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 - 내 안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공감과 위로의 심리학
일레인 N. 아론 지음, 노혜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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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 자신을 다른 식으로 돌보기
국악을 전공하고 있는 고등학생인 딸아이는 소리에 대단히 민감했다. 함께 본 영화의 음악이나 드라마 주제곡을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우연히 듣게 되었을 때 그것을 기억하고 물어보곤 했다. 그것이 딸아이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지 못한 사이 피아노를 배우게 되고 학원 수업에 대해 조금씩 어려움을 표현하곤 했다. 부모는 그때도 몰랐다. 커가는 아이를 보면서 우리 악기 중 하나라도 다룰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가야금을 배우게 했다. 그렇게 배우기 시작한 가야금 선생님의 말에 의해 이 아이가 소리와 음에 남다른 감각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청음을 테스트를 비롯한 몇 번의 실험과 전문가의 자문을 거쳐 피아노를 배우는 방법도 달리하게 되었고 지금은 거문고를 전공하며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자신의 진로를 스스로 선택하고 당당하게 집을 떠나 생활하고 있는 아이가 대견하기도 하다. 딸아이가 남과는 다르면서도 자신의 민감한 부분을 장점으로 살려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는 것을 보면서 그때 남과 다른 사소한 차이에 주목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었다면 지금쯤 아이는 어떤 길을 걷고 있을까?

이와 같이 무엇이든 남과 다른 어떤 점이 있다는 것은 때론 장점으로 작용하지만 대부분 많은 사람들과 구별되는 이상한 점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이웃이나 집단 등의 생활에서 적응하지 못하거나 스스로를 억누르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 책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은 바로 남과 다른 민감한 무엇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바로 자신이 ‘다른 이들이 모르는 것을 포착하고 미세한 부분까지 느낄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어떻게 알아보고 그것을 생활의 활력소로 작용할 수 있게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이다.

그런 남과 다른 차이를 이 책의 저자는 ‘민감성’으로 표현하고 오랫동안 연구했다. ‘숫기 없음’, ‘내성적임’, ‘울보’ 등으로 표현되는 사람들의 성향을 살펴 그 안에 있는 공통점을 찾아낸 것이다. 그것은 감수성이 풍부하고 직관력이 뛰어나지만 지나치게 예민하다는 것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흔히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면 유난히 불편하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이 의식하지 못하는 소리나 냄새에 반응한다. 한 번 겪은 일은 오래 기억하기 때문에 폭력물이나 공포물을 보는 게 힘들다. 경쟁을 하거나 누가 지켜보고 있으면 평소보다 훨씬 못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점을 대부분의 사람들과 구별되고 경계해야할 특별히 다른 유형의 사람이 아니라 단지, 다른 사람보다 ‘민감한 성향’을 가졌을 뿐이라는 것이다. 남들보다 매우 민감한 자신이 스스로 어떻게 인정해야 하는지, 친구나 직장동료와 같은 대인관계에서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사랑할 때는 무엇이 필요한지 등을 세심하게 살피고 실제 사례를 예로 들어가면서 이렇게 민감함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세워 그러한 차이가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데 장점으로 발휘될 수 이도록 도와주고 있다.

“바깥 세계를 있는 그대로 즐기고,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서로 연결시켜주는 외향적인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런가 하면 개인적인 경험의 가장 깊은 부분에 관심을 기울이고 내면의 닻이 되어주는 사람들도 필요하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누구하나 같은 사람은 없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남들보다 어떤 점에서는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분이 있다. 환경과 조건에 따라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이러한 성향이 밖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숨어 있기도 하는 것이다. 매우 민감하다는 것은 바로 그러한 상향이 남들보다 더 발달되어 있을 뿐 다른 차이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오히려 이러한 성향은 창조성이 발휘되는 좋은 기반을 가진 것으로 남들보다 더 자기만족적인 삶을 살아가는 중요한 요소라고 말하고 있다.

