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 바다 창비시선 403
도종환 지음 / 창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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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동짓달부터 이른 추위가 찾아오고

소설 (小雪)에도 눈이 많이 오리란 걸 미리 알았는지

은행나무는 일찍 잎을 내렸다

지금은 화장기 없는 얼굴로 소조하게 서 있는 은행나무

를 나는

이 골짜기에 들어오고 난 몇해 뒤 늦봄에 만났다

푸르고 풋풋한 이파리를 내게 보여줄 때

이 나무가 그토록 찬란한 내면을 지니고 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가을이면 이 나무의 미학에 경배하곤 했다

여러해가 지나고 다시 대처를 오가며

여기저기서 더 크고 수려한 나무를 볼 수 있었고

도감에 번듯하게 실린 나무도 만났다

내가 좋아한 은행나무가 가장 멋진 나무가 아니라

여러 나무 중의 한 나무인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 은행나무는 자기 생의 여름에서

가을로 옮겨가고 있었다

간절기에는 표피의 색깔도 회색빛이 많아지고

살갗에 실금이 그어지고 있는 것도 보였다

그래도 나는 이 나무를 좋아한다

그늘을 만들어주며 등을 기댄 날들 때문일까

열매를 만들고 그 열매를 버려야 했던 순간 때문일까

늦봄에서 여름까지 여름에서 초가을까지

함께 오는 동안 그 많은 바람을 다 맞은 때문일까

함께 물들어온 시간이 우리 생의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음을

나는 겨울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조용한 숙려의 계절을 앞에 놓고서야

정이 든다는 것이 사랑이라는 과실 (果實) 의

과육과 같은 것임을 알게 되었다

 

ㅡ본문 22 / 23 쪽에서 ㅡ

도종환 : 사월바다 중 ㅡ 은행나무 .

 


 

한해가 이렇게 이울었다는 걸 시집 속에서 발견한다 .

말 그대로 발견이다 . 이제야 제대로 보이는데 그마저도 기억 속의 추억

그에 불과한 , 살아있는 채로는 미처 알지 못한 부분 .

나 만큼 주윌 돌아 볼 새 없던 시인인지 끝맺음 말이 과거형임을 본다 .

돌아본 기억 속의 나무들과 방금 지나온 나무들이 기억이 혼재한 듯한

 

지난 가을의 날 , 서울의 거리에서 눈처럼 날리는 은행나뭇잎을 보고

아이처럼 좋아했던 것을 기억해낸다 .

겨울이 한참 다가오는 근린공원의 산책로를 온통 노랗게 물들인 것들도

슬쩍 먼 타인 처럼 지나가며 돌아보던 ,  은행잎 융단 위를 소리없이

걷던 고양이 한마리 ,

마치 그 돌아봄이 지금의 내가 추억을 돌아보는 듯 찰나이다

 

바람 속에서 뒹구는 낙엽에 은행의 기억은 몇조각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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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4 16: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6-11-24 17:52   좋아요 1 | URL
ㅎㅎㅎ그래도 포스팅은 하시던데요? 대독해주는 따님도있으시고요?^^ 그럴때가 있죠 . 요즘은 다들 정신 없지 싶어요 . 나라가 혼란스럽잖아요. 저도 뉴스보느라 훌쩍시간이 가 있곤해요 .. ^^ 곧 원래 하던 습관이 어디 간데 없다는듯 자릴 찾을텐데 뭘 걱정이세요~?

jjinyyeop_n 2016-11-25 16: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 해는 은행나무가 저도 유난히 새롭게 보였습니다. 은행때문에 은행나무를 단풍나무로 교체한다는 뉴스 때문이었나 스스로 반문하면서 은행나무를 더욱 유심히 관찰 한 이번 가을이었더랬죠. 작년보다 은행이 덜 떨어진다는 생각과, 길에 은항나무들이 큰 걸 보면서 이 나무들이 적어도 여기 온 지 십년은 되었겠구나 라는 생각과 어떻게 한 주가 다르게 무성하게 노랗던 잎들이 주말과 동시에 떨어지는지. 계절을 거스를 수 없다고는 하지만 이런 계절이 참 무섭다 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런 가을을 보낸 올 해 이 시가 참 와닿네요.

