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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형사 베르호벤 추리 시리즈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서준환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두께에 밀려 손대기 힘든 마음이었다가 어느 순간 그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몰입하게 되는 책이 있다. 내가 만난 이 책 『알렉스』가 그랬다. 표지마저 눈길을 끌어 더더욱 궁금증으로 시작한 책이었는데 결국 그 궁금증을 해결해주면서 동시에 눈물마저 흐르게 하는 이 책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 그녀, 알렉스가 저질러놓은 일들의 결과만으로는 아무 것도 설명되지 않는다. 알렉스가 살아온 그 시간에 대해, 감춰진 의미들에 대해 알아야만 이해할 수가 있다. 이 책의 내용도, 알렉스의 이야기도.

실종된 한 남자의 아버지가 한 여자를 납치하면서 이유를 알고 싶어지게 하는 이야기가 시작이다. 왜 그녀를 납치했는지, 그녀를 납치한 그 남자는 누구이며 어떤 관계인지를 알아가야 할 것들로 이야기는 계속된다. 그런데 단순히 한 여자의 납치사건으로 알고 수사를 시작한 일들이 점점 다른 방향으로 간다. 납치되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탈출한 그녀의 신원은 아무도 파악할 수조차 없었고, 납치한 이의 행방은 묘연하다. 뭐, 결국엔…….

그녀의 이름이 나탈리이자 레아이자, 로라, 줄리아, 엠마, 끌로에인 이유. 정작 자신의 본명인 알렉스라는 이름은 마지막에 가서야 드러난다. 알렉스는 매번 다른 이름으로 남자들을 만나고, 그 남자들을 살해한다. 살해 방법도 잔인하다. 연장을 이용해서 머리를 강타하고 마지막에서는 꼭 입안으로 농축된 아황산을 들이 붓는다. 그녀는 왜 그 남자들을 살해했을까, 많은 살해 방법 중에서도 유독 그런 잔인한 방법을 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하는 궁금증을 읽는 내내 갖게 한다. 도대체 왜?

그게 추리소설의 매력인 것 같다. 모든 사건을 앞에 두고 궁금해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 그리고 독자는 그 이야기의 시선들을 저절로 따라갈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 특이나 이 소설은 계속되는 살인의 나열에 속이 거북하기까지 해지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읽어갈 수밖에 없었다. 잔인한 그녀의 살인을 즐겁게 구경하는 것이 아닌, 그 이유를 끝까지 함께 하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카미유 반장의 죽은 모친이 남긴 그림 경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카미유 반장의 사적인 이야기와 알렉스의 이야기 그리고 수사과정이 타이밍 절묘하게 교차적으로 들려온다. 카미유 반장이 들려주던 자신의 슬픈 이야기는 어머니가 남긴 그림을 처분하면서 모든 아픔을 내려놓는 과정이었고, 알렉스의 살인과 수사과정이 진행될수록 드러나던 알렉스의 이야기는 상처로 더 깊게 들어가는 계단이었다. 그렇기에, 아픔과 슬픔 그 사이에서 축적된 분노, 결국은 그 분노를 터트려야할 시기가 오고야 말았기에 우리가 보고 있는 이 모든 장면들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이유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해서 살인이 정당화 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왜?’라는 의문에 마침표는 찍어줄 수 있기에, 그 ‘왜?’에 대해서 독자로 하여금 눈물과 분노가 동시에 터트려지게 만드는 공감을 만들어내고 있으니 씁쓸할 뿐이다. 세상에서 일어나서는 안 될 일들이 이 책 안에 농축되어 꾹꾹 눌러서 가득 담겨 있는 것만 같다.

처음 남자에게 납치된 상태에서 알렉스는 묻는다.
"왜 나인가요? 왜 하필 나예요?"
남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왜냐면...... 너니까."

계속되는 살인에서 죽어가는 남자들은 알렉스에게 이렇게 묻고 싶었을 것이다.
"왜 나인가요? 왜 하필 나예요?"
그럼 알렉스는 그 남자들에게 이렇게 대답하겠지.
"왜냐면...... 너니까."