개성이 강조되는 현대사회에서 남과 다른 민감한 성향은 존중받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성향을 가진 사람이 개인의 가치관보다는 사회문화적 차이에 의해 강제되는 경우가 많은 사람의 관계에서 나 자신이 다른 사람과 다른 무엇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를 꼼꼼하게 살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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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충분한 시간론 - 시간의 본질을 찾아가는 과거와 미래로의 여행 비주얼 사이언스 북 4
다케우치 가오루 지음, 박정용 옮김 / 전나무숲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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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대한 인식을 바꿀 절호의 기회다 
처음 가는 길을 가다보면 좀처럼 목적지는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곳에서 돌아오는 길은 찾아갈 때 보다 짧다는 것으로 느낀다. 흥미 있고 재미있는 영화는 시간이 언제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빨리 지나가지만 그렇지 못한 영화는 정말로 더디게 흘러가는 것으로 느낀다. 일상에서 느끼는 이런 경우는 다양한 곳에서 느끼게 된다. 어떤 이유에서 이렇게 느끼게 되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시간은 동일한 속도로 흘러간다고만 생각하지 쉽다. 하지만 시간에는 절대적인 시간과 상대적인 시간이 있다고 한다. 우리가 느끼는 이런 시간 흐름의 차이는 바로 심리적 시간인 상대적 시간으로 볼 때 이해되는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비교적 단순한 삶을 살았던 옛날이나 분초를 다투는 현대인 모두의 삶에서 시간을 측정하지 못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이처럼 우리들의 삶과 절대로 떨어질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시간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시간이란 무엇이면 어떻게 측정하게 되었으며 그 시간이 가지는 본질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등에 대해 개괄적인 해설을 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이다.

‘한 권으로 충분한 시간론’은 일반인들이 ‘시간’에 대한 기초적인 상식에서부터 최첨단 산업사회인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인류에게 어떤 의미로 사용되어 오고 있는지를 해설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 다케우치 가오루는 이미 ‘한 권으로 충분한 우주론’, ‘한 권으로 충분한 양자론’, ‘99.9%는 가설’ 등의 책으로 일본내에서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과학 저술가’로 잘 알려져 있는 사람이다. 그의 또 다른 저서가 시간과 관련된 바로 이 책이다. 

물이나 공기처럼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그 의미조차 생각하지 못하지만 인간의 삶에서 분리할 수 없는 시간에 대해서 그 중요성만큼 잘 알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꼭 알아야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소홀하게 생각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이 책을 통해 시간과 관련된 학문에는 의외성이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전혀 관련 없이 보이는 철학이나 물리학, 생리학 등 동원되어 시간에 대한 인식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장마철 번개와 천둥소리가 사람들에게 인식되는 것은 빛이 먼저다. 왜 그런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 이 책은 바로 이러한 문제처럼 시간이라는 것이 인간의 감각기관에 접했을 때 어떻게 처리되어 인식하는지 그 차이가 무엇인지 등을 간략하지만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기에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또한 흥미로운 것은 인간이 느끼는 가장 짧은 시간이 100분의 3초이고 가장 긴 시간이 3초라는 부분의 설명에서 관련된 다양한 분야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이처럼 ‘한권으로 충분한 시간론’에는 ‘달력’의 기준이 되는 태음력이나 태양력의 역사, 제논의 패러독스, 칸트와 베르그송의 시간에 대한 규정, 에른스트 푀펠의 시간론, 뉴톤의 절대시간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시간, 공간과 시간, 운동과 시간, 브라운 운동, 시간과 엔트로피 우주시간, 호킹의 시간의 화살, 초끈이론 등 그동안 인류가 자연과 더불어 살아오며 밝혀낸 과학 탐구 영역의 다양한 분야를 통해 시간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하지만, 시간은 왜 눈에 보이지 않을까? 나 물리적으로는 시간보다 속도가 더 기본적인 것이라는 등 과학적 지식이 요구되는 부분에선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그렇더라도 이 책이 의미를 지니는 것은 거의 무시하거나 잊고 살아가는 시간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킬만한 책의 내용과 구성이라는 점이 아닌가 싶다. 

저자는 결국 시간은 실재하지 않은 것이라도 파악한다. ‘물리적인 시간을 실재하는 어떤 것으로 생각하는 데서 모든 오해가 비롯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이를 증명하는 방향으로 이 책의 집필 의도를 잡았다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시간은 환영‘에 불과하고 우리가 그 환영을 통해 이 세계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수많은 철학자와 과학자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시간에 대하여 연구해왔지만 아직까지 시간의 본질을 완전히 해명한 사람은 없다. 이 책에서 다룬 내용들도 독자 스스로가 시간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힌트’일 뿐이다.”

