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은 나도 과학이 알고 싶었어 1 - 사소하지만 절대적인 기초과학 상식 126 실은 나도 과학이 알고 싶었어 1
래리 셰켈 지음, 신용우 옮김 / 애플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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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유전적으로 많이 먹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다. 음식이란 것은 수천 년 동안 매우 부족했다. 더구나 소금, 탄수화물, 지방이 포함된 음식은 구하기 힘들었으므로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모두 인간의 식단에 필요한 영양소지만 구하기가 힘들어 지나치게 많이 먹게 되는 일은 결코 없었다... 하지만 요즘엔 다르다. 사방에 음식이 널려 있다. 패스트푸드점과 식당이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우리는 뼛속 깊이 뿌리내린 '석기시대 정신'으로 아무리 먹어도 만족을 모른다.    p.27

왜 몸에 안 좋은 음식일수록 자꾸 당길까? 이 책에 의하면, 간단히 말해 정크 푸드에 설탕이 엄청나게 들어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게다가 기름진 음식을 먹으면 뇌에서 아드레날린과는 반대로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고 스트레스를 줄이는 강한 호르몬인 옥시토신을 혈관으로 분출시킨다고. 그래서 정크 푸드를 '위안이 되는 음식'이라고 부른다는데, 사실 '몸에 안 좋은' 음식이라도 맛이 있다면 별 생각 없이 즐기는 나로서는 괜히 뜨끔해지고 말았다.

이 책은 미국국민 과학선생님이 기초적인 과학 지식을 쉽고 재미있게 알려 주는 과학교양서이다. 청소년과 성인을 막론하고 누구나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교양으로서의 과학상식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전혀 어렵지 않고 지루하지도 않게 읽히는 책이다. 미국대통령 과학교사상 6회 수상했다고 하는 저자는 20여 년간 과학 칼럼을 연재하며 가장 많이 받았던 126가지 질문들을 엄선하여 이 책에 담았다.

 

달에는 3일이면 가지만 화성은 편도로 8개월이 걸린다. 잠시 머무른 뒤 돌아오는 데 또 8개월이 걸리니, 화성을 왕복하려면 최소 16개월 이상이 소모된다. 그 기간 동안 사방이 막힌 우주선 안에서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채 의료 시설도 이용하지 못하면서 매일 똑같은 동료들과 생활하려면 엄청난 정신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화성은 생각처럼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p.197

영화 '마션'을 비롯해서 화성을 탐사하고, 화성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는 작품은 생각보다 꽤 많다. 그렇다면 실제로 인간이 화성에 갈 수 있을까. 물론 인간은 화성에 갈 수 있다. 하지만 이 여정은 비용이 굉장히 많이 들고, 위험하며, 오랜 시간이 걸린다. 화성에 우주선을 보낼 수 있는 특정 시간대가 있는데, 반드시 정확한 발사 시간대에 이륙해 정확한 시간에 착륙하고, 임무를 수행한 뒤 복귀선과 만나야 한다. 게다가 화성은 인간에게 매우 적대적인 장소로 대부분 이산화탄소로 이루어진 얇은 대기가 열을 잡아 두지 못해 적도 부근의 평균 기온이 영하 46도에 이른다. 대기압도 굉장히 낮고, 기온도 낮아, 물이 일반적인 액체 상태로 존재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화성으로 무인우주선을 보내 탐사하는 것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유인우주선이 화성에 간 적은 없다고 한다.

<실은 나도 과학이 알고 싶었어> 1권은 인체, 지구과학, 천문학, 기술과학이라는 카테고리로 사소하지만 중요한 기초과학 상식을 다루고 있다. 우리 몸에는 세포가 몇 개나 있을까? 우리가 꾸는 악몽은 어떻게 나타나는 것일까. 물을 지나치게 많이 마시면 익사할까? 음치는 왜 생기는 걸까? 일란성 쌍둥이는 지문도 같을까? 눈은 외 하얀색일까? 고층 건물은 왜 땅으로 꺼지지 않을까? 오존층이 계속 파괴되면 지구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타지 않고 태양에 얼마나 가까이 갈 수 있을까? 우주의 다른 곳에 또 다른 생명체가 존재할까? 블루투스는 어떻게 작동하는 걸까? 레고는 어떻게 맞물리는 걸까? 등등.. 일상 속에서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해서 지나쳤던 의문부터 매우 심호하고, 철학적이고, 유머러스하고, 기발한 질문에 이르기까지 흥미로운 내용들이 가득하다. 과학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사람도 과학이 너무 어려워 아예 알기를 포기했던 사람도, 과학을 공부하고 있는 청소년들도, 과학 이론과 전혀 무관한 삶을 살고 있는 성인들에게도 도움이 될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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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K
돈 드릴로 지음, 황가한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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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정의하는 요건은 그것에 끝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연은 훼손되지 않고 오염되지 않은 형태로 돌아가기 위해 우리를 죽이고 싶어 합니다."

