있었다. 순간 이 모든 것은 소녀에게 무서운 악몽처럼 느껴졌다. - P235

전체적으로 이 우정은 행운의 진정한 선물이었다. 이제 소년은 더이상 완전한 고립을 추구하지 않았고, 어른들의 사랑이 그에게 줄 수없는 소통을 발견했으며, 가끔 그에게 찾아드는 예민한 정신적 평온의 순간에도 소녀가 곁에 있는 것이 기분 좋았다.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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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카프카 최고다. 이 책을 읽은 오늘은 정말 행운의 날이다.






그래, 넌 무척 기묘한 장소에 세워져 있지. 너는 이미 다시는 찾아볼 수 없게 된 소녀의 모습에 사랑을 느끼고, 이미 죽어버린 소년을 질투하고 있는 거야. 그럼에도 그 상념은 지금까지 네가 현실에서 체험한 어떤 감정보다도 훨씬 더 생생하고 애절한 것이지. 그리고 거기에는 출구가 없어. 출구를 발견할 가능성조차 없는 거야. 너는 시간의 미궁 속에 빠져버린 거다. 가장 큰 문제는, 네가 그 시간의 미궁 속에서 빠져나오고 싶은 생각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야. 그렇지? - P29

"그 말은 아마도 사에키 씨를 사랑하고 있다는 말이야? 아니면, 사에키 씨를 아마도 사랑하고 있다는 말이야?"

"아마도이긴 하지만, 매우 강렬하게 사랑하고 있단 말이지." - P36

"하지만 시간이라는 것이 있는 한 누구나 결국에는 훼손되고, 모습이 변하게 되는 건 아닐까? 조만간에."

"설사 언젠가는 훼손된다 하더라도, 되돌아갈 수 있는 장소는 필요하지요."

"되돌아갈 수 있는 장소?"

"돌아갈 가치가 있는 장소라는 말입니다." - P39

내가 사랑하고 있는 상대가 열다섯 살 소녀로서의 사에키 씨인지, 아니면 현재의 쉰 살이 넘은 사에키 씨인지 점점 알 수 없어진다. 그 둘 사이에 있어야 할 경계선이 흔들리다가 희미해지면서 그 모습은 흐려진다. 그것이 나를 혼란시킨다. 나는 눈을 감고, 마음속에 있는 중심축 같은 것을 찾는다. - P76

그녀의 얼굴이나 모습은 나에게 있어 하루하루 지나는 그때마다 특별하며 귀중한 것이다. - P46

사쿠라 씨는 현실세계에 살며 현실의 공기를 마시고, 현실의 언어를 구사하고 있어. 사쿠라 씨와 얘기를 하고 있으면, 내가 현실세계와 확실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거든. 그건 나에게는 아주 중요한 일이야." - P90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그런 시간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사에키 씨가 열다섯 살이었을 때를 알고 있습니다. 저는 열다섯 살 때의 당신을 사랑한 겁니다. 아주 깊이, 그리고 그녀를 통해서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그 소녀는 지금도 당신 안에 있습니다. 언제나 당신 안에서 잠자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잠들면 그녀는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저에게는 그것이 보입니다." - P116

나는 어느 시기에 너무 완벽한 것을 손에 넣고 말았지. 그래서 그 뒤로는 그저 자신을 손상시켜 갈 수밖에 없었던 거야. 그것이 내게 내린 저주야. 살아 있는한 나는 그 저주로부터 도망칠 수 없어. 그러니까 죽음은 두렵지 않아. 그리고 다무라 군의 질문에 대답한다면, 그 시간은 대충 알고 있어. - P118

"누구나 사랑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결여된 일부를 찾고 있기 때문이지.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면, 다소의 차이는있을망정 언제나 애절한 마음이 되는 거야. 아주 먼 옛날에 잃어버린 그리운 방에 발을 들여놓은 것 같은 기분이 되는 거지. 당연한 일이야. 그런 기분은 네가 발명한 게 아니야. 그러니까 특허 신청같은 것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 P122

"제가 추구하는 것은, 제가 추구하는 강함은 이기거나 지거나 하는 강함이 아닙니다. 외부에서 가해지는 힘을 받아치기 위한 벽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외부에서 가해지는 힘을 받아 거기에 견뎌내기 위한 강함입니다. 불공평함이나 불운, 슬픔이나 오해, 몰이해ㅡ 그런 것에 조용히 견뎌나가기 위한 강함입니다." - P157

"저는 어렸을 때부터 꽤 많은 것을 빼앗겨왔습니다. 수많은 소중한 것들을 말입니다. 저는 지금 조금이나마 그것을 되찾아야 합니다." - P161

자신이 올바른 장소에 있다는 느낌이 든다 - P172

"왜 바다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일까요?"

"아마 넓고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겠지." - P206

"저 말이야, 아저씨, 세상에는 ‘독을 먹으려면 접시까지‘ 라는 말이 있지."

"무슨 뜻입니까?"