저자의 말처럼 시간에 대한 이해는 많은 부분에서 어려움에 봉착한다. 특히 일반인이 시간의 본질에 접근하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다만, 보편적인 개념으로 생각하는 시간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이 자신의 삶을 보다 충실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부분에서 보다 유용하게 쓰일 수 있도록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시간에 대한 우리들의 자세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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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 프로젝트 - 제1회 대한민국 뉴웨이브 문학상 수상작
유광수 지음 / 김영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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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역사 속에서 배워야 할 것
역사에서 가정을 상정하는 것은 경계에 머물러 있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에 대한 것에 집중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누구의 입장에서 무엇보고자 하는가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인 역사적 사실은 그렇기에 늘 팽배한 긴장감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알고 있거나 모르는 역사적 사실은 그것 자체로만 머물지 않고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문제와 직결되는 것이기에 과거로부터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말에 긍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 많은 가정을 해보는 것도 현실의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함이리라. 하지만 역사학계나 전문적으로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것은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 따르기 때문이다. 이렇기에 등장한 새로운 문학 장르로 ‘스토리텔링’이나 ‘팩션’이라는 것이 그 존재감을 찾고 유지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진시황 프로젝트’는 바로 그러한 다양한 역사적 사실을 교묘하게 엮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 작품이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의 역사를 하나로 이어 만들어진 이야기는 민족의 문제와 더불어 현대 동북아시아를 비롯한 세계화 추세에 흐름에 부합하는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국제적인 킬러, 중국의 진시황제, 불로초, 일본 천왕의 뿌리 그리고 우리나라 민족문제를 바탕으로 삼국 간에 벌어지는 이야기의 스케일을 커다랗게 그려가고 있는 것이다.

광화문 앞 목이 잘리는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환도를 휘둘러 목을 잘라 첼로 가방에 넣고 유유히 사라진 범인을 추적하는 중 강력반 형사 강태혁은 범인으로 지목된 사학과 서준필 교수 연구실에서 춘화첩을 발견한다. 춘화첩에 담긴 비밀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잇달아 일어나는 살인사건의 실마리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고 사건은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든다. 강력반의 중심에서 사건을 풀어가던 강형사는 환도의 출처가 일본이며 3년 전에 일본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지만 범인을 끝내 잡지 못하고 미궁 속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고 단순한 연쇄살인이 아닌 그 속에 다른 음모가 있음을 알아간다.

일본의 비밀조직, 중국의 진시황제 부활을 꿈꾸는 음모 그리고 한국의 정치를 좌지우지 하는 세력 등 거대한 조직이 이 살인사건에 관련되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수사의 중심에 선 강력반 형사들에게 죽음이 찾아온다. 중국과 일본의 패권주의에서 그 피해를 고스란히 안았던 한국은 이 소설에서도 그 중신 무대가 되어있다. 삼국 모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아킬레스건을 소재로 삼고 있기에 그 무게는 실로 크다고 할 수 있다. 나라와 나라간의 역사적 사실에서 오는 해석과 그 속에서 어쩔 수 없이 갈리게 되는 민족의 감정, 애국과 매국의 갈림길 등 국가단위에서나 개인들에게서나 외교와 양심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역사 속에서 벌어진 일이 그치지 않고 현실로 이어지는 현장을 담아내 현시대 우리가 안고 있는 마음의 부채까지를 건드리고 있는 것이다.

서교수와 심형사의 과거, 서교수와 송곳이라는 킬러, 송곳과 강형사 그리고 방형사 사이의 관계는 묘한 분위기를 형성하며 이야기를 이어가더니 결말에 와서 그 모든 사건의 중심이 심형사로 모아지고 있다. 이야기의 출발과 전개과정의 보여준 장대한 스케일에 어울리지 않게 결말부분에 와서 급격하게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짧지 않은 줄거리임에도 전혀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전개하는 솜씨는 뛰어난 스토리텔링의 맛을 알게 해 준다.

