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차 산업혁명 시대 성공적인 여성조직 50가지 노하우 -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어난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책!
손석주 지음 / 북스타(Bookstar)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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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어느 조직이나 여성분들이 많이 진출하여 남성 인력이 쉬이 대체할 수 없는 업무에 종사들 하는 모습입니다. 이미 지긋한 연령대의 여성들께서 관리직에 올라 조직을 이끄는 풍경도 드물지 않게 봅니다. 다소 껄그러운 분위기가 생길 수 있는 건, 여전히 종전 분위기에 익숙한 (연세 지긋하신) 남성분께서, 마치 학교 남선생님이 학급의 철없는 여학생들이나 대하듯 조직의 직원들을 이끌고 나가려 들 때입니다.

사실 어린 여고생 여중생이라고 해도 담임 교사가 얼마나 섬세하게 그 마음들을 각각 헤아려서 대해야 하겠습니까. 하물며 회사라면, 2차 집단이라고 해서 무작정 합리성을 앞세우거나 철의 규율로 밀고나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엄연히 직장인 곳에서 마냥 정의(情誼)로 일관할 수도 없습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직장에서 버젓이 자기 자리 잡고선 똑부러지게 자기 일 척척 해 내는 여성들이 그런 걸 요구하지도 않겠고 말입니다.

저자께서는 보험, 금융 영업, 컨설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뚜렷한 업적을 쌓은 중견 남성 경영인입니다(성함만 보고 혹시 여성 저자인 줄 착각하는 분들도 있겠습니다만).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은 자서전도 아니고, 논문도 아니며, 이론서도 아니"라고 먼저 밝힙니다. "만약에 내 아들이 여성(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조직의 리더로 발령이 나면 나는 무슨 충고를 해 줄 것인가?" 같은 문제 의식을 갖고 집필을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공교롭게도 출간 시점에서 사회 전체에 미투 열풍이 거세게 불어, 각양각색의 조직에서 관리직을 맡은 중년 남성들이 그 처신에 당혹감과 두려움을 느낄 법도 한 작금이기에 더욱 시의적절한 면도 있습니다.

남자가 사회를 알고 조직을 아는 건 군 복무 경험 속의 여러 깨달음이 그 처음입니다. 군에서는 입대 직후 가장 막내, 신참으로서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하지만 규율과 복종이 가져다주는 불편과 낯섦을 극복하고, 이후에는 차츰 계급이 오른 후 마침내 소집단의 리더로서 존경과 책임을 떠맡게 됩니다. 이 과정이, 성인 남성의 인격을 성큼 성장하게 만드는 게 보통입니다. 물론 누구에게나 쉽지는 않으나, 막상 한 코스가 끝나면 뿌듯한 보람을 남기게 마련이며, 개인적으로도 최근에 제대한 저의 후배(...) 역시 완전히 어른이 되어 돌아왔다는 점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헌데 저자께서는 "혈기왕성한 30여명의 청년 사병을 지휘하는 것(소대장이시라는 걸로 보아 저자는 장교로 전역하신 듯합니다)보다, 불과 8명의 여성 직원을 상급자로서 리드하는 게 얼마나 어려웠는지" 꽤 오래 전 일인데도 결코 잊혀지지 않는다고 토로하십니다. 그 후 시행 착오를 겪어, 이제는 오히려 여성 조직 지휘의 대가가 되어 그 절실한 노하우를 이처럼 책으로 만들어 엮기도 하셨고 말입니다.

"권한 위임은 전폭적으로, 시스템적으로, 공명정대하게 하라" 특히 저자는 이 점을 강조하는데요. "누구도 인정하지 못하고 조직의 리더만이 평가하는 단순 능력별 권한 이양은 조직의 실패나 몰락을 가져온다."(p78:1) 이 점은 비단 여성 조직뿐 아니라 어느 회사에서도 통할 법한 말씀이라 각별히 유념해서 읽어 보았습니다. 저자는 은행 지점 창구를 예로 드시는데, 이 직급, 직렬이야말로 1970년대 이래 여성 인력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고 볼 수 있죠.

"예금 통장 개설은 지점장이나 차장급 전결 사항이면 그대로 이행되어야 한다." 전결 사항이 참 애매한 면이 있습니다. 말그대로 전결이면 수임자에게 전권이 이양되어야 하는데, 혹 문제가 생기면 상급자가 감독을 게을리했다고 또 욕을 먹는 경우가 있으니 말입니다. 예전 YS 정부 때 박 모 장관이 "그건 과장 전결 사항이라서 자신은 모른다"고 변명 했던 게 엄청 비웃음의 대상이 되기도 했었죠. 창구 직원 중 어떤 이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통장 개설을 허가해 주고, 어떤 이는 당분간 보류시키면 안 된다는 겁니다.

이게 왜 문제인가. 독자인 저는 처음에 "남자라면 그런 조치를 이해하고 자기 능력을 입증할 때까지(혹은 윗선에서 이해할 때까지) 참고 기다릴 수 있으나, 여성이라면 분심을 품고 토라지거나 완전히 의욕을 잃고 인적 자원으로서의 기량이 쇠퇴할 수 있겠구나" 뭐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헌데 책을 더 읽어 보니 그런 취지가 전혀 아니시더군요. 저자의 말씀을 잠시 인용해 보면 1) 혼자서 능력 위임 받은 분이 자칫 왕따가 될 수 있다. (유능한 직원을 오히려 죽이는 결과) 2) 반대로 이 직원에게 동료들의 일감이 모이거나, 오히려 줄을 대는 식으로 공식 조직의 위계가 무너질 수 있다. 특히 2)의 경우 조직이 공식적으로 표방한 질서와 "실세"가 따로 놀게 되어, 그야말로 망하는 조직의 전형적인 루트를 밟게 된다는 겁니다. 이 대목을 읽고, 연세 높으신 저자보다 오히려 젊은 축인 제가 더 고루하고 답답한 편견을 여성에게 가졌던 듯하여 부끄러워졌습니다.

앞에서 제가 "전결 타령하다가 오히려 감독관리 소홀이라며 더 큰 책임 추궁을 당할 수 있다"고 했는데, 과연 저자께서는 "넘기지 않아야 할 권한은 끝까지 자신이 보유"하는 게 원칙이라고도 말씀하십니다. 저자는 평소에 잘 봐 오던 여직원이 머리도 좋고 유능, 현명해서 끝까지 그녀를 신임했으나 심지어 이런 직원에게도 최종 인감은 넘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과연 이런 칼 같은 원칙 준수 덕분에 어느 조직에서든 승승장구하신 게 아닌가 생각도 듭니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업무에서 가능한 한 권한은 이양을 해야 조직 내 불만이 안 생기고 잠재력도 최대한 발휘될 수 있다며 자신의 지론을 강조합니다.

