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택배 받자마자 바로 읽었다 ㅋ


우리가 타인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라는 건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이해의 문제라는 겁니다 - P20

저는 그래서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쉽게 하는 사람들을 별로 신뢰하지 않습니다. 타인의 변화 가능성을 그렇게 쉽게 일축할 수 있는 사람이 자기 자신인들 더 나은 사람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요? - P26

거리 두기. 이 네 글자.
바이러스 때문에 하는 거리 두기 말고, 사람과 사람이 서로 건강하게 불필요한 오해나 갈등 없이 가능한한 오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물리적, 시간적, 그리고 심정적으로 거리를 두는 것. 이게 이 세상 모든 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 P29

그래서 사랑을 하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힘이 들 때가 많죠. 사람은 누굴 좋아하면 바라는 게 생기기 때문에. 그래서 아무 감정 없는 동료와 회사에서 종일 같이 있는 것보다 서로 사랑하는 부부가 한집에서 종일 붙어 있으면 훨씬 더 많은 일들이 생기게 되는 거죠. - P30

어떤 사람에게는 그렇게 남한테 자기 속마음을 털어놓는 일이 죽기보다 어려울 수가 있는 거거든요. 그런 대화를 하는 순간의 그 불편한 공기를 참느니 차라리 인연을 끊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을 한다는 거죠. 또 애초에 그런 게 가능했으면 내키지 않는 일은 거절을 할 수 있는 용기도 있었을 테고요. - P43

누굴 미워하지 않게 된다는건 결국 나를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는 것인데, 그래서 이 사람과 사람 간의 일이라는 것은 정말 간단한게 아닌 것 같아요. 누가 누굴 알고 이해한다는 건 어쩌면 평생이 걸릴 수도 있는 긴 여정이기 때문에. - P47

요약이라는 건요, 당장 받아들이기에 간편할지는 몰라도 필연적으로 오해와 단정을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글에는 행간이 있고 맥락이라는 게 있는 건데 그걸 다 생략하고 핵심만 남긴다? 지금 문제집을 푸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300페이지짜리 책 한권을 한두 개의 문장으로 압축하듯, 수십 년 사람의 인생 역시 한두 마디 말로 요약한다고 생각해보세요. - P50

인간의 삶에는 노력을 아무리 해도 닿을 수 없는 소위 말하는 운이 좌우하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이죠. 그걸 인정하지 않고 모든 것을, 심지어 운조차 내 노력의 소관으로 이해를 해버리면 결국 세상만사가 다 내 탓이 되어버립니다. - P82

인생이라는 게 두 개를 다 가질 수는 없는 거니까요. - P96

이 세상은 사람의 지옥이다, 뭐 이런 말도 했었지만 인간은요, 사람한테 한 열 번 스무 번 데이다가 막상 한번 감동을 받잖아요? 그럼 그 힘으로 또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 P110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의심하고 외면하고 불러주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그럴 때 어느 한 명, 나보다 더 나를 믿어주는 사람을 만났을 때의 그 감동은 평생을 갑니다. 그때 그분이 저에게 그렇게 따뜻하게 손을 내밀어주지 않았더라면 저는 아마 저에게 필요한 온기를 다 채우지 못한 채로 너무 춥게 살아왔을지도 모릅니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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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11-25 11: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새파랑님을 위해 출간 된 것 같습니다 ^^

새파랑 2022-11-25 12:12   좋아요 2 | URL
제가 북플에서 1번으로 읽은듯 합니다~!!

페크pek0501 2022-11-27 14: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석원 님의 블로그에 가끔 들어가곤 했는데... 여기서 보네요.
˝운명은 늘 거기에 있었다.˝ - 별 거 아닌 것 같은데 멋있는 말 같습니다.^^

새파랑 2022-11-27 16:14   좋아요 0 | URL
제가 이석원, 언니네 이발관 완전 좋아라 합니다 ^^
 

역시 소세키는 너무너무 좋다. 그 후는 특히 완벽하다.

