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폐경 - 2005 제5회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
김훈 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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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기록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 찾아보니 없다 . 노트의 줄 위치까지 기억나는 그 한자의 환영들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 또 기억 속의 이 하얀 화면들에 까맣게 점점이 찍혔던 익숙한 문장들은 내 것이 아닌 다른 이의 글을 본 것일까 , 오늘로 세번째  읽는 < 다시 한 달을 가서 설 산을 넘으면> .

사실은 읽었던 것이고 , 기억에 썼던 것이라 가볍게 내 리뷰나 읽고 넘어가려고 찾다가 없어 당황을 했다 . 그래서 결국은 기록을 하는중이다. 기억의 소실인지 , 기록의 소실인지 , 아니면 그 모든 것이 그저 나의 환상에 불과했던 것인지......

처음 만난 책은 2009년 김연수 작가가 이상문학상을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으로 수상하고 그 작품집의 자선작으로였다 . 두번째는 <나는 유령작가 입니다 > 소설집에 수록 되어져 만났다 . 그리곤 이번이 2005년도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 작품집 속에서 다시 만난다 . 연대도 마구 흩어져 엉망이고 들쑥날쑥 하지만 , 책의 질감을 기억하는데 어쩌면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걸까 ?

마치 소설 속의 그가 홀연히 저 낭가프르트에서 사라져버린 것처럼 ... 내 기억에 뭔가 틈이 생긴 걸까? 크랙이나 크래바스같은 ? 어두운 구멍이 ......

글은 사실 좀 섬세하게 따라가지 않으면 곧 길을 잃게 된다 . 나는~으로 시작했다가  어느새 그는~으로 바뀌어 있고 그 변화는 지극히 미묘한 가르킴이어서 쓰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금새 놓치게 되기 때문이다 .

큰 줄기를 놓고 보면 산악부에 몸담고 있던 소설가로 가능성 있는 대학4학년 생의 그가 돌연 여자친구의 실연 (자살이지만 그는 실연이 아직 오지 않았다 우기고 있으므로)으로  집에  처박혀 책을 읽으며 소설을 장장 9개월간 쓰고 , 그걸 우연한 기회로 찾은 , 여자친구가 대출해 본 마지막 책으로 짐작되는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의 주석을 단 나" (그는 교수님이라고 부르며 12 살 연상이다 . 물론 가정도 있고!)에게 보내게되고 , 나는 그의 노트를 출판사에 넘겨서  편집자와 같이 노트를 봐 버린다 .

 

재미있다고 편집자는 말하는데 그는 소설을 낼 생각이 없었으니 돌려 달라고 하고 , 그가 알고 싶었던 건 단지 그 왕오천축국전을 마지막으로 들여다 본 여자친구의 심리에 뭐가 있는지  였다 . 주석을 단 교수는 알거라고 생각한 그가 매달리지만 사실은 알 수 없는 채 잠시 둘의 감정은 부딪히지만 그게 뭔지, 뭐라고 말할 수 있는 형태도 못되고 ,  그는 어느새 비행기에 몸을 싣고 88올림픽을 기념하는 낭가파르트 원정대에 있다 .

 

이후의 글 속 기록은 다시 읽어도 거의 영화 "남극 일기" 속의 상황들을 떠올리게 한다 . 고소증세로 , 혹독한 기후로 또 , 척박한 지원금과 무지막지한 계획의 몰아댐으로 그들은 이룰 수 없는 꿈을 향해  눈 길을 다지지만 결과는 참혹하고 , 그는 나에게 마지막 편지로 " 다시 한달을 가서 설 산을 넘으면..." 이라는 문장을 끝으로 영영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이야기 이다 .

 

본래의 내 기억이 맞다면 내 리뷰는 있어야 하고 , 원래의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바라는 꿈들을 이뤄간다면 아마도 글 속의 여자친구와 그는 결혼을 했거나 , 혹은 헤어졌거나  그게 아니라면 지지고 볶고  싸우고 남들 다하는 것들을 하고 살았을 것이다 . 평범한 것들을 그저 최선을 다해 소망하면서 , 있을 자리에 있었을 테지 , 그런데 무엇이 그 미세한 틈을 만들어 놓은 걸까 , 80년대 후반이라는 사회적 정서? 아니면 이 글 속의 나는 과 그는 처럼 넘을 수없는 관계 ? 그를 그 고산대 까지 오르게 하고 기어이 미쳐버리게 한 것이 무엇인지 , 한 참의 젊은 여학생이 한강으로 투신하며 세상에 용서를 구한 것이 무엇인지 . 

