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재구성 - 제28회 신동엽창작상 수상작 창비시선 306
안현미 지음 / 창비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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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흑백 삽화

 

 

너무 많은 이면지를 부적처럼 가지고 있다

기역 니은 디귿 리을처럼 슬픈 이면지들

색깔이 없는 얼굴 , 색깔이 없는 생각 ,

색깔이 없는 슬픔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다

기역 니은 디귿 리을처럼 흘린 시간들

반쯤은 치기로 그 시간의 칼날을 휘둘러 동반자살을 꿈

꾸며

 

자음만으로는 도저히 슬퍼할 수 없다고 했던 건 당신이

었나

 

모든 슬픔들은 모음을 필요로 한다고 했던 것도 당신이

었나

 

기역 니은 디귿 리을

기역 니은 디귿 리을

색깔이 없는 기억 , 색깔이 없는 기록 ,

색깔이 없는 삽화를 너무 많이 가지고 있다

결국 반쯤은 사기였던 우리들의 연애는

 

 

ㅡ 본문 17 쪽에서 ㅡ

안현미 시인의 시집 [ 이별의 재구성 ] 중에

 


하얀 것은 종이 , 까만 것은 글씨 하던 농담 생각에

비실 비실 웃음이 기어나온다

이면지를 만들어 내던 많은 오타의 세상도 같이 ,

거기서 시인은 기역 니은 디귿 리을들을 깨진 종이

보듯 봤는지도 모르겠어서 ,

 

어린 날엔 타자 보습학원에서 띵 , 하는 종소리와 함께

다라라락 치고 싶었지만 생각처럼 쳐지지 않던

검은 몸체의 타자기가 놓인 풍경도 같이 온다

 

마음만 다라라락 이었지 , 정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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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2-02 16: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반쯤의 사기였던 연애라....자음과 모음의 겹합 사랑법일까요..ㅎㅎㅎ

[그장소] 2016-12-02 17:26   좋아요 1 | URL
ㅎㅎㅎ 장난이 진짜같고, 진짜인데도 장난 같던 기억이 아닐까.. 그렇게 읽었어요. 저는.. ㅎㅎㅎ

2016-12-03 0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6-12-03 00:21   좋아요 1 | URL
발인이 아침에 있어서 대기합니다. 내일오후에나 돌아갈듯해요.

2016-12-03 0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6-12-04 14:04   좋아요 1 | URL
으, 저질체력이라 아침부터 진통제를 잔뜩 먹었어요. 온몸이 비명을 지릅니다. 그까짓 외출에 말이죠. ㅎㅎㅎ 잘 다녀왔어요! 감사해요.
 

유리문 안에서 ,

˝그렇다면 ...... 죽지 말고 살아 계세요 .˝
ㅡ나쓰메 소세키

#유리문안에서
#나쓰메소세키
#민음북클럽에디션
#유숙자 옮김
#민음북클럽
#나쓰메소세키마음수필


여전히 휘파람새가 뜰에서 이따금 운다 . 봄바람이 간간이
생각났다는 듯 불어와 난 잎사귀를 흔든다 . 고양이가 어딘가에서 심하게 물린 관자놀이를 햇살에 내놓고 포근히 잠들었다 . 조금 전까지 뜰에서 고무풍선을 띄우며 시끌벅적하던 아이들은 다 같이 활동사진을 보러 가 버렸다 . 집도 마음도 고즈넉한 가운데 나는 유리문을 활짝 열어 놓고 고요한 봄볕에 감싸인 채 황홀하게 이 원고를 끝낸다 . 그러고 나서 나는 잠시 팔배게를 하고 이 툇마루에서 한숨 잘 생각이다 .
ㅡ본문 98 쪽에서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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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이라고 쓰고나니 다음엔 아무것도 못쓰겠다 . 다자이 오사무 사양 ˝ 중에서 딸이 어머니에게 건내지 못하지만 , 쓸 뿐인 편지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연인간의 사랑만 사랑이 아니구나 , 그 모든 것들의 사랑을 생각나게 합니다. ‘사랑‘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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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17: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6-12-01 17:56   좋아요 0 | URL
가서 냉큼 볼게요!^^ ㅎㅎ 기대 기대중!^^

stella.K 2016-12-01 18: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엇, 이런 이벤트도 하나요?
어디서 하는 건가요?