“역사의 바람은 우리의 스승이지만 우리의 제자이기도 하다는 것을, 어제가 오늘이 되지만 오늘이 다시 어제가 된다는 것을, 그래서 오늘이 진정한 어제가 되어 내일로 가도록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을”

역사를 보고 재해석하며 그 속에서 무엇인가를 배운다는 것은 바로 이 점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미 지난 어제는 어쩔 수 없지만 다시 어제를 만드는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가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역사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사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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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와 모네 그들이 만난 순간 - 인상파 화가들의진솔한 한 기록
수 로우 지음, 신윤하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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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만난 화가들의 일상을 본다
미술작품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늘어나면서 대형 전시장에서는 유명화가들의 작품을 선보이곤 한다. 미술하면 서양미술이라고 할 만큼 미술에 대한 서양미술이 차지하는 점유율은 매우 높고 그것을 반영하는 것처럼 교과서에서도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 서양미술 중에서도 우리에게 익숙한 작품들로는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이 단연 선두에 꼽힐 것이다. 

카미유 피사로, 폴 세잔,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클로드 모네, 에두아르 마네, 에드가르 드가,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 툴루즈 로트렉, 베르트 모리조 등 이들의 이름만으로도 자신들이 추구했던 그림의 세계가 무엇을 나타내고자 하는지를 충분히 알려주고 있다. 모두 인상주의 화가들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으로는 ‘풀밭 위의 점심’, ‘해돋이 인상]’, ‘라 그르누예르’, ‘압생트’ 등이 있다.

인상주의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프랑스를 주 무대로 활동하던 화가들의 작품을 반영하고 있다. 기존의 전통적인 회화기법이나 주제가 되었던 것으로부터 탈피하고 ‘빛과 함께 시시각각으로 움직이는 색채의 변화 속에서 자연을 묘사하고, 색채나 색조의 순간적 효과를 이용하여 눈에 보이는 세계를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나타내려는 것으로 색체, 색조, 질감 자체에 관심을 둔 미술사의 흐름을 말하고 있다. 

이 책 ‘마네와 모네 그들이 만난 순간’은 이런 인상주의 화가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는 책이다. 미술관련 책들의 대부분이 그림을 보여주고 그 그림과 화가에 얽힌 이야기나 그림 설명에 집중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이 책은 그런 시각을 벗어난 책이다. 한 미술사조를 집중적으로 이야기하면서도 그림에 중심에 서지 않고 화가들의 사소한 일상과 그들 사이에 벌어졌던 자잘한 일화들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 이채롭기까지 하다.

인상주의 탄생에서 시대를 주류를 형성하는 과정과 내부 분열 그리고 미국으로 건너간 인상주의의 마지막 모습까지 순서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이 책은 기존 화단에서 벗어난 작품을 모색하는 화가들이 어떻게 모이게 되었으며, 인상파란 이름으로 불리게 된 직접적인 계기, 화가들의 일상과 가족관계를 비롯하여 그들의 사랑과 각 화가들을 특징지을 수 있는 독특한 성격, 작품들에 담아내고 싶어 했던 주제들까지 실로 광범위한 내용을 포괄하고 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화가들 사이에 벌어지는 교류와 갈등은 그림에 대한 관심을 넘어 한 화가의 근본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끌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19세기말 프랑스를 이해하는데도 한 몫 한다. 단지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의 이야기를 넘어서 그들이 활동했던 시대적 배경에 대한 이해는 인상주의라는 예술사조가 탄생하게 된 필연적 배경을 설명하기에도 충분하다 할 것이다. 

인상주의 화가들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어 그 내용성이 돋보이는 이 책은 쉬운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읽어가기 만만치 않다 빼곡한 글들로만 채워져 있는 미술가들에 관한 책이 얼마나 주목 받을지 의심되는 면이다. 부록처럼 실려 있는 그림들을 찾아보더라도 그림의 크기가 워낙 작아서 본문에서 전해주는 내용을 충분히 음미하기엔 부족함이 있다는 점이 다소 아쉬운 점이다. 그렇더라도 한 미술사조에 대해 이렇게 다른 시각으로 조망한 책을 만난다는 즐거움은 줄어들지 않는다.

