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애프터 비트코인 - 블록체인 3.0 시대와 디지털화폐의 미래
나카지마 마사시 지음, 이용택 옮김 / 21세기북스 / 2018년 4월
평점 :
비트코인
열풍이 세상을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그동안 한국에서도 대형 헤킹 사고가 있었고, 이미 몇 년 전에는 일본에서도 유사한 사고가
벌어졌기에 많은 이들이 불안해하는 게 사실입니다. 화폐의 유통에는 신뢰가 핵심인데 이처럼 사고가 빈발하면, 원리적으로야 아무리
튼튼한 기반이 마련, 증명되었다고 해도 시장과 대중이 이를 믿을 수 없죠. 경제는 결국 "심리"이니 말입니다.
이
책은 "비트코인 이후"를 다룹니다. 비트코인이 많은 이들을 실망(?)시킨 후에도 여전히 다른 가상화폐군이 다양한 개발자군에 의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우리 정부(혹은 중국)처럼 비트코인에 대해 짙은 의심을 보인 당국도 블록체인 원리에 대해서만큼은 집중
연구가 필요하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뿐 아니라 비트코인 체계에 대해서도 여전히 기대를 거는 이들이 세계적으로는
많습니다. 블록체인 기술은 가상(암호) 화폐 영역뿐 아니라, 전혀 생각지도 못하던 다른 분야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중요
실마리로까지 평가도 됩니다. 진지한 정책 당국자라면 이를 범주적으로 외면할 수 없습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아무도 막을 수
없으며, 왠지 두렵고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배척하는 건 중세식 무지몽매입니다.
비트코인은
특이하게도 "채굴"이란 시스템으로 세상에 "발행"되죠. 사실 화폐가 세상에 태어난 이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바로 이
발행과정이었습니다. 이른바 "시뇨리지 효과"를 이용해서 당국(주로 제국이었죠. 로마, 페르시아, 중국 등)은 불순물이 많이 함유된
악화를 찍거나, 몽골 같은 경우 아예 지폐(교초)의 본성을 악용하여 마구잡이로 발행하다가 파국의 인플레이션을 겪고 제국 자체가
망하기도 했습니다. 비트코인은 이를 막기 위해 발행의 상한을 기간별로 정해 두었는데, 마치 학창 시절에 배운 분수함수 그래프처럼
x(시간축)가 길어짐에 따라 y값이 0에 수렴하는 꼴이며, 현재 발행 총량의 79%가 이미 세상에 다 나왔다고 합니다(p90).
우려스러운
건, 우리가 다들 봐 온 것처럼 2015년 하반기부터 갑자기 눈에 띈 가격 폭등세였습니다. 이는 대체로 중국에서, 당국의 규제를
피하며 자본 거래를 이루기 위한 일부 세력의 움직임에 의해 촉발되었습니다. 사실 중국에 알부자들이 많긴 해도, 본디 돈이라는 게
"감시와 통제"를 가장 싫어합니다. 공산당의 눈 밖에 나면 애써 번 돈을 "한방에 훅" 날릴 수 있으니, 추적도 어렵고 탈세도
쉬운 이 거래 수단을 부자들이 확보하려 두는 게 당연하죠. 중국 당국이 눈에 불을 켜고 투기 바람을 잡으려 든 건 당연한데, 이
과정에서 투기 바람이 한국, 미국 등 전세계로 확산된 것입니다.
p56에서는
마치 경제학 원론 교과서처럼, 회폐의 3대 기능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가 일반적 교환 수단, 둘째가 가치 척도, 셋째가 가치
저장 수단이죠. 이 셋을 교과서에서 배울 때 긴가민가 했던 분도, 이번에 비트코인 파문 때문에 생각을 곰곰이 하고 나선 비로소
이해되기도 했을 겁니다. 비트코인은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우리 독자들도 이제는 넉넉히 공감하지만), 첫째 둘째 기능이 아직
미비합니다. 다만 셋째 기능 덕분에 그토록 많은 이들이 가격을 올려 놓은 것입니다. 보통은 첫째 둘째 기능을 잘 수행해서 세상의
믿음을 산 후 셋째기능으로 넘어가는데 이 비트코인은 거꾸로인 셈입니다.
