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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 - 하루 한 장만 보아도, 하루 한 장만 읽어도, 온종일 행복한 그림 이야기
손철주 지음 / 현암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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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을 보는 것은 지금의 자신을 보고자 함이다
비오는 주말, 넉넉하고 한적함이 어딘가는 꼭 가야할 것 같아 마음부터 일어서고 있다. 우산을 준비하고 가까운 시립미술관을 찾았다. ‘이런 날 누가 오려고?’ 하는 마음이었으나 막상 미술관을 들어서자 옹기종기 모이거나 또는 혼자서 그림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제법 많다. 젊음을 한껏 누릴 남녀, 아이 손잡고 선 아버지, 지긋한 나이의 부인, 부모는 어디 갔는지도 모른 체 초롱처럼 빛나는 눈동자를 굴리는 아이. 이들 모두에게 살며시 얼굴에 번지는 미소로 답하고 나도 그럼 사람들의 마음이 되어 흰색 화살표를 따라 흘러간다.

시립미술관엔 다양한 분야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흔하게 접하는 서양화가 대다수를 차지하지만 사진도 있고 젊은 예술가들의 설치미술도 있다. 작품을 제작하고 전시하는 예술가들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보는 사람들의 마음에 남는 것은 각기 다를 것이다. 요사이 미술관이나 전시장엔 작품에 대한 설명이나 장소를 안내하는 도우미들이 있어 여러 가지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여전히 그림이 걸린 벽과 관객 사이에 놓은 거리만큼 작품을 이해하기에는 거리감이 존재한다. 그림과 관객을 이어주어 공감을 불러올 수 있는 필요성에 의해 안내자가 있을 것이지만 너무 일상적인 이야기나 피상적일 수밖에 없는 설명에 채워지지 않은 허전함이 있다.

예술작품과 대중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책들이 은근하게 번지고 있는 것은 실로 반가운 일이라 할 것이다. 그림을 읽어주는 안내서 들이 그것이다. 이들 안내서들은 대부분 유명한 서양 작품을 대상으로 한 것들이 대부분이기에 다소 아쉬움 점이 있지만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이런 흐름의 일환으로 우리 옛 그림에 대해 그림 읽어주는 책들이 발간되고 꾸준하게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우리 옛것을 우리들 가까이 불러오는 사람들 중 옛 그림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보이는 저자들이 눈에 띈다. 내가 주목하고 또 좋아하는 사람으로는 ‘오주석의 한국미 특강’의 저자 미술사학자 고(故)오주석씨를 비롯하여 ‘그림, 문학에 취하다’의 고연희,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의 손철주 등이 그들이다. 오주석의 감성적이고 지극한 사랑이 물씬 풍기는 글도 매력적이고 문학 특히 시를 중심으로 그림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는 고연희의 그림 사랑도 흥미로우며, 미술 컬럼니스트의 진면목을 보이면서 많은 독자층을 확보한 손철주의 담백한 글도 눈길을 오랫동안 잡아두고 있다. 이들은 각기 자신만의 눈으로 보고 자신의 독특한 언어로 말해주고 있지만 옛 그림에 대해 지극한 애정만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엇비슷하다 할 것이다.

‘하루 한 점만 보아도, 하루 한 편만 읽어도, 온종일 행복한 그림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는 손철주의 또 다른 책이다. ‘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는 제목처럼 옛 그림 속에 담긴 사람들의 정서를 담은 68편을 선별하고 이를 사계절로 구분하여 실었다. 이미 익숙한 화가들의 익숙한 그림도 있어 반가운 마음이 앞서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낯선 화가의 그림도 있어 새로운 작품을 대하는 설렘도 있다. 산수도, 화훼도, 풍속도, 인물화, 조충도를 비롯하여 남녀의 애뜻한 마음이 가득한 그림까지 있어 보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특히, 정조왕의 그림 두 점은 학문과 예술을 사랑한 군주의 마음을 보는 듯하다. 

