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막 도착했습니다'

"그대 떠난 길 지워지라고
눈이 내린다
그대 돌아올 길 아주 지워져버리라고
온밤 내 욕설처럼 눈이 내린다"

류근은 그의 시 '폭설'에서 떠난 그대 돌아올 길 아주 지워버리라고 욕설처럼 눈이 내린다고 하지만 그게 다 떠나보낼 수 없는 그대를 향한 간절함이란걸 안다. 이와는 반대로 나는 내게 와야할 이에 대한 기다림으로 읽는다.

밤사이 눈이 더디게 왔다. 더딘 눈에도 그보다 더 더디고 더딘 그대 걸음걸이에 지나온 발자국 이미 지워져 버렸다. 그대는 그대의 걸음걸이로 오는데 기다림에 지친이의 마음 탓이다. 

기다림의 조급함과는 상관없이 내게 온 더딘 그대의 발자국이 선명하다. 이것으로 다 된 것이다. 마지막 발자국 눈 속에 묻히기 전에 내게 닿아서 지워진 발자국 다 잊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놀리기라도 하듯 오라가락 내리던 아쉬운 눈이 흔적을 남겼다. 알싸한 아침공기를 한가득 가슴 깊숙히 마시며 겨울 찬기운이 주는 개운함으로 채운다. 몸은 민낯의 대지가 품어내는 기운으로 생기를 찾는다.

비로소 숨 쉰다.
들판 모서리에 눈사람 마냥 한참동안 솟아오르는 해와 마주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이미 쌓였고 여전히 내리는 눈이 아까워 길을 나섰다. 눈이 오는 맞바람을 안고 걷는게 고역이긴 하지만 때를 놓치면 눈에게 미안한 일이다. 기분은 어느 때보다 상쾌하니 좋다.


사계절 내게 들꽃의 향연을 펼쳐주는 보물같은 뒷산 깊숙히 발목까지 빠지는 눈길을 더딘 걸음으로 내딛는다. 마을길을 벗어나면 만나는 저수지도 꽁꽁 얼었고, 밤나무 잘려나간 산등성이에 쌓인 눈이 햇살에 눈부시다. 계곡을 건너 산길로 접어들자 사람 발자국 드문드문 이미 다녀간 사람 흔적이 반갑다. 제법 많은 눈이 왔지만 햇볕 좋은 날이 이어져 나무가지에 쌓인 눈은 이미 거의 녹고 없다. 하여, 다시 내리는 눈도 그 눈을 맞이하는 숲도 부담이 없다는듯 가벼워 보인다.


겨울 속엔 이미 봄이 자라고 있다. 부지런히 때를 준비하는 숲의 생명들에게 포근하게 내리는 눈은 잠시 쉬어가라는 하늘의 선물은 아닐까. 그 틈에 기대어 나도 쉬어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오락가락하던 눈이 그치고 잠시 평화로움이 깃든 시간이다. 까만 밤하늘을 유영하는 달은 자신을 둘러싼 구름과는 무관하다는 듯 태연자약하고, 납월臘月의 밤 대지를 환하게 밝히는 쌓인눈이 아까운 이의 밤마실에 달도 앞서거니 뒷서거니 함께 걷는다. 

달과 눈, 그 사이를 오가는 이의 얼굴에 겨울 찬바람과는 상관없이 따스한 미소가 번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섣달 보름, 음력 12월은 계동季冬, 납월臘月, 모동暮冬, 절계節季, 막달, 썩은달, 섣달이라고도 부른다. 그 섣달의 한가운데 보름달이 떳다.


옛사람들은 유독 달에 주목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손철주는 '흥'이라는 책에서 옛그림에 등장하는 달그림을 보며 그 이유를 설명한다. 먼저, 그것은 선禪적인 깨달음을 상징한 것으로 본다. 직지인심直指人心 달을 가르키는데 달은 안보고 달을 가르키는 손을 바라본다. 여기에 선적 깨달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달을 보았다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풍류의 짝으로 달이다. 차고 이지러지는 이치가 고아한 풍취를 드러내는 풍류에 알맞는 상관물이 된다는 점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래서 달 그림은 풍류이자 깨달음의 의미를 담았다는 것이다.


옛사람이 달에 부여한 의미와는 상관없이 달을 향한 원초적 그리움과 같은 그냥 달에 이끌리는 무엇이 있다.


성근 숲에 밝은 달이 떠오르는 모습을 담은 김홍도의 '소림명월도疏林明月圖'를 가슴에 품고 달빛 서늘한 기운이 가득한 모월당慕月堂 뜰을 서성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