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쏟고난 하늘엔 별들이 총총하고 푸르고 깊은 밤이 아득히 멀어 보인다. 바람도 잠든 한밤중 뜬금없이 울리는 풍경소리에 그리운님 소식인양 서둘러 격자문 열고 토방 아래 내려섰다.

눈 길을 따라 뜰을 지나 골목 끝 가로등 아래서 섰다. 봄부터 가을까지 할머니들의 놀이터인 채마밭 너머로 밤은 깊어가는줄 모른다. 여전히 잠들지 못하는 산등성이 너머를 향하는 발길을 억지로 붙잡고 돌아서는 등굽은 내그림자가 유난히 짧아 보인다.

뎅그렁ᆢ.
눈빛에 놀란 처마밑 풍경이 스스로 울리는 밤이 사뭇 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그래, 눈은 이렇게 내리야 제 맛이다. 

목화 솜 타서 솜 이불 누비는 할머니의 마음 속에 펼쳐놓은 그 포근함을 품으라고 눈은 이렇게 온다.

우선은 눈이 주는 이 평화로움을 마음껏 누리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석류나무'
화사한 붉은 색의 꽃이 피는 날이면 늦봄에서 여름의 기운을 느끼게 된다. 열매의 알맹이와 꽃의 그 붉음이 서로 닮았다.


나무는 제법 오랜시간을 쌓았다. 나무만 보고서는 이름 불러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을까. 말라버린 열매를 떨구지 못하고 있다. 늙은 나무는 더이상 많은 꽃을 피우지 못하지만 피는 꽃은 그 어느 나무보다 곱다. 꽃피는 때면 그 밑을 서성이게하는 나무다.


한국에는 이란에서 중국을 거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1400년대에 쓰인 양화소록 養花小錄에 석류를 화목9품 중 제3품에 속하는 것으로 쓴 기록이 있는 점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재배된 것으로 추정된다.


석류나무 꽃의 아름다움은 오늘날 우리가 흔히 뭇 남성 속의 한 여인을 말할 때 쓰는 '홍일점'의 어원이다. '원숙미', '자손번영'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눈이다. 첫눈으로 맞이할 눈다운 눈이 오신다. 벌써 까만밤 햐얀 눈세상인데 그것으로도 부족한지 묵직한 소리와 함께 비오듯 함박눈이 오신다.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던
이름 하나가
시린 허공을 건너와
메마른 마른 내 손등을 적신다."

*김용택의 시 '첫눈'의 전문이다. 눈은 그렇게 기억을 불러내 아득함으로 벅찬 시간을 함께한다. 하나, 눈은 여전히 지천명知天命을 지나온 사내의 가슴에 설렘을 불러오기에 더 기다려지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하여, 안도현이 '첫눈 오는 날 만나자'라는 시에서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고 노래한 그 마음을 여전히 믿고 있다.

소리로 잠을 깨운 눈이 이 밤을 함께 지세우자고 자꾸만 부른다. 긴 겨울밤이 오늘은 무척이나 짧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나비종 2017-01-31 0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첫비‘라는 말은 없는데, 왜 눈에 대해서는 ‘처음‘이란 말이 붙을까 잠시 생각해보았습니다. 봄비, 여름비, 가을비, 겨울비. 비는 어느 계절에나 다 내리지만, 눈은 하나의 계절에만 내려서 사람들이 ‘첫눈‘이란 말에 많은 의미를 담고 싶어하는 걸까요? 오직 한 사람을 바라보는 마음처럼요.

무진無盡 2017-01-31 20:51   좋아요 0 | URL
그 마음일듯 합니다 ^^
 

동지 지나고 섣달 보름까지 건너온지라 날이 제법 길어졌다. 늘 같은 시간 같은 곳을 바라보니 하루를 건너온 해가 눈맞춤하는 모습이 달라져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해가 산을 넘어가는 위치와 시간이 다르고 전해지는 느낌이 날마다 다르다.

내게 날이 길어진다는 것은 긴 겨울을 건너오는 동안 내내 기다려온 때가 비로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퇴근 후 꽃나들이"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하여, 요사이 출퇴근 시간이면 지나는 곳마다 자꾸 눈은 숲과 계곡의 언저리에서 멈추곤 한다. 멈춘 시선에 숨기기 어려운 속내가 피어난다.

저기 길마가지나무 꽃 피어 입구를 지키는 계곡 오동나무 지나 굴참나무 아래 노루귀 올라올 것이고, 그 옆에 깽깽이풀 붉은 새싹도 곧 볼 수 있을 것이다. 건너편 산등성이 돌밭을 지나서 상수리나무 아래는 복수초의 노란 등불로 숲이다 환해질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이미 꽃과 눈맞춤하는거나 다름 없다. 

오늘은 해의 걸음걸이를 더디게 하는 서쪽하늘이 유난히 높고 깊다. 성급한 마음에 꽃나들이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벙그러지는 미소가 꼭 저 하늘 닮았다 싶어 자꾸만 쳐다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