"영원히 사는 우리는 과연 어떤 쓸모가 있을까요?"

"우리는 어떤 궁극적인 진리와 마주하게 될까요?"

"사람들이 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이유는 내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이 주는 고통 때문이 아닐까요?"   p.77

주인공 제프 록하트는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비밀 단지로 향한다. 그의 아버지 로스 록하트는 육십대 중후반의 억만장자로 생체공학과 신기술이 발전할 미래까지 육체를 냉동 보존하는 비밀 실험 프로젝트의 주요 투자자이다. 그의 두 번째 아내인 고고학자 아티스가 불치병에 걸려 이 실험에 참여하기로 한 상태였다. 하지만 제프는 이 모든 것들이 혼란스러웠고, 낯설기만 했다. 그에 비해 아버지 로스는 의학적, 기술적, 철학적으로 이 프로젝트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었다. 냉동 보존술로 몸이 냉동되고, 미래의 어느 시점이 되면 끝에 이르게 한 상황에 대응할 방법이 존재하는 시기가 올 것이고, 그때 정신과 육체가 복원되고 다시 살아나는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제프는 의붓 어머니와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이곳에 왔는데, 실제로 목격한 그곳의 풍경은 충격적이었다. 사람들이 때가 되기 한참 전에 몸에서 필수 장기들을 꺼내고 죽은 상태가 되는 것을 선택했다는 사실, 후드와 가운 차림으로 투명한 캡슐 안에 웅크려 있던 마네킹같은 모습들, 그들이 언제가 되든 다시 살아났을 때 모두 똑같을까. 인간으로 죽어서, 같은 크기의 드론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은 아닐까. 이들은 경계의 바깥에서, 미래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일까. 제프는 이곳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사유한다. '인간은 태어남을 선택할 순 없지만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영예로울 수 있는 것일까.' 이들은 시간의 바깥에서, 역사의 바깥에서 살게 될까.

 

평범한 순간들이 삶을 구성한다. 어머니는 이 명제를 믿어도 됨을 알았고, 나 또한 결국은 우리가 함께 보낸 세월에서 그것을 배웠다. 엄청난 도약도, 추락도 아니다. 나는 이슬비처럼 내리는 과거의 작은 파편을 들이마시고 내가 누구인지 안다. 전에는 알지 못했던 것이 시간의 필터를 거친 지금은 더 선명하다. 다른 누구에게도, 아주 아주 조금이라도, 아무에게도, 그 누구한테도, 절대 속하지 않는 경험이다. 나는 그녀가 돌돌이를 사용해 천 코트에서 보풀을 제거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코트를 정의해봐, 나는 생각한다. 시간을 정의해봐, 공간을 정의해봐.   p.117

사실 '냉동 보존술'이라는 소재는 공상 과학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다. 사람의 몸을 극저온에 보관해 미래의 사람들이 되살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을 '인체 냉동 보존술'이라고 한다. 우주선을 타면 우주를 여행할 수 있는 것처럼, 이 방법 또한 미래의 다른 시간대로 이동할 수 있는 일종의 시간 여행인 셈이다. 시신을 급속 냉동시켜 세포 조직의 부패를 막아 수십 년 혹은 수백 년 동안 보관했다가 부활이 가능해질 때 즈음해서 해동시킨다는 것인데, 실제 냉동인간 상태로 보관되어 있는 시신은 현재 미국과 러시아에 걸쳐 600여 구에 달한다고 하니,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과연 불로장생은 더 이상 헛된 꿈이 아닌 걸까. 질병 때문에 삶을 일찍 마감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기적 같은 기술이 그야말로 유일한 희망일 것이다. 물론 냉동 보존에 워낙 거액의 비용이 들기 때문에,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소재부터, 표지의 분위기까지 모두 전형적인 SF 작품처럼 이야기가 흘러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굉장히 사색적이고, 철학적인 작품이라 흥미로웠다. 극중 '사람들이 평범하게, 쉽게 잊으며 하는 일들. 우리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고 인정하는 것의 표면 바로 밑에서 숨 쉬는 것들. 나는 이런 행위, 이런 순간에 의미가 있길 원한다.'라는 문구가 있었는데, 어쩌면 이 작품이 쓰여진 방식이 바로 이런 방식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보여지는 것 이면에 있는 것들을 살피고, 현재와 미래, 삶과 죽음을 넘나들며 진지하고 예리한 통찰을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니 말이다. 누구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소재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다루고 있는데다,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 또한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고 절묘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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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시나리오 1 - 의문의 피살자
김진명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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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사실보다 더 진실이라야 한다.'