[그장소] 2016-11-26 07:20   좋아요 1 | URL
단풍으로 대신한다고요? 정취마저 빼앗기겠네요.. 누구 생각인지.. 은행이 나는 곳도 한정되 있을텐데 ... 물론 그 냄새야 골치는 아플테지만 .. 이젠 과실로 먹지도 못한다 이거군요 .. 공기를 더 정화할 방법을 찾지않고 참 이상한 방법예요 .
아 ,, 어느 시였나 누군가의 이야기였나 보니.. 모든 계절이 가는것만은 아니더라고요 . 겨울하면 그 겨울에 이미 봄이 와있는거라고 . 지나야 온다 생각했는데 우와~ 내포함의 계절이란 얘기에 견딤이 더 괜찮아지는 기분 ~^^

이 시집 좋아요~ 한번 보셔도 좋겠어요. 말의 맛이 있어서... 착 감겨요.^^
 

베토벤 템페스트 피아노 소나타 3악장

11월에 듣는 베토벤 ㅡ 폭풍 3악장으로 유명한데
제 개인적으로 오늘 이전엔 2악장을 더 좋아했던 부분
우연히 3악장을 듣게된게 이유인지 몰라도 역시 ,
괜히 유명한게 아니구나 싶었어요 .
폭풍 속으로 하면 어떤 계절이 떠오르는지 ?
여름의 장마 끝에 서비스보다 쎈 태풍의 시기일까요?
저는 어쩐지 낮게 우울이 드리워지 유럽을 연상해서인지
짙은 회색빛의 11월 , 밝고 따듯한 날들이다 돌연 하강한 기온차로
발생한 돌풍같은 이미지의 11월 유럽의 정원 과 거리가
막연하게 그려지거든요 . 길게 며칠씩 이어지진 않는 ,
단속적 비를 품은 수상한 바람이 그 끝에 급작스런 추위를
몰고와 나른한 감기에 빠뜨릴 것만 같습니다 .
뜨겁게 와인을 끓여 열을 열로 다스리는 것까지 디저트처럼
상상하는 중 입니다 .

여러 곡의 3악장을 찾아봤는데 , 정작 찾고자한 버전은 없어서
아쉬웠어요 . 에밀길레스나 알프레드브렌델의 3악장도 있었으면
정말 귀가 호강에 겨워 했을텐데요 .

유일하게 찾은 여성주자의 발렌티나 리시차는 가라앉은 듯
실내에서 느끼는 폭풍
소콜로프는 차고 맑은 소리가 한방울 한방울 떨어지는 느낌의
소나기끝 같았고요 .
켐프의 연주는 모노톤이라 거리에서 감상하는 듣한 기분의
폭풍
굴드의 연주는 보는 것 자체로 음을 끌어 올렸다 내렸다 하는
마술 , 주술에 가까운 폭풍 ㅡ누군가 돌풍을 불러내려한 것처럼
느껴지는 연주였어요 .
바렌보임 ㅡ 듣는 중에 소름이 몇 번 왔다 갔어요 .
괜히 빈 필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아닌것 같은 , 역시
폭풍을 지휘하는 기분. 엄청 깨끗한 정제를 느끼게되는!


마지막 백건우의 폭풍을 젤 먼저 만나고 여러 차레 들었는데
역시 국토가 작은 탓인지 전곡을 다 느끼기 전에 아쉽게 끝이나서
굉장히 몰아치며 거친 짧은 , 그런 폭풍 속에 있다 나온 기분 였네요.

순전히 제 방식으로 듣는 막귀의 고전음악 감상법이니 태클은 사양~
다음 어떤날 다르게 3악장을 불러낼 지 또, 모르죠 .
그런데 오늘의 기분은 지금 딱 , 듣기 좋다 싶습니다.


ㅡ백건우
https://youtu.be/I1FP64mMjuI

ㅡ 발렌티나 리시차
https://youtu.be/dNhZGdLnMuI

ㅡ 그레고리 소콜로프
https://youtu.be/NfciSCzKvp4

ㅡ빌헬름 켐프
https://youtu.be/RyCmm7m2mwo

ㅡ굴렌 굴드 <전곡 중 12:40‘ 부터 3악장>
https://youtu.be/c7zwcTYFgBw

ㅡ다니엘 바렌보임 < 전곡 중 18 : 07‘ 부터 3악장>
https://youtu.be/tiJjoFQtM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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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6-11-24 13: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tempest 3악장은 제 휴대폰 벨소리이기도 하지요. 그럼에도 그장소님처럼 연주자 별로 비교해서 들어본적은 없네요 ^^