그가 보기에 이 청년의 머리에는 소의 뇌가 들어
있다고밖에는 할 수 없다. 이야기를 시켜보면
보통 사람의 절반 정도밖에 따라오지 못한다. - P44

다이스케는 꽃병 오른쪽에 있는 조립식 책장
앞으로 가서 위에 올려놓았던 무거운 앨범을 손에
들었다. 금으로 된 잠금 쇠를 풀고 선 채로 한
장씩 넘기기 시작했다. 중간쯤 이르러 갑자기
손을 멈췄다. 거기에는 스무 살쯤 된 여자의
상반신 사진이 있다. 다이스케는 눈을 내리뜨고
여자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 P49

"곧 돌아오게"라고 말하며 히라오카의 손을
잡았다. 히라오카는 다이스케의 말에 "하는 수
없지. 당분간은 참아야지"라고 내뱉듯이 말했으나
그의 안경 너머로는 부러울 정도로 자신만만한
표정이 번득이고 있었다. 그 표정을 본 순간.
다이스케는 갑자기 친구가 미워졌다. - P59

이미 오래전에 세상에 발을 디뎠지. 특히 자네와
헤어진 뒤로는 세상이 아주 넓어진 느낌이야.
단지 자네가 살아가는 세상과는 성격이 다를
뿐이지."

"그런 식으로 허세를 부려봤자 곧 무릎 꿇고 말
걸세." - P69

"미치요(三千代) 씨는 잘 지내고 있나?"

"물어주니 고맙군. 여전히 잘 있네. 자네에게
안부 전해달라고 하더군. 실은 오늘 함께 오려고
했는데 흔들리는 기차를 타고 오느라 머리가
아프다고 해서 여관에 있으라고 하고 나왔네." - P85

"조상이 만든 인연보다는 자신이 만든 인연으로
결혼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럼 그런 사람이 있다는 말씀이세요?"
다이스케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 P140

그는 인생에서 처세라는 사다리를 한두 계단
오르다가 헛디뎌 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다만
그 순간 너무 높이 올라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지만 남의 눈에 띌 정도로
상처를 입지는 않았어도 실제로 정신적으로는
이미 큰 타격을 입은 듯했다. 처음 재회했을 때
다이스케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지난 3년
동안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생각해봤을 때
어쩌면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난 변화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든 것은 아닐까도 싶었다. - P159

‘그때는 아무래도 내가 미쳤었지.‘ - P162

미치요는 아름다운 선이 곱게 겹친 선명한
쌍꺼풀눈을 지녔다. 눈은 가늘고 긴 편이었는데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을 때면 눈이 굉장히 커 보였다.
다이스케는 검은 눈동자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미치요가 결혼하기 전에 다이스케는 미치요의
그런 눈매를 자주 보았다. 그래서 지금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미치요의 얼굴을 떠올릴 때면
얼굴 윤곽이 다 그려지기도 전에 검고 젖은 듯한
눈매가 퍼뜩 떠오르곤 했다. - P167

다이스케는 러시아문학에 등장하는 불안을 그
나라 특유의 날씨와 정치적 압박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했다. 프랑스문학에서 엿보이는
불안은 유부녀의 간통이 많기 때문으로 보았다.
단눈치오로 대표되는 이탈리아문학에서의 불안은
무절제한 타락으로 인한 자기결손의 감정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일본의 문학가가 굳이
불안이라는 측면에서만 사회를 묘사하는 것은
서구를 모방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 P226

오늘 두 사람 사이에 감도는 분위기는 그때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그 거리감을 메우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는 사실은 두 사람 모두 잘 알고
있다. 도쿄에 도착한 다음 날 3년 만에 만난 두
사람은 어느새 둘 사이에 상당한 거리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P254

결국 자신의 얼굴을 거울에 비춰볼 여유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거야. 누구든 바쁠 때는
자신의 얼굴 따위는 잊어버리게 되지." - P269

일하는 것도 좋지만 일을 한다면 단지 생계만을
위한 일이어서야 명예로운 일이라고 할 수 없지.
모든 신성한 노력이란 빵과는 거리가 있는
법이네. - P270

"그것 보게. 먹고사는 것이 목적이고 일하는 것이
그 수단이라면 먹고살기 쉽게 일할 방법을
찾아가는 게 당연한 일이지. 그러면 무슨 일을
어떻게 하든 그저 빵을 얻을 수만 있으면 된다는
결론이 나지 않을까? 노동의 내용이나 방향,
순서가 다른 것의 방해를 받게 된다면 그런
노동은 타락한 노동이라 할 수 있지." - P272

