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 : 삶의 군더더기를 버리는 시간 배철현 인문에세이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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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바로 이 순간을 낚아채십시오!"

우리는 보통 라틴어 격언 중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대사 덕분에 유명해진 Carpe Diem을 두고 "지금을 즐겨라"로 번역하지만, 사실 동사 carpo(carpere)에는 그보다 더 적극적인 뜻이 담겨 있습니다. 풀을 쥐어뜯듯, 혹은 꽃을 꺾듯(...) 좀 강렬한 동작을 본래는 언표하는 동사(verb)지요. 무심히 흘려 보내는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한 느낌 등이, 사실은 돈, 명예, 쾌락보다 훨씬 중요한 보물이고 축복임을, 우리는 흔히 잊고 삽니다. 저자 배철현 교수님의 강력한 권고는 바로 그런 절실한 외침을 표현합니다.

누구나 무대에서 가장 부각되고 싶고, 중요한 역할을 맡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회는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고, 안타깝지만 가장 빛나는 주연 하나를 위해 나머지는 봉사하는 조연, 단역에 머물러야 합니다. 무대는 각자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때 큰 박수를 받고, 이때 느끼는 성취감은 주조연과 단역이 따로 없습니다. 예전에 이준구 서울대 교수님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누군가(아마 타 교수의 TA였던 듯)가 뻘뻘 땀을 흘리며 기자재를 나르자, "그래, 누군가는 해야 할 일 아니겠어?"라며 격려하시던 모습도 생각 납니다.

저자는 어린 시절 주일학교에서 성탄제 연극을 하며, 마음 속으로는 요셉 역(아마 남자아이가 맡을 역 중에는 가장 중요했겠죠?)을 하고 싶었기에, 고된 나귀 가면을 문득 벗어던지고 친구의 주연을 대신 차지하고 싶던 충동이 일던 당시를 떠올립니다.

"만약 그때 내가 느닷 일어서서 요셉 연기를 했더라면, 연극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어떤가요. 꼭 주일학교가 아니라도 무대에 서서 다른 친구들을 빛내 주는 역할을 땀흘려 해 내던 체험은 누구나 있을 겁니다. 운동회 때 고싸움이나 차전놀이 같은 것도 비슷한 기회 아니었겠습니까. 이때 자신에게 일단 주어진 역을 무시하고 벌떡 일어나서 주인공 노릇을 하겠다며 돌출 행동을 보인다..... 사람인 이상 갑작스러운 충동이나 주목 받고 싶은 욕구는 누구나 갖게 마련입니다. 허나 우리는 심지어 그 어린 나이에도, 타인에게 민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 경우 없이 주인공 행세를 하겠다고 설치면 얼마나 꼴사나울까 같은 (뜻밖에 대견스러운) 자제심 때문에, 돌출 행동으로 전체 무대를 망치는 사고는 저지르지 않습니다. 나뿐 아니라 다른 친구들이 그런 짓 하는 것도 자주 겪지 못 한 걸 보면, 이처럼 자기 역할에 충실하여 전체의 앙상블을 제고하려는 의무감도 사람에겐 하나의 천성인가 봅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꼭 보면, 나잇값 못 하고 자신이 무슨 탤런트나 영화 배우나 된 양, 혹은 사방의 각광을 받고 데뷔나 한 양 유명 작가의 환영에 사로잡힌 얼띤 광대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행여 길거리에서 나를 알아보고 느닷 캐스팅이라도 되어 신분 상승이 일거에 이뤄지기라도 할 것처럼, 도대체 현실 감각이 없고 분수를 모릅니다. 그의 머리 속에는 온갖 막장 드라마가 근본을 잃고 뒤섞여 썩은 짬뽕의 난장판을 이루며, 마침내 남편과 자식에게도 버림 받은 채 가축보다 못한 늙으막을 보내며 궁핍에 찌든 일상에 침몰할 뿐입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나답지 못한 것을 과감히 버리십시오!" 거짓된 아바타는 버려야 합니다. 머리통(그런 걸 머리라고 부를 수 있다면)으로부터 군내나는 남의 짬뽕사리를 솎아낸 후, 빈약하고 허술하나마 자신의 시냅스를 채워 넣여야 합니다.

Nunquam ponenda est pluralitas sine necessitate

이 말은 윌리엄 오캄이 그 출전으로서, 진리를 구명하거나 논증할 때 가능하면 가장 단순하고 명쾌한 방법이 최상이라는 뜻에서 표명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컴의 면도날"이란 더 업축된 표현으로도 이 원칙을 잘 알고 있죠. 경영학 중 마케팅론에서,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디자인은 그저 외관의 꾸밈이 아니라 그 기능성의 가장 압축적인 표현"이라고 합니다. 군더더기가 없고 간단 명료하되, 본연의 기능을 가장 잘 수행하는 모양새야말로 최상의 디자인이란 뜻입니다. 만약 앞의 예에서, 나귀가 행여 요셉 같은 주인공의 역할을 탐내지는 않았다 쳐도, 혹시 주연에의 미련 때문에 연기 중에 쓸데없는 추임새나 시늉을 넣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 역시 연극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위험 요소로는 손색이 없습니다. 잉여의 동작이나 부품은, 그저 불필요한 게 아니라 위해(危害) 요소인 것입니다. 보헤미아의 종교개혁가 후스는 자신의 화형대에 장작을 지고 나르는 노파를 보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O sancta simplicitas!" (아, 저 성스러운 단순함이여!)

제 할 일을 말 없이 해 내는 나귀 같은 노파, 이 노파의 잔손길로 화형주에 묶인 후스는 곧 처참한 죽음을 맞을 운명이었으나, 이 성인은 그 와중에서도 진리의 일각을 나꿔챈 것입니다. 책 서문의 "지금 이 순간을 나꿔채십시오!"라는 말은 그래서 더욱 울림 깊게 들립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문법(그람마. γράμμα)은 단순히 단어를 배열하는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전략적으로 단어를 배치하여, 같은 배열 속에서도 이중삼중으로 의미가 해석되게 하여, 마침내 독자에게 가장 선명한 의미와 심상만을 남기는 고도의 지성적인 작업이었던 셈이죠. 저자는 말합니다. "그람마는 곧 최적의 배열이며, 그래야 글이 감동적이고 아름답다."

