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괜찮은 사람입니다
히가시다 나오키 지음, 김난주 옮김 / 흐름출판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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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증을 가진 사람을 직접 본 적은 없다. 주로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 본 것이 대부분이고, 예술작품은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진 허구라는 점에 비추어볼 때 실제 그들의 생각은 어떨지 궁금했다.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세상을 어떤 방식으로 바라보는지 알고 싶었다. 다소 평범한 제목으로 비추어진 얇은 책 『나는 괜찮은 사람입니다』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놀라웠다. '세계 20개국 출간, 아마존 베스트셀러, NHK,EBS 다큐멘터리 화제의 방영'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저자가 자폐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어떤 내용이 들어있는지 궁금해서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히가시다 나오키. 스물 세살의 자폐인이다. 7세에 자폐증 진단을 받은 중증 자폐성장애인으로 남과 대화하기 어려웠지만, 어머니의 헌신적인 도움 덕분에 글자판을 가리키며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인터뷰를 보면 이런 말이 있다. "나는 마치 고장 난 로봇 속에서 어떻게 조종하면 좋을지 몰라 쩔쩔매는 사람 같습니다."

히가시다 나오키 씨가 안고 있는 '자폐증'은 선천적인 뇌 기능 장애로 커뮤니케이션이나 일상생활에 갖가지 곤란을 일으킵니다. 자폐증 스펙트럼(자폐증과 그에 가까운 장애)은 '백 명에 한 명꼴로 존재한다'고 하는데, 그 증상이나 정도가 몹시 다양해서 일반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장애입니다. (37쪽)

프롤로그에 보면 자폐증에도 개인차가 있어서 모든 자폐인이 저자와 똑같지는 않다고 말한다. 정상인도 사실 마찬가지다. 사람마다 제각각 자신만의 감성이 있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다양한데 어찌 한 가지 특성으로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면서 자폐증을 가진 사람에 대해서는 그들의 감성이 비슷하리라고 짐작했던 나 자신의 편협한 시각을 이번 기회에 깨보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히가시다 나오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자폐를 가진 사람의 생각을 짐작해본다. 그의 말과 행동은 스스로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에게 시간과 기억은 어떤 의미인지 이렇게 전해들으니 짐작할 법하다.

시간은 지나가는 것입니다. 한정된 시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려면 지나간 시간까지 미래로 이을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합니다. 내게 기억이란 선이 아니라 점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10년 전의 기억이나 어제의 기억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실수를 했다는 것 자체는 기억해도, 언제 어떤 실수를 했으며 내가 그때 어떻게 했어야 옳았는지 기억이 이어지지 않습니다. (22쪽)

 

이 책에는 저자의 생각과 함께 인터뷰의 내용이 실려있다. 담백한 어조로 간촐하게 담아낸 언어인데, 읽는내내 가슴이 먹먹한 느낌이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자폐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짐작해보겠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살았으리라. 그들이 내는 소리는 소음이 아니라 소통을 위한 시도인데, 그렇다는 것을 짐작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식물, 하늘, 물, 저녁 해 등에 대해 언급하는 이야기에 몰두하며, 주변의 자연을 다시금 깊이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인터뷰를 보며 해외 강연까지 다녀온 부분에서는 마음이 한껏 성장했으리라 생각되었다. "나의 눈으로 세계를 보고 싶다는 마음이 강렬해졌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세계가 아주 작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앞으로는 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피부로 느낀 것을, 나의 언어로 바꾸어 글을 쓰고 싶습니다."(157쪽)

 

이 책을 읽으며 이해하고 공감하며 감동했다. 정상인이기에 느끼지 못하는 감성을 저자의 시각에서 일깨워보기도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의 마음이 나와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그들의 세계에 좀더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발판이 된다. 이 책을 보며 또다른 모습을 한 인간을 이해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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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느 별에서
정호승 지음 / 열림원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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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시인의 시「수선화에게」는 수선화가 필 무렵이면 해마다 떠올리며 곱씹어보게 되는 시이다. 시를 읽다보면 시인의 감수성이 부러워지면서도 행간을 읽는 재주가 없기에, 좀더 길고 상세하게 이야기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단번에 시적 감수성이 생기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에, 먼저 에세이를 통해 시인의 감성을 전해듣기로 했다. 요즘들어 시와 산문이 함께 들어있는 책이라든지 시인의 산문집 등 산문을 통해 시와 거리감을 좁히게 되었다. 이번에는 이 책 『우리가 어느 별에서』를 읽어보았다. 이 책은 정호승 시인의 에세이라는 점에서 궁금한 생각이 들어서 읽게 되었다.