 

보지 못하고 , 표현 못한 문장들 속  그것들은 과연 무엇이엇을까 ...혜초도 미쳐 모른 왕국이 어딘가 있었을까 ... 그럼 그는 설산을 넘어 그의 나라로 가고 , 내 리뷰는 하얀 이 화면 어딘가에 분명하게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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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의 폐경 - 2005 제5회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
김훈 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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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기린하면 생각하게 되는 두개의 이미지가  있다 . 하나는 학창시절 쯤 봤을 라이온 킹이라는 영화 속에서 마치 군무처럼 떼지어 맹수들을 피해 가젤들처럼  초원을 겅중겅중 그 긴 다리들로 뛰어 도망가던 장면이고  또 하나는 최근 동화였나에서 읽은 기억인데 아마도 개가 주인공이며 자신의 진정한 사랑을 찾는 과정에 잠시 스쳐가는 사랑(?)의 단역으로 , 개는 무척 진지(?)하게 애정을 갈구하지만 이 기린은 관심이 없었다 . 기린에게 관심사는 그저 생명의 양식인 질 좋은 나뭇잎이 적당한 높이에 있고 물좋고 안전한 곳을 찾으러 가는 중에 동행을 할 뿐인, 개의 애정사 따위는 아웃오브 안중에도 없고 , 알지도 못한다는 , 그런 이야길 기억하고 있다 . 그러므로 기린은 내게 어떤 거리의 이미지이다 . 높은 곳을 보기에 그럴지도 모르고 육식동물이 아니기에 그럴지도 모르고 , 그렇습니까 ? 그런 , 기린입니다 . 제가 아는 기린은 ......

 

 

박민규 작가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두 번째 동물 시리즈 랄까 ? 처음엔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가 욕탕에서등을  밀더니 이번엔  지하철 역에서 기린이 살포시 손을 포개 잡으며 은근하고 단호히 그렇습니까 ? 기린입니다 . 하고 말하는 것을 보고 듣게 된다 .

 

한 쪽에선 고마워 눈물을 글썽이게 하더니 , 한쪽에선 왠지모를 서러움에 (그게 그건가?) 또 눈물을 쏟게 만들고 주절 주절 떠들게 만든다 . 더구나 그 기린을 승일은 아버지! 라고 생각하면서 ...

 

미안하단 말을 하며 한 쪽 다릴 못 쓰게 된 타조 ㅡ 같은 눈빛 , 그 회색의 먹먹한 눈빛을 얘기 할 때 . 젠장...어째서 불안한 얘감은 틀림이 없는건지 , 또 착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겐 어째서 무거울 뿐인 짐을 이렇게나 마구 어깨고 등이고 머리고 사정없이 짊어지게 하는 건지 ,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

승일은 방학이면 스스로 알바하느라 정신이 없고 , 어떻게든 부모 어깨를 가볍게 해주고 집 안에 보탬이 되려 , 자기 만의 산수를 , 그러니까 자기 신수를 챙기는 애어른이다 . 이 어린 녀석에게 어머니는 병들어 쓰러지는 걸로 , (얼마나 가혹한 일상이었으면) 아버지는 어른아이처럼  돌연한 가출과 실종으로 보답을 해준다 . 그래도 서로 의지하고 살고 있다고 믿었는데 , 고등학생인 승일도 이제 진학이냐 , 취업이냐 진로 걱정을 해얄 때인데 , 오히려 생업같은 알바로 바쁘다 .

 

엄마가 쓰러지시곤 오히려 아침 1교시마져 담임이 빼주어 그 시간에 지하철에서 , 방학 내 하던 푸시맨을 한다 . 하아,,난 이런 일이 게임으로만 있는 줄 알았다 . 물론 해본적은 없는데 . 뭐 이런 게임이 다있냐 했었는데 . 게임이 현실이고 현실이 막장보다 더한 환상게임 속 같다 .