저자는 하버드대에서 라틴어, 헬라어, 그리고 인류 최초의 언어 중 하나인 수메르어를 가르치는 톨키드 야콥슨 교수의 강의를 기다리던 그 설레는 순간을 기억합니다. 이처럼, 최고의 스승은 역시 최고의 스승에게 배운 분이라야 그 적통(適統)의 맥을 잇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여기서 저자는 자신이 강의를 듣던 그 방, "룸-G"에서 책들마다 고유의 냄새를 풍기던 그 묘한 감회를 다시 떠올립니다. 책들은 저마다의 역할과 개성으로 그 오랜 세월의 더께를 자신의 몸에 입혀 왔습니다. 책들은 "자신 아닌 것"의 부호와 개성을 과감히 떨쳐 내고, 대신 "자신 다운 개성"만으로 내면을 채웠습니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수련, 정진"의 효과입니다. 그 본체는 "나 아닌 다른 잡스러운 걸 제거하고, 온전한 나로 되돌아가는 노력"입니다.

저자는 앞에서 "체조 선수의 근육에는 불필요한 부분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그의 몸은 아름다우며, 동시에 그 몸이 빚어내는 동작 역시 아름답다"고 쓰셨습니다. 우리도 야구를 볼 때, 홈런을 예사로 쳐 내는 강타자의 스윙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는 걸 느낍니다. 인생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필요 이상의 사치나 호사는 모두 잉여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컨대 백화점에서 과도한 소비를 하며 남보란 듯 무분별한 투전(投錢)을 일삼는 자는, 사실 내면이 빈 열등감을 만회 못 하여 일부러 쇼를 하는 중입니다. 그런 자에게는 그 어러석음의 대가로 반드시 하늘에서 천벌이 떨어져 소정의 시련을 치르게 할 것입니다.

시련이란 무엇입니까? 저자의 말에 따르면 불필요한 군살과 잉여 근육을 몸에서 제거하여, 혹독한 훈련 끝에 마침내 흉한 살이 모두 커팅되고 연기에 필요한 근육만 남은 그 운동선수의 아름다운 상태를 만드는 게 바로 시련이라고 합니다. 그는 고된 훈련을 견디다, 어느새 자신이 겪는 시련을 보다 초연한 자세에서 관조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실패자로서 주저앉느냐 아니면 다른 존재로 거듭나느냐의 갈림길입니다. 이를 두고 고대 그리스인들은 "페이라조(πειράζω)"라고 불렀는데, 저 어미(語尾)에 붙은 -ω나, 라틴어 carpo의 -o나 모두 1인칭 직설법 현재를 뜻합니다.

그래서 다시 우리들은 수련의 장으로 들어옵니다. 군더더기를 제하고, 허상과 허풍과 거짓을 솎아내고, 오롯이 우리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안식과 마음의 평화가 찾아옵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근육은 부단히 수련해야 하며, 훈련 없는 근육은 마침내 무감각에 이른다. 환각은 자신을 훈련하지 않은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 그는 점차 자신에게 존재하지 않는 '헛것'을 추구하는 환각에빠진다." 얼마나 무서운 결과입니까. 인생이 싸구려 막장극과 근본 없는 판타지의 혼합으로 추락하지 않으려면, 저런 망상을 버리고 부단한 수련(修鍊)에 집중해야, 우리네 생이 수련(睡蓮)처럼 아름답게 거듭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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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즈 혼 - 성공은 시간이 아니라 깊이다
최우형 지음 / 더난출판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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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즈의 혼(魂)! 많은 분들은 영업사원이라고 하면 그 불안정하고 변수 많은 위상 때문에, 행여 혼담이라도 나올라치면 손사래부터 치곤 합니다. 그러나 요즘은 주변에 남들 입이 떡 벌어질 만한 성공 사례도 많이 나오고, 어차피 어느 직장이건 평생 봉직할 만한 여건이 안 되고 보니 뭔가 재평가가 이뤄지는 듯도 한 분위기랄까요.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에 보면 캐릭터 한병태는 대기업 취업을 마다하고 세일즈의 길을 택하는데, 유능한 인력이면 처음부터 이쪽으로 승부를 걸지 그 위태롭고 사상 누각 같은 직장에는 안 들어간다는 소신을 밝혀서 1980년대(혹은 그 이후) 독자들을 의아하게 만듭니다. 어쩌면 자본주의의 꽃은, 실력 있고 잘나간다는 전제 하에, 세일즈맨이란 직종일지 모르며, 이 직역에서 통하는 교훈이라면 다른 어느 분야에서도 명심할 교훈으로 두루 적용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탑 세일즈맨이 쓰신 책들을 자주 읽는 편입니다.

많은 성공자들이 그런 말씀을 하십니다만, 직장도 처음 입사해서 3개월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하죠. 입사 후에 좀 부족한 건 느긋이 차근차근 배워 가면 될 듯해도, 이 첫 3개월에 어떻게 자신의 주형(鑄型)을 빚느냐에 따라 평생이 결정된다는 게 저자 최우형 대표님의 말씀입니다. 첫 3개월의 수련 기간을 알차게, 독하게 보내야겠다는 각오도 각오입니다만, 벌써 안 되는 사람은 "나중에 하지, 대충 하지" 같은 생각으로 회사에서 허투루 시간을 보낸다는 게 또 문제입니다. 이 첫 석 달이 내 평생을 좌우한다는 각오이면, 어찌 하루하루가 마치 내무반에서처럼 바짝 군기 든 채 보내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나는 할 수 있다"가 아니라, "나는 모든 준비가 되어 있다"라야 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p65). 제가 개인적으로 예전에 읽은 어떤 책에는 "나는 성공할 것이다"가 아니라, 이미 성공을 다 해두었다는 마인드셋으로 나가라고도 하는 걸 봤습니다. 이 말은, 성취해 둔 바도 없으면서 얼토당토 않은 환각에 젖어 요행을 바라고 주변에 사기나 치면서 지내라는 게 아니라, 그 반대로, 성공의 과실만 몽롱하게 탐하지 말고, 정말 성공한 CEO들이 하루하루를 긴장감과 책임감으로 무장하며 지내듯 이미 전쟁터의 실감으로 자신을 무장시키라는 소립니다. 이걸 실천에 옮겨 보면 사람 자체가 벌써 달라져 있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몸이 다 뻐근해 옵니다.

"문제가 발생하면 허겁지겁 그 당면 문제의 해결 과정에만 파묻히곤 한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건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다." (p49) 주된 원인을 파악 못 하고 땜질식 처방에만 그치면 이는 문제가 언제나 재발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두는 셈입니다. 저자는 비유를 들며 "배에 물이 새어들어올 때 양동이로 빨리 퍼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출발 전에 물이 새지 않게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시야의 차이가, 세일즈맨(혹은 다른 어떤 직종이라도)의 성공과 실패를 가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앞서 제가 세일즈맨만큼 장래가 불확실한 직업도 없다는 게 우리 사회의 통념이라고 적었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p41에서, "보통의 성실한 사람들이 선택했을 경우, 50% 정도는 반드시 성공하는 게 이 직업"이라고까지 말씀하시네요. 이어서 저자는 "그만큼 정직한 직업이며, 땀을 쏟은 만큼 반드시 성과가 나오는 게 이 일이다"라고까지 강조합니다. 그런데 대체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저성과자로 몰리는 걸까요? 답은 역시, 기본을 안 지켜서입니다. 문제가 터지기 전에 미연에 방지를 하지 않고, 허겁지겁 고식지계, 언발에 오줌 누기 식으로 대응하니, 당장은 문제가 해결되었는지 모르나 시일이 지나면 미봉해 둔 문제가 오히려 더 커집니다. 우리 속담에 "게으른 농군이 해거름에 바쁘다"라는 게 있는데 딱 그 격입니다.