어떤 이는 혹시 이 책을 두고 "남성 우월적인 관점에서 소견 좁고 단순한 여성 잘 다루는 방법"을 가르치는 내용 아닌가 지레짐작하는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부처님 눈엔 부처님만 보이고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본인 스스로가 비틀린 관점을 가졌으면 다른 분의 선의도 일일이 곡해하기 마련이고, 이런 사람이 조직에 얼마나 큰 해를 끼치는지는 불문가지(不問可知)일 뿐입니다. 이 책에는 이런 일화가 다 나와 있습니다. (p85 이하)

어떤 여직원이 영수증 불출(拂出), 회수 등 업무를 맡았는데 잔실수가 많아 매번 D등급이고 전국 지점 중 꼴찌 수준이라, 지점장이던 저자에게 관리과장이 이 여직원을 교체해 달라는 요청을 해 오더란 겁니다(이 당시에는 업무 자동화가 안 되어 일일이 수기[手記]로 처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자께서는, 일 못하는 여직원이라면 아예 퇴사를 시키면 모를까 다른 지점으로 보낸다고 될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한 후, 관리과장의 평가에 무관하게 일단 그 여직원의 업무 행태나 능력을 지켜보기로 하셨답니다. 그 결과, 이 여직원은 본연의 업무인 영수증 불출 등에 도저히 전념을 못 할 만큼, 커피, 복사 심부름에 도대체 시간을 낼 틈이 없었고, 사용 후 영수증 제출 등을 미루고 이 여직원을 고압적으로 대하는 영업 사원들의 태도도 큰 문제더라는 겁니다.

저자는 일단, 손님 접대, 커피, 복사 등 잡무를 일절 금지시키고, 지점장인 자신부터가 솔선수범함으로써 잔심부름 강요라는 폐습을 끊어내려 애 썼습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어느 여직원인들 자기 일을 제대로 해 낼 수 있겠냐는 거죠. 저자분 말을 들어 보십시오. "직급이 아래라고 이런 일을 시키는 건, 70, 80년대 군대에서나 있을법한 일이다." 아! 윗사람이란 무릇 이래야 합니다. 본인 스스로가 군에서 소대장을 지낸 분인데, 그런 관행이 1990년대 민간 조직에서는 결코 통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확신을 스스로 갖고 계시다니. 읽으면서 정말 감동했습니다.

이 책에는 그런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만, 독자인 우리는 사실상 이 지점에서 관리과장 S를 필두로, 특정 여직원에 대한 "직장 왕따"가 이뤄졌음을 눈치챌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유력 하급자가 실상을 왜곡하여 상신한 내용을, 상급자가 별 생각도 검토도 없이 실행에 옮긴다면, 조직의 기강과 분위기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우리 나라에는 이상하게 몇몇 성질 나쁘고 아첨, 중상 모략 즐기는 못된 놈들 몇이서 꼭 조직을 망치는 이상한 전통이 있습니다. 이 책에선 그러나 객관적으로 드러난 팩트만 서술할 뿐, 그 관리과장이 나쁜 사람이었다거나 하는 식으로 추정적 힐난은 또 하지 않습니다. 한번 잘못된 처사를 바로잡았으면 뒷말은 일절 싹 거두는 게 또 듬직한 리더의 자세입니다.

페스트푸드점에 가면 "이달의 모범사원"이라고 해서 팻말을 거는 관행을 흔히 봅니다만, 손님 중 아무도 관심 없고 직원들에게도 동기 부여가 되는 바는 전혀 없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과연 그럴 것 같습니다. "칭찬도 야단치기도 언제나 1:1로 하라"는 게 저자의 지론입니다. 만약 칭찬/혼내기의 전과 후가 변함이 없다면 아예 이런 식의 소통을 할 필요가 없죠. 또 직원을 혼 내는 건 그녀를 직장에서 쫓아내기 위한 게 목적이 아닙니다. 일을 잘하는 직원으로 만들기 위해서이죠. 1:1 방식의 강조는 바로 여기에 원인과 장점이 있습니다. 어떤 여성 직원(그냥 직원이 아니라 소장)을 야단치는데, 말은 듣지도 않고 계속 울기만 해서 저자께서는 크게 당황했다고 합니다. 남자 대하듯 여성을 대해서는 결코 안 되겠다는 각성을 하시게 된 건 이 사건도 크게 한몫을 하지 않았나 독자로서 생각도 해 봅니다.

저자께서는 다양한 사건들을 회고하며, 어떤 경우는 "내가 성공적으로 야단 잘 친 기억"이라며 뿌듯해하시는 심회를 피력합니다. 성공적이라는 건 야단을 친 상급자도 상급자지만, 야단 맞은 사람이 "그전과는 다른 직원, 직장인"으로 거듭나야 제 효과가 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혼난 하급자가 이를 감정적으로 받아들였다면, 결국 상급자의 경력에도 작은 흠집이 나게 될 수 있을 뿐 아니라(경우에 따라서는 말이죠), 개인의 감정 풀이가 우선이 아닌 만큼 무엇보다 조직의 성과와 장래에 악영향이 남을 뿐입니다. 여성을 섬세하게 배려하는 신사로서의 품격이 드러날 뿐 아니라, 남자다 여자다 편가르기를 떠나 조직이라는 큰 그림을 보고 매사를 공명정대하게 처리하는 인격자의 가르침이 곳곳에 스며 있어서 좋았습니다. 조선 시대에 태어나셨다면 과거 급제 후 명 판관 명 사또가 되시지 않았을까 생각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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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비트코인 - 블록체인 3.0 시대와 디지털화폐의 미래
나카지마 마사시 지음, 이용택 옮김 / 21세기북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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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열풍이 세상을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그동안 한국에서도 대형 헤킹 사고가 있었고, 이미 몇 년 전에는 일본에서도 유사한 사고가 벌어졌기에 많은 이들이 불안해하는 게 사실입니다. 화폐의 유통에는 신뢰가 핵심인데 이처럼 사고가 빈발하면, 원리적으로야 아무리 튼튼한 기반이 마련, 증명되었다고 해도 시장과 대중이 이를 믿을 수 없죠. 경제는 결국 "심리"이니 말입니다.