남은 건 투명하게 드러나야 할 진실과 처벌일 텐데,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인과응보라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긴다. 마지막 장의 문구처럼 진실보다 정의라는 미덕이 제대로 발휘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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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너]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디너 매드 픽션 클럽
헤르만 코흐 지음, 강명순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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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포함된 구성원 관계에서의 일은 지극히 주관적이 될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 아니, 너무 자주 그렇다. 객관적인 눈으로 봐야함에도 불구하고 핏줄이나 지연 관계에서는 법도 규칙도 무시하는 일들이 종종 그대로 진행될 때가 있다. 사람이니까 그럴 수도 있는 문제일 수 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사람이니까 그럼 안 되는 일들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이름부터 우아한 디너(만찬).
파울과 세르게 형제 부부가 디너를 즐기기 위해 만난다. 예약조차도 어려운 레스토랑에서.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살짝 감춰둔 상태로 천천히 식사를 즐기기 시작한다. 이들 형제의 너무나도 다른 성격과 위치(형은 차기 총리 후보, 동생은 전직 교사이면서 현재 무직)는 식사 내내 보이는 말투와 행동으로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으며, 특히나 인격적인 장애를 가진 동생 파울의 모습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정작 이들이 보여주고 있던 것은 살짝 가면을 하나씩 쓴 것 같은 모습들이었고, 이들이 그 가면을 벗어야만 하는 시간이 점점 다가오면서 이들이 즐기기 위해 모였던 그 자리의 진짜 의미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당신이 자식을 지독하게도 사랑한다면?
어떻게 키우고 어떻게 가르쳐야 옳은 것인가를 냉정한 시선으로 보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파울과 세르게 형제 부부가 디너를 위해 만난 그 자리는 사실은 각자의 자식들이 저지른 만행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의논하기 위해 만난 자리였는데 자신들이 가지고 있어야 할 욕심에 바탕을 둔 그 대응책은 차라리 눈을 감고 싶어지게 만들 정도로 잔인하고 분개할만한 방식이었다. 곧 총리가 될지도 모를 세르게는 갑작스러운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세르게의 아내 바베테는 총리부인이라는 명함을 포기할 수 없어서 그런 세르게를 저지하고자 한다. 파울은 자기가 가르친 방식대로 행하는 아들의 잘못된 방식을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파울의 아내 끌레르는 오직 제 자식을 감싸기 위해 세르게의 얼굴에 상처를 입힐 지경에 이른다. 잘못된 것에 대해 잘못을 지적해주는 것이 어른이고 부모일 텐데, 이들의 자식 사랑은 너무도 끔찍하고 자신들이 가지는 위치에 대한 욕심은 너무나도 커서 옳은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 것 같았다. 이들의 사고방식은 오직 하나였으므로. 내 자식은 무조건 감싸야 하고, 내가 가진 것을 절대 놓을 수는 없다는 마인드.

이들의 욕심을 한 번 더 보여주는 대목은 정치를 하는 형인 세르게가 이미지 관리를 위해 입양한 아이를 키우고 있는 모습과 함께 보여주었던 쇼맨쉽이었다. 진심에서 우러난 것이 아닌 필요에 의한 입양과 철저한 계급사회를 그대로 아이들에게도 적용시켜 살아가게 만들었던 점이, 결국은 그런 거짓된 마음과 모습들이 일을 더 크게 만들게 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테지.

 

읽다보면 우습기까지 하다. 도대체가 어디까지 갈 셈인지 몰라서 책장을 덮을 수 없게 만들었다. 끝까지 그들의 행보를 따라가 보고 싶어지게 만들기까지 하더라. 그래서 결과까지 보고나서야 그들을 독자인 내가 심판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멈추지 못하고 계속 그 길로 가고 있는 이들에게 어떤 심판을 내려야 할지 내 머릿속은 갑자기 차가워지기도 했다. 온기로는 이들의 모습들을 덮어줄 수 없었기에. 인간이, 부모가, 이래도 되나 싶은 마음에 철저하게 우울해지기까지 했다.

