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등급 그녀
진소라 지음 / 예담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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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살면서 내 인생이(혹은 나라는 인물이) 몇 등급의 등급으로 매겨질지(살아왔는지) 생각해 보게 만드는 책이 아니었나 싶다. 돈이 많아서 l등급, 젊어서 1등급, 외모가 출중해서 1등급, 학벌이 좋아서 1등급, 뭐 등등등등. 많은 분류 항목을 놓고서 1등급을 차지하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고 욕심이다. 그런데 세상살이 만만치가 않다. 분명하게 1등과 꼴등은 만들어지고 정해진다. 무엇이든 그 기준을 만들어 등급을 매긴다. 같은 점수라고 해도 영점 몇몇의 소수점에서도 합격 불합격이 나뉜다. 대학입학시험 같은 경우를 보면, 합격을 하더라도 수석이나 차석에게는 장학금이라는 ‘금일봉(?)’이 내려지고, 예비합격자(일명 후보자)에게는 ‘언제쯤 결원이 생겨서 나에게 연락이 오나.’하는 불안감과 초조함이라는 병을 하사한다. 그러한 병의 치료법은 단 하나, 누군가의 빈자리에 대신 들어갈 수 있다는 확답을 주는 전화 한통이다. 어찌되었든 합격도 다 같은 합격이 아닌 세상이다. ‘오직 1등만을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웃으면서 얘기하고 싶지만 웃음도 잘 안 난다. 상황에 따라 다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1등만을 기억하는 세상이 맞기도 하니까.

스물일곱의 세탁소 운영자(였던) 고우신은 매사에 까칠하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귀찮게 하는 이들에게 유독 더 독하게 군다. 아버지의 세탁소에서 일하던 남자가 새아버지가 되는 것을 인정할 수는 없었다. 아들 같은 나이의 배다른 동생을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자신을 창피하다고 감추려 애쓰는 가족들에게 굳이 얼굴 내밀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독립했다.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가족 따위 없어도 그만.
요주의 인물 신여사. 고우신의 엄마이자 잘나가는 커플매니저다. ‘마담뚜’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는 여자. 동네의 고시 합격생을 눈여겨보고 자신의 고객으로 만든다. 그리고 혈혈단신 장래 촉망받는 남자를 원하던 여자와 짝 지어준다. 자신의 딸 고우신의 6년 된 애인인줄도 모르고.
엉뚱하지만 그래도 진심은 남아있던 남자 윤승완. 커플매니저 신여자의 상사이자 대표. 자신의 아버지일지도 모를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사업체를 그럴싸하게 운영하고 싶어 한다. 사랑 따위가 밥 안 먹여주니 만들어진 탄탄대로의 길을 가는 게 옳은 거라고 누군가에게 가르친다. 그게 자신의 또 다른 길을 열어주는 것의 시작이 되었으니...

왜 ‘D등급 그녀’야?
결혼정보회사 등급 심사에서 고우신은 구라로 만들어진 자신의 이력을 넣는다. 물론 지금의 자신보다 훨~~씬 수준이 놓은 사람으로 만들어 입력했는데 D등급이야. 그래서 그녀, 고우신의 이름은 D등급 그녀다. 고우신이라는 이름은 필요 없는 세상, 번호, 혹은 등급으로 불리는 것. 성실하게 착하게 열심히 살아온 그녀가 아버지 병간호를 하느라 고졸이라는 학벌로 멈춘 것도, 직장인이 아닌 작은 세탁소를 운영했다는 것도, 당장 앞으로의 미래가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그나마도 거짓으로 넣은 정보로 D등급인 그녀. 그럼 현실 그대로를 넣었다면 우신은 도대체 몇 등급인거야?