다이스케는 지금까지 한 번도 자신의 신붓감으로
마음에 드는 여자를 떠올려본 적이 없다. 하지만
지금 그런 말을 듣자 무슨 이유에선지 갑자기
미치요라는 이름이 마음속에 떠올랐다. 그런 다음
‘그러니까 아까 말씀드린 돈을 빌려주십시오‘라는
말이 저절로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러나
다이스케는 그저 쓴웃음만 지은 채 형수와 마주
앉아 있었다. - P317

히라오카는 마침내 자신과 멀어지고 말았다. 만날
때마다 멀어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은 히라오카뿐만이 아니다. 누구를
만나더라고 그런 느낌이 들었다. 현대사회란
고립된 인간의 집합체에 불과하다. 대지는 자연과
이어져 있지만 그 위에 집을 지으면 금세
조각조각 나버린다. 집 안에 있는 인간 역시
조각조각 나버린다. 다이스케는 문명은 우리들을
고립시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 P360

그는 히라오카를 대할 때마다 느껴지는 원인 모를
불쾌감을 떠올렸다. 그렇다고 다만 미치요만을
위해 히라오카의 상황을 걱정할 만큼 히라오카를
미워하지도 않았다. 히라오카 자신을 위해 역시
그의 성공을 바라는 마음이었다. - P414

조금 전에 미치요가 들고 들어온 백합은 여전히
테이블 위에 있었다. 달콤하고 강한 향기가 두
사람 사이에 감돌았다. 다이스케는 이 무겁고
고통스러운 자극을 코앞에 두고 참기 어려웠다.
하지만 멋대로 치워버릴 정도로 미치요에게
거침없는 행동을 하기는 어려웠다. - P434

다이스케는 그 답례로 대개는 새로 나온 서양문학
책을 보냈다. 그러면 답장에는 보내준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는 증거 같은 비평이 꼭 있었다.
하지만 이런 서신 교환은 오래 계속되지 않았다.
나중에는 책을 받았다는 인사도 없었다. 자신이
일부러 물어보면 책은 고맙게 잘 받았다, 읽고
인사를 하려다 보니 이렇게 늦어졌다, 실은 아직
책을 읽지 않았다, 자백하면 읽을 시간이
없다기보다 읽고 싶은 마음이 없다,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읽어도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는 답장이 왔다. 다이스케는 그 후로
책을 보내는 대신에 최신 장난감을 보내기로 했다 - P512

그러자 미치요에 대한 자신의 감정도 이런 논리에
의해 그저 일시적인 감정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의 머리는 당연히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의 가슴은 틀림없이
그렇다고 인정할 용기가 없었다. - P517

그는 부자간의 인연을 끊게 되는 극단적인 상황을
상상했다. 그러면서 고통을 느꼈다. 그러나 그건
견딜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로 인해서 경제적인 지원이 끊기는 점이
두려웠다. - P583

그는 현재의 미치요를 결코 내버려둘 수 없었다.
그는 병든 미치요를 예전의 미치요보다 가엾게
여겼다. 그는 아이를 잃은 미치요를 예전의
미치요보다 가엾게 여겼다. 그는 남편의 사랑을
잃은 미치요를 예전의 미치요보다 가엾게 여겼다.
그는 생활고에 시달리는 미치요를 예전의
미치요보다 가엾게 여겼다. 다만 다이스케는 이들
부부 사이에 끼어들어 영원히 갈라놓으려 할 만큼
대담하지 않았다. 그의 사랑은 그렇게 무분별하지
않았다. - P604

그제야 다이스케는 미치요와 오래 앉아 있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처음으로 깨달았다. 서로
자연스러운 애정에서 흘러나오는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 그들이 무의식중에 세상의 속박을
뛰어넘는 데는 2, 3분의 시간이면 충분할 것이다. - P608

"자네도 많이 변했군."
"자네가 변한 것처럼 변해버렸지. 각박한 세상을
살다 보니 어쩔 도리가 없군. 그러니 좀
기다려주게." - P624

만일 이 부부가 자연의 도끼에 의해 둘로
갈라진다면 자신의 운명은 돌이킬 수 없는 미래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부부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자신과 미치요는 그만큼 가까워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P628