 

책에도 운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저의 첫 산문집으로 19년 동안 몇 차례 개정판을 거듭해왔습니다. 1996년 『첫눈 오는 날 만나자』2001년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2003년 『위안』으로 발간되었다가 이제 다시 『우리가 어느 별에서』로 개정증보판을 내게 되었습니다. (작가의 말 中)

이번에 처음으로 출간된 책이 아니었다. 출판사를 달리하여 몇 차례 개정을 거듭하며 다시 탄생한 것이다. 말하자면 환생을 거듭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어떤 인연에서인지 이번 판형에서는 나와 만나게 되었다. 긴 세월을 돌고돌아 2015년 지구별에서 이책과 나의 만남이 성사된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인 『우리가 어느 별에서』는 가수 안치환이 노래로 만들어 부른 곡이 있어서 또렷하게 떠오른다. 제목을 볼 때부터 노래의 멜로디가 떠오르기에 산뜻한 음악처럼 다가온 책이다.

 

우리가 어느 별에서

 

우리가 어느 별에서 만났기에

이토록 서로 그리워하느냐

우리가 어느 별에서 그리워하였기에

이토록 서로 사랑하고 있느냐

 

사랑이 가난한 사람들이

등불을 들고 거리에 나가

풀은 시들고 꽃은 지는데

 

우리가 어느 별에서 헤어졌기에

이토록 서로 별빛마다 빛나느냐

우리가 어느 별에서 잠들었기에

이토록 새벽을 흔들어 깨우느냐

 

해 뜨기 전에

가장 추워하는 그대를 위하여

저문 바닷가에 홀로

사람의 모닥불을 피우는 그대를 위하여

 

나는 오늘밤 어느 별에서

떠나기 위하여 머물고 있느냐

어느 별의 새벽길을 걷기 위하여

마음의 칼날 아래 떨고 있느냐

 

이 책을 통해 이 시와 노래에 대한 뒷이야기를 보는 것이 흥미로웠다. 만남과 헤어짐을 통한 사랑의 시 「우리가 어느 별에서」는 시인이 30대 초반에 썼다고 한다. 이 시를 쓰면서 만남이 소중한 만큼 이별도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별을 통해 만남의 의미와 가치를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이 시는 가수 안치환이 1993년에 노래로 만들었다. '우리가 어느 별에서 만났기에 이토록 애타게 그리워하는가. 우리가 어느 별에서 그리워했기에 이토록 아름답게 사랑할 수 있나'로 시작되는 축가는 가사가 조금 수정되었고, 결혼식 축가로 많이 불렸는데, 물론 결혼식 축가로 종종 부르다보니 신부나 신랑 중 한 명은 꼭 눈물을 흘려 고민 끝에 더이상 부르지 않았다고 한다. 애달픈 목소리와 애잔한 멜로디가 떠올라 서평을 쓰는 지금, 마음이 떨려온다. 시를 음미하며 감상하니 더더욱 감성을 일깨우게 된다.

 

이 책은 총 4부로 나뉜다. 1부 '십자가를 품고 가자', 2부 '꽃에게 위안받다', 3부 '우리는 언제 외로운가', 4부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이렇게 4부에 담긴 산문을 읽다보면 그의 성향이나 마음가짐 등을 엿볼 수 있다. 시적 세계와 산문의 세계가 다르다지만, 글을 통해 정호승이라는 시인을 좀더 알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그가 사는 세상을 엿보는 기분이다. 그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이다.

 

시를 읽는 것과 비교해보면 산문은 느낌이 다르다. 그의 시가 '꽃'이라면 그의 산문은 '씨앗'이다. '꽃과 잎은 씨앗에서 비롯된다. 씨앗은 생명의 근원이며 본질이다. 분명히 씨앗이라는 열매 속에는 꽃과 잎과, 그 꽃과 잎의 아름다움과 향기로움이 숨어 있다.'(339쪽)는 글을 보다보니, 정호승의 시와 산문의 세계가 서로 얽혀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으나 겉으로 나타나는 모습은 다르고 그에 따른 감상도 달라진다. 꽃을 보는 것과 씨앗을 보는 것은 분명 느낌이 다르다. 이 책에는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고 잡초를 뽑아주는 등 정성껏 키우는 모든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꽃에 매료된 사람에게는 제반과정이 꾹꾹 눌려 담겨있다는 것이 아쉬울 수도 있는 부분이다.