 

아버지의 등도 출근하는 온 인류의 몸통들도 사정없이 끊임없이 밀고 밀 뿐인 일 . 시급 3000원 짜리 .

그 걸 믿고 아버진 그냥 내빼신 걸까 ? 이 치열한 삶의 현장따위에서 ... 자신은 풀이나 뜯겠다고?

아 어디서 개 풀뜯어 먹는 소리 들리지 않나? 응?  승일이 우는 소리만 들린다고?  그, 그렇습니까?

아, 예예  ㅡ

밀지 마 , 그만 밀라니까 .  왜 세상은 온통 푸시인가 . 왜 세상엔 '푸시맨' 만 있고 ' 풀맨' 이 없는 것인가 . 그리고 왜 , 이 열차는

삶은 , 세상은 , 언제나 흔들리는가 . 그렇게 (156,7쪽 본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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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의 폐경 - 2005 제5회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
김훈 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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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타라ㅡ망 [ 因陀羅網 ]

<불교> 인타라가 사는 궁전을 장식하고 있는 보석 그물 , 각 그물코마다 보주 (寶珠) 가 붙어서 다시 다른 모든 보주의 그림자가 비치고 , 그 하나하나의 그림자 속에 다른 모든 보주의 그림자가 비치는 것으로 , 이 세상의 모든 존재가 서로 관계하면서도 서로 장애가 되는 일이 없음을 비유한다 .고 [비슷한 말]인타라주망 .


 

사실은 스릴러 적 반전을 기대했는데 , 그럼 너무 전형적인 이야기로 가버리게 되고 주제를 벗어나는게 될까? 꼭 그럴 것 같지도 않는데 , 내가 생각한 반전은 69일간 대소변을 받아오며 묵묵히 기다린 그 정체모를 남자가 원래의 범인인 거고 , 최후의 목격자를 , 기억을 확인하고 소멸하기 위해 있었다 . 랄까? 이유 따위는 ... 아,  어차피 이상한 나라로 가자고 한 건 작가니까 ......

 

하지만 나의 기대는 웃기지마 하듯 멋지게 빗나가 주는데 , 결과적으론 또 다른 살인의 시작이 된다 랄까 . 아니면 글 속 범인의 주장처럼 긴급피난 ,혹은 정당방위가 되려나? 그 아들의 처사는 ? 그나저나 이 69일 만에 깨어난 남자는 참 불운해 . 그저 집에 돌아가던 중이었을 뿐인데 , 아내가 갑자기 해산을 한다고 해서 말이지 .

 

뭐  늘 그렇듯 불행은 한꺼번에 온다고 하지 . 하필 눈이 그렇게 오는 날에 차는 왜 사고가 나고 , 하필 거기서 도움(?) 같을 걸 받을게 뭐람 . 그리고 제정신이 아닌 피해자와 마주쳐 그 사단이 날게 뭐냐고 ...

어쩌면 , 이 남자의 죄는 출산 중의 아내를 위해 서둘러 돌아가지 않고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한데 있는게 아닐까 ? 하지만 그 이상한 집의 분위기라면 (사건의 현장이 대게 그럴 것이듯 )발걸음이 쉬 떨어지진 않았을 것도 같아 . 혹시 도움이 될 지도 몰랐을 건데 ...

 

너무 극심한 공포 앞에 이성이 무너진 안주인은 남자를 범인으로 보고 달려들어 버리고 아무리 상황을 말해도 이해 될 일이 아니었지 . 도저히 그 상황에선 ......

모든 것이 범인의 계획이었는데 , 차사고로 그저 도움을 준거라고만 생각한 남자는 그 집이 범인의 집이라고 생각하고 그저 고마워 해 . (아 , 말이 이상하지만 그 남자 라고 해야하나 ? 범인이 돕고 범인이 함정에 빠뜨리기위해 남자를 데려오곤 가버린 상황인 것임) 곧 나타난 아들은 집 앞 언덕에 쓰러진 이 남자를 지금까지 (차사고가 심각했던 탓인지 후유증인지 장장 69일간 의식을 잃고) 보살펴 왔는데 , 남자는 전후 사정을 기억 못하고 그저 감사하며 이런 저런 부탁들을 하고 가까이 하게 돼 . 그 곁엔 이 남자가 죽이려한 이 아들의 어머니가 식물인간으로 누워있고 호흡기만 떼면 바로 저 위로 갈 분위기이지 ...