[그장소] 2016-12-01 18:11   좋아요 0 | URL
아..알라딘 올해의 책 투표하는곳에서요! 얼른 가셔서 포인트 낚아오셔요! 부지런 부지런!! 화이팅 ~ 저도 그거보고 냉큼했는뎁!

stella.K 2016-12-01 18:13   좋아요 1 | URL
아하! 글쿤요. 알겠슴다. 땡큐!^^

[그장소] 2016-12-01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ok~^^♡

책읽는나무 2016-12-01 18: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랑‘그 이상의 단어가 들어간 문장이 있을까요?
이벤트는 이미 끝났군요!!!ㅋㅋ

[그장소] 2016-12-01 18:37   좋아요 0 | URL
아~ 그래도 좋은 글귀는 넘쳐나더라고요!^^ 전 올해의 문장으로 이 거!!

yureka01 2016-12-01 22: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모든 단어를 지우고 나서 남은 단어가 딱 하나가 있다면..그게 사랑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장소] 2016-12-01 22:19   좋아요 1 | URL
오.. 오늘의 문장 ㅡ으로 이 유레카님 댓글을 추천하면 좋겠네요!^^ 저는~
 
이별의 재구성 - 제28회 신동엽창작상 수상작 창비시선 306
안현미 지음 / 창비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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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별의 재구성 혹은 이별의 재구성

 

 

     나하고 나 사이에 늙고 엉뚱한 종족들이 있지 내 별로

놀로 오는 나들 나들 때문에 그 종족들은 불편하다고 불평

하며 불안했어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사랑했지 난

정드는 게 특기니까 하루가 영원 같고 영원이 하루 같은

무협 판타지 같은 날들이었어 난 그날들을 CD로 구웠지

구워진 CD 속에서 난 무릎이 아팠어 너무 많은 감정을 과

소비하고 게다가 너무 많은 눈물을 삭제했으니까 수만년

전부터 이 별은 아팠어 늙고 엉뚱한 종족들은 이 별의 종

말을 전지구적으로 살포하면서 우리 종족의 언어를 모두

쓰레기통에 넣고 서둘러 이별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우리

종족의 위대함은 휴지통이라는 아이콘에 있지 '복원' 이란

단추를 내장하고 있는 그러니까 이별을 이 별로 굽거나 이

별을 이별로 굽는 따위의 일은 우리 종족에겐 식은 죽 먹

기보다 쉬운 일이란 거지 고통을 선택할 수는 없다  , 그러

나 고통을 받는 방법은 선택할 수 있다 ,빅토르 프랑클, 멋

지지 ? 이게 이 별의 재구성 혹은 이별의 재구성이란 엉터

리 판타지 같은 이 시에 대한 키워드야 , 친절하지 ?

 

 

ㅡ 본문 63 쪽에서 ㅡ

안현미시인의 시집 [ 이별의 재구성 ] 중에 .

 


 

별이 그저 성운의 많은 먼지와 가스로 만들어지고 폭발하고 반짝이는 동안

어떤 별에선 정말로 종족과 종족간의 이별을 재구성한다 .

하얀 조문을 검게 칠한 옷들위에 띠로 두르고 , 누구에게 보내는 정성들인

선물인지 모르면서 이 별의 영영을 그렇게 인사하게 한다 .

오늘의 눈물을 아껴두면서 내일의 눈물을 준비하는 지금의 나는 괜찮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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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투의스케치북 2016-12-01 21: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는 제가 읽어야 하는데 그장소님이 열심히 읽으시는군요. 부럽습니다. 저도 그장소님 보면서 시읽기에 몰입하고 싶네요. 아니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장소] 2016-12-01 22:17   좋아요 1 | URL
아. 벤투님 도 참.. 제가 수박겉핥기하듯 하는 시읽기와 벤투님 시읽기가 어디 같나요? 늘 치열하게 보고계시면서요!

yureka01 2016-12-01 2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별을 재구성 좀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ㅎㅎㅎㅎ 이 별에서의 이별...

[그장소] 2016-12-01 22:16   좋아요 1 | URL
좀 , 그렇죠. 요즘 같은 때엔 아무래도 더.. 그 맘알것같아요. 시간 끌기하는 푸른집은 얼른 정리를 좀 해얄텐데.. 뻔히 그럴 줄 알았으면서 속수무책이네요. 좋은 일이 있어얄텐데..

벤투의스케치북 2016-12-01 22: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닙니다..수박 겉핥기라뇨...
열심히 다양하게 그리고 정교하게 읽으신다고 생각합니다.

[그장소] 2016-12-02 08:40   좋아요 1 | URL
아하핫~ 감사해요! 벤투님의 ( 정색!) 하는 이 반응 , 반갑네요!^^

벤투의스케치북 2016-12-02 08: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색이라기보다 사실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장소] 2016-12-02 08:56   좋아요 1 | URL
ㅎㅎㅎ네~ 네! 감사해요!
 