정말 노력한 만큼 성과가 나오는 게 세일즈인가? 그저 화려한 말빨과 겉치장, 혹은 뒷돈 거래로 성패가 결정되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이야말로 사회 생활을 제대로 해 보지도 않은 채 섣부른 피해의식과 부정적 사고부터 먼저 가동하는 실패자들의 공통된 관점입니다. 저자의 말씀에 따르면, "정기적이고 체계적인 활동과 스킬, 지식이 결합된 집합체이자, 종합 예술과도 같은 고도의 전문 직업"이라고 합니다. 사실 아무리 모바일 앱 구매가 일상화한 4차 산업 혁명 시대에도, 꼭 그 웨어를 다루는 사람을 보고 나서야 구매를 결정짓고 싶은 게 있기 마련입니다. 제6의 센스가 발동되어야 일이 잘 풀리는 직업이야말로 전문직의 특성이고, 그러면서도 정직한 노력이 결실을 보고야 마는 직종이라는 게 놀랍습니다. 여튼 저자는 이 관점에서 세일즈 프로세스 7단계를 제시합니다. (p42)

step 1 가망 고객 확보 (processing)
step 2 전화 접근 (tel-approach)
step 3 초회 면담 (approach), 사실과 느낌의 발견 (fact finding)
step 4 상품 설명 (prersentation)
step 5 거절 처리 (objection) 및 체결 (closing)
step 6 보험 증권 전달 (policy delivery. 책에는 오타가 난 듯해서 바로잡았습니다)
step 7 가망 고객 소개 (referral leads)

저자는 책 곳곳에서 감동적인 말씀을 자주 꺼냅니다. 예를 들면, "선택이야말로 인생의 특권"이라는 겁니다(p117). 아무리 소소한 체험이라도 내가 선택하고 내가 골라 내가 가꿔나가는 건 남다른 성취이며 축복입니다. 반면 아무리 화려하고 부러운 시선을 받더라도 내가 고른 게 아니라 그저 남에 의해 부여된 거라면 이는 노예의 금장식 족쇄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자는 설령 맛나고 값비싼 음식을 먹어도 내가 고른 메뉴가 아닌 이상 가격만큼 효용이 느껴질 리 없다고 말합니다.

반면, 내가 고른 모든 선택이 최선이었나요? 현재 다니는 직장은 내가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일터였습니까? 많은 이들이 이에 대해 부정적인 답변을 할 것입니다. 저자는 이처럼, 최선 다음에 차선을 고르는 프로세스 역시 인생을 슬기롭게 살아가는 필수 지혜라고 강조합니다. 처음부터 원하던 진로는 아니었으나, 신중하고 체계적으로 목표에 접근해 가다 보면 어느새 내가 가장 원하고 적성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일터가 되어 있는 것, 이를 두고 저자는 "준비된 선택이 접근적 선택으로 진화해 가는 과정"으로 부릅니다. 이를 위해 저자는 1) 신중, 2) 결단력, 3) 갈망과 열정 등이 필요 조건으로 골라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계획 없이 닥치는 대로 일을 고르면 커리어가 망가지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사회의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지게 된다고 합니다(p119). 저자는 이 대목에서 한국의 어느 자동차 수리 명장의 예를 드는데, 그는 소리만 듣고 원인을 찾아내는데,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인생을 입체적으로 관리하며 치밀하게 설계해 온 이라야, 이런 장인, 달인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가 세계 각국의 자동차 엔진을 자비로 구해 일일이 독학으로 그 구조를 공부하고, 행여 해외에 나가 연수할 기회라도 생기면 반드시 백 퍼센트 활용하여 자기계발의 밑천으로 삼는다고 합니다. 인생 전반에 대한 알뜰한 배려와 전략적 사고가 있어야만 이런 경력 구축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당신은 언제 만족하고 행복을 느끼는가? 언제나 직업인은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줄 알아야 합니다. 저자는 때로 정해진 틀에 안주하지 말고, "파괴적 성장"에 도전해 보라고 권합니다. 무슨 뜻인가 하니, 목표는 동일하게 잡고 평소처럼 노력을 했으나 의외로 성과가 저조할 때가 있으며, 반대로 평소를 훨씬 상회하는 실적을 거두기도 합니다. 이는 실제로 진지하게 일을 해 본 사람이면 한두 번은 느꼈을 법한데, 그 비결(혹은 실패의 원인)을 두고 저자는 "열정의 차이"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진짜 잘나갔는데, 지금은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어." 이런 말은 우리 주변에서 너무도 흔히 듣죠. 그런데 세상 살기가 그만큼 더 어려워지고 사회가 팍팍해져서일까요? 저자는 단언컨대 "노"라고 합니다. 세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어전히 만만한 곳이 아닙니다. 변한 건, 일상에 길들여져 무사안일주의로 흘러 버린 당신의 마인드셋, 혹은 퇴색한 열정입니다.

결국 열정을 자신의 일에 쏟을 수 있느냐 아니냐가, 모든 크고 작은 과업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요소란 게 저자의 말씀입니다. 다시 책 제목으로 돌아가 보니 "세일즈 혼"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미쳐야(狂) 미친다(到)는 말도 있고, 예전 인텔의 CEO였던 앤드류 그로브는 "편집광이 될 정도라야 성공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무엇인가야 오롯이 나 자신을 바치는 체험은, 어쩌면 종교보다도 더 큰 희열을 본인에게 안기고, 덤으로 세속에서의 짜릿한 성공도 가져다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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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1
이민진 지음, 이미정 옮김 / 문학사상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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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킨스와 톨스토이의 손길이 일본에서 살았던 한국인 가족에 스며든 (놀라운) 작품이다."