다이스케는 백합을 바라보면서 방을 가득 채운
강한 향기에 자신을 내맡겼다. 그는 그런
후각적인 자극 속에서 지난날 미치요의 모습을
분명하게 떠올렸다. 그 과거 속에는 떨쳐버릴 수
없는 자신의 옛 그림자가 연기처럼 휘감고
있었다. 그는 한참 후에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오늘 처음으로 자연스러웠던 옛날로
돌아가는군.‘ - P697

"내게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반드시 필요해요.
저는 이 말을 하기 위해서 일부러 당신을 부른
겁니다." - P717

"너무하세요."
흐느끼며 말하는 목소리가 손수건 너머로
들려왔다. 그 말이 다이스케의 청각을 전류처럼
자극했다. 다이스케는 자신의 고백이 너무
늦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고백을 하려면
미치요가 히라오카와 결혼하기 전에 했어야 했다.
그는 흐느낌 사이로 띄엄띄엄 이어지는 미치요의
이 한마디를 듣고 견딜 수 없었다.
"3, 4년 전에 당신에게 그렇게 고백했어야
했습니다." - P719

‘모든 것이 끝났다.‘ - P731

"난 미치요 씨를 사랑하고 있네."
"남의 아내를 사랑할 권리가 자네에게 있나?"
"어쩔 수 없어. 미치요 씨는 물론 자네 소유야.
하지만 물건이 아닌 인간이니까 마음까지
소유한다는 것은 누구라도 불가능하지. 본인 외에
그 어떤 사람도 애정의 정도나 대상을 명령할
수는 없지. 남편의 권리도 거기까진 아니야.
따라서 아내의 사랑이 다른 곳으로 옮아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오히려 남편의 의무가 아닐까?" - P837

이제 와서 적당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세속적인
형에게 동정을 받으려는 생각은 애당초 없었다.
그는 자신이 옳은 길을 선택했다는 자신이
있었다. 그는 그걸로 충분히 만족했다. 그
만족감을 이해해줄 사람은 미치요뿐이었다.
미치요 외에는 아버지도, 형도, 사회도, 세상
사람들도 모두 적이었다. 그들은 시뻘건 불꽃
속으로 두 사람을 밀어 넣어 태워 죽이려고 하고
있었다. 다이스케는 말없이 미치요를 부둥켜안고
그 불길이 자신을 빨리 태워 없애기를 간절히
바랐다 - P869

나중에는 세상이 전부 빨개졌다. 그리고
다이스케의 머릿속을 중심으로 불길을 내뿜으며
빙빙 회전했다. 다이스케는 머릿속이 다 타버릴
때까지 계속 전차를 타고 가기로 결심했다. - P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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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11-21 2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세키 옹의 <그후>는 명작 !^^

새파랑 2022-11-22 07:05   좋아요 0 | URL
아 오늘부터 <그 후>를 저의 소세키 원픽으로 ^^

레삭매냐 2022-11-25 1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세키 선생 책들을
이책저책 수집해 놓았는데
미처 읽지는 못하고 있네요.
참 내...

어디 그런 책들이 한둘이
아니긴 하지만요.

새파랑 2022-11-25 12:13   좋아요 1 | URL
<그후> 리뷰 쓰려고 하는데 아직 못썼네요 ㅋ 저는 이 책이 소세키 책중 가장 좋은것 같습니다~!!
 

최근에 읽은 희곡 중에서는 최고였다~!!