이 책은 "비트코인 이후"를 다룹니다. 비트코인이 많은 이들을 실망(?)시킨 후에도 여전히 다른 가상화폐군이 다양한 개발자군에 의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우리 정부(혹은 중국)처럼 비트코인에 대해 짙은 의심을 보인 당국도 블록체인 원리에 대해서만큼은 집중 연구가 필요하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뿐 아니라 비트코인 체계에 대해서도 여전히 기대를 거는 이들이 세계적으로는 많습니다. 블록체인 기술은 가상(암호) 화폐 영역뿐 아니라, 전혀 생각지도 못하던 다른 분야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중요 실마리로까지 평가도 됩니다. 진지한 정책 당국자라면 이를 범주적으로 외면할 수 없습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아무도 막을 수 없으며, 왠지 두렵고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배척하는 건 중세식 무지몽매입니다.

비트코인은 특이하게도 "채굴"이란 시스템으로 세상에 "발행"되죠. 사실 화폐가 세상에 태어난 이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바로 이 발행과정이었습니다. 이른바 "시뇨리지 효과"를 이용해서 당국(주로 제국이었죠. 로마, 페르시아, 중국 등)은 불순물이 많이 함유된 악화를 찍거나, 몽골 같은 경우 아예 지폐(교초)의 본성을 악용하여 마구잡이로 발행하다가 파국의 인플레이션을 겪고 제국 자체가 망하기도 했습니다. 비트코인은 이를 막기 위해 발행의 상한을 기간별로 정해 두었는데, 마치 학창 시절에 배운 분수함수 그래프처럼 x(시간축)가 길어짐에 따라 y값이 0에 수렴하는 꼴이며, 현재 발행 총량의 79%가 이미 세상에 다 나왔다고 합니다(p90).

우려스러운 건, 우리가 다들 봐 온 것처럼 2015년 하반기부터 갑자기 눈에 띈 가격 폭등세였습니다. 이는 대체로 중국에서, 당국의 규제를 피하며 자본 거래를 이루기 위한 일부 세력의 움직임에 의해 촉발되었습니다. 사실 중국에 알부자들이 많긴 해도, 본디 돈이라는 게 "감시와 통제"를 가장 싫어합니다. 공산당의 눈 밖에 나면 애써 번 돈을 "한방에 훅" 날릴 수 있으니, 추적도 어렵고 탈세도 쉬운 이 거래 수단을 부자들이 확보하려 두는 게 당연하죠. 중국 당국이 눈에 불을 켜고 투기 바람을 잡으려 든 건 당연한데, 이 과정에서 투기 바람이 한국, 미국 등 전세계로 확산된 것입니다.

p56에서는 마치 경제학 원론 교과서처럼, 회폐의 3대 기능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가 일반적 교환 수단, 둘째가 가치 척도, 셋째가 가치 저장 수단이죠. 이 셋을 교과서에서 배울 때 긴가민가 했던 분도, 이번에 비트코인 파문 때문에 생각을 곰곰이 하고 나선 비로소 이해되기도 했을 겁니다. 비트코인은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우리 독자들도 이제는 넉넉히 공감하지만), 첫째 둘째 기능이 아직 미비합니다. 다만 셋째 기능 덕분에 그토록 많은 이들이 가격을 올려 놓은 것입니다. 보통은 첫째 둘째 기능을 잘 수행해서 세상의 믿음을 산 후 셋째기능으로 넘어가는데 이 비트코인은 거꾸로인 셈입니다.

가장 많은 이들이 궁금해할 만한 의문이 p116에 나옵니다. "비트코인은 한때의 버블인가?" 저자는 주식과 이 암호화폐를 대조합니다. 주식에는 PER이라든가 PBR 같은, 현재의 형성가격이 지나친지 아닌지 평가를 할 수 있는 어떤 지표, 척도가 있습니다(근데 꼭 그렇지도 않아요 사실. 그렇게 지표 척도 노릇을 올바로 할 것 같으면 주식시장이 내내 바른 제 가격을 찾고 안정적으로 머물지 왜 출렁이겠습니까). 헌데 비트코인은 이런 "척도"가 없기에, 현재의 가격이 거품인지 아닌지 잴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이유가 뭘까요? 주식은 처음부터 무언가(회사)의 가치 표상을 할 작정으로 태어났지만, 비트코인이야 화폐로 고안된 건데 그 자신이 가치이지 무엇을 따로 대표하질 않습니다. 달러화의 경우 현재와 장래의 미국 경기 전망이라든가, FRB의 정책 기조, 혹은 타 화폐의 건강성 등에 비추어 고점 저점을 가늠할 수 있지만(그나마 불완전하죠), 비트코인은 아예 이게 불가능합니다.

비트코인의 가격이 향후 수십만 달러까지 오르리라는 비약적인 예측이 난무하는 현실에 대해 저자는 우려섞인 평가를 내놓습니다. 저자의 관점으로는 마치 플라자 합의 당시 도쿄 부동산의 가격이 끝도 없이 오르리라고 했던 당시 애널리스트들의 그릇된 전망과 이게 비슷하다는 겁니다. 결과론은 참 쉬운 게, 지금 와서야 플라자 합의 같은 걸 일본이 뭐하러 어리석게 해 줬나 싶지만(혹은 미국과 유럽의 이기적이고 폭력적 성향을 비판하거나), 당시로서는 오히려 이 도박에서 일본의 승산을 더 높게 잡았던 이들이 많았다는 겁니다.