위의 평가는 이민진 미국 변호사의 이 작품을 두고 소설가 게리 쉬테인가드가 내린 것입니다. 확실히 가장 정확한 평가인 게, <올리버 트위스트>나 <어려운 시절> 등 대작에 묘사된 가장 힘든 계층의 고단하고 치욕적인 삶이 잘 드러났을 뿐 아니라, 그런 시련의 와중에도 오히려 빛을 발하는 인간애와 연대 의식이 페이지마다 스며 있기 때문입니다. 글쎄요, 우리 한국의 독자들은 예컨대 <토지>라든가, 선우휘 선생의 <노다지> 등 장편을 통해 일제 강점기 하 겨레의 수난을 픽션 속에서 여러 번 접해 왔고, 주변에는 아직도 그 시절을 가장 아프에 살아 오신 분들이 여럿 생존해 계시기까지 하죠. 그래서 "또 그 얘긴가?" 같은 반응이 혹시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안될 일입니다. 이런 민족 전체의 수난사에는 어떤 "면역 단계"란 게 있을 수 없습니다. 일본이 그 국왕이나 정부 차원에서 허리 굽혀 통절한 사과를 한 후에도, 우리는 이런 수난과 모욕의 역사를 영혼에 각인시키고 미래를 펼쳐 나갈 의무가 있습니다. "용서는 하라, 그러나 잊지는 말라."는 유대인들의 유명한 경구처럼 말입니다.

배경은 1930년대 전반 식민지 조선의 경상도 해안 지방입니다. 착하고 힘도 세지만 언청이에 몸이 비틀린 불구로 태어난 훈이는, 그 장애의 인자가 후손에까지 물려질까 두려운 이웃들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혼사도 치르기 어려운 처지입니다. 하지만 그 양친이 너무도 사려 깊은 분들이고, 이처럼 알차게 인생을 살아온 분들에게는 어떤 식으로건 선행과 성실에 대한 보답이 이뤄지게 마련입니다. 양진이라는 선하고 심지 굳은 여인과 결혼하고, 그 사이에서 순자라는 딸을 낳습니다. 이 1권은 대체로 순자의 일생 전반, 즉 목사 백이삭과 결혼한 후 오사카로 건너가 그곳에서 겪은 온갖 질곡과 시련 가득한 여정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종종, 식민지 시절에 경제는 오히려 괜찮았다는 왜곡된 평가를 듣곤 합니다. 그러나 역사는 일단, 그 시절을 몸으로 살아낸 산 증인의 말을 우선 청취하고 뭘 평가해도 평가해야 합니다. 이민진 변호사가 물론 그 오래전 시절에 자신의 생 한 구간이라도 닿을 나이는 아닙니다만, 이렇게 생생한 묘사가 가능하려면 직접 증인에게 사연을 들었어야 가능하지 않았겠습니까?

창작 동기는 1989년 예일대의 어느 강연에서,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내내 따돌림당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어느 학생의 사연을 들은 일이라고 나옵니다. 이 사건은 워낙 유명했고 당시 한국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켜 KBS에서 특집 드라마로 제작, 방영하기도 했죠(이 변호사께서 강연을 들은 건 1989년이지만, 사건은 그보다 몇 년 전에 일어났습니다). 이 경험은 이 변호사가 아직 법대생 시절이었을 적이고, 이후 그녀는 일본계(이 점이 너무도 중요하군요) 미국인 남편(금융인 전문직)을 만나 일본에 건너가 살게 되고(오사카는 아니고 도쿄라고 하네요), 이후 관련자의 증언, 취재를 통해 이 장편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일본계라고 하면 우리는 아무 상관 없는 민간인에다가 괜한 증오의 시선을 보내는 못난 태도를 종종 봅니다만, 미국 사회 속 동아시아계 국외자로서 이 변호사 부부는 서로 결정적이다 싶은 정체감을 공유했겠으며, 대개 일본계 이민자들이 그러하듯 모국(고국)의 불의하고 추악한 과거에 대해 "미국 시민 다운" 공분을 느끼는 게 보통입니다. 이 소설에 보면 곳곳에, "이해심 깊고 마음 좋으신 부모님을 만난 복으로..' 같은 구절이 나오는데, 이 변호사 역시 그녀의 양친, 남편 등 해서 주변에 참으로 선량하고 교양 있는 인맥을 둔 게 진정 축복으로 보입니다.

현대 한국인들은 강점기의 일본인이라 하면 예컨대 헌병 경찰이나 서슬 퍼런 차림새를 한 공권력 집행자 등만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은 말 그대로 심을 식 자 백성 민 자를 쓴, 식민지에서 새 기반을 마련하려 든 민간인들이 훨씬 많았습니다. 이 이방인들이 우리 터전에서 주인 행세를 하며 조선인을 노예처럼 부리고 차별 대우를 일삼으니 우리 조상들이 느꼈던 심회가 어땠겠습니까. 이런 환경에서는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자립, 번영할 수가 없죠. 또, 설령 입신 출세가 가능하다 해도 바로 동족이 저런 노예 상태에서 신음(이 표현은 카이로 선언에도 나옵니다)하는데 양심이 있다면 이를 외면할 수 없었겠고 말입니다.

이 장편을 읽는 독자들은 아마 마음이 많이 무거워질 듯합니다. 사실 디킨스의 장편에 나오는 많은 인물들은, 물론 산업 사회가 빚은 고유의 모순 때문에 고통을 겪긴 합니다만, 그 중에는 누구의 탓을 할 수 없는 본인 스스로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라든가, 혹은 아예 자신이 저지른 악행, 우행, 비행의 대가를 치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헌데 이 작품에선, 많은 이들이 순전히, 야만적인 이민족의 가혹한 통치 때문에 고생을 하고 모욕을 당합니다. 일본은 근대화의 명분을 내세우며 조선을 개화하겠답시고 이 반도에 상륙을 했으나, 그들이 여기서 자행한 건 상식을 벗어난 수탈과 저질스러운 지배 욕구의 충족 뿐이었습니다.

마치 심훈의 <상록수>처럼, 이 작품에도 다소 전형적이라 할 여러 순수한 사명감을 품은 개성들, 기독교 신앙에 충만하여 어렵고 딱한 이들을 구해 보려는 이상주의자들이 등장합니다. 그 중 단연 주목이 가는 이는 젊은 목사 백이삭입니다. 키도 크고 순수한 열정을 지닌 멋진  청년이지만, 이 당시 불치병으로 통했던 결핵을 앓는지라 그리 오랜 생을 누릴 수는 없는 불운을 안고 있습니다. 마치 <벤허>에서 나병이라고 하면 모든 이의 얼굴에 공포가 서렸듯, 이 시절에는 결핵이 그저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하늘의 저주처럼 받아들여졌나 봅니다. 허나 현실의 그런 가혹한 족쇄가 자신을 옥죌수록 백이삭 목사는 더욱 자신이 믿는 종교에 순명합니다.