 

인타라망은 아들이 이 남자에게 읽어주는 책의 내용인데 , 한치 앞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로 나왔더라고 ... 그 내용도 재미있는데 섬뜩한 시간차 공격이라고나 할까 ... 죽음이 바로 앞에 당도하고 있는 걸 본인들은 모른다는 그런 얘기였는데 ..저 남자처럼 말이지 . 기껏 69일 만에 깨어나 기억까지 찾으니 이번엔 안주인의 아들이 복수라는 정당방위로 남자의 목숨을 노리고 있으니까 ...흔한 말로 인과에서 자유롭지 못한 걸 또 봤다고 ..죗 값보존법칙은 어딜가나 있고 !!

아ㅡ독특한 분위기의 이 작품 꽤 재미있게 봤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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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의 폐경 - 2005 제5회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
김훈 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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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품집은 역대 급에 최고의 소설들만 모은 그야말로 최고구나 ,  이제야 보는 것이 살짝 억울하고 이제라도 보는 것이 너무나도 다행이고 고맙기도 한 , 한 편 한 편 볼 때마다  서둘러 생각을 적고도 싶고 아니면 두고 두고 다른 마음의 변화를 지켜보고도 싶고 , 갈등하다가 일단은 생각을 적는데 사실 적어나가면서  제대로 이 작품을 읽고 있는걸까 걱정하면서 마음이 조바심 난다 . 문장이 실시간으로 달아나는 것 같고 순간 느낀 감정이 날아가는 것 같아 도저히 잡히지 않는 표현이 될 것 같아서 ...안달이 나는 바람에 입술이 바짝 마른다 . 그렇게 읽어버린 책들이 얼마나 많고 제대로 표현해 주지 못한 책들이 얼마나 많은지 , 차마 어떤 시작조차 못하고 환상과 현상을 드러내는 문장들만 줄줄이 베껴 놓은 노트들을 보며 한숨이 나는 중이다 .

 

 

그건 마치 이 시대를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숨만 쉬며 보내고 있는 것과 같아서 , 지금의 내 모습과 또 시대가 잃어버린 인간들과 무력하고 폭력적인 부모를 보듯이 애증을 진저릴내며 앓을 수 밖에 없어서 , 먹먹하고 막막하다 . 잃어버린게 있는데 뭘 잃었는지 기억이 잡힐 듯 생각속이 간지러운 그 것처럼 .

그러나 언제까지고 잃어버린 탓을 하며 살 수 만은 없어서 시침을 떼고 , 잃어버린 사실조차 없다는 듯이 살아야 한다 . 언제고 잃어버린게 뭔지 기억이 나겠거니 하면서 .

 

 

소설은  소설가 이선대의 고향 재종형님의 전화로 시작된다 . 재당숙모의 부음을 알리는 걸로 어릴 때 그의 기억에선 희미하지만 그 재당숙모가 집 안 어른들에게 어쩐지 입 밖에 꺼내면 안되는 은근한 압력의 느낌으로 남아있고 , 더 어릴 때 재당숙부가 유난히 울던 자신을 봐주었다는 이야길 들었었다 . 그 재당숙부 이름이 이봉한이고 이제는 독립유공자라고 한다 . 그 독립유공자까지 간 사연은 그야말로 기구하고 기이하다 . 그 기구한 사연도 사연이지만 실은 이 선대 소설가에겐 열살무렵 자신이 어린마음에 거칠고 야박하고 무섭게 쫓아낸 재당숙네의 쌍둥이 형제에 대한 기억이 빚처럼 남아 있는게 더 크다 . 