손철주의 글은 독특하다. 간결하고 단문이기에 하고자 하는 말의 핵심만 담겨 있다. 저자의 글처럼 구성 또한 간결하다. 그림 한 점에 주목할 수 있도록 시원스런 편집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 옛 그림이 전해주는 그 담백한 맛을 그대로 닮았다. 옛 그림에서 느끼는 정서를 글 속에 담아내고자 지금은 거의 쓰지 않은 단어를 일부러 골라 사용한 것은 옛 정서를 표현하기에 적절하다. 하지만 오롯하게 뜻을 전하기에는 그림에서 느끼는 감정의 흐름을 자꾸 멈추게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42명의 화가들의 간략한 약력을 담아 놓고 그림 목록까지 있어 찾아보기에도 꼼꼼한 마음 씀씀이가 좋다.

"옛 시인과 옛 화가의 심정이 무릇 살갑다. 넘치는 욕심은 시와 그림을 망친다. 모자라기에 애타고, 덜어내기에 미덥다. 가냘프면 설렌다. 만개 아닌 반개한 꽃이 향기가 짙고, 떼 지은 꽃가지보다 외돌토리 가지가 마음에 오래간다. 쓰고 그리는 이만 그럴까. 읽고 보는 이도 말은 끝나되 뜻이 이어지는 서화에 흥이 돋는다. 여운은 남김이 아니라 되새김이다."

이는 저자 손철주가 우리 옛 것을 대하는 마음가짐의 표현일 것이다. 미술사학자 오주석의 글이 넘치는 애정의 표현이라면 손철주의 글은 굳이 들어내지 않더라도 살며시 스며드는 정서의 공유를 담아내고 있어 보인다. 묵직하고 착 가라앉은 듯하지만 울림이 큰 글이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 옛 그림을 읽고 싶은 사람들 모두가 곁에 두고서 오랫동안 찾고 싶은 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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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왕제색도 - 빛으로 그리는
이갑수 지음, 도진호 사진 / 궁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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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을 보는 사람의 마음
날마다 지나치는 풍경이 어느 날 아주 정답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딱히 이유를 설명할 무엇도 없지만 그 풍경에 마음이 가는 것이다. 그날 이후 그곳을 지나칠 때마다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게 된다.

비슷한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갑수가 주목하는 풍경하나는 다분히 의도적인 바라보기다. 인왕산이 자리한 곳으로 자신이 운영하는 출판사가 이사를 하면서부터 자주 접하는 인왕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 연유로 해서 조선시대를 살았던 화가 겸재 정선(1676∼1759)이 남긴 ‘인왕제색도’라는 그림 한 점에 주목하게 된다. 260년 전 화가의 눈에 들었던 인왕산의 모습과 너무도 닮은 산 모습을 보면서 지난 시간과 더불어 함께해온 산의 모습을 담아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출발한 인왕산 바라보기는 2009년 9월부터 가을에서 시작하여 다시 가을이 올 때까지 한 해 동안 한 곳에서 바라본 인왕산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도진호라는 사진가는 사진으로 인왕산의 모습을 담고 이갑수는 시시때때로 산을 오르며 글로 인왕산을 담았다. 이 둘이 만나 사계절이 지나는 동안 인왕산과 함께한 저자의 마음자리가 책으로 출간된 된 것이다. 비로 이 책 ‘신인왕제색도’다.

‘신인왕제색도’의 도화선이 되었던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는 국보 제216호로 지정되었다. 정선의 나이 76세 때인 1751년(영조 27)에 그려진 작품이다. 겸재 정선의 평생의 벗이었던 사천 이병헌이 죽자 벗을 애절한 마음을 담은 그림으로 비온 뒤 안개가 피어나는 순간을 동쪽에서 멀리 바라보는 모습을 그렸다고 한다. 인왕제색도는 중국화풍에서 벗어나 조선 산하를 있는 그대로 담은 진경산수의 대표적인 걸작이라고 한다. 화제에 ‘인왕제색(仁旺霽色) 겸재(謙齋) 신미윤월하원(辛未閏月下沅)’이라고 묵서되었고 그 밑에 정선(鄭敾) 원백(元白)이란 방인(方印)이 찍혀 있다.