때로는 팔이 바깥으로도 굽을 줄 알아야 한다.
이들 형제의 아이들의 저지른 일들은 ‘그래, 숨겨두자.’하는 것으로 덮어야 할 일이 아니다. 이미 파울의 아들 미헬의 사고방식과 행동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꼭 그때여야만 하는 일들이 있다. 더 이상 나아가기 전에 딱 그때 그 순간, 해야 할 일. 미헬에게는 누군가와의 공유로 덮어둘 범죄가 아니라, 그 잘못을 가르치고 옳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어야 하는 때였다. 힘을 가진 자가 밟아 누르는 방식이 아니라 잘못한 것은 인정하게 만들고 반성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가르쳐 주어야 할 때.
일부러 부러뜨리지 않는 이상 팔은 안으로 굽는다. 하지만 안으로 굽는 그 팔이 때로는 바깥으로도 굽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할 때가 있다. 그건 자신이 그렇게도 사랑해 마지않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가능해지는 일일 수도 있다. 내 아이가 지금 성장해가는 인성과 미래를 위해서라면 팔을 부러뜨려서라도 바깥으로 굽게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무엇이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하는지는 알고 있는 현명함이 있으니 가능한 일 아닌가?

두 시간에 가까운 식사 자리에 동참하면서 소화는 잘 되었는지 모르겠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그 이름도 기억하기 힘든 럭셔리한 메뉴로, 우아한 분위기에 가식적인 미소를 띤 채, 양도 적어 입에 닿기도 전에 사라질 음식들로 식사는 잘 하셨나?
가끔은 답답하고, 가끔은 나의 일로 생각하게 만들고, 가끔은 흥분의 도가니로 빠지게 만드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 소화제를 미리 준비해두고 읽어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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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 이병률 여행산문집
이병률 지음 / 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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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 일기예보가 맞는다면 아마도 내일까지는 계속 내릴 것이다. 비를 좋아하지도 않고, 개운하게 내리는 비도 아닌 오늘 같은 날에는 손에 잡히는 책도 잘 만나야 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자칫 감정을 희한하게 건드리는 책을 만나면 이유도 없이, 활자 하나에 머릿속은 먼 여행을 떠날 수도 있고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우울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라디오를 통해 먼저 알게 된 이름이다. 이병률. 한밤중에 들려오던 그 감성이 남자 작가라는 말에서 한번 놀란 적이 있다. 남자 작가는 뭐 그런 감성으로 쓰지 말라는 법이 없는데도 이상하게 가지고 있던 선입견이 내게도 있었나보다. 나에게 한밤중의 라디오는 ‘여자 작가 = 발라드 노래 가사 같은 두 시간의 흐름’이었기에 말이다. 내가 다시 한 번 이병률이라는 그 이름을 기억했을 때는 <끌림>이란 책을 통해서였다. 그리고 거의 7년이란 시간이 흐른 지금, 또 어떤 가슴 떨림으로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게 될지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사뭇 궁금해지는 시간들이었다.

바람이 분다.
그래서 떠나게 되기도 한다. 바람이 불어오는 그 순간, 바람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 같은 사람도 불어오는 그 바람에 몸을 맡기고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지기도 하는 걸 보면 아마도 저자는 그렇게 떠난 게 아닐까 나 혼자 추측해보기도 한다. 완벽하게 준비하고 계획하여 떠나는 것이 아닌 그저 마음이 끌려서 내딛은 발걸음이 여행이란 이름으로 계속 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목차도 페이지수도 없는 이 책이 그래서 더 여행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어떤 페이지를 펼치면 그의 발걸음이 이런 공간에 닿았구나 싶어서 한 장의 사진을 보게 되고, 또 다른 페이지를 펼치면 그 길을 걸으면서 그가 했던 생각들과 그가 보았던 느낌들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듯했다.