 

그의 글을 읽고나니 맨 앞에 쓰인 피에르 신부의 말이 눈에 들어온다. 책을 읽으며 삶을 바라보게 되고, 사랑이라는 종착으로 귀결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삶은 사랑이다.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한 자유 시간을 우리 모두 얻게 되었다. 이 책에서 보게 되는 것도 결국은 사랑이다. 기나긴 여정의 끝은 사랑이고 결국 시작도 사랑이었음을 조금이나마 느껴본다.

삶이란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한 얼마간의 자유 시간이다. -피에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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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노트 - 알고 싶은 클래식 듣고 싶은 클래식
진회숙 지음 / 샘터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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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을 책으로 읽을 때면 직접 듣는 것은 뒤로 미루곤 했다. 막연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음표들은 그 음악인지 다른 음악인지 판단이 되지 않았지만, 찾아보기 귀찮기도 하고 다음 글이 궁금하기도 하여 미루다가 잊곤 했다. 이 책 『클래식 노트』를 읽으며 QR코드를 삽입한 것을 보고 나같은 독자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궁금할 때 바로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최대의 장점이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궁금증을 바로바로 해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세상이 참 좋아졌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 책의 저자는 진회숙. 음악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다. 대중을 대상으로 클래식 음악을 강의하고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이 장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클래식 음악을 잘 이해하려면 클래식 음악에 대해 애정과 시간을 들여 공부해야한다. '아는 만큼 들린다'라는 말은 진리이다. 세상 모든 분야가 다 그렇듯이 클래식 음악 역시 공부하면 할수록 더 많이 들리고, 그럴수록 더 많이 사랑하게 된다. (4쪽_서문 中)

듣자마자 바로 귀에 착 달라붙는, 대중음악같은 클래식 음악도 있지만 제대로 이해하려면 성실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공부하고 탐구해야한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서문을 보니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게 된다. 음악이 본질로 다루어져야 하는데, 작곡가에 대한 에피소드와 필자의 느낌만을 다루는 그런 책들이 주류를 이루기에 클래식 음악에 대해 변죽만 울리다가 거리감을 느끼는 것일 수도 있겠다.

 

이 책의 첫느낌은 다소 낯설었다. 하지만 작곡가에 대한 에피소드 위주의 지식이 더 많이 남아있던 나에게 '음악'이라는 부분을 채워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클래식 노트 부분에서 QR코드로 제공되는 음악을 들어가며 천천히 음미해보는 시간도 책을 한껏 풍요롭게 이용하는 도구가 되었다. 읽는 시간보다 듣는 시간이 더 많이 드는 책이다. 그러면서도 잘 모르던 이야기를 알게 되기에 지적호기심을 충전시켜준다. 다소 낯설고 딱딱하리라는 선입견이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와르르 무너지게 된다.

 

이 책에는 6개의 노트가 소개된다. Note 1 '클래식 음악사 그리고 작곡가들'에서는 서양음악사에서 시대 구분을 시작으로 바로크음악의 '바로크'는 무슨 뜻인지, 인상주의 음악가는 누가 있는지 등에 대해 알려준다. Note 2 '클래식 악기와 오케스트라'에서는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과르네리, 오케스트라에 반드시 지휘자가 필요할까, 팀파니스트가 한가하다는 오해 등을 다룬다. 일반 대중으로서 궁금해하던 이야기를 소개해주니 눈이 번쩍 뜨이는 즐거움이 있다. Note 3 '클래식 음악이론 노트'에서는 음악이론에 대해 훑어주고, Note 4 '클래식 악곡노트'에서는 미사곡과 레퀴엠의 차이, 변주곡의 묘미, 협주곡 등을 다룬다. Note 5 '클래식 음악 상식 노트'에서는 작품 번호의 비밀, 알아두면 편리한 음악 용어 등 알면 상식이 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Note 6 '오페라가 여는 세상'에서는 잘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잘 모르고 있던 오페라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클래식 음악 이론과 상식에 대해 다루는 부분이 특히 유익했다. 이 책을 읽음으로 지식을 채우고 호기심을 충족하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음악을 듣고 책을 읽어나가며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었다. 클래식 특강을 들은 듯한 느낌이 들었고, 다른 이에게도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기대 이상의 즐거움이 있었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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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공부벌레들의 좌우명 - 고전 속 지식인들의 마음 지키기
박수밀 지음, 강병인 서체 / 샘터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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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옛날에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현대의 삶에서 편리하게 누리고 있는 것들이 없다는 것은 조금 불편할 것이다. 치통이 있을 때에 치과 한 번 다녀오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을 몇날 며칠을 앓기만 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멀리 떨어져있어도 전화 한 통화면 해결될 일을 말을 타거나 하염없이 걸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답답하기만 하다. 그래도 옛날 선비들의 단촐한 살림살이와 깔끔한 책상머리는 부럽다. 그저 살아가는 걱정 없이 경서 읽기에만 몰입할 수 있었으니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것은 삶의 겉모습만을 생각한 것일테다. 좀더 깊숙이 들어가 내면의 문제를 생각해보면, 어떤 좌우명을 가지고 어떤 마음 가짐으로 살았을지에 대해 궁금해진다. 이 책이 그런 궁금증을 한데 모아 해결해준다.