"독을 먹어버렸으면 내친김에 접시까지 먹어치우라는 얘기지." - P210

요컨대 사랑을 한다는 건 그런 거야, 다무라 카프카 군. 숨이 멎을 만큼 황홀한 기분을 느끼는 것도 네 몫이고, 깊은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것도 네몫이지. 넌 자신의 몸과 마음으로 그것을 견뎌야만 해. - P216

돌과 얘기할 수 있는 인간도 있는 마당에 사내와 자는 사내가 있다고 해서 뭐가 이상한가. - P262

"만일 당신이 《햄릿》을 읽지 않은 채 인생을 마친다면, 당신은 탄광의 깊숙한 막장 속에서 일생을 보낸 것과 같다‘ 라고 말입니다." - P265

나는 숲의 한가운데에 발을 들여놓는다. 나는 속이 텅 빈 인간이다. 나는 실체를 잡아먹는 공백이다. 그러니까 더 이상 두려워해야 할 것은 없다.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나는 숲의 중심에 발을 들여놓는다 - P281

"추억이란 당신의 몸을 안쪽에서부터 따뜻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당신의 몸을 안쪽으로부터 심하게 갈기갈기 찢어놓는 것이기도 합니다." - P283

"나카타는 그것을 어렸을 때 겪은 전쟁에서 잃어버렸습니다. 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왜 나카타가 그런 일을 당해야 했는지, 나카타는 잘 모릅니다. 어쨌든 그로부터 상당히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우리는 이제 서서히 여기를 떠나야만 합니다." - P285

"그래요. 그것을 끌어안고 사는것이 아무리 괴로워도 살아 있는 한 저는 그 기억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요. 그것이 제가 살아왔다는 유일한 의미이고 증거니까요." - P286

"쓴다는 사실이 중요했던 모양이죠?" 하고 나카타 씨가 물었다.

"네, 그래요. 쓴다는 사실이 중요했어요. 이미 다 써버린 것에는, 그 완결된 형태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 P289

"아주 오래전부터 당신을 알았던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하고 사에키 씨가 말했다. "당신은 혹시 저 그림 속에 계시지 않았나요? 해변의 배경에 있는 사람으로, 흰 바지자락을 걷어올리고 발을 바다에 담그고 말이에요." - P289

"왜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는 것이, 그 누군가를 깊이 상처 입히는 것과 같아야 하는지를 말이야. 즉 만일 그렇다면,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는 것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어? 도대체 왜 그런 일이 일어나야만 하는 거냐구?" - P303

"그건 어떤 기분일까. 네가 완전히 너이면서, 동시에 온전히 내일부가 된다는 것은?"

"내가 나이면서 온전히 네 일부가 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고, 일단 익숙해지면 아주 간단한 일이야. 하늘을 나는 것처럼." - P367

"그래도 어쨌든 돌아가지 않으면 안 돼."

"설사 내가 돌아가야 할 곳에 아무것도 없어도? 누구 한 사람 내가 거기에 있기를 원하지 않아도요?"

"그렇지 않아" 하고 그녀는 말한다. "내가 그러기를 원하고 있어.다무라 군이 거기 있기를 내가 원해." - P371

"나를 기억해 주는 것. 다무라 군만 나를 기억해 준다면, 다른 모든 사람이 다 나를 잊어도 괜찮아." - P371

"기억이라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건가요?" 하고 나는 다른 질문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하고 그녀는 말한다. 그리고 눈을 살짝 감는다. "기억이란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게 될 수 도 있지." - P372

"그 그림을 앞으로 계속 다무라 군이 가졌으면 좋겠어" - P373

"왜냐하면 넌 거기에 있었거든. 그리고 나는 그 옆에서 너를 보고 있었고. 아주 오래전에 그 해변에서, 바람이 불고, 새하얀 구름이 떠 있고, 계절은 언제나 여름이었지." - P373

"내가 무엇보다도 사랑하던 것을. 나는 언젠가 그것을 잃어버리게 될 것을 두려워했던 거야. 그래서 내 손으로 그것을 버릴수밖에 없었어. 빼앗기거나 어떤 우연한 일로 사라져버릴 거라면, 차라리 내가 버리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한 거지. 물론 거기에는 사라지지 않는 분노의 감정도 있었어. 하지만 그건 잘못된 일이었어. 그것은 결코 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었어." - P374

"내가 그것을 원하고 있어. 네가 거기에 있기를 내가 원해" - P378

"말로 설명해 보았자 그곳에 있는 것을 올바로 전할 수 없기 때문에 말을 못 한다는 것 아닌가?" - P405

"소중한 기회와 가능성, 돌이킬 수 없는 감정. 그것이 살아가는 하나의 의미지. 하지만 우리 머릿속에는, 아마 머릿속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것을 기억으로 남겨두기 위한 작은 방이 있어. 아마 이 도서관의 서가 같은 방일 거야. 그리고 우리는 자기 마음의 정확한 현주소를 알기 위해, 그 방을 위한 검색 카드를 계속 만들어나가지 않으면 안 되지. 청소를 하거나 공기를 바꿔 넣거나, 꽃의 물을 바꿔주거나 하는 일도 해야 하고, 바꿔 말하면, 넌 영원히 너 자신의 도서관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거야." - P413

"세계는 메타포야, 다무라 카프카 군" 하고 오시마 씨는 내 귓가에 대고 말한다. "하지만 나에게나 너에게나, 이 도서관만은 아무런 메타포도 아니야. 이 도서관은 어디까지나 이 도서관이지. 나와 너 사이에서 그것만은 분명히 해두고 싶어." - P416

"잠을 자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너는 새로운 세계의 일부가 되어 있을 거야." 이윽고 너는 잠이 든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너는 새로운 세계의 일부가 되어 있다. - P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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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11-11 15: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이 책
한 번 더!👆
읽으실 것 같습니다 ^^

새파랑 2022-11-11 15:47   좋아요 1 | URL
개정판 나오면 읽겄습니다 ㅋ 너무 많이 읽은거 같아요 ^^
 

"그녀가 나를 사랑하거나 아니면 내가 더 이상 그녀를 사랑하지 않기를, 하지만 이 중 한 가지는 불가능하고, 저는 다른 나머지는 원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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