착한 사람이 바보 멍청이로 여겨지는 세상.
우신이 6년 동안 고시생 애인을 뒷바라지 하고 병든 아버지를 병간호 하고 했던 것들을 누군가는 희생이라고 말하겠지만 우신은 자신이 선택한 행복한 일상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남자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함께 공부하는 마음으로 그 시간을 향해 같이 갔던 것, 가망이 없는 아버지였지만 그래도 눈 감는 그 순간까지 보살핌으로 함께 하고 싶었던 것도 우신의 선택이고 우신의 마음이었다. 누군가는 그런 것을 보고 바보 같은 짓이라고 할지도 모르지. 치열하게 경쟁하고 그 사이에서 살아남아야만 인정받고 잘 먹고 잘 살아가는 모습으로 보여질 테니까. 시대가 변하고, 거기에 맞아 살아가려면 사람 역시도 변한다. 변해야만 살아갈 수가 있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변하지 않기를 기대하는 것들이 있다. 사람의 선함을 기대하면서 살고 싶은 순간이 있고, 사람의 인생 등급을 나누는 기준이 겉으로 보이는 것만이 아님을 느끼고 싶은 순간도 있다. 아직은 남아있는, 수치로 보이는 계산이 아닌 인간미 있는 정서가 그리울 것이니까. 그런 의미로 고우신은 그런 사람이다. 자신의 모든 인생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 그 순간의 선택에 있어서 계산만 하지 않는 사람, 적어도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행동하는 사람. 그래서 지금까지 살아온, 앞으로 살아갈 그녀의 인생에서 D등급이 아닌 트리플A등급으로도 표현해도 모자랄 사람......
다이아몬드의 최상등급은 D등급이라지? D등급 그녀 고우신은 그런 의미로 보자면 최상급의 다이아몬드다.

알파벳의 순서로 D는 네 번째다. 승완의 결혼정보회사의 기준으로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파벳의 중간인 L이나 M에도 못 미칠 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중간보다 더 앞의 등급으로 분류되기 위해 발버둥 친다. 미친 듯이...
그런데 가끔은 A가 좋지 않은 때도 있다. 영화관에 가면 말이야. A열에서는 영화를 제대로 못 봐. 눈도 무지 아프고, 귀가 윙윙거려. A열에서 영화 보려면 고개가 뒤로 꺾여서 담 걸릴지도 몰라. 목과 어깨만 주무르다가 영화에 집중할 수가 없거든. 일반적으로 작은 상영관에서는 J열이나 K열, 조금 큰 상영관에서는 L열이나 M열에서 봐야 제일 편하게 잘 볼 수 있어. 알파벳의 중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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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의 문학 멘토링 - 문학의 비밀을 푸는 18개의 놀라운 열쇠
정여울 지음 / 이순(웅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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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요즘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들 중의 한 가지가 ‘나는 지금 왜 문학을 읽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책’이란 것을 읽고 있으나, 내가 읽는 책들 중에서 대부분은 문학을 즐겨하고 있으니 여기서는 문학을 두고 얘기한다.) 중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에도 읽지 않던 문학을 공부와도 전혀 상관이 없는 나이가 되어서 즐기기 시작했으니 웃음도 난다. ‘문학’이란 단어를 떠올려보면 국어시험에 등장하던 한 과목으로 밖에 생각이 안 된다. 밑줄 긋고 의미 파악하고 어떤 부분이 시험문제에 나올지 몰라서 달달 외우기가 먼저였던, ‘문학’이란 단어는 나에게 그런 의미로 남아있었다. 그러다가 몇 년 전에 무슨 마음이었던지 내 돈을 주고 사서 읽었던 한 권의 책을 시작으로 문학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즐기기만 했으면 좋았을 것을, 어느 순간 이제는 즐겨야만 하는 그 이야기들 속에서 알 수 없는 또 하나의 조급함까지 생겼다. 책을 빨리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빨리 읽고 다른 책을 또 얼른 읽어봐야지.’ 하는 우매한 욕심이 머릿속을 차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 권이라도 제대로 읽고 제대로 소화하고 가슴에 담는 것이 목적이 아닌 그저 많은 책을 읽어야만 한다는 쓸데없는 이유로 말이다. 결국 지금의 나는 문학이란 것을 좋아하면서도 동시에 읽기 싫어하는 정도의 상태가 되고야 말았다. 그러면서도 손에서 놓지는 못하고. 이게 무슨 아이러니인가 말이다. 그러다가 보니 나의 문학 읽기는 자꾸만 이상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었고, 좀 더 궁극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문제로 자리 잡았다. ‘왜 문학을 읽고 있는가?’ 하는 의문은 조금 약해지고, ‘어떻게 문학을 읽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의 자리가 점점 켜졌다. 그리고 딱, 지금, 그 답을 들려주는 순간을 만났다.

처음에 모르는 것을 배워갈 때 선생님이 필요하듯 문학 읽기에도 끌어주는 사람, 흔히 말하는 멘토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알았다. 무작정 읽기만 한다고 머릿속에 다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즐거운 기억으로 남는 것도 아니다. 각자가 문학을 만나야 하는 여러 가지 목적을 뒤로 하고, 우선은 문학 그 자체를 즐길 수 있어야만 그 다음 목적을 위해 문학을 이용할 수 있다. 그게 시험을 위해서든 개인의 지식을 위해 알아가기 위함이든 무엇이든 간에.