‘신인왕제색도’에 담긴 모든 인왕산 모습은 바로 겸재 정선이 살았던 곳에서 바라본 모습이라 더 그림에 충실한 시각이 담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인왕산 기슭에 사람들이 모여산 것은 오늘날의 일이 아니다. 겸재 정선이 인왕제색도를 그릴 당시에도 그곳에는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저자 이갑수는 바로 인왕산 아래 둥지를 틀고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인왕산과 함께 이야기 하고 있다. 자연의 변화는 사람들의 삶에 구체적으로 영향을 준다. 구름, 안개, 비, 눈이 오는 동안 인왕산 아래 사람들이 모습이 실감나면서도 따스한 애정이 느껴지는 이야기들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떠 하나의 시각이 제기 되었다. 서울의 한 지점에서 인왕산을 찍듯 인왕산에서 서울의 한 지점, 서울의 풍경을 찍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신인왕제색도’와 한 몸인 ‘인왕산 일기’가 추가되었고 한다. 

사진 속 인왕산은 그 모습이 그 모습 같다. 또 같은 사진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도 같은 사진이 없다. 우리들 삶도 사람마다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똑 같은 삶은 하나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인왕제색도가 그려진 26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인왕산 모습은 그리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슭에서 삶의 희노애락을 겪으며 살았던 사람들은 하나도 없다. 다만, 그 후손들이 선조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하고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더 시간이 지난다면 사라진 그들처럼 지금 산 아래 살고 있는 사람들도 사라질 것이다. 

내가 살아가는 도시에도 우뚝 솟은 산이 있다. 일천 미터가 넘는 산이지만 위엄있는 모습으로 사람들을 경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넉넉한 품에 사람들을 품어 왔고 또 그렇게 그 자리를 지킬 것이다. 그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산은 어머니와 같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품어온 그 기슭에 많은 사람들이 깃들어 살아간다. 하지만 한번이라도 생각해 봤을까? 그 산이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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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대중문화>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이것이 문화비평이다 
이택광 (지은이)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6월
 

문화가 상품이 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지역 특색에 맞는 문화상품을 개발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오기 위해 다양한 노력들을 하지만 그러한 문화상품이 얼마나 공감을 받는지는 미지수입니다. 이렇게 문화를 어떻게 보며 누릴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이 높은 시기에 적절한 주제를 담고 있는 책이 아닌가 싶내요. 

 

인정향투 - 문인의 지취
이용수 (지은이) | 에세이퍼블리싱 | 2011년 6월
 

그림을 통해 선인들의 삶의 자취와 더불어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 가슴 속에 무엇을 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찰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궁궐 장식 - 조선왕조의 이상과 위엄을 상징하다 
허균 (지은이) | 돌베개 | 2011년 6월
 

왕의 나라에서 중심은 왕입니다. 그 왕이 살았던 궁궐을 짓는데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있었다고 합니다. 궁궐을 구성하고 있는 각종 상징물을 통해 당시 시대상황뿐 아니라 오늘날 궁궐을 찾아가 그것을 이해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 아닌가 싶내요. 다양한 상징이 의미하는 것은 곧 사람들의 역사를 이해하는 한가지 방법이기에 역사와 문화를 알고 싶은 독자들에게 유익한 책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 - 개항부터 해방 후까지 역사를 응시한 결정적 그림으로, 마침내 우리 근대를 만나다! 
이충렬 (지은이) | 김영사 | 2011년 6월 

선조들이 남긴 그림 속에는 그림을 그린 화가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림에 관심을 갖는 것은 어쩜 시대상황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재해석한 그림속 사람들의 삶이 흥미로운 이유가 아닌가 싶내요. 조선시대 그림에 대한 책들은 많이 있으나 비교적 가까운 근대이후 작품을 만나기는 더 어렵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이 책은 근대 우리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한국의 전통마을을 찾아서 - 오래된 지혜의 공간에서 새로운 건축 패러다임을 읽다 
한필원 (지은이) | 휴머니스트 | 2011년 6월

산업사회의 전개과정에서 사라진 것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의 중심이며 모든 문화의 생산과 누림의 공간이었던 마을도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공동체 문화의 새로운 방식을 남아 있는 전통마을을 통해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이 책에 대해 관심가는 이유라할 수 있습니다. 옛 기억을 더듬어 전통마을 속 현대인의 삶을 비교해 보고 싶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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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는 맨홀 2011-07-07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보고 싶은 책들이 눈에 들어 옵니다. ㅎㅎ
 
