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그 긴 시좀
외워주세요."
잠자리에 들 시간이면 우리는 어머니에게 시심을
배급해 달라고 졸
랐다.
"얘들은 잠안자고 맨날 무슨 시를
외어달래?"
어머니는 짐짓 이렇게 말하지만 결국 우리의
요청에 못 이기는 체하
고 본격적인 운동을 하기 전에 몸을 풀듯이 장시를
외우기 위한 준비운
동으로 천천히 눈을 감았다.나는 어머니의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며 시
낭송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어머니는 심호흠을하고
조용히 시를 읊
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시를 외우는 음조는 아주
특이했다.
"어둠의 장막이 내리면 바다는 더욱더
광폭해지다."
어머니는 숨을 한 번 깊게 들이 쉬는 것으로 행을
분절했다.
"나 홀로 바닷가에 앉아서 춤추는 하얀 파도를
바라보고 있노라."
나는 어머니가 일러준 대로 시구 하나하나를
머릿속에 그림으로 만
들어보려고 노력했다. 어둠이 내린 바닷가에 하얀
물거품
들...... 어쩐지 조금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내 가슴 파도와 같이 부풀어올라 깊은
향수가 내 맘을 사로
잡도다."
어머니는 내 두려움을 가라앉히려는 듯 약간의
비음을 섞어 목소리
에 달콤함을 실었다. 나는 사탕을 빨듯 그 달콤한
한 어절 한 어절을 맛
보았다. 어머니는 숨 한번 쉬지 않고 급격하게
다디단 서정의 끈을 죄
어나갔다.
"그대 위한 이 향수, 그대는 어느곳에서도 나를
사로잡고 어느 곳에
서도 나를 부르도다, 그 어느 곳에서도, 그 어느
곳에서도."
다디단 우울이 끝나는 지점에서 어머니는 격하게
숨을 몰아쉬었다.
세찬 숨소리와 함께 내 등이
서늘해졌다.
"바람이 부는 소리에도, 파도치는 소리에도, 나
자신의 가슴에서 나오
는 한숨
소리에도."
어머니의 목소리는 이때부터 점점 힘차게 되고
어머니의목은 하염
없이 떨렸다. 나는'소리에도 ,소리에도
,소리에도,' 라는 규칙성에 따라
어머니의 턱이 착,착,착 단계적으로 치켜올라가는
것을 조마조마하게
지켜보았다. 뭔지 모르게 아슬아슬하고 비극적이고
암울한 상황이 닥
쳐오고야 말았다는 느낌에 나는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무엇엔가 맹
렬히 저항하는, 그 무엇을 마침내 쳐부수고야
말겠다는 어머니의 시적
인 결기가 느껴졌다.눈을 감은 탓에 목소리의
실물감은 더욱 섬뜩하게
귀를 찔러대고 어머니의 목소리는 야멸차기 짝이
없었다. 아, 이제 세
상이 끝나버리는구나 하고 예감하는 순간 나는 감은
눈을 한번 더 꼭
감았다가 번쩍 떴다. 어머니의 낭송은 극에 달하여
나를 전율하게 했
다.눈을 질끈 감고 턱을 치켜들고 목을 파르르 떠는
어머니...... 어머
니......어머니......
그녀는 우렁차기보다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날카롭게 외쳤다.
"나 , 노르웨이 삼림 속에서 제일 높은 전나무를
뿌리째 뽑아,"
나는 거대한 삼림에서 뿌리쨰 뽑혀나온 나무를
떠올렸다.
"그것을 에트나의 불타오르는 저 새빨간 분화구에
넣었다가,"
에트나가 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거대한 아궁이 같은
곳에 나무를
집어넣으니 불이 나무뿌리에 단박에 옮겨붙어 활활
타오르고 그 열기
가 내 얼굴에까지 확 끼쳐오는 것을 느끼는
순간,
"그 불이 붙은 거대한
붓으로,"
그것은 붓으로
변하고,
"나, 캄캄한 저 하늘을 바탕 삼아
쓰겠노라."
검붉은 연기가 치솟는 불의 붓,밤하늘, 그리고
아아......
"아그네스! 나 그대를 사랑하노라
라고."
나는 이를 앙다물고 주먹을 꽉 쥔 채로 어쩔 줄
몰라하며 어머니만
노려보았다.어머니는 침을 급하게 꿀꺽 삼키고 시의
대미를 맞을 준비를
했다.
"그렇게 한다면 밤이면 밤마다 저 화염의 글자는
불타고 있으리."
불붓은 밤하늘에 쓴 글씨들이라...... 나는
상상의 한계를 느꼈지
만 어머니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뒤를 이어 쉴새없이 출생하는 우리의
후예들은 환호를 올리
면서 저 하늘의 문자를
읽으리라."
어머니는 장탄식을 하며 마지막 행을 쏟아
놓았다.
"아그네스! 나 그대를 사랑하노라
라고."
어머니의 기나긴 낭송이 끝나면 언니와 나는 덩달아
한숨을 내쉬었
고 맥이 탁 풀렸다. 나는 내 감격을 어떻게든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조바심에 이러게
물었다.
"어머니는 이렇게 긴시를 어떻게 다
외우세요?"
어머니는 오랫동안 눈을 감고 있었기 때문에
약간은 어리어리한 얼
굴로 장거리를 오나주한 육상선수처럼 뺨을 발그레하게
물들이며 내 머
리를 살짝
건드렸다.
"엄마 학교 다닐때는 학교에서 선생님이 흑판 가득
필기해놨던 걸
박박 지우고 그대로 다 외워보라 그래도 토씨하나 안
틀리고 그대로
다 외웠다.이젠 살림하느라고 머리가 나빠져서 원체
안 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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