일단은 문학을 보다 잘 즐기기 위해서는 우리가 만나는 문학의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지침 같은 것이 필요하다. 문학을 구성하는 많은 도구들을 알고 문학을 만난다면 문학읽기는 더 깊어질 수 있고 더 유쾌하게 즐길 수도 있다. 문학을 왜 읽는 것인지, 문학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문학이 표현하는 것들이 어떻게 보이고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문학이 내 안에 들어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진정 문학의 힘은 무엇인지를 동시에 알아갈 수 있으면서 말이다.

문학의 미로를 해치는 18개의 열쇠로 문학의 보물섬을 찾아 여행을 떠날 수 있다.
문학의 즐거움을 배로 만드는 그 안을 들여다보는 맛은 썩 괜찮다. 문학은 정해진 공식에 숫자를 대입해서 딱 떨어지는 정답을 만들어내는 수학이 아니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시선으로, 표현법으로 다양한 해석을 할 수도 있다. 저자의 의미를 파악해도 좋고 그려내고자 했던 이야기의 흐름을 즐겨도 좋다. 한 권의 문학을 세상에 내놓은 저자가 의도한 대로 독자가 해석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고 해도 겁먹을 필요는 없다. 그런 것을 돕기 위해 이런 책이 존재하는 거니까.
그런 의미로 이 책의 저자 정여울은 문학이 가지는 다양한 표현법으로 패러디나 은유, 의인화, 알레고리, 시간과 공간, 판타지나 트라우마, 지구의 대재앙, 그리고 영원한 아이러니(이건 내 생각 ^^)로 자리하는 사랑을 포함한 18가지를 제시해주었다. 이렇게 제시한 18가지 표현 기법으로 문학으로의 여행을 통한 즐거움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여러 작품들의 구절들을 예를 들어 설명해주면서 어떤 부분에 어떤 표현법이 사용된 것인지를 알게 하고, 그러한 표현법을 쓴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왜 그 부분에서 그런 기법이 사용되었는지 어떤 의미로 사용된 것인지, 그 안에 숨겨진 상징들을 찾아내어 읽으면 더 깊은 문학으로의 음미가 가능하다. 알고 읽는 것과 모르고 읽는 것 사이에서의 이해의 거리는 상당히 멀다. 문학에 관련된 표현 기법과 상징의 의미를 알아차리고 읽는다면 그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더 잘 알아낼 수가 있다. 단순히 한 번 읽고 기억에서 지워버릴 이야기가 아니라면, 진정한 문학으로의 즐김과 이해가 필요하다면 알아 두고 읽으면 더 좋을 방법이다.

문학을 읽으면서 가장 의미를 두고 싶은 것, 문학이 가지는 힘.
문학이 가지는 힘에 대한 의미를 저자 정여울이 이 책을 통해 가장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여러 가지를 알고 읽어가는 것이 문학의 이해를 돕는 것이라면, 진짜는 문학을 읽는 우리의 마음속을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을 아닐까 하고 말이다. 우리가 왜 문학을 읽는지에 대해서, 문학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고 있기에 우리는 지금 이렇게 문학을 읽으려 하고 문학에 대해 알아가려 하는지를. 문학을 읽는 이유가 없다면 굳이 문학에 사용되는 표현 기법 따위 알 필요도 없는 거 아닌가? 알고 읽으려 애쓰는 이유 역시도 우리가 문학을 읽는 이유에 포함되는 것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저자는 우리의 삶, 세상, 그리고 인간을 사랑하게 만드는 법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문학의 힘이라고 했다. 부정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조금은 더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하고 공감하게 만든다. 어쩌면 문학이 가지는 힘은 저자가 말하는 것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우리의 삶, 함께 살아가면서 보게 되는 인간들을 사랑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서는 그 삶 자체를 더 애정을 갖고 바라보게 만드는 것, 문학이 그걸 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에 놀라기도 했지만 차분히 인정하게도 된다. 그동안 내가 문학이라는 것을 읽어오면서 어느 정도는 경험해 본 일이기도 하기에. 저자는 많은 문학작품들을 예를 들어 표현해주고 설명해주면서 그 의미를 더 들여다보게 하지만, 굳이 그러지 않아도 알아지는 게 있다. 알 수 없고 그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 없는지 몰라서 더더욱 상상력으로 그려지는 SF, 인간의 힘으로도 어쩔 수 없는 자연의 대재앙들, 누군가의 가르침조차 없을 사랑이란 것에 대해 알아가는 것. 굳이 그 순간에 맞아떨어져서 더 극을 최대화 시키는 장치들, 표현하는 감정들과 표정들, 그래서 더 감정을 만들어내는 순간들이 있다. 그게 위로가 될 수가 있고 화를 풀어내는 구실이 될 수도 있다. 누군가를 이해하는 공감이 될 수도 있고 새롭게 무언가를 알아가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문학이 우리 삶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경험하는 사람에 따라 그건 다르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그게 잘못된 받아들임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저자가 들려주고 제시해주는 것들이 누구에게나 100% 소화가 되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문학으로의 좀 더 가까운 접근은 충분히 유도해 낸 것 같다. 문학을 만나기 위해 우리가 알아두면 좋을 것들과 문학을 통해 우리가 같이 만날 수 있는 그 많은 이유(의미)들 중의 한 가지 정도의 공통된 의미는 전달되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를테면 문학을 통해 저절로 전해지는 ‘위로’ 같은...
문학은 인간의 가슴에 새겨진 상처의 눈물과 피를 먹고 자라나는 영혼의 원시림이다. (203)
인간의 가슴에 담긴 그 상처와 눈물을 모두 보듬어낸다는 문학이니 얼마나 대단한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흘러내리는 눈물 한 방울마저도 닦아낼 수 있는 손수건이 될 수 있는 것, 그게 문학이 가지는 가장 큰 힘이 아닐까 싶다.