여튼 비트코인에는 혁신적 기술인 블록체인 원리가 담겼고, 이를 최초로 세상에 구현했으며 최초라는 신뢰가 아직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블록체인 기술을 "분산형 장부 기술"이라고도 부르는데, 이야말로 위조나 이중 결제 기능을 근원적으로 막을 수 있는 혁신 원리입니다. 전통적으로 은행이나 기업에선 "중앙형 장부(central ledger)"를 채택했고 이것이야말로 신뢰의 근원이었는데, 블록체인은 정반대입니다. 모든 거래 당사자가 장부 하나씩을 가지고, 네트워크를 통해 동기화합니다. 누가 나쁜 의도를 갖고 위조나 해킹을 시도해도 그 많은 "분산형 장부(distributed ledger)"를 다 손댈 수 없기에(p135), 암호화폐를 통한 민주적(?) 거래의 활성화에 근본 장애 요인이 이 원리로 해결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비트코인을 잠시 떠나, 이 혁신적인 블록체인 기술을 다른 분야에서 어떻게 응용할 수 있는지 책은 설명합니다. 특히 금융 분야에서 블록 체인을 활용하려면, 1) 높은 보안성을 확보해야 할 뿐 아니라, 2) 부정한 거래 발생 시 이를 조기에 발견하고 당사자를 배제하는 등 어떤 적절하고 빠른 대응이 있어야만 합니다(이 책 p160 이하). 만약 공개형 합의 알고리즘을 선택하면(비트코인처럼), 거래의 진정성 증명에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게 당연하지만, 반면 폐쇄형을 선택하면 일정 시간 내에 대량의 거래를 진행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잠시 비트코인이 채택한 개방형 합의가 어떤 장점, 혹은 정책적 고려나 "이념"에 의해 고안되었는지 책은 짚고 넘어갑니다. 처음부터 비트코인은 모든 거래 당사자의 민주적 합의, 평등, 완전한 거래의 투명성 등 혁신의 가치를 다분히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금융 거래에서 핵심 당사자 말고는 그 거래를 모두가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고 저자는 말하며, 이 점에서 폐쇄형은 능률적,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이런 주장에는, 아마 비트코인의 창시자나 옹호자 등은 강하게 반발할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정치인과 재벌의 검은 뒷거래나 비자금 형성 따위가 근절되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폐쇄형에서는 채굴에 인센티브를 줄 필요도 없습니다. 채굴이란, 사실 "거래의 유효성 검증"이란 수고를 대신 시키는 건데, 간이화한 시스템에서는 그 막대한 노력을 들인 검증까지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4장에서는 "화폐의 전자화= 역사의 필연"이라는 제목을 달고, "비트코인의 장래는 불투명할 수 있어도 블록체인 기술만큼은 정해지다시피한 미래의 핵심 인프라에 쓰일 것"이란 저자의 분명한 지론을 자세히 설파합니다. 블록체인 기술이 확실히 유망하기에, 각국의 중앙은행이나 정책 결정 당국이 많은 노력과 자본을 들여 이의 실용화에 주력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저자는 블록체인 기술의 놀라운 혁신성을 다시 강조하는데(p186), 전자화폐가 아무리 거래의 미래상이라고 해도, 디지털의 특성상 한번 복제가 되고 나면 무제한으로 가짜를 퍼뜨릴 수 있는데, "가짜 돈"의 범람을 무슨 수로 막겠냐는 초기 연구자들의 풀리지 않는 고민이 있었다는 거죠. 이걸 단번에 해결한 게 바로 분산장부 기법이라는 건 앞에서도 나왔습니다. 미국에서는 Fed 코인이 연구되며, 중국은 위안화 전체를 아예 디지털화하는 방안까지 논의 중이라고 합니다.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암호화폐는 무엇이 다를까요? p219에서 요약하고 있습니다.

1) 중앙 은행이 발행주체(바트코인 등 가상 화폐는 발행 주체가 없습니다. 채굴은 그저 채굴일 뿐 없던 걸 창조하는 행위가 아니죠)
2) 시스템 운영도 중앙 은행이 한다(이런 걸 비트코인 지지자들이 가장 싫어하죠)
3) 화폐 단위는 기존 국내 통화의 그것과 같다.
4) 법적 통용력이 있다. (민간 가상화폐는 오로지 이용자의 신뢰에 기댈 뿐입니다)

익명성을 어디까지 허용할지가 문제라고 합니다. 사실 지금의 현금은 가장 좋은 게 익명성입니다. 에금, 주식, 채권(일부 무기명 방식은 제외)은 이 익명성의 한계 때문에 부자들이 싫어하죠. 이자가 없어도 집안 금고에 꼬불쳐 두는 건 영원한 익명성의 보장이 있어서입니다. 비트코인 등의 최대 매력도 역시 익명성이었는데 이걸 중앙은행에서 발행하면 가만 놔둘리가 없죠.

저자는 또한 너무 엄격하게 거래 승인을 행하면 속도에 있어 큰 문제가 발생한다고 합니다. (꼭 중앙은행 발행 이슈뿐 아니라, 현재 블록체인이나 가상화폐에서 가장 애로를 겪는 게 의외로 이 속도 문제라고 합니다) 게다가 더 흥미로운(?) 건, 현재는 법화(한국은행권 등)를 중앙은행이 발행하여 이의 유통을 민간은행에게 맡기는데, 가상화폐는 이럴 필요가 없고 중앙은행- 민간 - 기업, 이 채널 외에 다른 경로가 다 없어져서, 시중은행이 할 일이 안 생긴다는 겁니다. 이뿐 아니라 시중은행은 금융의 수요와 공급을 중개하는 역할을 하는데, 돈을 품지 못하는 은행은 이제 이 역할조차 맡지 못하게 되는 거죠.

저자께서는 심각한 부작용으로 이를 거론하시지만, 비트코인 등의 옹호자는 생각이 다릅니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암호화폐를 더 써야 한다는 겁니다. 시중 은행 같은 번거로운 중개자나 중개 비용이 모두 생략되면, 생산자와 최종 소비자 사이에서 직거래가 일상화되어 양자 모두 저렴한 비용으로 제 값 받아가며 후생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게 그들의 주장입니다. 어찌 보면 이는 4차 산업혁명의 대의와도 통하는데, 없어지는 일자리들과 새로 생기는 거래 당사자 들 사이의 편익 사이에서 과연 무엇을 선택하는 쪽으로 사회 시스템이 진화할지 계속 지켜봐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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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의 종말 - 평균이라는 허상은 어떻게 교육을 속여왔나
토드 로즈 지음, 정미나 옮김, 이우일 감수 / 21세기북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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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개인생의 힘." 진정 이 책의 주제와 박력, 진정성을 한 마디로 요약하는 구절이라고 생각합니다.

나폴레옹이 이른바 근대 국민 국가를 표방하며 가장 역점을 두었던 게 보통 교육이었습니다. 이 제도의 실시 덕분에 아무리 머리가 부족하고 환경이 열악해도 학교에서 훈련 받은 대로만 따라하면 최소한 기본은 누구나 흉내내게끔 되었습니다. 문제는, 기본 이하의 인력을 평균까지 끌어올린 건 좋은데, 모든 학생(나중에 성인이 되어 온전한 사회 성원의 몫을 해 내어야 할)의 정신과 능력, 개성까지를 획일화하여 천편 일률적인 꼴로 왜곡시켰다는 데에 있습니다.

현대 사회는 개개인의 창의적인 기여를 요구합니다. 이제 "천편일률적인" 계산이나 노동이나 단순 반복 작업은 기계가 대신합니다. 저 역시 낮에 간단한 계산을 할 일이 좀 있었는데, 백 년 전이라면 이 정도 일을 해 내는 사람 하나를 기르기 위해 교사 등이 애를 얼마나 썼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오십 명(그 이상일 수도 있었겠죠) 정도 되는 학급에서 단 한두 명의 올바른 인력을 키워 내는 게 얼마나 힘든지. 어떤 경우에는 자신도 똑바로 못 하면서 그저 열등생을 윽박지르기만 한 사이비 교사들도 얼마나 많았을지 하고 말입니다.