앞서 등장한 언청이(소설 속 단어를 그대로 옮기는 것이니 혹시 불쾌해하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의 딸 순자는,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무책임한 늙은이에게 욕정 해소의 수단이 되어 아이를 배게 됩니다. 가뜩이나 불구자 집안에서 태어나 시집을 가기 어려운데 이런 일까지 생겼으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한데, 백이삭 목사가 이런 말을 합니다. "아이들은 모두 신이 주신 축복입니다." 거 참. 목사는 또 이 아이(아직 태어나지는 않았으나)와 여인을 구원할 방법은 자신이 바로 여인과 결혼해서 뭔가 떳떳한 신분을 마련해 주는 게 유일한 길임을 알고, 지체 없이 실천에 옮깁니다. 이렇게 해서 백이삭은 오사카행 배에 오르게 되는데, 아무리 자이니치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고장이라고 하나 근본적으로 이곳 역시 일인들의 땅입니다.

번듯한 외모 덕분에 일단은 존중을 받으나, 입 한 번 떼는 순간 바로 조선인임이 들통 나 지독한 취급을 받는 현실. 이 와중에도 일인인 척 시늉하며 약삭빠르게 적응해 가는 조선인들도 많고, 그리 쉽게 속아넘어가는 일인들을 보며 그들이 기댄 우월감의 기반이 얼마나 허약한지 조소를 보내게도 됩니다. "한 사람의 잘못된 행실로 조선인 전체가 욕을 먹지 않게 하라. 한 기독교인의 실수 때문에 전체 교단이 비난을 받지 않게 하라." 한국에서는 사정이 다르지만(이 변호사의 부친은 함경도 출신인데 이곳 역시 해방 전에는 기독교세가 강한 곳이었죠), 일본에서는 기독교가 마이너리티에 지나지 않고, 하물며 조선인이기까지 하다면 그 대접이 어떠했겠습니까. 고달픈 역정이 눈에 훤히 보이는 듯하지만 여튼 함께 속죄(그동안의 무심함)하는 심정으로 페이지를 넘겨 가겠습니다. (2권 리뷰로 이어짐)

문학사상사에서 낸 책은 일단 호감을 갖고 읽는 편인데, 오탈자가 거의 없고 표지 디자인이 깔끔하며, 번역하신 분이 원 저자의 의도를 가장 잘 알 법한 분인 만큼 마치 처음부터 한국어로 쓰인 양 자연스럽고 토속적인 문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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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차 산업혁명 시대 성공적인 여성조직 50가지 노하우 -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어난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책!
손석주 지음 / 북스타(Bookstar)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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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어느 조직이나 여성분들이 많이 진출하여 남성 인력이 쉬이 대체할 수 없는 업무에 종사들 하는 모습입니다. 이미 지긋한 연령대의 여성들께서 관리직에 올라 조직을 이끄는 풍경도 드물지 않게 봅니다. 다소 껄그러운 분위기가 생길 수 있는 건, 여전히 종전 분위기에 익숙한 (연세 지긋하신) 남성분께서, 마치 학교 남선생님이 학급의 철없는 여학생들이나 대하듯 조직의 직원들을 이끌고 나가려 들 때입니다.

사실 어린 여고생 여중생이라고 해도 담임 교사가 얼마나 섬세하게 그 마음들을 각각 헤아려서 대해야 하겠습니까. 하물며 회사라면, 2차 집단이라고 해서 무작정 합리성을 앞세우거나 철의 규율로 밀고나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엄연히 직장인 곳에서 마냥 정의(情誼)로 일관할 수도 없습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직장에서 버젓이 자기 자리 잡고선 똑부러지게 자기 일 척척 해 내는 여성들이 그런 걸 요구하지도 않겠고 말입니다.

저자께서는 보험, 금융 영업, 컨설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뚜렷한 업적을 쌓은 중견 남성 경영인입니다(성함만 보고 혹시 여성 저자인 줄 착각하는 분들도 있겠습니다만).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은 자서전도 아니고, 논문도 아니며, 이론서도 아니"라고 먼저 밝힙니다. "만약에 내 아들이 여성(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조직의 리더로 발령이 나면 나는 무슨 충고를 해 줄 것인가?" 같은 문제 의식을 갖고 집필을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공교롭게도 출간 시점에서 사회 전체에 미투 열풍이 거세게 불어, 각양각색의 조직에서 관리직을 맡은 중년 남성들이 그 처신에 당혹감과 두려움을 느낄 법도 한 작금이기에 더욱 시의적절한 면도 있습니다.

남자가 사회를 알고 조직을 아는 건 군 복무 경험 속의 여러 깨달음이 그 처음입니다. 군에서는 입대 직후 가장 막내, 신참으로서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하지만 규율과 복종이 가져다주는 불편과 낯섦을 극복하고, 이후에는 차츰 계급이 오른 후 마침내 소집단의 리더로서 존경과 책임을 떠맡게 됩니다. 이 과정이, 성인 남성의 인격을 성큼 성장하게 만드는 게 보통입니다. 물론 누구에게나 쉽지는 않으나, 막상 한 코스가 끝나면 뿌듯한 보람을 남기게 마련이며, 개인적으로도 최근에 제대한 저의 후배(...) 역시 완전히 어른이 되어 돌아왔다는 점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헌데 저자께서는 "혈기왕성한 30여명의 청년 사병을 지휘하는 것(소대장이시라는 걸로 보아 저자는 장교로 전역하신 듯합니다)보다, 불과 8명의 여성 직원을 상급자로서 리드하는 게 얼마나 어려웠는지" 꽤 오래 전 일인데도 결코 잊혀지지 않는다고 토로하십니다. 그 후 시행 착오를 겪어, 이제는 오히려 여성 조직 지휘의 대가가 되어 그 절실한 노하우를 이처럼 책으로 만들어 엮기도 하셨고 말입니다.

"권한 위임은 전폭적으로, 시스템적으로, 공명정대하게 하라" 특히 저자는 이 점을 강조하는데요. "누구도 인정하지 못하고 조직의 리더만이 평가하는 단순 능력별 권한 이양은 조직의 실패나 몰락을 가져온다."(p78:1) 이 점은 비단 여성 조직뿐 아니라 어느 회사에서도 통할 법한 말씀이라 각별히 유념해서 읽어 보았습니다. 저자는 은행 지점 창구를 예로 드시는데, 이 직급, 직렬이야말로 1970년대 이래 여성 인력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고 볼 수 있죠.

"예금 통장 개설은 지점장이나 차장급 전결 사항이면 그대로 이행되어야 한다." 전결 사항이 참 애매한 면이 있습니다. 말그대로 전결이면 수임자에게 전권이 이양되어야 하는데, 혹 문제가 생기면 상급자가 감독을 게을리했다고 또 욕을 먹는 경우가 있으니 말입니다. 예전 YS 정부 때 박 모 장관이 "그건 과장 전결 사항이라서 자신은 모른다"고 변명 했던 게 엄청 비웃음의 대상이 되기도 했었죠. 창구 직원 중 어떤 이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통장 개설을 허가해 주고, 어떤 이는 당분간 보류시키면 안 된다는 겁니다.