저자가 말하기를, 청소년기와 청년기인 10대와 20대가 아직은 세계관이 확립되지 않았을 시기인데, 그런 시기에 문학을 만난다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지만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만큼 중요한 시기에 만나는 문학의 역할도 덩달아 중요해지는 것이 아닐까. 그들이 문학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것은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구체적으로는, 이 책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문학의 이해를 돕기 위해 써졌지만 이미 어른의 눈으로 문학을 읽고 있는 내가 보기에는 청소년이라는 대상에 멈출 필요는 없는 듯하다. 문학을 즐기고 계속 만나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 누구에게라도 함께 하면 좋은 멘토가 될 것 같은 책이다. 알고 읽으면 더 재미있고 깊어질 수 있는 문학의 세계를 경험했으니 즐거운 문학 멘토를 만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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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 잔혹극
루스 렌들 지음, 이동윤 옮김 / 북스피어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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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른 이들이 볼 때는 별것 아닌 것처럼 생각되는 일도, 자기 자신에게는 끔찍한 공포로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나 같은 경우, 그런 공포감이 생기는 경우 중의 한 가지는 승용차를 탈 때이다. 가족이 운전하는 차의 조수석에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가 났었는데 바로 내 눈 앞에서 앞차의 뒷부분을 들이 받고 난 사고였다. 우리 차의 앞쪽이 완전 찌그러지고 연기가 막 피어오르는 것을 눈 뜨고 보는 그 순간 나는 누가 나를 흔들고 있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멍한 상태였다. 그저 차에서 내려 사고 수습을 하면 되는 일인데 앉은 자리에서 발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다친 곳은 없었는데 며칠 동안 밥을 못 먹을 정도로 속이 울렁거렸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나는 승용차의 조수석에 잘 타지 못한다. 부득이하게 타게 될 경우는 안하던 차멀미를 하고, 심하면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줄줄 흐를 정도다. 가끔 친구의 차를 탈 때도 조수석이 비어 있어도 일부러 뒷좌석에 탈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친구는 이렇게 한 마디 한다. “나는 김기사이고 너는 사모님이냐?” 그래도 나는 꿋꿋하게 뒷좌석을 차지한다. 난 소중하니까.

누군가는 그런 공포를 ‘활자’에서 느낀다. ‘활자’로 인해 사람이 공포감을 느끼고, 심리적 압박감이 생기면서, 결국 살인도 가능한 일이 되기도 한다는 것. 믿어지는가? 도대체 그 ‘활자’가 뭐기에, 문맹이 무엇이기에. 도저히 믿을 수 없지만 그런 일이 일어났다. 유니스 파치먼이 그런 일(문맹으로 인한 공포로 결국 살인까지 저지른 일)을 일어날 수 있는 가능한 일로 만들어 버렸다.
“유니스 파치먼은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기 때문에 커버데일 일가를 죽였다. (5페이지)”
이유는 오직 하나.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기 때문에 일가족을 죽이는 무시무시한 일을 저지른 것이다. 사십 넘은 인생을 살아갈 때까지 아무도 그녀가 문맹인 것을 몰랐다.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었고, 알아차리는 사람이 있다면 협박을 하면 그만이었다. 모든 것이 가능했다. 먹고 자고 외출하고, 일상적인 생활이 문맹이어도 가능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에 유니스가 고용된 가정에서 그녀의 문맹이 탄로가 난다. 그래서 그녀는 저질렀다, 일가족을 살해하는 일을...