 

그리고
그 공간과 그 생각들을, 그곳에서의 사람들과 풍경들을 담아냈다. 한눈에 봐도 이국적인 풍경들이 담긴 사진들, 누군가의 사연이 있을 것만 같은 사물들, 이방인에게 다가서는 현지인들. 낯설지만 그래서 더 마음을 풀어놓고 사람을 대하는 순간들이 있다. 며칠 혹은 몇 달을 지내게 되는 그 낯선 곳에서는 사람들의 마음을 나누는 찰나가 크게 작용한다. 저자가 들려주던 이야기들이 그래서 더 떨림을 가져온다. 그가 여행하는 그곳은 내가 여행하는 곳이 되고, 그가 만난 사람들은 내가 손잡고 악수하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그 풍경 하나하나에 내 눈이 담고 마음이 내는 소리는 마치 내가 그곳에서 저자 대신 걷고 있는 착각을 하게 만들기도 하기에…….
여행도 싫어하고 짧은 거리의 어딘 가로도 가기 싫어하는 나에게 호기심을 자극하게 만드는 장면들을 만날 때면 숨이 잠시 멈춰진다. 누군가를 위한 현지 관광을 안내서가 아닌 저자가 그 순간순간을 기록한 이야기들 때문이다. 오직 그 순간에 그 자리에 있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감성들을 가슴에 들인 것만 같아서.


# 36 무조건
꼭 만나야 할 것 같은 사람이 있다. 꼭 만나게 될 것 같은 사람도 있다. 그 사람을 만나게 되는 상황도 있다. 어쩌면 그 사람을 만나 사랑하게 되는 경우까지도.
......
살면서 모든 것을 털어놓아도 좋은 한 사람쯤 있어야 한다. 그 한 사람을 정하고 살아야 한다. 그 사람은 살면서 만나지기도 한다. 믿을 수 없지만 그렇게 된다.


당신이 좋다.
바람이 좋아서 떠난 길, 그 길 위에서의 살아있는 감각들을 온 몸으로 담아낸 것, 내 안에 남아있을 많은 것들까지.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여행이 전부일수도 있고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길일 수도 있고, 당신의 웃음마저 좋아하게 될 일일 수 있는 것일 테지. 변화되어 가는 모습마저 좋아질 수 있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나와는 다른 당신의 색깔, 이해할 수 없었던 당신의 생각, 소통하지 못하는 당신의 많은 것들마저 좋아질 것임을 안다. ‘다름’을 알아가고 배워가게 만드는 그 순간들이, 장소와 시간과 계절의 이동으로 알아지는 것들이, 그래서 더 소중하게 남아있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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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만화 구두 세트 - 전4권
박윤영 지음 / 애니북스 / 2012년 3월
품절


어른이 된 후에 만화라는 것에 관심 갖거나 시간 때우기 용으로라도 읽어볼 생각 그다지 안 하고 살았다. 만화라는 장르 자체에 대해 잘 몰랐다고 하는 게 가장 솔직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던 내가 뭣에 꽂혔는지 이 만화책을 손에 들고 읽기 시작했다. 그림이 너무 예쁘니까, 이야기가 궁금했으니까, 그와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으니까.

사랑을 하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사랑이 두려운 여자.
스물여덟의 신지후는 직장상사 오태수 대리를 좋아한다. 지후는 자신의 마음을 오대리에게 표현할 것인지 아닌지 하는 오락가락하는 마음과 오대리도 자신을 좋아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당연하지. 누군가를 마음에 담은 사람은 상대도 자신을 좋아해주길 바라는 마음을 저절로 갖게 된다. 자신이 하는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하지만 지후는 사랑을 시작하려는 마음보다 두려움이 더 크다. 지나간 사랑이 남기고 간 상처와 흉터가 다시 사랑을 하기 어려운 겁쟁이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후는 오대리에게 용기 있게 한발 나아간다. “좋아해요.”
사랑을 믿는 것보다 연애를 하는 남자.
남자 나이 서른하나. 연애를 하다가 끝나도 별 상관없다는 마음이다. 그냥 선을 봐서 결혼하면 되지 하는 마인드로 살아가는 오대리. 그러다가 본의 아니게 지후의 진심을 알게 된 순간 이 남자에게도 사랑의 마법이 쓰이기 시작한다. 근데 그거, 지후가 오대리를 좋아한다는 거, 그 나이에 사랑이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한 오대리에게 잘된 일일까?