이게 왜 문제인가. 독자인 저는 처음에 "남자라면 그런 조치를 이해하고 자기 능력을 입증할 때까지(혹은 윗선에서 이해할 때까지) 참고 기다릴 수 있으나, 여성이라면 분심을 품고 토라지거나 완전히 의욕을 잃고 인적 자원으로서의 기량이 쇠퇴할 수 있겠구나" 뭐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헌데 책을 더 읽어 보니 그런 취지가 전혀 아니시더군요. 저자의 말씀을 잠시 인용해 보면 1) 혼자서 능력 위임 받은 분이 자칫 왕따가 될 수 있다. (유능한 직원을 오히려 죽이는 결과) 2) 반대로 이 직원에게 동료들의 일감이 모이거나, 오히려 줄을 대는 식으로 공식 조직의 위계가 무너질 수 있다. 특히 2)의 경우 조직이 공식적으로 표방한 질서와 "실세"가 따로 놀게 되어, 그야말로 망하는 조직의 전형적인 루트를 밟게 된다는 겁니다. 이 대목을 읽고, 연세 높으신 저자보다 오히려 젊은 축인 제가 더 고루하고 답답한 편견을 여성에게 가졌던 듯하여 부끄러워졌습니다.

앞에서 제가 "전결 타령하다가 오히려 감독관리 소홀이라며 더 큰 책임 추궁을 당할 수 있다"고 했는데, 과연 저자께서는 "넘기지 않아야 할 권한은 끝까지 자신이 보유"하는 게 원칙이라고도 말씀하십니다. 저자는 평소에 잘 봐 오던 여직원이 머리도 좋고 유능, 현명해서 끝까지 그녀를 신임했으나 심지어 이런 직원에게도 최종 인감은 넘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과연 이런 칼 같은 원칙 준수 덕분에 어느 조직에서든 승승장구하신 게 아닌가 생각도 듭니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업무에서 가능한 한 권한은 이양을 해야 조직 내 불만이 안 생기고 잠재력도 최대한 발휘될 수 있다며 자신의 지론을 강조합니다.

어떤 이는 혹시 이 책을 두고 "남성 우월적인 관점에서 소견 좁고 단순한 여성 잘 다루는 방법"을 가르치는 내용 아닌가 지레짐작하는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부처님 눈엔 부처님만 보이고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본인 스스로가 비틀린 관점을 가졌으면 다른 분의 선의도 일일이 곡해하기 마련이고, 이런 사람이 조직에 얼마나 큰 해를 끼치는지는 불문가지(不問可知)일 뿐입니다. 이 책에는 이런 일화가 다 나와 있습니다. (p85 이하)

어떤 여직원이 영수증 불출(拂出), 회수 등 업무를 맡았는데 잔실수가 많아 매번 D등급이고 전국 지점 중 꼴찌 수준이라, 지점장이던 저자에게 관리과장이 이 여직원을 교체해 달라는 요청을 해 오더란 겁니다(이 당시에는 업무 자동화가 안 되어 일일이 수기[手記]로 처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자께서는, 일 못하는 여직원이라면 아예 퇴사를 시키면 모를까 다른 지점으로 보낸다고 될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한 후, 관리과장의 평가에 무관하게 일단 그 여직원의 업무 행태나 능력을 지켜보기로 하셨답니다. 그 결과, 이 여직원은 본연의 업무인 영수증 불출 등에 도저히 전념을 못 할 만큼, 커피, 복사 심부름에 도대체 시간을 낼 틈이 없었고, 사용 후 영수증 제출 등을 미루고 이 여직원을 고압적으로 대하는 영업 사원들의 태도도 큰 문제더라는 겁니다.

저자는 일단, 손님 접대, 커피, 복사 등 잡무를 일절 금지시키고, 지점장인 자신부터가 솔선수범함으로써 잔심부름 강요라는 폐습을 끊어내려 애 썼습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어느 여직원인들 자기 일을 제대로 해 낼 수 있겠냐는 거죠. 저자분 말을 들어 보십시오. "직급이 아래라고 이런 일을 시키는 건, 70, 80년대 군대에서나 있을법한 일이다." 아! 윗사람이란 무릇 이래야 합니다. 본인 스스로가 군에서 소대장을 지낸 분인데, 그런 관행이 1990년대 민간 조직에서는 결코 통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확신을 스스로 갖고 계시다니. 읽으면서 정말 감동했습니다.

이 책에는 그런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만, 독자인 우리는 사실상 이 지점에서 관리과장 S를 필두로, 특정 여직원에 대한 "직장 왕따"가 이뤄졌음을 눈치챌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유력 하급자가 실상을 왜곡하여 상신한 내용을, 상급자가 별 생각도 검토도 없이 실행에 옮긴다면, 조직의 기강과 분위기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우리 나라에는 이상하게 몇몇 성질 나쁘고 아첨, 중상 모략 즐기는 못된 놈들 몇이서 꼭 조직을 망치는 이상한 전통이 있습니다. 이 책에선 그러나 객관적으로 드러난 팩트만 서술할 뿐, 그 관리과장이 나쁜 사람이었다거나 하는 식으로 추정적 힐난은 또 하지 않습니다. 한번 잘못된 처사를 바로잡았으면 뒷말은 일절 싹 거두는 게 또 듬직한 리더의 자세입니다.

페스트푸드점에 가면 "이달의 모범사원"이라고 해서 팻말을 거는 관행을 흔히 봅니다만, 손님 중 아무도 관심 없고 직원들에게도 동기 부여가 되는 바는 전혀 없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과연 그럴 것 같습니다. "칭찬도 야단치기도 언제나 1:1로 하라"는 게 저자의 지론입니다. 만약 칭찬/혼내기의 전과 후가 변함이 없다면 아예 이런 식의 소통을 할 필요가 없죠. 또 직원을 혼 내는 건 그녀를 직장에서 쫓아내기 위한 게 목적이 아닙니다. 일을 잘하는 직원으로 만들기 위해서이죠. 1:1 방식의 강조는 바로 여기에 원인과 장점이 있습니다. 어떤 여성 직원(그냥 직원이 아니라 소장)을 야단치는데, 말은 듣지도 않고 계속 울기만 해서 저자께서는 크게 당황했다고 합니다. 남자 대하듯 여성을 대해서는 결코 안 되겠다는 각성을 하시게 된 건 이 사건도 크게 한몫을 하지 않았나 독자로서 생각도 해 봅니다.