단순히 그녀의 문맹이 탄로 났다고 해서 살인을 저지르게 된 것일까? 문맹은 일종의 시각 장애다. (38페이지) 문맹이 가져오는 폐해는 단순히 ‘읽고, 쓰고’를 못하는 불편함이 아니다. 보이는 것(읽지 못하고 쓰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공포로 인하여 내면의 심리는 불안정해지고, 그 공포는 쌓이고 쌓이다 못해 정신적인 질환까지 가져오기도 한다. 게다가 활자와 관련된 그 모든 것과의 벽을 철저히 쌓아간다. 특히나 이 책 속의 유니스 같은 경우, 그 차단의 벽이 높아서 타인과의 교류 역시 허용하지 않는다. 타인과의 교류가 없으니 자기 자신 이외의 상태에 대해 신경을 써야할 필요도 없고, 가장 기본적인 인간애가 없다. 그 인간애는 어느 순간 사라졌던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녀 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문맹이었던 그 순간부터. 그런 그녀에게 유일한 교류는 TV 범죄드라마였다. 범죄를 저지르고, 형사는 사건을 해결하고, 범죄자는 범죄의 은닉의 기술을 보여주고, 때로는 완전범죄도 만들어낸다.(허구이니까!) 그 유일한 교류가 그녀의 범죄를 돕고, 아무렇지도 않게 범죄 후의 일상까지도 만들어주기까지 한다.

그럼, 그런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유니스만 잘못인 것인가?
손에 피를 묻히고, 실제 누군가의 생명줄을 끊어놓는 일을 한 것은 유니스가 맞다. (물론 그녀의 동료(?) 조앤도 있었지만, 여기서는 유니스의 심리만 들여다보도록 하자.) 하지만 유니스가 문맹으로 인하여 공포를 쌓아가는 것을 돕던 것은 커버데일 가를 꽉꽉 채운 책장이었다. 여기저기 책장들과 책들로 채워진 사방을 보면서 유니스의 압박감은 더해졌다. 유난히도 독서를 많이 하던 커버데일 일가의 존재가 그녀를 더욱 구석으로 몰았던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대단한 학력과 가진 자의 여유, 피고용인으로부터 존경(?)받고 싶었던 특권의식들이 그들만의 계급을 나누었던 것이다. 그래서 ‘주인님’이란 호칭을 듣는 것도 즐겨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던 우월감을 넘치게 드러냄으로써 유니스의 삶을 휘두르려 했기에 결국은 예정되어 있던 비극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유니스는 불편하지 않았고 원하지도 않았던 일을 참견(유니스에게 멜린다는 글을 가르쳐주려 하기까지 했다.)하려 함으로써 고용인이 가지던 계급의식과 오지랖이 살인까지 불러온 것이다. 아주 비극적으로...

반면,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눈을 뜨고 감는 그 순간까지 모든 것들이 보고 듣고 쓰는 것들이다. 하지만 유니스처럼 문맹인 사람은 그 문맹이 불편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문맹 탈출을 시도하지 않는다. 그저 그 상태로 머물러 있는 것이다. 유일한 소통의 창구인 TV가 고장이 났음에도 전화번호부를 뒤질 수 없었던 그 순간이 끔찍했을 것인데도 그저 고장 난 TV를 끌어안고 있었을 뿐 고치려 애쓰지 않았다. 보통의 사람들(문맹이 아닌 사람들)은 TV가 고장 난 그 짧은 순간도 견디지 못해 여기저기 전화통 불나게 돌리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 문맹이 주는 불편함을 모르는 것도 하나의 비극이다.

알 수 없는 어떤 작용에 의해, 유니스의 머릿속에서 그들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 활자로 바뀌어 버렸다. 그들은 책꽂이에 꽂혀 있는 존재이자, 흰 종이 위에 군데군데 박힌 검은 존재였다. 유니스가 증오했던 동시에 갈망해 마지않았던, 그녀의 영원한 적. (206페이지)
자신의 비극(여기서는 문맹)을 감추고 싶은 사람의 심리가 폭발하던 순간과 가진 자의 특권계급의식이 불러오는 위화감과 우월감이 서로 섞여서 만들어내는 끔찍한 일가족 살해사건은, 범인이 밝혀지고 나서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서늘함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범행이 밝혀지고 범인(유니스)이 잡혔음에도 전혀 죄책감 같은 것은 알지도 못한다는 분위기를 연출하는 사람을 눈앞에서 보게 된다는 것은 어떤 섬뜩함일까? 문맹이 가져왔던 정서적인 장애가 만들어낸 최대의 교훈이 아닐까 싶다.