예전에 누군가가 그랬다. 사랑을 했던 그 순간의 자신의 모습을 사랑했던 게 아니었냐고. 사랑을 하는 그 사람의 행복했던 얼굴이 자꾸만 보고 싶어서 사랑 그 자체가 아닌 사랑하는 그 시간을 사랑했던 것을 그 사람을 사랑했다고 착각하는 것이 아니냐고. 하지만 사랑을 하던 그 시간을 사랑했던 것이라 해도, 그건 사랑이 아닌 게 되는 건가? 정말 그건 사랑이 아니야? 그 모습을 사랑하던 시간도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은 사랑하는 그 마음이 표정으로 말하는 것이기에 그것 역시 사랑이라고.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생각해 보게 되더라. 지난 시간의 내가 했던 그것들을 자신 있게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지, 사랑이 아니라면 내 기억 속에서 그 시간들은 무엇으로 저장되어 있는 건지 다시 한번 꺼내어 봐야겠다고.

이 책을 읽고 있는 나는 이 여자 신지후를 사랑하게 되었다. 아니, 지후의 사랑을 사랑하게 된 것 같다. 이 여자 신지후, 밀당도 못한다.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얼굴에 바로 표가 나는 여자. 그래서 더더욱 오대리를 좋아하는 그 마음도 숨겨지지가 않는다. 아니다, 지후만 그런 거 아닌 거 아냐? 그렇잖아, 누굴 좋아하는 사람은 표가 나잖아. 폭풍우와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에도 사랑을 하는 사람의 얼굴은 햇빛 쨍쨍한 맑은 날인 것과 같은 표정이잖아. 그래서 인정하기로 한다. 자신이 더 사랑해도, 자신의 너무 퍼주는 마음이어도 괜찮다고, 내 사랑은 그런 거니까 그대로 하기로 한다고. 바보스러워 보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순수함은 남아있는 그 모습이 더 설레게 만들었다. 어쩌면 내가 지금 가지지 못할 마음이기도 한 것 같아서 더욱 지후의 사랑에 응원을 보내면서 읽어갔는지도 모른다. 지후의 사랑이 해피엔딩이어야만 세상에 사랑이 남아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한편의 로맨스소설을 읽은 듯한 느낌이다. 소설에 그림까지 더해져서 더욱 영화 같은 이야기라고나 할까. 그런데 이 이야기를 그저 소설에나 있는 이야기, 만화니까 그럴 수 있는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지후와 오대리의 이야기는 사실 내가 보기에 많은 부분이 너무 현실적이라 ‘만화라서 그래.’라는 말을 감히 할 수가 없었다. 사랑을 하는 누군가의 마음과 표정, 자꾸만 더 다가가고 싶은 마음, 한밤중에라도 그 사람에게 달려가는 이유가 되어주는 거. 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능한 일들이다. 그렇게 지독한 사랑을 앓고 났어도, 사랑을 겁내하면서도, 또 다시 하는 게 사랑이다. 물론 그 전과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어 사랑할 수도 있다. 여전히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게 사랑이지만, 그 모양도 다르고 마음도 다르고 더 어려울 수도 있는 것 또한 사랑일 테니까.

사랑과 이별, 그리고 다음 사랑의 사이에서 우리는 고민하고 또 두려워한다. 다른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다른 사람과 복습하듯 다시 익숙해져야 하는 그 시간들이, 다시 그전과 같이 마음을 다해 누구를 대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두려움이 또 다른 사랑에 주춤거리게 만들기도 한다. 그 순간을 넘어서야만 새로운 사랑에 한 걸음 나갈 준비가 된 것일 텐데도 여전히 그 자리에서 두려움만 가지고 맴돌기다. 이 책 속의 임주임의 말처럼 말이다. 다시 시작해야 하는 많은 순간들이 겁나는 것이다. 그렇게 흘려보내야 할 시간도, 장담하지 못할 사람의 마음도, 혹시 찾아올지 모를 이별을 미리 떠올리는 것도.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것을 우리가 지워낼 수 없으니 사랑을 하면서 진행되었던 많은 일들이 영화 필름처럼 머릿속에서 미리 상영되고 있는 것이다. 예고편처럼 짤막한 영상이 아니라 엔딩크레딧까지 올라간 이미 끝난 영화처럼. 그래도 우리는, 다시 또 사랑을 하게 될 테지? 아마도…….