사실 저는 근 10년 동안 한국에서, 일부 학부모(중에서도 어머니)들이 지나치게 자녀의 정신 건강에 대해 염려하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이(그 중에서도 아들)가 좀 학습이 부진하다 싶으면 무조건 ADHD로 몰고가며, 도대체 ADHD 아닌 애가 없는 것만 같더군요. 그런데 평균적으로(ㅎㅎ) 그렇게 흔한 질병이라면 과연 그게 병이 맞을지 하는 의심도 들었더랬습니다. 자신에 대한 애정이 지나친 몇몇 분이 건강 염려증이란 "병"을 달고 살듯, 아들 걱정이 지나치다 보니 웬만하면 친한 의사한테 가서 처방을 받아 오시더군요. 그렇게 해서 호감 있는 의사를 어머니가 친하게 곁에 두고 싶으셨던 게 본래 의도 아닐까 의심(?)도 들게 말입니다. ㅎㅎ

우리나라뿐 아니라, 외국도 마찬가지로 이 병 아닌 병 ADHD에 대한 인지도(그 실체가 과연 있든 없든 간에)가 꽤 높습니다. 심지어는 전혀 갖다붙이지 말아야 할 곳에도 일단 자기가 아는 게 그 말이니까 함부로 적용(?)시키고는 웃어댄다거나 말이죠. 병명이 이처럼 경솔하게 농담 소재로 사용되는 걸 보아 향후 이 병이 재평가될 날도 그리 멀지만은 않은 듯합니다.

이 책의 저자이신 토드 로즈 교수는 하버드대 교육대학원에서 한 연구소의 중책을 맡고 계신 분입니다. 어떤 이가 박사학위를 따고 세계 최고 학부에서 이름난 연구자, 그것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학 분야에서 명성을 얻었다면, 우수한 두뇌 못지 않게 그 교육자로서의 인격과 품격에까지 자연스러운 존경심이 바쳐지기 마련입니다. 성장 과정 역시, 내내 모범생이었으며 교사와 동료 학생들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반듯하고 안온한 꽃길을 걸었을 듯합니다. 그런데 이분은 우리의 에상과는 정반대로, 중학생 때 ADHD 장애 판정을 받았고, 결국 적응을 못 해 고교를 중퇴했다는 게 그 충격적인 이력입니다. 검정고시, 야간 학교 등록이라면 대개 한국 사회에서도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게 당연하다는 듯 여겨집니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존경 받는 권위자 중 한 분이, 성장기 주요 지점을 이런 식으로 통과했다고 합니다.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자가 맹렬히 질타하고 싶은 건, 이른바 "평균주의"라는 괴물을 통해 개인의 발랄하고 자유로운 가능성의 싹을 짓눌러 온, 교육계와 일반의 어리석은 통념입니다. 책 p47이하부터 계속 언급되는 케틀레는, 평균주의 사조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 벨기에, 프랑스 등에서 위인으로 추앙되었고, 일본, 한국에서 통계학의 시조, 천문학에의 대표적 공헌자 정도로 알려진 인물이죠. 이분이 태어나던 해가 나폴레옹이 막 권력자로 부상할 무렵이고, 이분이 커리어를 다져 가던 시기는 나폴레옹이 초석을 둔 시스템이 프랑스에서 한창 제 가동을 하며 근대주의, 평균주의의 위력을 더해 갈 시절이었겠습니다.

아무튼 케틀레는 1830년 7월 혁명 때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한 벨기에에서 행정과 통치의 기반이 되는 여러 자료를 정리하는 데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자연의 오류로 빚어진 그 모든 오차는 바람직하지 못하고 오로지 평균만이 우아하며 아름답다." 사실 어느 정도는 그럴지도 모릅니다. 우리 인간의 미의삭은 가장 평균적인(모호한 표현입다만) 인간의 아름다움을 고루 딴 얼굴에 가장 큰 호감을 느낀다고도 하니 말이죠.

케틀레는 (이 책 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사회물리학계의 뉴턴"이 되어 보려는 야심에 가득찼던 사람입니다. 저자가 파악하는 케틀레는 타고난 자연스러운 천재성을 발판으로 이름을 떨치게 된 게 아니라, "이런 지향점을 타겟으로, 이런 수단을 쓰면 나도 뉴턴같이 유명해지겠지" 같은, 어떤 불건강한 공명심에 들떴던 타입 같습니다. 하긴 이런 잣대로는 라플라스 같은 이름난 수학자, 천문학자 역시 비판을 면할 수 없었겠지만 말입니다.

"사회물리학"이란, 그 전까지 완전한 혼란에 휩싸였던 우주에서 놀랍도록 정연한 법칙, 질서를 찾은 뉴턴의 업적처럼, 자신 역시 불순분자, 모자란 머리, 범죄자, 실직자, 자신을 상류층 출신이라고 착각하며 근거 없는 환상에 빠져 사는 늙은 거짓말쟁이, 하루종일 불평불만만 늘어 놓는 부적응자 따위로 가득찬 이 사회에서, 전체를 통제, 관리할 어떤 질서와 틀을 발견한다면 그야말로 뉴턴에 비견할, 아니 그를 능가할 위대한 업적이 아니겠는가 하는 뜻에서 쓴 말이겠습니다. 물론 케틀러의 실체가 그랬다기보다, 이 저자분의 해석, 시야를 대변하는 개념이겠습니다.

저자는 이런 논의 속에서, 생명 없고 존엄을 결한 우주, 천체라는 일개 대상과, 아무리 추한 부적응자이며 거짓말쟁이이고 직장에서 전혀 환영 받지 못하고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을 하나도 이해 못 한 채 길거리 캐스팅만 기다리고 앉은 낙오자라고 해도 여튼 인간인 이상 최소한의 존중은 받아야 할 어떤 무엇을, 무리하게, (또 책의 표현에 따르면) 논리적 비약을 저지르면서까지, 동일시했던 케틀레의 오만을 사정 없이 질타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평균은 존재하지도 않으며, 우리 모두는 그런 평균에서 벗어나는 이단아들이다!" 사실 평균에서 이탈한다는 그 자체가 미덕은 아니고, 대부분의 우리들은 평균에서 떨어지는 분자를 경멸하는 게 보통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평균 이하는 고사하고 심지어 평균을 넘어서는 분자까지 평균이라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옭아매려는 폭력은, 사회 진보의 일체를 가로막는, 그야말로 전근대적인 구태요 폐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장 평균적인 아리아인의 외모를 찾아내어 체제 선전의 장에 활용하려던 나치의 한심한 시도를 무겁게 풍자한 작품으로는 게오르규 신부의 <25시>가 있었죠. 이처럼, 전형이니 평균이니 하는 말은 그 자체로 환상에 지나지 않는데다, 심지어는 전체주의의 폭력과도 연관됩니다. 과거 스탈린식 체제 역시 스타하노프 같은 허상의 노동자를 앞에 내세워, 평균 이하일 수밖에 없는 숱한 근로 대중에게 열등감과 죄의식을 안기고 착취를 일삼았습니다.