예전에 <유니스의 비밀>이란 제목으로 한번 출간된 적이 있는 이 책이 지금 새로운 번역본으로 다시 태어났다. 300페이지도 되지 않는 분량에, 게다가 유니스 파치먼이 살해범이라는 것을 알려주면서 시작하는 그 섬뜩함까지. 오래전에 출간된 책이지만 지금의 세태와 사뭇 다르지 않은 일들이기에, 거기다가 인간의 심리를 가지고 엮어내기까지. 추리소설로 즐기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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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레빌라 연애소동
미우라 시온 지음, 김주영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딱 두 가지 이유로 이 책을 만났던 것 같다. 작가의 전작 <로맨스소설의 7일>을 상당히 흥미롭게 읽었다. 소설 속 이야기와 현실을 왔다 갔다 하면서도 불편하지 않게 그려지는 전작 단 한편으로 미우라 시온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고, 이 책을 선택하게 된 또 다른 이유. (일단 한번 웃고. ^^) “주책없다 하겠지만 섹스가 하고 싶네.” 이 책의 소개 글을 보면서 이 문구를 안 본 사람 없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그 사람의 속내를 들어보고 싶었다. 누군가는 주책없다 말할 것을 알면서도 굳이 이런 진심을 말하는 이유와 사정. ‘내가 한번 들어줘야지.’ 하는 마음이었다. 물론 이 말을 한 사람이 도대체 누구인지도 궁금했다.

“주책없다 하겠지만 섹스가 하고 싶네.”
한적한 주택가 골목의 낡은 2층 건물 고구레 빌라. 고구레 빌라의 주인은 고구레씨가 저렇게 말했다. 70이 넘은 노인이 어느 날 갑자기 섹스가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이유도 참 뜬금없었다. 병에 걸려 죽을 날을 앞에 두고 누워있던 친구가 자신의 아내가 자신과의 섹스를 거부했다는 말에서 고구레씨는 갑자기 고민한다. 자신이 섹스가 하고 싶었다는 것을 기억해낸다. 물론 그 대상이 자신의 아내였으면 좋겠지만, 아내와는 여러 가지 이유로 안 될 것 같다. 그때부터 고구레씨의 고민은 시작된다. ‘누구와 언제 어떻게 섹스를 할 것인가’ 하는…….

자칫 몇 가지만 보고 이 책이 코믹스러울 것이다, 혹은 읽지 않고서 가지는 선입견 같은 것을 갖고 볼 수도 있는 책이 될 것 같다. 나 역시도 상당히 가벼운 책이라 생각했었으니까. 그런데 이 책은 고구레씨의 섹스에 관한 고민 뿐 아니라, 고구레 빌라의 거주자들과 그 주변인들의 이야기가 함께 들려오는, 일곱 명의 사랑과 성 이야기다. 단편집이라기보다는 일곱 명의 주인공들이 차례로 등장하는 (혹은 앞의 이야기와 뒤의 이야기에 같이 등장하는) 연작소설로 보면 좋을 것 같다. 떠나버린 애인이 찾아와서 지금의 애인과 셋이서 동거 아닌 동거가 시작되는 여자의 이야기, 낡은 빌라의 구멍 뚫린 바닥을 통해 아래층의 여자를 훔쳐보는 남자, 남편의 외도를 흙탕물 맛이 나는 커피 맛으로 찾아내는 여자, 누군가의 불임과 누군가의 임신이 가져오는 허망한 사람의 마음, 음식의 맛으로 거짓말을 탐지해내는 여자, 지하철 역사에 생겨난 이상한 기둥을 보는 여자와 남자.