매우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이 작가 서문은 무얼 말하는가. 그는 자신이 쓴 소설에 등장하는 이런 일화들이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건가. 그렇다면 그의 죽음은 소설 속의 인물이자 실제 인물인 대통령안보보좌관이나 뉴욕의 류삼조 박사와 관련이 있다는 얘긴가.    -1, p.54~55

베이징에서 한국인 소설가가 피살된 채 발견된다. 이름은 이정서, 이틀 전에 평양에서 베이징에 도착했고, 오던 날 밤 권총에 맞아서 피살되었다. 여권, 지갑 할 것 없이 전부 사라졌고, 전문가에게 당한 것처럼 보였는데, 비행기 꼬리표로 인해 신원과 그의 여정이 밝혀진다. 뉴욕과 평양과 베이징을 동시에 방문했다는 것으로 보통의 여행객으로 보이지는 않는데, 대체 그는 왜 베이징에서 살해된 것일까. 베이징의 공안으로부터 연락을 받아 함께 수사를 벌이게 된 한국의 검사 장민하는 이정서의 피살에 얽힌 배후를 밝히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는 이정서가 쓰던 소설이 국제 관계나 국제 정치 외교에 관한 내용이었다는 걸 듣고는, 최근 쓰던 원고가 단서가 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피살된 소설가가 미완성 원고에 써놓은 것은 한국의 정치인을 비롯한 주요 인물들이 미국의 정보기관에 치명적인 약점을 잡혀 평소에는 소신대로 뭘 하는 척하지만 중요한 일에서는 은밀히 미국의 입장을 대변할 수밖에 없다는 구도로 진행되는 이야기였다. 장검사는 최근 수사 중에 알게 된 사실과 비슷한 내용을 원고에서 발견하고, 소설 속 내용이 현실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사건을 조사해나가면서 점차 배후에 엄청난 정치적 음모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과연 이정서가 죽기 전 언급했던 '3의 시나리오'란 무엇이며, 그는 왜 살해 당하게 된 것일까.

 

정말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백 년에 한 번도 틀어질 수 없는 일들이 틀어지고 있었다. 이정서의 계획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미국 대통령이 무언가를 성사 직전에 취소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김정일 암살이라는 엄청난 공작이 불과 하루 전에 취소되는 일 역시 이해할 수 없었다.

장 검사는 제3의 시나리오가 이런 일들과 모종의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강렬한 예감에 빠져들었다.     -2, p.115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할 북미관계의 전환기를 다룬 이 작품은 2004년 출간작으로, 이번에 15년 만에 재출간되었다. 김진명 작가는 25년 전에도 한반도의 핵개발을 소재로 한 작품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적이 있다. 2년 전 신작에서도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미중러일 4강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현실을 그려냈었다. 허구와 사실을 넘나드는 이야기로 팩트 소설이라는 독보적인 장르를 구축한 작가답게, 매번 정치적인 이슈를 자신만의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무엇보다 정치적인 배경을 무대로 펼쳐지는 극중 스토리 또한 매력적인 미스터리와 긴장감 넘치는 전개로 지루할 틈 없이 펼쳐지고 있어 작품의 가독성만큼은 인정해줄 수밖에 없는 작가이기도 하다.