저자께서는 다양한 사건들을 회고하며, 어떤 경우는 "내가 성공적으로 야단 잘 친 기억"이라며 뿌듯해하시는 심회를 피력합니다. 성공적이라는 건 야단을 친 상급자도 상급자지만, 야단 맞은 사람이 "그전과는 다른 직원, 직장인"으로 거듭나야 제 효과가 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혼난 하급자가 이를 감정적으로 받아들였다면, 결국 상급자의 경력에도 작은 흠집이 나게 될 수 있을 뿐 아니라(경우에 따라서는 말이죠), 개인의 감정 풀이가 우선이 아닌 만큼 무엇보다 조직의 성과와 장래에 악영향이 남을 뿐입니다. 여성을 섬세하게 배려하는 신사로서의 품격이 드러날 뿐 아니라, 남자다 여자다 편가르기를 떠나 조직이라는 큰 그림을 보고 매사를 공명정대하게 처리하는 인격자의 가르침이 곳곳에 스며 있어서 좋았습니다. 조선 시대에 태어나셨다면 과거 급제 후 명 판관 명 사또가 되시지 않았을까 생각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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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비트코인 - 블록체인 3.0 시대와 디지털화폐의 미래
나카지마 마사시 지음, 이용택 옮김 / 21세기북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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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열풍이 세상을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그동안 한국에서도 대형 헤킹 사고가 있었고, 이미 몇 년 전에는 일본에서도 유사한 사고가 벌어졌기에 많은 이들이 불안해하는 게 사실입니다. 화폐의 유통에는 신뢰가 핵심인데 이처럼 사고가 빈발하면, 원리적으로야 아무리 튼튼한 기반이 마련, 증명되었다고 해도 시장과 대중이 이를 믿을 수 없죠. 경제는 결국 "심리"이니 말입니다.

이 책은 "비트코인 이후"를 다룹니다. 비트코인이 많은 이들을 실망(?)시킨 후에도 여전히 다른 가상화폐군이 다양한 개발자군에 의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우리 정부(혹은 중국)처럼 비트코인에 대해 짙은 의심을 보인 당국도 블록체인 원리에 대해서만큼은 집중 연구가 필요하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뿐 아니라 비트코인 체계에 대해서도 여전히 기대를 거는 이들이 세계적으로는 많습니다. 블록체인 기술은 가상(암호) 화폐 영역뿐 아니라, 전혀 생각지도 못하던 다른 분야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중요 실마리로까지 평가도 됩니다. 진지한 정책 당국자라면 이를 범주적으로 외면할 수 없습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아무도 막을 수 없으며, 왠지 두렵고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배척하는 건 중세식 무지몽매입니다.

비트코인은 특이하게도 "채굴"이란 시스템으로 세상에 "발행"되죠. 사실 화폐가 세상에 태어난 이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바로 이 발행과정이었습니다. 이른바 "시뇨리지 효과"를 이용해서 당국(주로 제국이었죠. 로마, 페르시아, 중국 등)은 불순물이 많이 함유된 악화를 찍거나, 몽골 같은 경우 아예 지폐(교초)의 본성을 악용하여 마구잡이로 발행하다가 파국의 인플레이션을 겪고 제국 자체가 망하기도 했습니다. 비트코인은 이를 막기 위해 발행의 상한을 기간별로 정해 두었는데, 마치 학창 시절에 배운 분수함수 그래프처럼 x(시간축)가 길어짐에 따라 y값이 0에 수렴하는 꼴이며, 현재 발행 총량의 79%가 이미 세상에 다 나왔다고 합니다(p90).

우려스러운 건, 우리가 다들 봐 온 것처럼 2015년 하반기부터 갑자기 눈에 띈 가격 폭등세였습니다. 이는 대체로 중국에서, 당국의 규제를 피하며 자본 거래를 이루기 위한 일부 세력의 움직임에 의해 촉발되었습니다. 사실 중국에 알부자들이 많긴 해도, 본디 돈이라는 게 "감시와 통제"를 가장 싫어합니다. 공산당의 눈 밖에 나면 애써 번 돈을 "한방에 훅" 날릴 수 있으니, 추적도 어렵고 탈세도 쉬운 이 거래 수단을 부자들이 확보하려 두는 게 당연하죠. 중국 당국이 눈에 불을 켜고 투기 바람을 잡으려 든 건 당연한데, 이 과정에서 투기 바람이 한국, 미국 등 전세계로 확산된 것입니다.

p56에서는 마치 경제학 원론 교과서처럼, 회폐의 3대 기능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가 일반적 교환 수단, 둘째가 가치 척도, 셋째가 가치 저장 수단이죠. 이 셋을 교과서에서 배울 때 긴가민가 했던 분도, 이번에 비트코인 파문 때문에 생각을 곰곰이 하고 나선 비로소 이해되기도 했을 겁니다. 비트코인은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우리 독자들도 이제는 넉넉히 공감하지만), 첫째 둘째 기능이 아직 미비합니다. 다만 셋째 기능 덕분에 그토록 많은 이들이 가격을 올려 놓은 것입니다. 보통은 첫째 둘째 기능을 잘 수행해서 세상의 믿음을 산 후 셋째기능으로 넘어가는데 이 비트코인은 거꾸로인 셈입니다.

가장 많은 이들이 궁금해할 만한 의문이 p116에 나옵니다. "비트코인은 한때의 버블인가?" 저자는 주식과 이 암호화폐를 대조합니다. 주식에는 PER이라든가 PBR 같은, 현재의 형성가격이 지나친지 아닌지 평가를 할 수 있는 어떤 지표, 척도가 있습니다(근데 꼭 그렇지도 않아요 사실. 그렇게 지표 척도 노릇을 올바로 할 것 같으면 주식시장이 내내 바른 제 가격을 찾고 안정적으로 머물지 왜 출렁이겠습니까). 헌데 비트코인은 이런 "척도"가 없기에, 현재의 가격이 거품인지 아닌지 잴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이유가 뭘까요? 주식은 처음부터 무언가(회사)의 가치 표상을 할 작정으로 태어났지만, 비트코인이야 화폐로 고안된 건데 그 자신이 가치이지 무엇을 따로 대표하질 않습니다. 달러화의 경우 현재와 장래의 미국 경기 전망이라든가, FRB의 정책 기조, 혹은 타 화폐의 건강성 등에 비추어 고점 저점을 가늠할 수 있지만(그나마 불완전하죠), 비트코인은 아예 이게 불가능합니다.

비트코인의 가격이 향후 수십만 달러까지 오르리라는 비약적인 예측이 난무하는 현실에 대해 저자는 우려섞인 평가를 내놓습니다. 저자의 관점으로는 마치 플라자 합의 당시 도쿄 부동산의 가격이 끝도 없이 오르리라고 했던 당시 애널리스트들의 그릇된 전망과 이게 비슷하다는 겁니다. 결과론은 참 쉬운 게, 지금 와서야 플라자 합의 같은 걸 일본이 뭐하러 어리석게 해 줬나 싶지만(혹은 미국과 유럽의 이기적이고 폭력적 성향을 비판하거나), 당시로서는 오히려 이 도박에서 일본의 승산을 더 높게 잡았던 이들이 많았다는 겁니다.