[그장소] 2016-11-24 13:47   좋아요 0 | URL
아 ~ 정말요? 전 일년 전에 스마트 폰 쓰기전 폴더 폰 벨소리가 그거였어요 . 2악장을 못 구해서 3악장 이요!^^ 오전 내내 들었어요 . 아주 일찍 부터 6시간 은 넘게 반복 듣기 했나봐요 . 그런데 전부 색깔이 다 달라요! 신기하게!^^ 즐거운생활 ~!^^ㅋ

책읽는나무 2016-11-24 22: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확실히 다른 느낌이네요?
같은 곡인데요
잘 듣고 갑니다^^
저는 잠들기전 자장가로 듣고 자야겠어요!!

[그장소] 2016-11-24 22:44   좋아요 1 | URL
네네~ 얼마든지 ~ 자장가로 청해들으셔요! 저도 종일 듣고도 안질려요 ~
댓글까지 넘 감사해요!^^
 

* 내가 뽑은 올해의 책 *

ㅡ 권여선 : 안녕 ,주정뱅이 ( 창비)
ㅡ 다자이 오사무 : 사양 ( 창비)
ㅡ 한 강 : 채식주의자 ( 창비-2016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
ㅡ 김중혁 : 나는 농담이다 ( 민음사)
ㅡ 조남주 : 82년생 김지영 ( 민음사)
ㅡ 전석순 : 거의모든 거짓말 ( 민음사)
ㅡ 2016 제 7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 ( 문학동네)
ㅡ 이 유 : 소각의 여왕 ( 문학동네)
ㅡ 미야베 미유키 : 음의 방정식 ( 문학동네)
ㅡ 편혜영 : 홀 ( 문지사)
ㅡ 김경욱 : 개와 늑대의 시간 ( 문지사)
ㅡ 최은미 : 목련정전 ( 문지사 )
ㅡ 조영주 : 붉은 소파 ( 해냄 )
ㅡ 박연주 : 여름 , 어디선가 시체가 ( 놀)
ㅡ 정유정 : 종의 기원 ( 은행나무 )
ㅡ 응구기와 티옹오 : 한 톨의 밀알 ( 은행나무 )
ㅡ 2016 현대문학상 수상작품집 : 베를린 필 - 김채원 ( 현대문학)
ㅡ 2016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 천국의 문 - 김경욱 ( 문학사상)
ㅡ 2016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 산책자의 행복 - 조해진 ( 생각정거장)
ㅡ 제 15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 눈 한송이가 녹는 동안- 한강 ( 문예중앙)
ㅡ 제 21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 누운배 - 이혁진 ( 한겨레출판)
ㅡ 2016 제 10회 김유정 문학상 : 거기 있나요 - 박형서 ( 은행나무)
ㅡ 김탁환 : 거짓말이다 ( 북스피어)
ㅡ 마쓰모토 세이초 : 범죄자의 탄생 ( 북스피어)
ㅡ 미야베 미유키 : 사라진 왕국의 성 ( 북스피어)
ㅡ 장강명 : 댓글부대 ( 은행나무 - 민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ㅡ 베르나르 베르베르 : 제 3 인류 ( 열린책들)
ㅡ 이기호 :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 마음산책)
ㅡ 사노 요코 : 사는게 뭐라고 ( 마음산책 )
ㅡ 에도가와 란포 : 에도가와 란포 결정판 1 , 2 ( 검은 숲)
ㅡ 구병모 : 한 스푼의 시간 ( 예담)
ㅡ EBS 지식탐험 링크 ( 예담)





너무 많은가요? 연말 결산을 하자니 , 일년간 오래 두고 본 책들을
대충 추리게 되는것 같아요 .
올 해의 출간 책들을 가능하면 뽑아보려고 한거고 , 구간도서들은
넣지 못해 아쉬웠어요 .
꼽으면 더 더 많을건데 ... 어쩐지 약간 아쉬워야 리스트 같은 면이
있지 싶어서 여기까지만 합니다 .