"평균"이라는 사고에 숨은 가장 무서운 요소는, 집단 구성원 사이의 서열화를 은근 획책하는 것입니다. 나은 사람이 있고 못한 사람이 있다는 사고 만큼, 사회와 공동체의 분열을 획책하는 위험 요인이 또 없습니다(아니면 반대로, 가장 극단적인 전체주의 독재의 발흥을 부추기든지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등수를 매길 게 아니라 개인들이 가진 다양한 가능성의 진작, 육성에 초점을 두는 교육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지하고 어리석고 폭력적인 평균"이 휘두르는 가당찮은 독재의 주먹부터 먼저 깨끗이 청산하고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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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와 아마존을 알면 데이터 금융이 보인다
김민구 지음 / 성안당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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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테슬라와 아마존을 알면 데이터 금융이 보인다." 적어도 이 책을 읽고 난 후, 독자인 제가 전에 보지 못하던 많은 시야가 새로 트였다는 건 분명합니다. 사실 책 제목으로부터 조금은 그 내용이 어렵지 않을까 짐작하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전혀 그렇지 않고요. 또, 혹 내용이 쉽다면 다 읽고나서 남는 게 없지 않을까 지레짐작하는 분들도 있겠으나 실제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여러 모로 반전(?)도 있었고, 그러면서도 유익한 독서였습니다.

저자께서는 닉네임이 "밀린 신문"입니다. 신문 구독자가 신문이 밀리며 아까운 컨텐츠를 폐지 수집하는 할머니들께 밀어 넣는 건 아주 흔합니다(어렸을 때 학습지 밀리던 생각도 나네요). 그런데 당일자에서 심드렁하게 보고넘긴 기사가, 몇 년 혹은 몇 달 후에 우연히(저자님처럼 의식적으로는 아니고) 다시 만나면 의외의 깊은 뜻을 지녔다는 걸 깨닫는 수가 분명 있습니다. 그래서 저자의 닉 "밀린 신문"에도 공감하게 되었고, 검색의 생활화로 보석 같은 정보와 인사이트를 얻어내야겠다는 다짐도 굳히게 되었습니다.

책을 처음 펼치면 마치 어린이 학습지에나 나올 만한 천연색 그래픽의 4지선다 퀴즈가 실려 있습니다. 쉽다고 여길 수 있으나 막상 풀어 보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저자가 구태여 이런 어린이형 포맷(내용과 난이도는 전혀 그렇지 않지만요) 퍼즐을 책 앞에 배치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시 제목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테슬라와 아마존을 알면 데이터 금융이 보인다." 성인 독자라고 해도 테슬라가 뭔지 아예 모르는 분들도 아직 수두록할 겁니다. 데이터 금융? 캄캄하죠. 카카오 뱅크에 계좌 개설하고 스티커 이모티콘이나 받으면 할 일 다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사실 개념만 정확하게, 또 가장 필요한 사항부터 잡고 들어가면,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아무리 어려운 주제라도 끝까지 정복 못 할 바 없습니다. 아마 저자는 이 점을 독자에게 강조하고 싶으셨던 듯합니다.

예전에 고단했던(물론 지금도 고단하지만요) 직장인들이 자주 입에 올리던 유행어구 중에 "TGIF"라는 게 있었고 이를 그대로 딴 외식업체 체인도 있었죠. 2009년 즈음 아이폰이 처음 나왔을 때 워낙 많은 이들이 (출시 훨씬 전부터 애플이 간헐적으로 흘리는 뉴스를 다 접하고선) 이 혁신 아이템에 열광했으며, 이때만 해도 윈도, PC 등과 호환도 안 되는 맥 시리즈에 대한 집착(디자인 작업에 특화는 되었으나 대중성이 떨어진다며)으로 온갖 욕을 다 먹던 애플은 위상이 급격히 바뀝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구글은 거대 포털 야후에 검색 엔진이나 제공하던 신생 중소기업이었는데, 여튼 이 무렵부터 "위 아 더 퓨처"를 당연하게 외칩니다. TGIF는 바로 트위터, 구글, 아이폰, 페이스북을 일컫는 미래 트렌드의 약칭이었습니다.

"누가 글을 길게 쓰나? 인터넷 시대에 간단히 140자면 끝이지." 이런 말 하면 아직도 그거 통할 만하다며 섣부른 공감 보내는 이들이 많을 겁니다. 그러나 트위터는 지금 너무도 고전하고 있으며, 의도는 아니겠으나 엉뚱하게도 트럼프가 빈사 상태인 이 회사를 먹여살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이후 FANG, 즉 페이스북,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 4대 거인이 질주하다가, 현재는 AAAF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끈다고 저자는 소개합니다. 다른 건 같고 구글이 알파벳(구글의 지주회사)으로 바뀐 겁니다.

퀴즈는 앞의 세트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본문에서도 계속 이어집니다. 이거 풀 수 있으신지 자가 테스트 해 보십시오. 이 퀴즈는 이제 책의 본 주제와도 직접 닿아 있으니까요.

다음 중 전기 자동차 전문 기업(독자가 혹시 모를까봐 이런 친절한 설명을....) 테슬라에서 생산한 "모델 S"의 특징이 아닌 것은? (p59)

① 자율 주행 기능
②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로 성능 향상
③ 평생 데이터 무료
④ 짧은 엔진 오일 교환 주기
⑤ 사라진 시동 버튼

"평생 데이터 무료"에는 음과 양의 효과가 다 있으며 마냥 반길 건 아니겠고요. 답은 ④입니다. 전기 자동차는 엔진으로 구동되는 게 아니라 모터에 의존합니다. 따라서 ⑤, 즉 시동을 미리 걸 이유도 없는 거죠. 과거 가솔린 엔진(디젤 엔진도 그렇지만)이 처음 나왔을 때 얼마나 열렬한 환영을 받았겠습니까만 현재는 그저 에너지 효율이 형편 없고 환경이나 오염시킨다며 이처럼 퇴물 취급에 그치는 겁니다.

이 문제도 한번 풀어 보십시오.