 

그래서 먼 고향 고령까지 빈한한 상가까지 쫓아 내려온 것이다 . 어릴 때 빚진 마음을 털어내 보자고 , 어찌들 살았는지 서로 이야기라도 하며 털어낼 생각이었다 . 워낙에 재당숙부네가 살이가 기구했으므로 좋은 모양세로 살수는 없었을 거라고 짐작은 해가면서 영안실까지 내려오는 그에게 이봉한 인생에 대한 재종형의 반추가 이어지는데 일제시대와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서는 시기와 유신정권의 시대까지를 한달음에 쫓는다 .

 

이봉한은 일제시대에 일본유학까지 한 엘리트고 유학중 사회주의사상을 접하고 혹독한 시간을 보내다 고향으로 돌아와 칩거를 한다 . 그가 유별난 운동가도 아닌데도 계속된 감시로 다시 중국으로 몸을 피하게 된다고 하는데  중요한 건 그가 독립운동을 하는 사회주의 운동가도 민족주의 운동가도 아니라는 점에 있다 . 그저 몸을 피해 살은 것뿐으로 조용히 살고자 하는 이에게  많은 부(富)는 형벌이었는지도 모른다 . 그게 아버지대에 정당하게 벌어들인 것임에도 어떻게든 가진게 없던 사람들은 있는 사람을 같은 처지로 만들지 않고는 못베기는 법이니까 .

 

이봉한의 아버지가 죽고  이봉한은 아버지가 물려준 땅을 문중에 내어주고 자신을 것으로 하지 않는다 . 일한 만큼만 먹고 살려한 사람이었는데 시기마저 가혹해 한국전쟁이 닥치며 자신도 모르게 좌익으로 분류되서 보도연맹에 가입되고 그 때문에 죽음 앞에 섰다가 혼자 배에 총상을 맞고 살아 돌아오지만 , 와서도 죽은 사람인 채로 세월을 산다 . 이승만 정권 말에 자신의 신원을 복권해보려 했지만  도와주는 사람이 없이 시간은 흘러  유신시대가 오고 그는 계속 죽은이로 살아가야 하는 처지가 되고 , 결국 뇌졸중으로 죽는다 .

그가 죽자 애국지사로 독립유공자로 만드는데 열심으로 노력하는 장안 권속들 . 살아 있을 때는 그의 어려움이 행여 자신들에게도 묻을까 쉬쉬하고 ,  그들이 좀 더 가진 채 살았을 때는 있는 기둥시계하나까지 들어내가는 문중들이었다 . 그리고 그런 시절의 어디 쯤에 이선대와 만났던 이봉한의 쌍둥이 아들들 .  

그들은 보살피는 손 없이 귀찮은 입에 불과했고 이선대의 부친은 이봉한과의 그 간의 정 때문에 아이들을 잠시 맡기로 하지만  남자어른은 말만 맡을뿐이고 집안 여자들에겐 군입일 뿐이니 얼마나 가시 같았을지 ,  아마 그 눈치를 이선대는 알았겠지 . 집에서도 쫓아내고 싶어하는 분위기인데 차마 그럴 수 없어 한다는 것을 , 그래서 어린 나이에 철 없음을 빙자해  쌍둥이 형제를 쫓아내고 , 사십년이 지난 이제까지 까맣게 잊고 지내다가 재당숙모가 죽었다니 그 때의 미안함을 빌어 볼 량으로 온 것이었다 .

 

재종형이 궂이 전화까지해 안챙기던 안부에 상까지 챙기라고 하는데엔 모종의 죄의식 나누기 가 있는 셈이다 . 어른인 재종형과 문중어른들은 당시 이봉한 가족들의 어려움을 도왔거나 모른 척한 것에  또 , 죽어서도 애국지사를 어거지로 만들어 자신들이 혼자남은 재당숙모네를 떠안지 않으려는 꾀바름 .

그렇지 않으면 사실 그들이 붙여먹는 그땅들은 재당숙네 거니까 . 제 발저림에 대한 처사였달까 . 그리고 이선대는 문중어른들의 행위에 자신은 올곧은 척 속으로 재종형의 말들에 반발하며 땅을 돌려주거나 떼어주거나 세를 내어주거나 했어야하는게 아니었냐고 하는데 정작 말은 하지 않는다 . 그리고 생각난듯이 쌍둥이 형제들의 안부를 꺼내 묻는데 , 그런 그에게 재종형은 말하기를 몰랐냐 ? 그 애들 굶어 죽었는데 한다  .