모욕은 되돌릴 수 없지만 친절은 되풀이할 수 있는 법이라, 한 번 모욕하는 것보다는 친절을 맘껏 베푸는 게 더 낫단 얘기죠. 그래서 난 아직 화를 내지 않고 있는 겁니다. 화를 내지 않을 시간도, 화를 낼 시간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시간이 다 지나고 나면, 나도 어쩌면 화를 낼지도 모르겠습니다. - P54

서로 마주친 두 남자에겐 원수처럼 폭력을 휘두르건, 부드럽게 우정을 표현하건 서로 치고받는 것 외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 시간의 황량한 사막에서 과거로부터건, 꿈으로부터건, 결핍으로 부터건 결국 여기 존재하지 않는 걸 들먹이기로 했다면, 그건 낯설음이 너무 커서 직접마주치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신비로움이 자기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도록 하려면, 이쪽에서도 모든 걸 열어젖히고 드러내야 하는 법입니다 - P62

추억이란 사람이 발가벗겨졌을 때조차도 꼭 지니고 있는 비밀 무기랍니다. 상대방 또한 어쩔 수 없이 솔직해지게 만드는 최후의 솔직함이죠. 정말 마지막 하나까지 다 벌거벗은 상태라고나 할까요. - P63

난 말이죠, 당신을 모욕할 생각도, 기쁘게 할 생각도 없습니다. 친절하게 굴거나, 못되게 굴거나, 때리거나, 얻어맞거나, 유혹하거나, 당신에게 유혹당하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난 그저 제로이고 싶습니다. - P68

정의할 수 없는 시공간인 이 시간과 이 장소의 끝없는 고독 속에서 우린 혼잡니다. 내가 여기서 당신을 만날 이유도, 당신이 나와 마주칠 이유도, 온정을 나누어야 할 이유도, 우리가 내세울 만한, 그리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해 줄 만한 적당한 수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단순하고, 외롭고, 오만한 제로가 됩시다 - P69

도대체 당신이 뭘 잃고, 내가 뭘 얻지 못했단 말인가요? 아무리 내 기억 속을 뒤져봐도, 난 아무것도 얻은 게 없습니다. 나도 기꺼이 물건 값을 지불하고 싶지만, 바람과 어둠, 우리 사이의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해
돈을 낼 수는 없는 일이죠. 만약 당신이 뭔가를 잃었다면, 그래서 당신의 재산이 나를 만나기 전보다 줄어들었다면, 우리 둘 모두에게서 사라진 그건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요? 어디 좀 보여주시죠. 아니, 난 아무것도 누린 게 없으니 아무것도 지불하지 않을 겁니다. - P71

손님을 조심하세요. 그는 뭔가를 찾는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다른 걸 원하고 있답니다. 장사꾼이 짐작도 못하는 그것을 그는 결국엔 얻어내고 말지요. - P77

사랑이란 없습니다. 사랑은 없어요. 아니, 당신은 이미 존재하는 건 아무것도 손에 넣을 수 없을겁니다. 인간은 죽은 다음에야 자신의 죽음을 찾아 헤매고, 하나의 빛으로부터 또 다른빛을 향해 이동하는 위험한 여정 중에 마침내 우연히 죽음을 만나게 되니까요. 그러곤 이렇게 말하죠. 결국 이것뿐이었다.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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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읽으니까 이해가 된다.






















내가 당신에게 다가가는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평소대로라면 인간과 짐승이 난폭하게 서로를 덮칠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난 이렇게 당신에게 다가갑니다.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손바닥을 당신에게 향한 채, 사려는
사람을 마주한 팔려는 사람의 겸손함으로, 욕망하는 사람을 마주한 소유한 사람의 겸손함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마치 황혼 녘에 건물 위의 창문에 불이 켜지는 것을 보듯, 나는 당신의 욕망을 봅니다. 황혼이 이 첫 번째 불빛에 부드럽고 공손하게, 그리고 다정스럽기까지 할 정도로 다가가듯, 저 아래 거리에서 인간과 짐승이 서로의 줄을 잡아당기고 거칠게 이빨을 드러내도록 내버려둔 채, 나는 당신에게 다가갑니다. - P10

똑같은 추위나 똑같은 더위, 혹은 똑같은 부드러운 뒤섞임이 지배하는 대지 위를 걷는 사람에게는 부당함이란 없겠지요. 그리고 다른 사람이나 다른 동물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모든 사람 혹은 동물은 서로 동등합니다. - P12

유일하게 존재하는 경계란 사는 자와 파는 자 사이의 경계뿐이지만, 이 둘의 욕망과 그 대상은 모두 들쑥날쑥하기에 그저 불확실할 뿐입니다. 그래도 인간이나 동물들 사이에서 암컷이나 수컷으로 구분되는 것보다는 덜 부당하지요. 내가 잠시 겸손함을 가장하고 당신에게 거만함을 건네주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당신과 내게 어쩔 수 없이 똑같이 주어진 이 시간에, 당신과 나를 구분하기 위해서란 말이지요. - P13