가장
많은 이들이 궁금해할 만한 의문이 p116에 나옵니다. "비트코인은 한때의 버블인가?" 저자는 주식과 이 암호화폐를 대조합니다.
주식에는 PER이라든가 PBR 같은, 현재의 형성가격이 지나친지 아닌지 평가를 할 수 있는 어떤 지표, 척도가 있습니다(근데 꼭
그렇지도 않아요 사실. 그렇게 지표 척도 노릇을 올바로 할 것 같으면 주식시장이 내내 바른 제 가격을 찾고 안정적으로 머물지 왜
출렁이겠습니까). 헌데 비트코인은 이런 "척도"가 없기에, 현재의 가격이 거품인지 아닌지 잴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이유가
뭘까요? 주식은 처음부터 무언가(회사)의 가치 표상을 할 작정으로 태어났지만, 비트코인이야 화폐로 고안된 건데 그 자신이 가치이지
무엇을 따로 대표하질 않습니다. 달러화의 경우 현재와 장래의 미국 경기 전망이라든가, FRB의 정책 기조, 혹은 타 화폐의
건강성 등에 비추어 고점 저점을 가늠할 수 있지만(그나마 불완전하죠), 비트코인은 아예 이게 불가능합니다.
비트코인의
가격이 향후 수십만 달러까지 오르리라는 비약적인 예측이 난무하는 현실에 대해 저자는 우려섞인 평가를 내놓습니다. 저자의
관점으로는 마치 플라자 합의 당시 도쿄 부동산의 가격이 끝도 없이 오르리라고 했던 당시 애널리스트들의 그릇된 전망과 이게
비슷하다는 겁니다. 결과론은 참 쉬운 게, 지금 와서야 플라자 합의 같은 걸 일본이 뭐하러 어리석게 해 줬나 싶지만(혹은 미국과
유럽의 이기적이고 폭력적 성향을 비판하거나), 당시로서는 오히려 이 도박에서 일본의 승산을 더 높게 잡았던 이들이 많았다는
겁니다.
여튼 비트코인에는 혁신적
기술인 블록체인 원리가 담겼고, 이를 최초로 세상에 구현했으며 최초라는 신뢰가 아직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블록체인 기술을 "분산형
장부 기술"이라고도 부르는데, 이야말로 위조나 이중 결제 기능을 근원적으로 막을 수 있는 혁신 원리입니다. 전통적으로 은행이나
기업에선 "중앙형 장부(central ledger)"를 채택했고 이것이야말로 신뢰의 근원이었는데, 블록체인은 정반대입니다. 모든
거래 당사자가 장부 하나씩을 가지고, 네트워크를 통해 동기화합니다. 누가 나쁜 의도를 갖고 위조나 해킹을 시도해도 그 많은
"분산형 장부(distributed ledger)"를 다 손댈 수 없기에(p135), 암호화폐를 통한 민주적(?) 거래의 활성화에
근본 장애 요인이 이 원리로 해결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비트코인을 잠시 떠나, 이 혁신적인 블록체인 기술을 다른 분야에서 어떻게 응용할 수 있는지 책은 설명합니다. 특히 금융 분야에서
블록 체인을 활용하려면, 1) 높은 보안성을 확보해야 할 뿐 아니라, 2) 부정한 거래 발생 시 이를 조기에 발견하고 당사자를
배제하는 등 어떤 적절하고 빠른 대응이 있어야만 합니다(이 책 p160 이하). 만약 공개형 합의 알고리즘을
선택하면(비트코인처럼), 거래의 진정성 증명에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게 당연하지만, 반면 폐쇄형을 선택하면 일정 시간 내에
대량의 거래를 진행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잠시 비트코인이 채택한 개방형 합의가 어떤 장점, 혹은 정책적 고려나 "이념"에 의해 고안되었는지 책은 짚고 넘어갑니다.