그러니까 그때 자신이 쫓아낸 시점에 그들은 죽은 거였다 . 하나도 아닌 두 생 목숨이 , 굶어 죽는다니... 그 형제들의 길이 눈 앞에 그린듯이 보였다 . 보고도 안보이는 척 하는 사람들 . 떠나게 두는 사람들 ... 그리고 죽어 발견 된 것을 알리지 않는 사람들 .

인간을 잃어버린 인간들이 이제 또 모여서 죽은이를 애도 하는 척만 , 하는 것을 보게 된다 .

 

망연해 하는 이선대를 나는 냉정하게 볼 수가 없다 . 그는 말하자면 내가 잡으려 안달하는 그 표현의 어떤 것인듯해서  , 잃은 것이 뭐였더라 하고 기억이 날 듯 말듯 가물가물한 그 것같이 . 저도 모르게 가장 악한의 위치에 서 있었음을  기억해내게 되는 순간이 이렇듯 올까봐 , 그러나 아주 오지 않고 영영 모를까봐 더 두렵기도 한  , 이 어중간함 .

 

노릇만이 있었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며 , 겨우 시늉만 있었는데 , 그 시늉들이 지금의 체면이고 모양세가 되었다고 . 이 나라가 되었다고 . 그러니 그 안에 인간은 없다 . 아무도 ...시늉과 체 하는 무엇만 있을 뿐  ,

 

성석제 작가가 잃어버린 인간에서 들려주는 얘긴 어쩌면 아주 나쁜 사람도 좋은 사람도 없고 그저 잃어버린 사람이 있을 뿐이란 것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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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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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나이부터 바깥으로 나돌던 고모는 아닌 말로 되바라져 중학생의 나이에 가정 방문차 왔다가는 절름발이 선생님의 뒷 모습을 보곤 어쩐지 처연한 맘이 들어선 자기랑 어디로든 가자고 하고 그 길로 가출을 한다 . 참 당돌하고 주관 빠른 열 여섯 아닌가 ? 아주 대단한 집안은 아니었데도 조부는  마을의 면장을 지내는 터라 집안사람들은 말 그대로 조신을 타고 나야했는데 하필 경자라고 이름 지어진 이 고모는 박색에 마르고 볼품도 없어서 사람 취급을 못받은 탓에 ,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것이란 소리까지 듣는다니 가출이 놀라울 것도 없겠다 . 층층이 잘난 형제들까지 모르는 척 , 없는 사람인 척 하는 집에서 있고 싶었을까 ,  그렇게 따라간 선생의 집에서 100일을 채우려고 애쓰다 모진 시어머니 자리에 선생까지 마음을 돌려서 집으로 돌아오게 되고 그 뒤부턴 스스로를 부엌에 유폐 한다 . 십여년의 시간을 . 세간의 소문이 잠잠 해질 때까지 집에서 꼼짝도 못하게 한 이유도 있었다 , 나이 스물여덟이 되서 충남 보령의 역부에게 시집을 간다 .

그리고 시집 갈  당시 여덟살의 나이던 조카에게 느닷없이 삼십년만에  편지 한장을 띄워 한달정도를 머물 곳을 찾아 달라 부탁을 하는 고모 . 노인이 다되서  혼자하는 여행에 어떤 의문을 가질 법한데 부러 모른 척을 하는지 , 조카는 이유나 의도를 묻지를 않는다 .  그 집안 사람들은 예부터 원래 뭘 묻는 법이 없는지 , 고모에겐 미국으로 이민 간 아들하나가 있을 뿐이고 , 분당에 아파트도 하나 장만을 해두어서 먹고사는덴 별 걱정이 없어 보이는데 , 역시 혼자 일만하고 산 노년이 외로운 거다 . 곁에 누구라도 좀 있으면 싶은 , 그게  자식 아닌 조카라도 지난 삶을 술한잔 담배 한대 나누며 털어 낼 수 있다면 , 하고...