올 한해의 수확 ㅡ책읽는 당 을 하면서 , 민음 북클럽보단 좀더 밀도있는
책 읽기를 하게 된것 같다 ㅡ정도!
민음 북클럽 ㅡ 가입비 없는 참여형 클럽이면 더 좋을 것 같은데 이건 좀
무리일까요? 자기 책 사서 읽는데 가입비 까지 ... 차별성도 좋지만 어쩐
지 전 좀 반감이 들어서요 . ㅎㅎㅎ
둘다 참여형인데 , 말이죠 ..
서평 책들이 갈 수록 가제본으로 나오는 부분 ㅡ 이것도 조금 아쉬워요 .
서평 ㅡ내켜서 기꺼이 읽는 부분이지만 , 신간을 먼저 본다는 기쁨과 판
매 책과 동일한 것이란 점이 메리트였던 것도 같은데 , 제가 너무 날도둑 심보일까요? ㅎㅎㅎ 그저 그렇단 것 입니다 .
책장에서 가제본은 더욱 튈테니까 ... 아쉬움으로요 .

이런 저런 북카페에 가입되어 있지만 참여도를 높이는 부분은 디테일에
있지 합니다 . 사소한 디테일 말이죠 .

더 리스트 를 작성하고 픈 맘을 꾹 꾹 눌러 잡으며 ..이 후에 아! 빼먹었어
하는 것이 나올까 겁나요 .

이른 올해의 책 ㅡ 정리 한번 어떠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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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6-11-23 17: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한국소설 많이 읽으셨군요. 저도 읽은 책이 있어 반갑네요. 아, 읽은 책 목록을 정리해뒀어야 하는 건데...가제본 책은 어떻게 생긴 건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장소님에게 알찬 읽기의 한 해가 된 듯합니다.^^

[그장소] 2016-11-23 18:07   좋아요 0 | URL
쓰고나니 국외 저자의 책보단 늘 , 그렇듯 국내 저작이 더 많네요 . 국외작은 시리즈나 그런게 아니어서 단발성 인 경우가 많아 소장하면서 정리가 불편해 그런것도 같아요 .
디자인 차체가 통일성 ㅡ이 출판사 라인 ㅡ하는 흐름이 되기만 해도 얼른 먼저 보게될텐데 .. ㅎㅎㅎ 보시면 알겠지만 대게 수상작 들 위주라 컬랙션이 되는 책들이 많아요 . ㅠㅠ 부끄럽네요 . 뭐 , 개인의 취향이니 ... 하고 저 혼자 자족합니다..ㅎㅎㅎ
읽은 책이 있다고하시니 저도 기쁘네요~^^

cyrus 2016-11-23 21: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입비가 부담스럽지만, 출판사가 좋은 책을 만들 수 있도록 작은 보탬이 될 수 있다면 그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가입비도 후원금의 일종입니다. 그러므로 독자 회원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출판사는 열일해야 합니다. 편집, 번역에 문제 있는 책을 만들면 독자들은 비판해야하고, 출판사는 그 비판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

[그장소] 2016-11-23 22:06   좋아요 0 | URL
ㅎㅎㅎ 좀 더 여유가 있었다면 사실 그리 큰 액수가 아닌 만큼 , 기쁘게 cyrus님 처럼 생각 했을건데 , 아쉽게도 ^^;;
책의 질과 무관한 ㅡ 많은 참여 독자들을 관리하는 것만으로 , 또 상품에 너무 몰입해 차별을 주려는 생각이라면 저는 반갑지가 않아서요 .
민음이 작은 규모의 회사도 아니고요 .
엽서 몇장 , 편지지 한셋트 이런 것도 책의 문구하나 넣는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어뵈는데 ..
제 생각일 뿐 다른분들은 왜 가입비 안올리느냐고도 하더라고요 . 그게 일종의 vvip 마케팅 같은거라면서 받아들이면 전 싫어요 .
가입비가 책의 어딘가로 쓰일법 하지 않고요 .
가입비는 가입비 명목이니까 ㅡ 해당 상품에 따른 해택을 위한 거란 생각이거든요 .
그게 번역의 질과 얼마나 관계가될지 ㅡ 모르겠어요 . 원래 좋아야 하는거잖아요 . 좋은 책을 만드는 회사라면 ... 당연히 해야할 것과 이것과는 좀 다른 차원의 일같아요 .
예민한 반응인지 모르겠지만요 . ㅎㅎㅎ
뭐 , Cyrus 님께 만 하는 말이 아니니 부디 언짢으시진 않았음 합니다 .^^
후원은 ㅡ 책을 볼 수 없는 곳에 더 하고 싶네요 .
저라면요 ..
 