<3의 시나리오> 역시 무려 15년 전에 쓰였지만, 여전히 뜨거운 남북 관계의 이슈를 짚어내고 있다. 북미회담 결렬에 담긴 진짜 메시지는 무엇인지, 대북 정책에 대한 고민과 국제 정세의 움직임을 읽어내고 그 이면의 메시지를 '소설적 허구'로 그려내고 있지만, 누구라도 이 작품을 읽으면서 '진짜 현실'을 떠올리고, 한번쯤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다. 소설이지만 소설 같지 않고, 사실보다 더 사실 같은 전개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게다가 대중 소설로서는 드물게 국가 간 대치되는 상황을 치밀하게 묘사해 CIA 학술정보지에도 등재되었다고 한다. 그만큼 놀라울 정도로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팩트 소설이라는 말일 것이다. 15년 전에 쓰인 작품이라 이야기의 배경은 오래 되었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힘의 역학관계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의 그것과 큰 차이가 없다는 점 또한 이 작품을 여전히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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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경 3미터의 카오스
가마타미와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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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대 블로그 사이트 아메바블로그의 톱랭킹 블로거가마타미와가 자신 있게 공개하는 코믹 일상툰이다. 저자는 '혼자 사는 가마타미와의 반경 3미터의 카오스'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파워 블로거이자,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이다.

왠지 길을 묻기 쉬운 사람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자신에게 모르는 사람이 곧잘 말을 걸어온다고 한다. 그래서 재미있는 사람과 만난 일을 잊어버리기 아쉬워 매일 일기를 쓰기 시작했고, 그 중에서 특별히 좋아했던 사람들, 재미있었던 사람들의 사건사고를 만화로 그리게 된 것이다.

 

일상에서 이렇게 특이하고, 재미있는 사람을 유난히 많이 만나게 되는 상황이 다소 비정상적으로 느껴지긴 한다. 화려한 말솜씨의 미녀 점원이 옷을 골라주다가 갑자기 자신이 변태라고 고백하거나, 패밀리 세일에서 딸의 옷을 사면서 다짜고짜 옷을 대보고 어떤지 물어보는 아주머니, 100엔샵에서 물건을 고르면서 비슷한 둘 중에 뭐가 나은지 상담을 요청하는 할머니, 은행 ATM코너에서 눈이 어두워 기기를 잘 다루지 못하는 할아버지를 도와드렸는데 카드 비밀번호까지 알려주는 상황 등등... 실제로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개성 넘치는 인물들의 향연이다.

일상 속 유쾌한 사연들 외에도 타이완과 미국 여행기도 수록되어 있어 흥미로웠다.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떠났던 타이완에서 엄청나게 긴장한 동시에 즐겁기도 했던 저자의 심정이 공감되어 더욱 재미있었다. 티켓 발권부터 혼자 밥 먹기, 택시 타기 등등 혼자서 낯선 해외에서 겪게 되는 상황들이 저자 특유의 유쾌함과 웃음 터지는 센스로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여행기에서는 실제 여행 당시의 사진들도 수록되어 있는데, 사진들이 실사 만화처럼 편집되어 있어 더욱 독특한 여행기가 된다.

어린 시절부터 콤플렉스인 맥주병 탈피를 위해 수영장에 다니는 에피소드도 너무 재미있었다. 가격이 제일 저렴한 평일 낮반으로 등록한 탓에 할아버지, 할머니 밖에 없는 풍경 속에서 수영을 배우기 위해 고군분투하게 되는데, 그야말로 시트콤 한 편을 보는 것처럼 웃음을 참을 수 없게 만들어 주는 에피소드였다. 수영장 할머니들 캐릭터는 유별나긴 했지만, 괜스레 정이 가는 그런 인물들이기도 했다.

사실 길을 걷다가, 어느 가게에서, 음식점에서 저 사람 왜 저래? 싶은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는 경우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은 그저 순간 웃고 넘기고 잊어 버리겠지만, 가마타미와는 그런 순간들을 일기로 쓰고 기억한다. 무려 십팔 년 정도나 일기를 써왔다고 하니, 아마도 습관이 되었을 것 같기도 한데, 재미있는 사람과 만난 경험을 보물이라고 생각하기에 아마도 더 그런 상황을 자주 마주하지 않게 되었나 싶다.

물론 이 책을 읽다 보면 이렇게 이상한 사람이 실제로 있단 말인가 싶은 대목도 종종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현실은 허구보다 더 말도 안 되게 이상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그러니 여기 소개된 혼자 간직하기 아까운 레전드 에피소드들을 읽으면서 공감해도 좋고, 아니더라도 그저 깔깔대고 폭소를 터뜨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아마도 당신은 이 책을 읽으면서 하루치의 웃음을 다 소진하게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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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조금씩 너만의 시간을 살아가
유지별이 지음 / 놀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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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마지막 한 장을 넘기면 '그렇게 모두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동화는 늘 그렇게 말해. 나조차도 모르는 나의 결말을 다른 사람들은 알고 있는 건지 열심히 하면 성공할 거래.