처음부터 비트코인은 모든 거래 당사자의 민주적 합의, 평등, 완전한 거래의 투명성 등 혁신의 가치를 다분히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금융 거래에서 핵심 당사자 말고는 그 거래를 모두가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고 저자는 말하며, 이 점에서
폐쇄형은 능률적,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이런 주장에는, 아마 비트코인의 창시자나 옹호자 등은 강하게 반발할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정치인과 재벌의 검은 뒷거래나 비자금 형성 따위가 근절되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폐쇄형에서는 채굴에 인센티브를 줄 필요도
없습니다. 채굴이란, 사실 "거래의 유효성 검증"이란 수고를 대신 시키는 건데, 간이화한 시스템에서는 그 막대한 노력을 들인
검증까지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4장에서는
"화폐의 전자화= 역사의 필연"이라는 제목을 달고, "비트코인의 장래는 불투명할 수 있어도 블록체인 기술만큼은 정해지다시피한
미래의 핵심 인프라에 쓰일 것"이란 저자의 분명한 지론을 자세히 설파합니다. 블록체인 기술이 확실히 유망하기에, 각국의
중앙은행이나 정책 결정 당국이 많은 노력과 자본을 들여 이의 실용화에 주력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저자는 블록체인 기술의 놀라운
혁신성을 다시 강조하는데(p186), 전자화폐가 아무리 거래의 미래상이라고 해도, 디지털의 특성상 한번 복제가 되고 나면
무제한으로 가짜를 퍼뜨릴 수 있는데, "가짜 돈"의 범람을 무슨 수로 막겠냐는 초기 연구자들의 풀리지 않는 고민이 있었다는 거죠.
이걸 단번에 해결한 게 바로 분산장부 기법이라는 건 앞에서도 나왔습니다. 미국에서는 Fed 코인이 연구되며, 중국은 위안화
전체를 아예 디지털화하는 방안까지 논의 중이라고 합니다.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암호화폐는 무엇이 다를까요? p219에서 요약하고 있습니다.
1) 중앙 은행이 발행주체(바트코인 등 가상 화폐는 발행 주체가 없습니다. 채굴은 그저 채굴일 뿐 없던 걸 창조하는 행위가 아니죠)
2) 시스템 운영도 중앙 은행이 한다(이런 걸 비트코인 지지자들이 가장 싫어하죠)
3) 화폐 단위는 기존 국내 통화의 그것과 같다.
4) 법적 통용력이 있다. (민간 가상화폐는 오로지 이용자의 신뢰에 기댈 뿐입니다)
익명성을
어디까지 허용할지가 문제라고 합니다. 사실 지금의 현금은 가장 좋은 게 익명성입니다. 에금, 주식, 채권(일부 무기명 방식은
제외)은 이 익명성의 한계 때문에 부자들이 싫어하죠. 이자가 없어도 집안 금고에 꼬불쳐 두는 건 영원한 익명성의 보장이
있어서입니다. 비트코인 등의 최대 매력도 역시 익명성이었는데 이걸 중앙은행에서 발행하면 가만 놔둘리가 없죠.
저자는
또한 너무 엄격하게 거래 승인을 행하면 속도에 있어 큰 문제가 발생한다고 합니다. (꼭 중앙은행 발행 이슈뿐 아니라, 현재
블록체인이나 가상화폐에서 가장 애로를 겪는 게 의외로 이 속도 문제라고 합니다) 게다가 더 흥미로운(?) 건, 현재는
법화(한국은행권 등)를 중앙은행이 발행하여 이의 유통을 민간은행에게 맡기는데, 가상화폐는 이럴 필요가 없고 중앙은행- 민간 -
기업, 이 채널 외에 다른 경로가 다 없어져서, 시중은행이 할 일이 안 생긴다는 겁니다. 이뿐 아니라 시중은행은 금융의 수요와
공급을 중개하는 역할을 하는데, 돈을 품지 못하는 은행은 이제 이 역할조차 맡지 못하게 되는 거죠.
저자께서는
심각한 부작용으로 이를 거론하시지만, 비트코인 등의 옹호자는 생각이 다릅니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암호화폐를 더 써야 한다는
겁니다. 시중 은행 같은 번거로운 중개자나 중개 비용이 모두 생략되면, 생산자와 최종 소비자 사이에서 직거래가 일상화되어 양자
모두 저렴한 비용으로 제 값 받아가며 후생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게 그들의 주장입니다. 어찌 보면 이는 4차 산업혁명의 대의와도
통하는데, 없어지는 일자리들과 새로 생기는 거래 당사자 들 사이의 편익 사이에서 과연 무엇을 선택하는 쪽으로 사회 시스템이
진화할지 계속 지켜봐야 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