다행히 졸업 - 소설가 8인의 학교 연대기
장강명 외 지음 / 창비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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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졸업 : 나 , 선도부장이야 : 김상현 작가 편 ,

 

   나는 교사들 사이에 오가는 알력을 늘 주시하고 있었다 .

그래서 차기철이 오현석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고 있었

다 .촌지를 받지 않고 , 어려운 학생이 비행을 저지르면 우선

감싸려고 드는 오현석은 차기철에게 눈엣가시였다 . 내 보고

서는 그런 차기철의 마음에 쏙 들 수 밖에 없었다 .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업무일 뿐이었다 . 선도

부장의 업무 . 이 업무의 결과로 오현석이 해직을 당하거나

하는 일은 없을 거다 .

 

   교사를 파면하는 건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 최종적으

로는 문교부 장관의 결제까지 나야하는 큰일이다 . 그런데

교원노조원도 아닌 그냥 평범한 교사를 파면하는 일이 , 고

작 이런 보고서 한장으로 일어날 수는 없다 . 게다가 오현석

은 졸업하자마자 실력을 인정받아서 바로 8학군으로 온 엘

리트 교사다 .

 

ㅡ본문 394 /395 쪽에서 ㅡ

 

 

고작 일개 선도부장이 작성한 보고서 한장은 그가 받은 담보금 100 만원의 가치를 훌쩍 뛰어 넘는 일이 되었다 .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 머릴 쓴일은 그렇듯 누군가 간절히 바란 냥 이뤄지고 말고 , 일이 그지경이 되서도 그저 한 사람의 일생에 어떤 영향을 미친 일이 된 건지 느낄 새도없이 죄책감따윈 멀리 던지고 기껏 한다는 말이 "나 , 선도부장이야 . " 라니 ......

선도부장이 하는 일이 이런 알력 다툼에 도움을 주는 일이구나 , 새삼 배운다 . 참나, 세상 좋구나 해야할까 . 내용은 마치 말죽거리 잔혹사에나 나올 법한 고교시절 같다 . 우리 때는  어린 그저 학생놀이나 했구나 싶은게 , 저 시절엔 어른같은 모습이 엿보이니  세대차를 이렇게 알게도 한다 .

 

하기야 내 어린 맘에 고교생 언니 , 오빠들은 어른이었다 . 학생이 아니고 . 한 집안을 대표하는 그 집의 특징같은 것이기도 했으니 어른이지 , 애가 아니고 ...

 

지금의 학생은 그런 어른 흉내나 내는 것에도 못 미친다 . 그렇다고 세상이 더 뛰어나게 좋아진 것도 없는데 이 차이를 어디서 어떻게 극복해야할지 모르겠다 . 교육이 왜 위대하고 중요한가를 다시금 생각케하는 지점에 이 책을 읽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

 

아니면 이미 다행히 졸업한 세대라는 것을 만족적으로 자족해야하는 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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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졸업 - 소설가 8인의 학교 연대기
장강명 외 지음 / 창비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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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졸업 : 11월 3 일은 학생의 날 입니다 ㅡ김보영 작가 편 ,

 

" 절차만 잘 지키면 아무 일 없어 . 너희가 정당해야 남에게 뭘 요구할 수 있는 거야 . 그렇지 ? "

" 예 ."

"요새 무슨 학생 자치 시범 학교 선정이다 뭐다 해서 , 너희가 자율적으로 일하게 해 보겠다고

선생님들이 애써 학생회도 만들어 준거야 . 그 권리를 남용하면 안 되겠지 ? "

" ...... "

" 그래 , 그래서 . "

강성중은 대자보 기획서를 볼펜으로 쿡쿡 찍었다 .

"  이걸 뭐 하러 붙이려는데 ? "

나는 어리둥절해하며 답했다 .

" 학생의 날이니까요 ...... ? "

" 학생의 날 ? "

강성중은 비웃음을 날렸다 .