학창시절부터 자주 들어서 귀에 익은 화가들이지만 그들의 작품과 화가를 연결하기도 쉽지 않다. 또한 알려진 만큼 화가들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없었다. 이런 차에 이 책은 화가와 작품에 대한 이해를 포함 한 미술사조에 대한 지식을 개괄할 수 있는 안내서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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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세상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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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에 살아가는 ‘낯선 나’
높은 아파트들과 화려한 상가들 그 사이에 섬처럼 떠있는 근린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사람들의 선망이 되는 지역이 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는 집값을 반영하듯 새로 조성된 그곳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마치 사람들이 버린 온갖 쓰레기들 속에서 먹이를 찾아 파리 떼들이 몰려들듯 말이다. 그곳에 둥지를 틀고 목에 힘깨나 주는 사람들은 알까? 자신들을 포함한 사람들이 버렸던 온갖 쓰레기를 매립했던 장소가 그곳이라는 사실을. 이렇게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는 과거를 알 수 없도록 포장된 이미지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포장된 이미지는 사람들에게 이중성을 강요한다. 세상과 다른 사람들 그리고 나 사이를 구별하는 경계에 서서 양쪽에 한발씩 걸쳐두고서 어느 쪽을 선택하고 자신을 포함시킬지 갈등하며 살아간다. 속하지 않은 세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말이다. 하지만, 세상은 남이 있어야 내가 존재할 수 있듯이 이곳이 있으면 반드시 저곳이 있기 마련이다. 이 둘은 도시가 가지는 어쩔 수 없는 양면성이다.

황석영의 ‘낯익은 세상’은 내가 속하고 싶어 하지 않은 다른 세상의 이야기다. 감추고 싶은 도시의 이면이기에 그래서 누구도 속하고 싶지 않은 ‘쓰레기 매립장’인 ‘꽃섬’이 주 무대가 된다. 별 다를 것 없는 산동네에서 살던 딱부리의 엄마는 불쑥 찾아온 남편의 친구 ‘반장’의 제안으로 돈도 더 많이 벌고 잠잘 수 있는 집도 준다는 말에 꽃섬의 구성원이 된다. 세상 모든 곳이 그렇듯 꽃섬에도 그들만의 질서가 있고 사람 살아가는 곳이기에 웃음과 눈물이 공존하는 세상이다.

“내가 도시 외곽의 쓰레기장에 주목한 것은 지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현재의 삶이 끝없이 만들어서 쓰고 버리는 욕망에 의하여 지탱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열네 살 딱부리와 얼떨결에 동생이 된 땜통은 쓰레기 속에서 쓸 수 있는 물건들을 찾아내는 어른들이 사는 꽃섬에서 그들과 섞이지 못하는 이방인들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빈곤과 부, 도심과 외곽, 현실과 가상의 세상, 이 두 세상을 이어주는 사람으로 ‘빼빼엄마’는 그 존재성을 부여받고 있다. 하지만 작가 황석영이 찾고자하는 세상에 대한 희망으로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기엔 어설픔이 있어 보인다. 인간이 가지는 욕망이 불러온 파괴와 그 산물의 총체라 할 수 있는 쓰레기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대한 성찰이라면 이해가 되지만 김서방네(정령들)로 이야기되는 정령들의 세상에서 또 다른 희망의 요소를 찾는다는 것은 무리한 것이 아닌가도 싶다.

그렇더라도 작가가 말하는 ‘늘 우리 곁에 있으되 우리가 잊고 사는 그 세계’, ‘그칠 줄 모르는 인간의 욕망이 마지막으로 가 닿은 그곳’에도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 역시 다가올 세상에 대한 희망을 찾을 수 있는 무엇인가에 목말라 있으며 어쩌다 한번 씩 찾아가게 되는 도심으로 진출할 희망을 가진 사람들이다. 작가가 보여주는 이 소설의 풍경은 “세계 어느 도시의 외곽에서도 만날 수 있는 풍경”들이다. 그래서 작가의 ‘낯익은 세상’은 외면하고 싶어 하지만 어쩌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이다.

날마다 지나치기에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 마치 처음 온 길처럼 낯선 느낌을 줄때가 있다. 건물도 나무도 지나가는 사람들도 모두가 처음 보는 것 같은 이러한 느낌은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생각하게 만들어 준다. 많은 시간을 함께해온 공간이지만 나와는 도무지 공감하지 못하는 낯선 세상으로 다가올 때면 세상 사람들 속에 자신의 존재감마저 잃어버리는 느낌이어서 당황스럽기만 하다. ‘낯익은 세상’이 ‘낯선 세상’처럼 보이는 것이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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