가지각색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저마다 살아가는 방식도 다르고 환경도 다르다. 그들 각자의 성(性)이야기라고 해서 공통된 주제가 된 것 같지만, 실상은 그들의 성(性) 보다는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저마다의 속사정을 들려주는 이야기였다. 그 안의 일부가 성(性)이었을 뿐이고. 남들이 보기에는 문란하게 살아가는 사람 같아도 그 안의 아픈 사연이 있었고, 누군가의 거짓을 보고 음식 맛이 변한 것을 알아챈 여자는 그 어떤 음식도 선뜻 맛 볼 수 없게 된다. 사람들이 가지는 거짓이 바로 음식의 맛으로 표현되는 것이기에 다른 이가 만든 그 어떤 음식도 먹을 수 없게 된 여자의 속사정이 있다. 눈으로 확인하기가 미처 두려웠던 남편의 외도를 잡아낼 수밖에 없었던 아내의 마음도 여기 있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그런 이들 쯤의 하나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당사자에게는 그 무엇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큰일인 것이다. 살아가는 시간들의 고통이 될 수도 있는 문제들이다. 그게 한때의 것으로 끝이 날지 오랜 시간 계속 될지는 모르지만 그 시간은 그렇다. 견디기 힘든 시간으로 보내지고 기억될 것이다. 고구레 빌라의 입주자 모두에게는 각자 그런 사연들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에서의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음침한 주제가 아니었다. ‘섹스’라는 단어가 풍기는 것이 이렇게 발랄하고 유쾌한 느낌인 것도 맛보기 힘들 것이다. 이들이 풀어내는 그 솔직함에 웃음이 저절로 난다. 그게 어이없음의 웃음이건, 정말 우스워서 내는 웃음이건 웃긴 건 마찬가지다. 이런 소재를, 이런 느낌으로 풀어내는 것도 작가가 가진 재주가 아닐까 싶다. 적어도 어느 음지에서 들을 만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무언가를 몰래 엿보아야만 보이는 것도 아니었고, 이상하게 들려서 피해야할 것도 아니었다. 인간이 가지는 원초적인 욕구에 이런 맛깔 나는 양념을 더해서 맛있는 음식으로 만들어 내다니. 풋~!

사람들이 가지는 연애 감정의 그 말랑말랑함, 그 안에 자리 잡을 사랑. 저마다가 다 달라도 그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공감할 수 있다. ‘사람은 그런 것이다.’라고 단정 짓고 싶게 만들 정도로 마음으로 통하는 무언가가 남아 있다. 그게 고구레 빌라 입주자들이 분명 다 다름에도 불구하고 하나로 보이기도 하는 이유일 것이다. 사랑하고 연애하고, 이별도 하고. 좋았던 마음처럼 또 힘든 마음도 찾아온다. 고구레 빌라 사람들의 마음이 그랬다. 그러면서 그들은 알게 모르게 서로를 드러내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가만히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있었다. 굳이 자신들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런 역할을 서로에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게 사람의 정일지도 모르겠다.

조용한 주택가의 오래되고 낡은 목조 아파트, 판자 하나로 구분되어 있는 2층 건물의 방 여섯 개짜리, 그것도 네 가구만 사는 고구레 빌라. 건물 외벽은 갈색 페인트, 나무 창틀은 하얀색 페인트로 칠해진 그 곳. 하지만 낡은 그 빌라의 외관과는 다르게 사람들의 살아가는 냄새로 충만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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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칙한 연애
김은정 지음 / 테라스북(Terrace Book)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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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미친X처럼 웃고 싶었으나 소리 내지 않고 웃느라 힘이 들었다. 100페이지 정도까지 읽었을까, 입술을 깨물고 웃다가 찢어져서 피가 났다. 당연하게 입술에 멍도 생겼다. 엄마가 어이없어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시기에 (가끔 책을 읽다가 이렇게 숨이 넘어갈 정도로 웃어댈 때 엄마가 쳐다보시는 그 눈빛을 해석하기가 어렵다.) 소리 내어 웃기가 민망하다. 이럴 땐 혼자 있는 장소에서 읽어야 하는데, 마침 병원 진료 대기실에서 그러고 있었으니 엄마가 그런 눈빛을 보내는 상황을 알 만하다. (엄마, 미안~! 엄마가 예뻐라 하시는 뚱땡이쌤 앞에서 내가 그런 추태를 부려서...)