 

ㅡ본문 301/ 302 쪽에서 ㅡ

 

이 책을 보다보면 연혁처럼 작가들의 단편 기록이 몇 년도 졸업을 기점으로 이 글을 기고 했는지가 나온다 . 가장 빠른 2015년 부터 다음 단편이 1990년으로 이번 편은 1992년도 졸업을 기점으로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

 

내가 한참 중고등 학교의 시기에 있었기에 나는 이 글의 전체적인 년도를 몸으로 체감하는 듯한 기분마저 느꼈는데 , 그건 뒤로 갈수록 더 했으면 더 했지 덜하지 않았다 .

지금의 윗 글은 1992년이고 나는 막 교복 생활화가 안착된 시점에 가방을 메고 교복을 펄럭이던 어린애 였다 .

 

우린 땐 학생의 날이라고 딱히 없었는데 , 오빠라면 어쩌면 그런 일들을 겪었겠다 . 오빠는 딱 그 세대에 걸쳐있었으니까 , 교복 자율화의 시기에 , 오빠들 위로는 교복이 아니었고 1학년 들어가서 첨부터 교복을 입은 것도 아닌 어중간한 시기 .

 

나는 사립중 , 고 를 나와서 꽤나 좋은 여건의 학교 분위기를 , 말그대로 즐기며 졸업하기 싫을 만큼의 적당한 애정을 가지고 졸업도 하고 그랬는데 , 책을 읽으며 내내 이 세상은 내가 아는 세상이 아닌 듯한 기분을 느껴서 분명 동시대임에도 이게 무슨 말일까 해야했으니 , 얼마나 세상이 변한건지 .

 

학교만큼 잘 변하지 않는 곳도 없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 고교를 졸업하고도 한동안은 동아리의 후배들을 돌보자고 , 학교를 드나들던 나이니까 , 또 진작 까마득한 국민학교는 어떻구 , 그리움이 짙어서 오래 오래 걸어 옛학교를 찾아 가곤 했던 나는 , 학교의 좋은 모습이란 좋은 해택이랄지를 듬뿍 받은 학생임이 분명했구나 느끼고 말게 된다 .

그만큼 좋은 선생님도 많았다는  얘긴데 , 나중에 아주 나중에야 그것이 온통 차별에서 온 것임을 알았을때 나의 놀람은 소설 속의 학교를 내가 다닌 셈이구나 , 할 만큼  낯선 세상으로 변한 뒤였다 . 그 때 쯤부터 더는 학교를 찾는 일이 나도 없었다 .

 

내 아이가 이제 딱 그 위치에 서서 학교를 놓고 1지망 2지망을 얘기하는 요즘 , 마음이 착찹하다 .

학생의 날 ㅡ유례는 알고 있는데 , 딱 그 정보가 책으로 전해읽은 수준이란 점에서 놀라고 , 전혀 우리땐 학생의 날 행사 따윈 없었다는 것에 한번 더 놀란다 .

의미가 상당한 우리 역사임에도 , 이렇게나 무지하다니... 머리에 든게 든것이 아니구나 . 서글프게도 ...

 

이런저런 생각을 한 단편 , 그리고 선생님들이 꽤오랜 시간 교직에 머무는 걸 감안하면 더 놀라운게 생각이 하루 아침에 바뀌는 것도 아니고 어쩜 저렇게 구태의연 , 학생의 날 행사는 운동권이나 하는 행사라는 인식였나 ㅡ 하는 점 .

이 부분이 너무나 소름이 돋는 지점에 있다 . 그 많은 선생님들이 다 어디간걸까 ? 그 무서운 절차와 권위주의의 상징이던 선생님들은......

모두 정치권으로 간건 아닌지 , 경제계 쪽을 주무르는 실세는 된게 아닌지 싶을만큼 고루한 선생의 상을 이 책에서 보여준다 . 나라가 이토록 기운 이유는 바로 저 무리의 선생 , 강성중 같은 선생의 사람들 탓이 아닌가 하고 ...

 

* 백과사전에 의하면 학생의 날은 1953년부터 있었다 . 1929년 , 한 일본 학생에게 조선 여학생이 성희롱 당하는 것을 본 다른 조선 학생이 이를 제지하다가 오히려 두들겨 맞고 감옥에 갇혔다 . 11월 3일 ,

전국적으로 학생운동이 일어났다 . 5만 4천여 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 당시 학생의 숫자는 8만 9천명이었다 . 삼일 운동이후 최대규모의 독립운동이기도 했다 . 이 날을 기념해 만들어진 날이다 .

 

ㅡ본문 312 /313 쪽 중에서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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