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이다. 낮엔 맑고 밤에는 기온이 매우 낮아 수증기가 엉겨 서리가 내리는 때를 말한다. 늦가을로 접어들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남보다 일찍 맞이하던 계절의 변화를 올 가을은 유독 더디게 알아차린다. 서리라도 내려야 가을 온 줄 알 수 있으려나 싶었지만 여전히 늦다. 서리 내리면 급격한 변화를 눈으로 확인하게 된다. 늦게까지 피어있던 꽃은 금방 시들고 단풍들어가던 나뭇잎은 더욱 선명한 색으로 변하며 이내 땅으로 떨어진다.

상강이 지나면 빛이 더욱 귀하다. 갑자기 뚝 떨어진 기온으로 옷깃을 여미게 될 때이므로 허한 속내를 다독여도 눈치 보지 않아도 좋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더욱 가까워져야 함을 강제하는 때라서 그 핑개삼아 서로의 마음끼리 의지하기도 좋다.

마알간 달빛에 더딘 밤을 건너온 안개의 속내가 이슬로 맺혔다. 가슴에 서릿발 내리기 전에 마음깃 잘 여며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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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비처네 : 목성균 수필전집
-목성균 저, 연암서가

2004년에 세상을 떠난 수필가 목성균의 수필 전집

저자도 책도 늦은 만남이다. 이미 이 세상과 이별한 사람이라 만날 수 없지만 삶이 담긴 글로 만난다.
"죽어서 살아 돌아온 수필가"
뒤늦게 주목 받았다는 이야기일테니 무엇이 어떤지는 접해봐야 알 것이다.

깊은 가을에 계절을 닮았을 사람을 만난다.

ㆍ누비처네 : 누벼서 만든 처네
ㆍ처네 : 1. 이불 밑에 덧덮는 얇고 작은 이불
2. 어린애를 업을 때 두르는 끈이 달린 포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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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_읽는_하루

아주 넓은 등이 있어

종이를 잘 다루는 사람이고 싶다가
나무를 잘 다루는 사람이고 싶다가
한때는 돌을 잘 다루는 이 되고도 싶었는데
이젠 다 집어치우고

아주 넓은 등 하나를 가져
달[月]도 착란도 내려놓고 기대봤으면

아주 넓고 얼얼한 등이 있어
가끔은 사원처럼 뒤돌아봐도 되겠다 싶은데

오래 울 양으로 강물 다 흘려보내고
손도 바람에 씻어 말리고

내 넓은 등짝에 얼굴을 묻고
한 삼백년 등이 다 닳도록 얼굴을 묻고

종이를 잊고
나무도 돌도 잊고
아주 넓은 등에 기대
한 시절 사람으로 태어나
한 사람에게 스민 전부를 잊을 수 있으면

*이병률의 시 '아주 넓은 등이 있어'다. 내가 내 등에 얼굴을 묻고 한동안 숨을 가다듬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럴 수 있으면 가을볕의 뽀송함을 품은 등이 아주 넑은 등이 아니라도 무방할 것이다. 시월의 마지막날 가을볕의 온기를 품는다. 내 좁은 등에 기댈 누군가를 위해ᆢ.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수놓는_농가찻집 #핸드드립커피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리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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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국'
국화는 노란색이어야 하고 산국이 피어야 국화 피었다고 할 수 있다. 산국 피었으니 온전히 가을이다. 올망졸망 노란 색이 환하다. 중양절 국화주 앞에 놓고 벗을 그리워 함도 여기에 있다. 국화주 아니면 어떠랴 국화차도 있는데ᆢ.


산에 피는 국화라고 해서 산국이다. 국화차를 만드는 감국과 비교되며 서로 혼동하기도 한다. 감국과 산국 그것이 그것 같은 비슷한 꽃이지만 크기와 향기 등에서 차이가 있다. 산국은 감국보다 흔하게 볼 수 있고 가을 정취를 더해주는 친근한 벗이다.


뜰의 가을날 한때를 수놓던 구절초가 시들해지니 그 옆자락 산국도 핀다. 일단 노랑색으로 이목을 끌어 발길을 유도하더니 그보다 더 끌림의 향기로 곁에 머물게 한다.


개국화·산국화·들국이라고도 하는 산국은 감국과 비슷하게 피면서 감국인 것처럼 흉내를 내는 것으로 보고 '흉내'라는 꽃말을 붙은건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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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들로 향하는 마음에 잠시 쉴 틈이라도 내라는듯 하늘이 뿌옇다. 날씨와는 상관도 없다는 듯 살랑이는 바람결에 부질없이 마음만 설렌다. 설악산엔 첫눈이 낙엽만큼 쌓였고 단풍도 이미 진다는데 남으로 내려오는 가을의 걸음걸이는 어찌이리 더디기만 하는지. 

하늘 높은줄 모르는 메타세콰이어도 술지마을의 천연기념물 은행나무도 여전히 푸르기만 하다. 어쩌다 만나는 억새는 부풀었고 쑥부쟁이만 겨우 보라빛을 떨궈내고 있다. 이곳의 가을은 어정쩡하다.

볼따구가 터질듯 부풀어 오른 장두감에 가을볕이 앉았다. 더운 한낮과 차가운 밤을 연거퍼 맞이하고 된서리도 맞아야 속내가 붉어져 비로소 제 맛이 들 것이다. 푸르기마한 감잎에 단풍들 날을 감도 나도 기다린다

계절이나 사람이나 매 한가지. 때맞춰 갈 것은 가고 올 것은 와야 한다. 괜히 서성거리다가는 된서리 맞는다.

남녘의 단풍잎은 반쯤만 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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