다음 중 인공지능의 성능을 결정 짓는 4대 핵심 요소에 포함되지 않는 것은? (p67)

① 데이터
② 알고리즘
③ 사물 인터넷
④ 컴퓨팅 파워
⑤ 딥 러닝

사물 인터넷(IoT)도 물론 미래 일상을 결정짓는 중요 프레임웍 중 하나입니다만(그 정도도 아니고 엄청 핵심적인...), 인공지능과 직접 원리적으로 관계되는 건 아니죠. 물론 사물인터넷의 센서들이 부지런히 모은 데이터를 전송 받아야 제 할 일(어느 부문에서건)을 해 내겠습니다만.

사소한 나만의 습관도 모이고 모이면 그 중에서 어떤 유의미한 데이터, 결정적인 의료 정보가 나와서 환자들에게 큰 도움을 줄지 아무도모르는 일입니다. 저자는 "코골이 습관"을 모으고 모아 한국인의 수면 패턴이나 건강 정보에 대해 어떤 혁신적인 연구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말합니다. 빅데이터가 그래서 무서운 건데요. 대개 기업이나 연구자들은 어떤 목적 의식을 갖고 데이터에 접근하지만, 눈 밝은 사람은 그전에 전혀 염두에 안 두던 부작용으로부터도 놀라운 법칙을 캐냅니다. 우리는 흔히 페니실린의 발견을 두고 그저 "우연의 효과"라고 하지만, 눈 어둡고 무능한 연구자는 그런 행운도 자기 스키마에 안 들어온다고 무심히 지나치거나 심지어 무시합니다. 열린 마음 창의적인 두뇌라야 "지나가는 중요한 진리"가 우연이든 뭐든 캐치되는 거고, 따라서 세상에 우연, 행운이란 없으며 다 개인의 능력입니다.

예전에 마이클 크라이튼은 자신의 작품 속에서 "세탁기가 발명되어 주부의 일손이 덜어졌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세상이 뭐가 바뀌었는가?"를 질문했지만, 저자는 전혀 생각이 다르십니다. "기술이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 도어가 많아지면 무엇이 좋을까요. 깜빡 잊은 빨랫감을 도중에 넣고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 안 해도 되는 게 좋습니다. 저자의 말을 들어 보십시오. "모든 아파트에는 세탁기, 냉장고 등이 들어갈 자리가 미리 준비되어 있고, 따라서 가전의 규격이란 처음부터 정해졌을 뿐 어떤 개선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계속 새로운 제품이(고칠 틈이 어디 있다고) 나오는 걸 보면 정녕 개발자가 존경스럽다." 맞는 말입니다. 혁신에의 의지는 그래서 무섭고 개인의 이기심을 자극해 모두의 복리를 이끄는 자본주의의 위력이 여기에 있습니다.

데이터를 어디에 활용할 수 있을까요? 저자는 백세시대에 잡텐을 가지라고 합니다. 무슨 소리입니까? 사람은 이제 한 가지 직업만 갖고는 밥벌이도 제대로 힘들 수 있다는 겁니다. 더군다나 직장은 사람을 그리 오래 머물게 하지도 않습니다. 체제가 사악해서가 아니라, 특별한 이유 없이 한 직원을 계속 부리는 구조가 이미 그 회사를 시장에서 못 버텨내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직업은 80세가 되어서도 현역이 될 수 있지만, 직장은 80세가 되면 그들의 소비자가 됩니다."

이 문장이 책 p182에 나오는데, 후반부는 아마 "그 자랑스럽던 직장이 무슨 내게 금전적 혜택을 주는 게 아니라 그저 내 돈으로 수입을 올리는 기업에 불과하다"는 뜻인 듯합니다.

책은 따스한 마음이 느껴지는 서술입니다. 저자는 어느 대목에서 "결혼 전에는 관심사가 자동차와 스마트폰이었지만, 결혼 후에는 냉장고와 세탁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가정 주부의 수고를 이해하는 저자의 생각과 문장이라면, 그 어느 독자의 마음 속 깊은 곳과도 소통할 수 있을 듯합니다. 4차 산업혁명의 파고가 온통 뒤덮을 미래라 해도 우리는 사람 사는 근본 이치를 잊어선 안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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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역습
김용운 지음 / 맥스미디어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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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 이론은 어떤 의미에서 탈근대의 상징입니다. "A라는 원인이 있으면 B라는 결과가 생긴다." 뉴턴이 만유 인력 법칙 등 우주의 신비를 벗기는 노력의 초석을 놓았을 때, 이런 선형적(線形的) 세계관은 이성 만능의 희망과 비전을 계몽주의자, 지식인들에게 심어 주었습니다. 그로부터 사백여년이 지난 지금, 이 근대적 패러다임은 곳곳에서 도전을 받는 중입니다.

한국이 자랑할 만한 대석학 김용운 교수님의 이 책은 이른바 카오스 이론을 바탕으로, 작금의 도도한 세계 역사 물결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사실 저의 이 표현은 카오스 이론의 본질에 비추어선 어폐가 있긴 하죠), 원대한 통찰과 비전으로 우리 독자들의 무지를 일깨우는 내용입니다. 박사님께선 1927년생, 우리 나이로 아흔의 고령이신데도, 이 방대한 신저를 저술하셨고, 이 책에는 바로 몇 달 전에 터진 샬로츠빌 사건이라든가, 도널드 트럼프의 부상, 보리스 존슨 전 런던 시장, IS의 과격 행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대립 양상 최근의 사정, 미국, 러시아, 프랑스 등 외세가 끼어들어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게 된 시리아 내전 등 최신의 정보가 모두 반영되기까지 한 내용입니다.

책을 이렇게 쓰시려면 CNN 등 외신까지 모두 실시간으로 접하고 정보를 업데이트해야 가능한 경지입니다. 새파란 젊은이인 저도 정력과 시간이 부족한 과업을, 연부역강하신 이 대석학은 마치 숨쉬기 운동이나 하시듯 쉽게 해 내십니다. 심오한 통찰을 담은 저술이야 박사님 같은, 하늘이 낸 극소수 천재 두뇌라야 가능하겠으나, 외신을 보고 세상 돌아가는 모습은 우리 같은 평범한 이들도 할 수 있는 일이기에 더욱 부끄러워지는 겁니다. 읽고서 정말 너무도 감탄스러웠습니다.