작가의 전작 두 편(종이책 일반문학으로만)에 대해 상당히 호감을 가지고 있던 터라, 이번 작품 역시 기다렸다. 작가에 대한 팬심이라기 보다는 그저 그동안의 만났던 분위기를 다시 한 번 만나보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컸다고 생각한다. 역시나 그 기대감은 저버리지 않았다.
방송국 아나운서인 유채. 이름만 아나운서지 고정 하나 없이 자리만 지키고 있는 신세다. 더군다나 사내 연애를 하던 애인은 같이 일을 했던 여자 피디와 바람이 났다. 마침 개편 시기, 유채는 또 물 먹고 분노의 폭발을 일으킬 상황이었는데, 그럴 때 마침 같은 방송국 시사고발 프로그램이 눈에 들어온다. 해당 프로그램 홈페이지에 애인의 바람돌이 행실을 고발한다. 차마 저장 버튼을 누를 수 없어 망설이는데 컴퓨터가 먹통이 되고 삭제 버튼을 마구 누르던 유채는 당연히(?) 저장이 안 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먹통이 된 컴퓨터를 강제 종료하고 일어선다. 헐~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 삭제 버튼 막 누른 것은 저장이 되어 게시판 도배가 되어 버리고... 싱글맘이 되겠다고 정자를 기증 받아 임신한 동네 언니 소영과 같이 산부인과를 찾았던 유채는 당장 게시글을 지우라는 전 애인의 전화를 받고 고함을 친다. “아기가 낙서야? 지우게?” 그 말을 지나가다가 들었던 산부인과 의사 소닥(닥터 소윤표)은 유채를 임산부로 오해한다.
그렇게 오해와 오해와 오해 속에서 유채와 윤표는 자꾸만 엮이게 된다. 윤표 덕에 국민산모라는 칭호를 얻은 유채가 메디컬 다큐를 찍기 위해 윤표네 병원에 가게 되고, 방송을 찍는 동안 유채와 윤표는 티격태격, 동지가 되었다가 적이 되었다가, 의사와 리포터의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였다가... 뭐, 정이 든다는 얘기지. ^^

방송(혹은 방송국)을 소재로 하는 이야기는 많이 있어왔지만, 이번 작품에서 만난 재미는 칙릿이라는 소재와 메디컬 다큐가 만나서 보여주는 재미였다. 내가 만난 칙릿이라는 장르를 기억해보면 조금은 가볍고 유쾌하게 넘기면서 충분한 재미를 주는 게 목적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조금은 가벼울지 모를 ‘칙릿’과 진지한 ‘다큐’가 만나서 풀어내는 이야기는 웃음과 감동을 준다. 소독약 냄새에 코를 막고 싶을 정도로 병원을 안 좋아하는 (병원 좋아하는 사람 없겠지만, 특히나 주기적으로 병원을 다니는 사람이라면 더 싫겠지.) 사람이 메디컬이라는 소재를 만난다면 더더욱 진지하게 볼 수밖에 없다. 생과 사를 넘나드는 곳, 때로는 기적을 바랄 수밖에 없는 상황, 알게 모르게 느껴지는 흰 가운의 권위, 어느 조직이든 상하가 존재하고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나는 순간들. 그 안에서 유채와 윤표, 그리고 더 많은 인물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다.

방송이라는 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아가는 재미와 병원이라는 그 독특한 분위기의 장소와 그 안의 사람들이 풀어내는 이야기들을 듣는 맛이 상당하다. 개성이 각각 다른 인물들의 활약도 볼 만하고, 시시각각 들려오는 에피소드가 즐겁다. 물론 눈물을 빼게 만드는 인간적인 감동도 선사한다.

전체적으로 무난하고 즐겁게 흘러가는 이야기들 속에서 특히나 내가 들여다보고 싶었던 인물은 여주인공 유채다. 유채라는 인물과 유채의 가족들의 이야기가 어느 막장 가족의 이야기 같으면서도 사랑이 넘친다. 치매 걸린 할머니, 공사장 막노동판의 십장 아버지, 쉰이 넘도록 조카들을 위해 혼자인 고모, 막나가는 날라리 인생 남동생. 이들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모여 행하는 이기심보다는 ‘가족’이라는 이유로 행하는 배려가 눈물겹다. 투박하고 거친 욕설 앞에서도 정이 느껴진다. 그리고 유채의 삽질 인생도 남달라서 참 사는 재미가 있을 것만 같다. ^^

가끔 마음이 어지러워 속이 울렁거릴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어떤 처방전도 필요 없고 그저 조용히 그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기다린다.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시간이 흘러가던지 말든지 울렁거리는 속이 조금은 다른 것을 통해 다독여지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딱 그러한 타이밍에 만났던 책이다. 실컷 웃으면서 상당히 진지하기도 했다. 참으로 상투적인 그 말 (책에 그런 표현은 안 쓰고 싶지만) 적당한 재미와 감동이 있다. 적당한 때, 딱 어울리는 의미로 이런 책을 만날 수 있다는 건 독자로서 누릴 수 있는 최대의 행운이자 특권이 아닐까 싶다. 작가의 다음 작품도 저절로 기다려본다.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이며, 그 어떤 책을 대하더라도 지나친 기대감으로 시작하는 것은 안 된다고 감히 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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