사월 바다 창비시선 403
도종환 지음 / 창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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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저녁

 

끓어오르며 소용돌이치던 것들을

찬물에 헹구어 채반 위에 얹어놓고 나니

마음도 국수 타래처럼 찬찬히 자리를 틀고 앉았습니다

애호박을 싸박싸박 채 썰어 밀어놓는 동안

마음 한쪽이 그렇게 소리를 내며

잘려나가는 듯한 초저녁

묵은 김치를 더 잘게 썰어 얹어 한그릇의

국수를 비우는 동안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녁산 위로 짙은 쪽빛의 시간이

잉크처럼 번져 내려오듯

무어라 이름 지을 수 없는 아릿한 것이

명치끝을 타고 내려오는 게 느껴졌습니다

이승에서 이렇게 애틋함과 슬픔을

한그릇씩 나누어 먹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찔레꽃에게 말하고

한세상 사는 동안

좋은 사람과 함께 호젓한 풍경이 되어

저물 수 있던 날을 고마워하며

찬물에 젓가락을 씻어 물방울을 털어내다가

잠시 뼈와 살 사이가 시큰해졌습니다

일어서기 전에 듣고 싶어하는 말을 끝내 하지 못하고

오늘 처음 붓꽃이 피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말하고

돌아가는 그이의 발소리를 붙잡지도 못하였습니다

밤에도 검은등뻐꾸기는 울고

북두칠성 일곱 별은 그가 가는 길을 따라

몸을 틀며 별자리를 조금씩 옮기고

아까시꽃이 향기의 긴 꼬리를 그으며

별자리 뒤를 따라 올라갔습니다

불빛 하나 고개를 넘어가다 잠깐 눈물처럼

반짝이며 떨어지고 난 뒤 사방은 더 어두워졌고

호랑지빠귀가 한숨을 길게 쉬는 듯한 울음을 내뱉는 걸

숲은 다 듣고도 지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ㅡ14 / 15 쪽에서 ㅡ

 

【도종환 시인 ㅡ사월바다 중에서 】

 

 


 

 

다 저녁에 오라비에게 일요일 오후에 만나자는 전화를 받고

달력을 보며 , 어김없는 날들에 조금 웃다가 오라비는 없는데

그이가 좋아하는 잔치 국수를 말아 저녁을 대신하며

일찍 보아둔 이 시를 옮겨봐야지 그랬습니다 .

내일은 오라비의 생일이고 , 윤의 친할머니 생신이기도 합니다 .

서울에서 교회의 일과가 끝나면 함께 식사나 하자며 엄마가

내려올 것입니다 . 우리가 다시 연락하고 만나기 시작하면서

엄마는 오라비의 생일은 놓치지 않고 꼬박 꼬박 챙기고 있고

그 덕에 한번 더 살아 있는 날들의 추억을 만듭니다 .

 

시인의 시집이  「사월바다」인 이유를 처음엔 계절도 아닌데

하며 의아해 하다  , 한 장 한 장 넘기며 살아있고 없는 이의

차이를 손금보듯 짚어내곤 탄식을 했습니다 .

무얼 말하려는지 알아졌다고 해야겠지요 .

 

우리는 살아서 , 꾸역 꾸역 저녁거리를 만들어 먹으며 오늘의

하루 컨디션을 , 안부 챙기지 못함을 안타까워 할 때 .

누군가는 영영 할 수 없는 , 어째 볼 수도 없는 일이 되버린 것을

 

잊은 것은 아닌지 ,

 

그러니 설령 미뤄둔 인삿말이 있거든 , 꽃이 피었노라 대신하지 말고

달이 곱다고 말을 돌리지도 말고 , 더 날 것 그대로

사랑한다 . 고맙다 . 미안하였다 .

전하는 날이 되시기를 ......

 

2016,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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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6-11-30 16: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 맘에 쏘옥 들어서, 읽고 읽고 또 읽고 그랬습니다.
그동안 이 곳에 적조하셨던 님이 되돌아 오신것도 같고,
침체기를 떨고 일어나신것도 같고 말이죠.

설레발 같아서...자주 표현하지는 못했었는데,
오늘은 이 페이퍼가 참 좋다고,
가슴에 꼬옥 꼭 내리적어 놓았다고 고백해 봅니다요~^^

[그장소] 2016-11-30 17:45   좋아요 0 | URL
아~ 이보다 더 기분 좋은 말은 없을것 같아요!^^ 양철나무꾼님~

뭐가 좋든 , 시가 너무 좋았던 탓입니다 .
채써는 소리, 싸박싸박..
물기를 털고 잘게 김치를 썰어넣는 소리의 말들이 그대로 현실적이어서 , 시집제목이 주는 이질감을 더 감동으로 다가오게 하더라고요.. 반겨주시니 그 고백이 더 감사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