왜 아무렇지 않은 척했던 걸까. 작아지는 꿈을 외면했던 걸까. 마음을 열지 않았던 걸까. 그렇게 생각할 때 나에게 살포시 햇빛 한 줄기가 내려앉았어.    p.84

네이버 그라폴리오 인기 작가 유지별이의 첫 책이다. 작가는 틴에이저 일러스트 스토리 창작자 공모전에서 당선하며 데뷔했는데, 십 대 창작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감성과 메시지가 인상적이다. 누구나 거쳐온 학창 시절의 추억을 떠올려 볼 수 있는, 열아홉의 꿈과 스물의 낭만이 가득한 일러스트들이 청소년과 대학생 독자들에게 많은 공감과 위로를 안겨줄 수 있을 것 같다. 책도 예쁘고, 스토리도 마치 웹툰 처럼 이어지는 책이라 졸업·입학 시즌 선물하기에도 좋을 것 같다.

대학 졸업 후, 직장을 다니면서 사회인이 되고부터는 매일매일의 일상이 뭐 그리 바쁘고, 전쟁처럼 지나가는지.. 학창 시절을 돌아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흘러 지금은 길을 걷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보면 나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나 싶게 딴 세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때 그 시절 3월이면 새로운 선생님과 새로운 반 친구들에 대한 설레임과 한 해 동안 어떻게 보낼지에 대한 기대감으로 봄을 맞이했었다. 새 학년이 되면서 친했던 친구들과 한 반이 되면 조금 안심이 되었는데, 그들과 반이 갈리고 낯선 친구들만 가득한 교실에 들어서면 이번에도 마음에 맞는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살짝 두렵기도 했다.

그 짧은 쉬는 시간에 도시락을 미리 먹거나, 매점에 달려가 간식으로 배를 채우던 장면, 새벽에 학교에 가서는 밤하늘에 별이 총총 떠 있을 때가 되어야 집에 돌아와서 녹초가 되던 기억, 가끔 학교가 일찍 끝나는 날 방과 후의 포근한 공기와 햇살, 시험 시작 전 교실의 긴장된 분위기, 소풍과 수학 여행을 떠나던 순간의 두근거리는 설레임 등...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래 전 그 날, 그 순간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내가 빛나면 남들이 나를 좋아해줄 테니, 웃어야지. 잘해야지. 참아야지.

내가 뒤처지면 감당 못 할 외로움이 찾아올 테니, 행복해야지. 노력해야지. 높아져야지.

그런데 그냥.... 빛나지 않더라도 나를 봐주면 안 돼?    p.183

보통 그림 에세이는 남녀의 연애와 사랑을 주제로 한 책들이 대다수를 이루는 데 비해 이 책은  열아홉의 꿈과 스물의 낭만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어 인상적이다. 작가가 열아홉의 나이에 데뷔했고, 바로 자신이 살아내고 있는 시간들을 현재 진행형으로 그려내어 더욱 또래 독자들에게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이 아니었나 싶다. 새학기가 시작되는 봄에서 시작해, 기말고사, 여름방학을 거쳐 가을을 지나며 마지막 시험을 치르고, 겨울이 되고, 다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며 봄을 맞이하는 스토리이다. 소소하지만, 누구나 거쳐왔던 학창 시절의 추억들이라 뭉클하고, 따뜻하고, 설레이는 이야기들이었다.

작가의 말처럼, 어른이 되어도 서툰 건 똑같다. 꾸준히 앞만 보며 달려오다 보니 어느 순간에는 아무것도 모르던 때가 그리워질 수도 있는 것이다. 부모님의 그늘 아래 있던 학생 신분에서 사회라는 거대한 세상으로 발을 딛고, 내가 하는 일로 인해 돈이라는 걸 벌게 되면서 우리는 비로소 한 세계를 깨버리고, 다른 세계로 나아가게 된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 가면서 점점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힘들지 않은 척, 마음을 숨기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그렇게 마음의 여유를 잃어 버리고, 주변의 소중한 것들을 놓치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 책은 위로와 휴식을 안겨준다.

나에게도 이렇게 빛나던 시절이 있었지, 추억하며 그 시간들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맑은 새소리, 살랑이며 볼을 간지럽히는 꽃바람, 반짝이는 빛의 조각들, 그리고 나무 그늘 틈으로 보이는 눈부신 반짝임까지.. 봄에 읽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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