 

이 책은 옛 지식인의 삶을 이끈 한마디 문장과 그 문장을 오롯하게 드러내 주는 인생의 아름다운 국면을 이야기한 것이다. 누군가에 대해 말할 때 사람의 면면을 일일이 기억하고 그 삶 전체를 오롯하게 말하기란 정말 어렵다. 아니, 평면적으로 나열하는 것은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말과 같다. 도리어 그 사람을 말해 주는 단 하나의 문장, 하나의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때가 있다. 좌우명은 그 사람의 일생을 요약해서 말해 주는 인생 자체가 아니던가? (9쪽)

 

이 책에는 이순신, 이이, 허균, 김득신, 이익, 박지원 등의 좌우명이 담겨있다. 월간 <샘터>에 '옛 공부벌레들의 좌우명'으로 연재된 글과 영묵 강병인의 멋글씨(캘리그래피)가 어우러져 눈길을 사로잡는다. 순서대로 읽어도 좋고, 그저 술술 넘기다가 마음이 잡아끄는 문장 앞에서 한참을 머물러도 좋을 것이다. 단순히 좌우명만 나열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인생과 삶의 태도가 드러난다. 이 책을 읽으며 좌우명에 담긴 그들의 인생을 바라본다.

 

이 책을 보다보니 저자가 어떤 부분을 덜어내야할지 고민을 많이했으리라 짐작된다. 평소에 좋아하고 관심 가졌던 김시습, 이익, 홍대용,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이옥, 홍길주 등도 막상 삶을 이끈 한마디 말을 고르려니 난감했다(10쪽)는 저자의 고민을 백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수많은 고민과 핵심을 잡아내는 노력으로 이 책이 탄생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렇기에 이 책에 담긴 내용이 더욱 빛날 수 있었으리라 본다.

 

처음에는 단순히 좌우명이 궁금해서 한 번 읽게 된다. 멋글씨와 좌우명에서 남다른 힘을 느끼기도 하고, 왜 그 말을 좌우명으로 삼았을지 궁금해진다. 그 다음에는 옛사람들의 삶을 이끈 문장의 배경이 궁금했고, 인물 됨됨이까지 상세하게 살펴보게 된다. 눈에 띈 좌우명을 먼저 찾아서 읽으며 그 저변에 깔린 옛사람들의 삶을 읽어나가게 된다. 마지막으로는 혹시라도 놓쳤을지도 모를 보물을 건져올리는 시간을 갖는다. 남명 조식의 《남명집》중 <좌우명>을 자꾸 곱씹어보게 된다. 멋글씨에도 굳건한 힘이 들어가있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다. 조식은 배운 것은 반드시 실천하는 행동가이다. 조식이 61세 되던 해, 지리산 덕천동에 들어가 산천재를 짓고 그 방에 좌우명을 내걸었다. 그 좌우명이 바로 이 글이다.

"항상 미덥고 삼가며 사악함을 물리치고 참됨을 보존하리. 산처럼 우뚝하고 못처럼 깊으면 봄날의 꽃처럼 환히 빛나리라."