카오스 이론은 무작정 "미래를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과는 궤를 달리합니다. 그보다는 결과의 확률분포적 도출이라든가, 단순계에서 통하던 법칙이 이 복잡계에서는 더 이상 통하지 않고, 전혀 예상 밖의 결과가 평지돌출할 수 있음을 언제나 명심하여 의사 결정하라는 충고에 그 맥락이 더 가깝습니다. 복잡계에 적용되는 카오스 이론 중 몇몇은 이미 실용적으로 높은 효율을 증명까지 해 냅니다. 기술이나 산업 분야를 넘어, 역사와 현금의 국제 정세를 살필 때에도 이 이론을 적용해 보자는 게 박사님의 제언입니다. 또, 단순 인과율을 통해 모든 미래가 예측 가능하다는 근대적 오만을 이제는 폐기할 때가 되었다는 뜻도 됩니다.

어떤 지도자가 극히 무능하고, 거듭된 실책과 비위를 저질러 자격을 상실했다는 것과, 그 지도자가 권좌에서 비참하게 끌려내려온 사실, 이 둘 사이에 항상 직접 연관성이 있는 건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악인은 즉시 천벌을 받아 죽어야 하며, 악함과 약함이 별개가 아닌 동일 결함일 수 있다며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어느 실직자는 그 순간 자신의 실체를 파악하고선 자살에 이르러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고, 이들 중 상당수는 멀쩡하게 그 부조리한 행태를 이어가며 민폐를 끼칩니다.

여튼 어떤 분은 그 자리에서 내려욌는데(=끌려내려졌는데), 이 역시 저자께서는 복잡계의 예측 불능이란 본성이 현실로 화한 예라고 보시는 듯합니다. 저자께서는, 아마도 뒤에서 웃고 있을 미스터 X의 존재도 슬쩍 언급하시는데, 세계 지도자 중 이니셜이 x로 시작하는 이가 그리 많지도 않습니다(^^ 물론 그저 미지의 존재라는 뜻으로 X를 거명하셨을 수도 있죠. 누가 감히 박사님 같은 대석학의 진의를 감히 일도양단으로 추단하겠습니까. 이 역시 카오스 법칙에 따라 감히 몇 가지 가능성을 거론할 뿐입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사실 역시 기존의 여론 조사 기법이나, 언론 기관 등의 통찰, 기대 등으로는 전혀 감 잡을 수 없었던 의외의 결과였습니다. 브렉시트는 또 어떻습니까? 근대 이후 세계는 이성과 뚜렷한 목적을 가진 이들이 때로는 무력으로 충돌하고, 때로는 현명한 지도자들이 자국민을 설득하고, 때로는 국민 의사를 선제적으로 대변하여 과감한 선견지명으로 국정을 이끌고 세계 정세를 안정시켰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독재국가는 물론 소위 민주 선진 국가들에서도, 어떤 군중 심리나 대중 추수, 선동적 술수에 리더들이 즐겨 의지합니다. 의지한다기보다 그들 역시 국가와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갈지도 모르면서 미친 곡예를 이어가는 것만 같습니다. 에측이 안 됩니다. 지도자의 자질도 부족하고, 그 전에 시대의 성격이 바뀌어 더 이상은 과거 방식으로 통제가 안 된 세상이 되어버린 듯합니다.

박사님은 특히 대중의 한(恨)에 주목하십니다. 종래 한(恨)의 정서는 우리 한국(韓國)인들 고유의 품성과 무의식으로 여겨졌으나, 박사님은 이미 세계 곳곳에서 불특정 다수, 혹은 특정 종족이나 인종이 품은 resentment(단, 책 어느 한 군데에서는 s가 두 번 겹쳐진 오타가 발겭됩니다. 다음 판에선 교정되길 기대합니다)가 작금의 세상을 움직이는 큰 동력 중 하나라고 말씀하십니다. 흑인은 신대륙에 노예로 끌려와 수백 년 간 경멸과 차별 받아 온 한이 있습니다. 반면 백인 중 상당수는 1960년대 민권 운동 이래 일부 흑인들이 정치적으로 협잡을 일 삼아 부당한 특권을 챙겼다며 역 차별에 대한 깊은 분노를 품었습니다. 샤를로츠빌의 대립상은 "헤이트(너희가 싫다!)와 카운터헤이트(우리 역시 그런 너희가 싫다!)의 극명한 충돌"이라는 게 박사님의 규정입니다.

이슬람 역시 한을 품었습니다. 석유로 인해 챙기는 막대한 이익 중 상당 부분은 미국과 유럽 백인 자본이 이유 없이 자기들에게서 뺏어간다는 피해의식입니다. 현세가 고단한 일반 민중은 지금의 생과 사가 큰 의미 없고, 교리에 충실하다 죽은 자에게 허여되는 천국행이 훨씬 중요합니다. 그래서 자살 테러가 그리도 빈발한데, 당사자에게는 멸사봉공 이념의 장엄한 실천이므로 아무 회한이 없습니다. 이러니 지구촌에 편안할 날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윤봉길 의사, 안중근 의사 등의 거룩한 희생을 기리며 교육을 받았으므로 이런 현상에 대해 마냥 냉연한 반응으로 일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이성과 대화와 타협으로 갈등이 종식될까요? 종래의 진보 좌파 진영은 이른바 "정치적 공정성"을 내세우며 그런 이상을 제시합니다. 보수 진영은 힘의 논리를 앞세워 이른바 sham peace가 부른 불건전한 교착 상태를 일거에 타파할 것을 주장합니다. 해결책과 비전은 서로 극과 극이지만, 이들 양 진영은 이미 효용이 다한 어떤 근대 사관, 세계관에 기반했다는 게 다릅니다. 그러나 박사님은 이미 미래의 패러다임인 카오스 이론에 깊이 천착하시어, 저 같이 새파랗게 젊은 독자층이 간신히 인식 기반으로 기대는 근대 합리주의를 이제는 폐기할 때가 되었다며 담대한 선포를 하십니다. 박사님의 견해가 맞고 아니고를 떠나, 사고와 철학의 근본 지평 설정에 이처럼 유연하실 수 있다는 그 자체가 놀랍습니다.

원인이 복잡하고 인풋(input)부터가 측량이 어려울 만큼 다발적인데, 어떻게 단순한 결론을 뻔뻔스럽게 도출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이 변했으면 우리들의 사고와 관점 역시 변해야 합니다. 경영에서는 이미 모든 것을 바꾸고 폐기, 전복하라는 파괴적 혁신이 대세입니다. 복잡계의 관측, 혹은 참여는 복잡계의 본성(이 말도 사실 어폐가 있습니다만 일단요)에 맞추어야 한다는 게 이 심오한 대저로부터 우리 평범한 독자들이 암시받을 수 있는 한 가닥의 지혜입니다. 우리는 지금 전근대, 근대, 혹은 탈근대 중 어느 지평에 발을 디디고 있습니까? 겸허히 자문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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