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같은 바다다. 구강포를 흘러온 땅의 기운이 대양으로 향한 긴 여행을 위해 마지막 숨을 고른다. 몰아쉬던 숨을 천천히 내뱉고 속도를 줄이고 품마져 넓혀 침잠하기에 제격인 곳이다.

아침과 저녁의 노을이 다르지 않고, 달빛이 부서지는 밤바다의 울렁거림으로 각인되었던 바다는 그후로 내게 더이상 바다가 아니라 달을 품은 호수다. 어느때 무슨 마음으로 찾아오든 포근히 안아주는 벗이다.

초하루의 분주함을 내려 놓으니 깊어가는 밤의 적막을 깨우는 등대의 숨소리 조차 삼킨듯 고요가 깊다.

호수같은 바다 마량항, 그곳에서 비로소 숨을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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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나무'
가녀려보이는 가지에 맑고눈부신 하얀꽃이 필때면 곁에 머물러 향기에 눈맞 춤한다. 봄에 하얗게 무리지어 피는 꽃이 보기에 좋아 가꾸고 싶은 나무이기도 하다.


꽃과 향기도 좋아 주목하지만 독특한 모양의 열매가 있어 꽃이 진 이후 만나는 즐거움이 있다. 열매는 부풀어오른 반원형으로 윗부분이 2갈래로 갈라진다.


입춘 맞이 산행에서 수령이 오래되어 보이는 고추나무를 만났다. 꽃피는 때 다시가서 꽃그늘과 그 향기에 취해보리라.


잎이나는 모양과 꽃이 고추의 잎과 꽃을 닮아서 붙여진 우리말 이름이다. '한', '의혹', '미신'이라는 꽃말을 가졌다고 하나 유래를 짐작하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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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고향 - 한국미술 작가가 사랑한 장소와 시대
임종업 지음 / 소동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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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담긴 역사로의 여행

고향은 시간과 공간이 함께 머물러 기억 속에 자리 잡은 공간이다이 공간 속에 녹아 있는 시간은 이미 지나온 과거이지만 그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재를 가능케한 근거가 된다작가들의 작품 속 공간 역시 이 고향이라고 하는 시간과 공간이 함께 머무는 동시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그렇기에 특정한 공간에 주목하여 그 공간에 담긴 역사성이 발현되는 현재를 표현하는 것이다.

 

보통사람이 세상의 주인이라고 믿으며조명 받지 못한 인물사건유적에 관심이 많고스스로 가장 잘할 수 있으며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저자 임종업의 책 작품의 고향은 바로 그런 공간에서 찾게 되는 작품의 역사성에 주목하고 있다작가들은 어떤 형태로든 자신이 사는 당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에 시대를 뜨겁게 사는 일과도 밀접하다그 결과물이 작품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이 책 작품의 고향에는 공간이 갖는 역사와 밀접하게 연관된 작품을 만들어가는 작가들의 작품과 장소가 지닌 의미가 담겨 있다작가들에게 구체적인 작품의 대상이 되는 공간인 장소는 흔하게 지나치는 풍경으로써의 공간이 아니다사람이 살아왔고 살아갈 삶의 현장이다이 책은 이렇게 우리 땅과 시대를 뜨겁게 작품에 담아온 작가와 작품을 소개한다.

 

불국사와 박대성인왕산과 겸재 정선지리산과 오윤진도와 허씨 삼대제주와 강요배영월과 서용선태백과 황재형골목과 김기찬임진강와 송창오지리와 이종구통영과 전혁림소나무와 김경인 이길래

 

저자 임종업은 내게 감동을 준 작품들의 장소를 찾아 나섰다거기에 작가가 있었다.” 그렇게 찾은 작품들의 고향은 여전히 살아 꿈틀대는 살아있는 생명체이면서도 시대와 사람들에 의해 파괴되기도 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되기도 한다서울서산지리산진도제주통영경주영월태백임진강을 순례하는 동안 이 땅에 살아왔고 지금도 질기게 살아가는 민중의 몸짓으로 바뀌었다연대기였던 한국사가 실물이 되었다.

 

나는 작가가 말하지 않은 것을 말하고 싶었다작품이 내게 전해준 느낌을 풀어내고 싶었다하여작가와 작품을 두고 불가피하게 사설을 늘어놨다아무리 긴들 형해화한 줄글로써 작품의 곡진함에 이를 수 있겠는가.”

 

저자 임종업은 작가의 작품에 대한 설명에 앞서 장소인 공간이 가지는 의미성에 많은 이야기를 풀어낸다.작가가 구체적으로 말하지 못하는 장소의 의미를 대신 말하여 작가와 작품이 장소와의 필연적인 관계성을 드러내고자 한다그 일이 저자가작품의 고향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장소는 역사라는 저자의 행보는 '장소와 시대를 중심으로 한국미술의 큰 흐름을 되돌아보는 일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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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매探梅' 3
정월 초하루 매화향기를 찾아 나선다. 납월홍매 피었을 그곳 금둔사가 지척이다. 볕은 이미 무르익은 봄볕을 닮았고 하늘이 푸른빛이 아득하다.

납월매臘月梅

찬 서리 고운 자태 사방을 비춰 
뜰 가 앞선 봄을 섣달에 차지했네 

*신라인 최광유가 지은 납월매의 일부다. 납월은 음력 섣달을 부르는 이름이니 꽃을 보고자하는 급한마음을 알아 한겨울에 피는 매화를 일컬어 납월매라 부른다.

봄보다 먼저 핀 꽃의 속내가 붉다. 애달픈 가슴앓이로 서둘러 피려는 마음이니 붉지 않을리가 없다. 감추지 못하는 마음이 화려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수줍게 비치는 것은 그 단순함에 있을 것이다. 꽃그늘 기다리기엔 한참을 기다려야하지만 몇송이 이르게 핀 꽃으로 향기가 그늘을 채우고도 남는다.

납월홍매의 그 붉은 향기 흠향歆饗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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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立春'
거친 숨 몰아쉬며 바위끝에 주저 앉은다. 고요ᆞ정적, 막혔던 가슴이 터지며 시원함이 심장으로 깊숙히 파고든다. 그러나 시원함을 음미하는 것은 언제나 가슴보다 눈이 먼저다. 아스라히 먼 산은 구름다리를 놓고 건너오라는 듯 미소 짓는다. 마음 같아선 몇걸음이면 닿겠다. 날개를 잃어버린 이들이 여기서 비로소 다시 꿈을 꾼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대문에 붙이지 못한 춘방春榜을 가슴에 담는다.

만덕산 할미봉에 올라 남서쪽을 바라보며 동에서 백아산, 모후산, 무등산, 병풍산, 용구산, 삼인산, 추월산에 이르기까지 순차적으로 반겨 손짓한다.

아직 깨어나지 못한 바람이 붙잡아둔 구름 사이로 땅의 봄맞이와 눈맞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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