이렇게 접하게 되니 좌우명에 대한 전후 이야기와 그 사람의 됨됨이까지 한 번에 살펴볼 수 있어서 의미 있다.

 

별다른 생각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좌우명이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큰 틀에서 볼 때 삶의 진행 방향을 잡아주는 금귀이고, 인생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 될 것이다. 옛사람들의 좌우명을 찬찬히 살펴보고 나니 나의 인생을 이끌어줄 좌우명이 어떤 것이 있을지, 내 인생을 담아낼 문장을 무엇으로 할지 생각에 잠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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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아내가 있다 - 세상에 내 편인 오직 한 사람, 마녀 아내에게 바치는 시인 남편의 미련한 고백
전윤호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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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에게 아내는 어떤 존재일까. 시인의 아내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시 속에 남몰래 사랑을 넣어 자기들만의 암호로 표시하기도 할 것이고, 일상 속에서 투덜거림을 예술로 승화시켜 표현하기도 할 것이다. 막연히 그들의 삶을 짐작할 뿐 속속들이 들어본 적은 없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투닥투닥 소소한 일상을 보며 그들의 생각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삶과 사랑이 적절히 버무려져 맛깔나는 인생을 만들어 한 권의 책에 담았다. 거기에는 신맛, 쓴맛, 단맛, 짠맛 모두 들어있다. 그런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이 책은 시인 전윤호의 에세이다. 시와 함께 소소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요즘은 이렇게 시와 에세이를 병행한 책이 많이 출간되고 있다. 한 권의 책에서 시와 에세이를 함께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시집으로는 『이제 아내는 날 사랑하지 않는다』『순수의 시대』『연애소설』『늦은 인사』가 있다. 이 책은 저자의 시 중 아내에 대해 쓴 시들을 모아, 각 작품마다 저자의 애잔하고 애틋한 마음을 소소하게 덧붙인 아내에게 전하는 고백헌사이다. (책날개 中)

'이제 아내는 날 사랑하지 않는다' 제목이 다소 위험하다. 편집을 맡았던 친구가 굳이 그 제목으로 가자고 해서 하는 수 없이 동의했다는데, 역시나 책이 나오고 나서 후회를 많이 할 법하다. 일단 시집을 받은 장모님의 눈매가 심상치 않았고, 사람들은 무슨 제목이 그러냐고 놀려댔다고 한다. 시적 현실과 현실을 혼동해선 안 된다고 아내에게 신신당부했지만 속이 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후회가 있어서였을까. 이번 책은 제목에서 아내의 미소가 느껴진다. 믿음과 사랑을 오롯이 보여주는 제목이라고 느껴진다. 저자는 아내가 이 책을 결혼 이십 주년 기념으로 세계일주 크루즈 여행 선물을 받는 것보다 값진 것으로 여겨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책을 읽어보니 시인 남편이 이런 선물을 준다면 그동안 서운하고 아쉬웠던 마음이 눈녹듯 녹아내렸을 것 같다. 이 책에서 그들의 인생을 본다. 지금까지 아이를 키워가며 살아온 그들의 역사가 눈앞에 펼쳐지듯 그려진다. 농담도 진담도 삶의 소리로 다가온다. 심하게 아프고 나서 아내가 곁에서 금강경을 쓰는 모습을 담은 「금강경 읽는 밤」은 시인의 마음을 살짝 엿볼 수 있어서 뇌리에 남는다.

 

시와 에세이를 통해 읽게 되는 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일'이다. 우리의 삶은 예술이고 수행이다. 요중선이라고 했다. 고요한 암자에서 수행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시끄러운 시장바닥에서 선을 행하는 것은 최고의 경지에 이르러야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 자체가 참선에 이르는 것이고, 삶을 살아냄으로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이 책을 통해 그들의 삶에서 수행자의 모습을 본다. 또한 그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며 여과없는 순수함을 본다. 담백한 일상에서 느껴지는 소소함이 행복이다. 이 책에는 알리고 싶지 않은 일상일 수도 있는 부분까지 담아냈다. 아내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믿음이 밑바탕이 되어 있기에 가능하리라 본다. 이 책 속에 담긴 그들의 일상은 사랑의 다양한 모습이었다. 제목보다 내용이 마음에 들고, 내용을 보니 그들의 일상이 궁금해진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 다른 탈을 쓴 비슷한 모습이라는 생각을 하며 책 속의 시를 다시 한 번 음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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