제목만 보고서는 이 책이 여자만을 위한 만화라고는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읽으면서 이 이야기에서 들려주는 여자의 마음을 남자도 좀 들어주었으면 싶고, 남자의 마음을 여자도 이해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내내 들었다. 더 이상 금성이나 화성에서 온 외계인들처럼 서로를 표현하는 일 보다는 서로의 별에서 조금씩 섞여가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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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힘]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개의 힘 2 밀리언셀러 클럽 125
돈 윈슬로 지음, 김경숙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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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사준다. 그것들 중의 하나는 총이 될 수도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생각했던 것 중의 하나는 무슨 아이들 총싸움 놀이를 보는 것 같았다는 것이다. 단지 실제 총알이 있고 피가 튀기고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실제 이별을 했다는 것이 다를 뿐이라고. 그렇지만 그 차이가 너무 어마어마하지 않아?

30여년 가까이 계속되었던 미국과 멕시코의 마약 전쟁사이다. 물론 이 책은 소설이니 그 사실과 허구의 사이는 독자의 느낌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하지만 그게 실제를 보여준 것이든 실제에 재미를 더한 허구이든 이 이야기를 읽어가다 보면 눈앞에서 한편의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는 장면들이 너무 생생하다. 그래서 이들의 모습 속에서 한바탕의 긴 싸움이 끝난 다음의 폐허를 보는 모습은 저절로 그려진다. 남은 것이 하나도 없는, 그 긴 시간을 피만 낭비한 악의 전쟁 같은.

상당히 많은 등장인물들이 처음에는 헷갈리게 만들기도 했지만 역시나 그들의 마약 역사에서는 빠질 수 없는 인물들이었다. 계속되는 마약들의 이동, 부정한 거래와 부패한 관료들, 마약과 돈이면 천하를 가진 듯한 실권자들. 악으로 보이면서도 그런 악으로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 역시 악으로 채워진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씁쓸한 현실을 기억해 내게 만들었다. 그 악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움직이고 변화하고 진화할 것이니.

계속해서 이어지는 복수, 또 복수. 승리를 위해 계속되는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이라 감히 표현할 수 있는 싸움들. (내용만 바뀌었지 지금도 계속되는 전쟁들 아니야?) 그들이 보여준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는 정도로 내가 본 이 책은 온통 빨간색이었다. 피가 멈추지 않는 빨간 색으로 가득 채워진 것만 같은, 이 책의 중심인물인 아트와 아단이 보여준 악의 진짜 모습들은 그 빨간 색에 더 진하게 덧칠을 하는 것만 같았다. 둘 다 악이 자신을 채운 모습을 줄기차게 보여주고 있었으므로.

실제로 있었던 일들이 부분적으로 녹아있기도 하고 그 안에 심어둔 인물들의 캐릭터는 그 실제의 안에서도 그려진 인물들로 보인다. 사람 죽이는 일을 밥 먹듯이 하는 것 같지만 멋진 장면들에서는 또 멋진 것이니까. 두 권의 페이지 수만큼이나 내용 또한 방대해서 자칫 흐름을 놓치면 지루해질 수도 있었으나, 나처럼 편식이 심한 사람이 끝까지 읽어간 것을 보면 이 책 자체가 주는 흥미로움은 어쩔 수 없이 살아있는 것 같다. 덕분에 미국과 멕시코 간의 마약전쟁(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에 대해 접할 수 있었고, 그들이 보여주었던 전쟁 속에서 그 누구도 절대 악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책의 제목이 왜 ‘개의 힘’인지 궁금했는데, 이 설명이 딱 인 것 같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말로 인간이 아무리 애를 써도 내보낼 수 없는 악과 모두에게 내재된 악의 가능성을 ‘개의 힘’이라 표현한다고 한다. 이 책 속의 인물들이 보여주었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개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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