나의 욕망으로 말하자면, 내가 이런 황혼의 어둠 속에서, 꼬리조차도 보이지 않는 동물들이 으르렁거리는 이곳에서 기억해 낼 수 있는 욕망이 있기나 한 걸까요. 당신이 겸손함을 내던지고, 내게 거만함이라는 선물을 주지 않기를 바라는 확실한 욕망을 제외한다면 말입니다. 왜냐하면 난 거만함에 대해서는 일종의 약점을 갖고 있는 데다가, 겸손함은 내 것이건 남의 것이건 증오하기까지 하거든요. - P17

내가 원하는 것을 당신은 절대 가질 수 없을 겁니다 - P18

그리고 내가 출발한 지점에서 내가 가려는 지점까지를 이어주는 직선이 어떤 이유로도 갑자기 휘어질 이유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비켜선 이유는, 당신이 내 길을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 P23

내가 당신에게 베푸는 그리고 당신과 나를 이어주는 필요하긴 하지만 근거는 없는 이런 예의를 갖추는 까닭은 마치 장화로 기름종이를 뭉개버리듯 내가 당신을 거만하게 짓밟아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 P27

나는 하늘을 바라보면 회상에 젖고, 땅에 시선을 고정시키면 슬퍼집니다.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아쉬워하는 것과 그 무엇을 갖지조차 못했음을 회상하는 것은 모두 똑같이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 P28

모든 장사꾼들은 자신이 아직 알지 못하는 욕망까지도 만족시켜 주려고 애쓰는 반면, 손님들은 누군가가 자신에게 제안하는 것을 언제든지 거절할 수 있다는 데서 가장 큰 만족감을 느끼곤 하니까요. 그가 밝히지 않은 욕망은 이렇듯 거절에 의해 더욱 고무되고, 장사꾼을 모욕하는 데서 느끼는 쾌감 때문에 자신의 욕망을 잊게 되는 것입니다. - P36

내가 여기 있는 건 욕망의 심연을 메우고, 욕망을 일깨우고, 거기에 이름을 붙여 지상으로 끌어내기 위해서니까요. - P37

모든 인간이나 짐승들이 두려워하는 건 고통이 아닙니다. 고통은 측정할 수 있고, 고통을 가하고 참아내는 능력 또한 측정 가능한 것이니까요. 인간과 짐승이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건 고통의 낯설음이고, 그 익숙지 않은 고통을 감내해야만 한다는 사실입니다. - P38

사람이란 스스로 견딜 수 있는 고통만을 가하고, 또 자신이 가할 수 없는 고통만을 두려워하는 법이니까요. - P39

이곳에 익숙한 사람은 바로 당신이고 나는 여기서 이방인일 뿐입니다. 두려워하고 있는 사람도 나고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사람도 나지요. 난 당신을 알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고 다만 어둠 속에 있는 당신의 모습을 추측할 뿐입니다. 뭔가를 알아맞히고 이름 붙여야 할 사람은 당신입니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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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11-18 2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가수 하현우가 좋아하는 작품 인뎅 ㅎㅎㅎ

새파랑님 두번 완독 👍👍👍

새파랑 2022-11-18 22:21   좋아요 1 | URL
제가 국카스텐을 완전 좋아라하는데, 이 사실은 몰랐습니다 ㅋ
 

그래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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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1-17 15: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1월 13일 당신은 현명해지기 전까진 늙지 말았어야 했어
와 맘에 들어요. 다른 말로 하면 그냥 지금처럼 맹하게 있으면 안 늙을수도 있다는????? ㅎㅎ
제게는 읽지 못할 그림의 떡인 읽시찾은 책이 왜 저다지도 예쁘답니까? 민음사 나빠요.

새파랑 2022-11-18 06:28   좋아요 0 | URL
old and wise 아닐까요? ㅋ 9권 읽고 나서 세달? 지나고 10권을 읽어서인지 내용이 잘 안이어지더라구요 ㅋ

책 표지는 정말 예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