여튼 비트코인에는 혁신적 기술인 블록체인 원리가 담겼고, 이를 최초로 세상에 구현했으며 최초라는 신뢰가 아직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블록체인 기술을 "분산형 장부 기술"이라고도 부르는데, 이야말로 위조나 이중 결제 기능을 근원적으로 막을 수 있는 혁신 원리입니다. 전통적으로 은행이나 기업에선 "중앙형 장부(central ledger)"를 채택했고 이것이야말로 신뢰의 근원이었는데, 블록체인은 정반대입니다. 모든 거래 당사자가 장부 하나씩을 가지고, 네트워크를 통해 동기화합니다. 누가 나쁜 의도를 갖고 위조나 해킹을 시도해도 그 많은 "분산형 장부(distributed ledger)"를 다 손댈 수 없기에(p135), 암호화폐를 통한 민주적(?) 거래의 활성화에 근본 장애 요인이 이 원리로 해결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비트코인을 잠시 떠나, 이 혁신적인 블록체인 기술을 다른 분야에서 어떻게 응용할 수 있는지 책은 설명합니다. 특히 금융 분야에서 블록 체인을 활용하려면, 1) 높은 보안성을 확보해야 할 뿐 아니라, 2) 부정한 거래 발생 시 이를 조기에 발견하고 당사자를 배제하는 등 어떤 적절하고 빠른 대응이 있어야만 합니다(이 책 p160 이하). 만약 공개형 합의 알고리즘을 선택하면(비트코인처럼), 거래의 진정성 증명에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게 당연하지만, 반면 폐쇄형을 선택하면 일정 시간 내에 대량의 거래를 진행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잠시 비트코인이 채택한 개방형 합의가 어떤 장점, 혹은 정책적 고려나 "이념"에 의해 고안되었는지 책은 짚고 넘어갑니다. 처음부터 비트코인은 모든 거래 당사자의 민주적 합의, 평등, 완전한 거래의 투명성 등 혁신의 가치를 다분히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금융 거래에서 핵심 당사자 말고는 그 거래를 모두가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고 저자는 말하며, 이 점에서 폐쇄형은 능률적,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이런 주장에는, 아마 비트코인의 창시자나 옹호자 등은 강하게 반발할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정치인과 재벌의 검은 뒷거래나 비자금 형성 따위가 근절되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폐쇄형에서는 채굴에 인센티브를 줄 필요도 없습니다. 채굴이란, 사실 "거래의 유효성 검증"이란 수고를 대신 시키는 건데, 간이화한 시스템에서는 그 막대한 노력을 들인 검증까지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4장에서는 "화폐의 전자화= 역사의 필연"이라는 제목을 달고, "비트코인의 장래는 불투명할 수 있어도 블록체인 기술만큼은 정해지다시피한 미래의 핵심 인프라에 쓰일 것"이란 저자의 분명한 지론을 자세히 설파합니다. 블록체인 기술이 확실히 유망하기에, 각국의 중앙은행이나 정책 결정 당국이 많은 노력과 자본을 들여 이의 실용화에 주력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저자는 블록체인 기술의 놀라운 혁신성을 다시 강조하는데(p186), 전자화폐가 아무리 거래의 미래상이라고 해도, 디지털의 특성상 한번 복제가 되고 나면 무제한으로 가짜를 퍼뜨릴 수 있는데, "가짜 돈"의 범람을 무슨 수로 막겠냐는 초기 연구자들의 풀리지 않는 고민이 있었다는 거죠. 이걸 단번에 해결한 게 바로 분산장부 기법이라는 건 앞에서도 나왔습니다. 미국에서는 Fed 코인이 연구되며, 중국은 위안화 전체를 아예 디지털화하는 방안까지 논의 중이라고 합니다.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암호화폐는 무엇이 다를까요? p219에서 요약하고 있습니다.

1) 중앙 은행이 발행주체(바트코인 등 가상 화폐는 발행 주체가 없습니다. 채굴은 그저 채굴일 뿐 없던 걸 창조하는 행위가 아니죠)
2) 시스템 운영도 중앙 은행이 한다(이런 걸 비트코인 지지자들이 가장 싫어하죠)
3) 화폐 단위는 기존 국내 통화의 그것과 같다.
4) 법적 통용력이 있다. (민간 가상화폐는 오로지 이용자의 신뢰에 기댈 뿐입니다)

익명성을 어디까지 허용할지가 문제라고 합니다. 사실 지금의 현금은 가장 좋은 게 익명성입니다. 에금, 주식, 채권(일부 무기명 방식은 제외)은 이 익명성의 한계 때문에 부자들이 싫어하죠. 이자가 없어도 집안 금고에 꼬불쳐 두는 건 영원한 익명성의 보장이 있어서입니다. 비트코인 등의 최대 매력도 역시 익명성이었는데 이걸 중앙은행에서 발행하면 가만 놔둘리가 없죠.

저자는 또한 너무 엄격하게 거래 승인을 행하면 속도에 있어 큰 문제가 발생한다고 합니다. (꼭 중앙은행 발행 이슈뿐 아니라, 현재 블록체인이나 가상화폐에서 가장 애로를 겪는 게 의외로 이 속도 문제라고 합니다) 게다가 더 흥미로운(?) 건, 현재는 법화(한국은행권 등)를 중앙은행이 발행하여 이의 유통을 민간은행에게 맡기는데, 가상화폐는 이럴 필요가 없고 중앙은행- 민간 - 기업, 이 채널 외에 다른 경로가 다 없어져서, 시중은행이 할 일이 안 생긴다는 겁니다. 이뿐 아니라 시중은행은 금융의 수요와 공급을 중개하는 역할을 하는데, 돈을 품지 못하는 은행은 이제 이 역할조차 맡지 못하게 되는 거죠.

저자께서는 심각한 부작용으로 이를 거론하시지만, 비트코인 등의 옹호자는 생각이 다릅니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암호화폐를 더 써야 한다는 겁니다. 시중 은행 같은 번거로운 중개자나 중개 비용이 모두 생략되면, 생산자와 최종 소비자 사이에서 직거래가 일상화되어 양자 모두 저렴한 비용으로 제 값 받아가며 후생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게 그들의 주장입니다. 어찌 보면 이는 4차 산업혁명의 대의와도 통하는데, 없어지는 일자리들과 새로 생기는 거래 당사자 들 사이의 편익 사이에서 과연 무엇을 선택하는 쪽으로 사회 시스템이 진화할지 계속 지켜봐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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