아들은 어릴때 지극한 효자였다 . 똑똑하고 착하고 어머니를 살뜰히 챙기는 , 남편은 아이가 어릴 때 갑자기 한센병이 들더니 불구가 되선 자살을 했다 . 어찌 어찌 마음 맞아 정붙인 홀아비 하나는 곗돈을 들고 날라서 그 여파를 다 뒤집어 쓰는 바람에 밤도망까지 해야했고 , 그래도 아들은 잘 키워 유명회사에 들어가 의사집안 딸과 결혼도하고 해외발령에 영주권까지 얻어 살고 있다고 한다 . 지금은 명절에 전화나 오는 정도라고  , 그런 거다 . 딸과 달리 . 물론 아닌 아들도 있지만 ,  그런데 이 나이든 고모가 유독 마음써 찾은 조카는 어릴 때 그나마 외로운 집구석에서 얼굴을 한번이라도 들여다 보곤 하던 아이라 그 인연으로 먼 제주까지 서슴없이 온다고 ...어딜 가려니 찾아갈 사람조차 없어서 . 가족이라곤 아무도 그녀를 사람취급도 않으니 ,  자신의 신세를 부리게 하고 싶지 않고 , 괜한 말이나 나올 만남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이해가 간다 . 자 , 그런데  제목이 왜 탱자일까 ...?

가시만 많고 먹지도 못하는 것을 , 이유는 그 절름발이 선생이 고모를 돌려보내며 탱자를 들려주곤 그게 노랗게 익을 즘엔 찾으러 가마고 약속을 했었단다 . 처음엔 , 집에 돌아왔을때 끝낸 것이 아닌 달래져서 돌려 보내진 형태였는데 , 몇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고 걱정되 찾아가 보니 소리도 없이 선생은 어머니가 자리 지어준 여자와 벌써 혼인을 하고  둘째가 곧 나올 터라는 얘길 듣게 되버린다 , 돌아서는 그녀에게 선생은 학교 울타리의 탱자를  따서 쥐어주며 그것이 익을 즘에 한번 가겠다고  , 그런다고 뭐가 달라질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탱자는 고모의 퍼렇게 멍든 마음이 누렇게 가라앉는 , 시간의 약이었다 .

또 여기서 저기로 옮겨 심어져 조금은 변화를 바라는 시간이기도 했고 , 해서  그 절름발이 선생은 약속대로 고모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찾아와 잘살라고 하고 돌아 갔다 . 그리고  고모는 이 여행을 나선 길에 그 선생의 고향엘 한번 더 찾아간다 . 수소문 끝에 마주한 선생은 퇴직해 아내는 암으로 먼저 보내고 자식들은 모두 출가시키고 혼자 살고 있더라고 , 그러며 다시 합치자고 하더라며 ,  조카에게 그런 얘기들을  제주도의 넓은 배추 밭에 주저 앉아 통곡을 하고 나서 멋쩍게 해치운다 . 조카에게 탱자 몇개를 주면서 .

"내 부질없는 마음엔 탱자를 갖고 물을 건너면 혹시 귤이 되지 않을까 싶어 들고 왔더니라 ."

하는데 , 귤화위지 (橘化爲枳) 를 생각하고 놀라는 조카,  배움이 짧은 고모라고 생각한 탓도 탓이겠지만 집 안에 어쩔 수없이 흐르는 피 같은 걸 느낀게 아닐까 ?

탱자나무의 가시 같은 어떤 뾰족한 부분을 , 그내력을 . 다 늙어 귀찮은 노인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 고모의 그 긴 세월에서 학문만이 가르침의 세월은 아닌 것임을 순간 깨닫게 된 것은 ... 그럼에도 , 고모의 몸에 철철 베인 담뱃진 같은 고독은 어쩔 수 없다 . 그때엔 몰랐으나 조카를 졸라 노지의 귤을 기어이 가져가는 고모는 이후 아무 연락이 없었는데 , 몇 개월 뒤 아버지와 전화 통활 하다 고모가 폐암으로 보름 전에 부음한 것을 듣게 되고 , 자신에게 다녀간 것이 마지막 인사를 겸한 여행이었다는 것도 뒤늦게 알게 된다  .  고모가 제주에서 가져간 귤은 무엇이 되었을까 ... 탱자 ? 가라사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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