어디 아픈데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 - 시인 김선우가 오로빌에서 보낸 행복 편지
김선우 지음 / 청림출판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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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본성을 확인해 가는 시간
나 이외에 누군가 알더라도 상관없지만 소중한 공간이 있다. 그곳에만 가면 숨 막히는 아찔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오롯이 나를 돌아볼 수 있다. 자신에게 부여된 사회적 책임이나 스스로가 정한 규칙에 얽매어 한없이 자신을 압박하는 시간에서 조차 스스로에게 너그러움을 줄 수 있는 곳이다. 이렇게 말한다고 무슨 거창한 곳은 아니다. 때론 수시로 변하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정해진 공간이다.

가까운 공원의 나무의자, 인적이 드문 골목길 한 모퉁이, 길인지 아닌지도 모를 숲속 오솔길 그것도 아니면 자동차 안. 이 모든 것들이 바로 그 곳이다. 이런 곳의 공통점은 혼자라는 것이다. 비록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지만 내가 그곳에 있는 시간만큼은 사회적 관계를 맺어야할 그 무엇이 아니기에 혼자라는 것이다. 또한 멀리 가지 않아도 되기에 조금만 여유를 부린다면 언제나 누릴 수 있는 곳이라는 점이 마음에 든다.

“휘황한 거리에는 ‘나’라는 광고 문구가 넘치건만 왜 갈수록 나를 잃어버리며 산다는 느낌이 드는 걸까. 나의 실종에 불안하면서도 남들 사는 대로 살지 않으면 또 다른 불안이 엄습하는 기이한 닫힌회로. 출구 없는 일상의 쳇바퀴로부터 어떻게 ‘나’를 찾을까.”

작가 김선우에게 그렇게 자신을 돌아볼 수 있고 스스로 위안 삼을 수 있는 곳이 남인도의 영적 공동체 ‘오로빌’이라고 생각된다. 작가는 그곳을 벼르고 별러 찾아갔다. 작가가 찾아간 오로빌은 ‘새벽의 도시’라는 의미를 가졌다고 한다. 이곳은 모든 사람이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이상을 꿈꾸던 인도의 사상가 ‘스리 오로빈도’에 의해 시작된 곳이라고 한다. 1968년 첫 발을 내디딘 이래 현재까지 40여 개국 2천여 명이 모여 살아가고 있는 곳이다. 출신, 나이, 학벌, 직업 등 우리들이 일상적인 가치판단의 기준이 되는 이런 것들이 아무런 작용을 하지 못하는 곳이다. 누구나 본연의 모습 그대로 살면서 나는 나, 너는 너, 이 모두를 아우르는 우리가 공존한다. 

오로빌에 발을 딛는 작가는 조심스럽다. 방문자라는 신분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치 잘못 자신이 내린 어떤 선입감이나 편견으로 인해 오로빌의 가지는 본래의 모습을 왜곡 또는 훼손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다. 하여, 사람은 물론 나무며 풀, 곤충 등 그곳 오로빌 공동체를 구성하는 모든 것에 마음 쓰며 공감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움츠러드는 이방인이 아니다. 보다 적극적으로 공동체 안으로 들어선다. 함께 일하며 놀고 자신을 누리는 시간 동안 그들과 하나가 되어 보인다.

저자 김선우의 눈에 비친 오로빌은 완성된 공동체가 아니다. 한 사람에 의해 시작된 열망과 강한 의지의 결과가 시간에 익어가는 동안 여러 가지 모습으로 바뀌기도 하는 등 지금도 완성으로 가는 중이라고 보고 있기에 현재진행형이다. 

현대인이 가지는 외로움의 거의 전부는 사회적 관계로부터 출발하고 있다고 봐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이런 저런 관계에 매어 있으면서 그로부터 주어진 책임을 다하기 위해 살아가는 모습, 바로 그 자리가 외로움의 출발이 아닌가 싶다. 늘 함께 살아가지만 그 살아가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비교하고 벽을 두르고 닮아가려고 하는 생각이 사람들을 외로움으로 내몰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그런 현실에서 작가처럼 “나 좀 쉬려고요, 좀 지쳤거든요. 일단 쉬고 다시 잘 살아볼게요. 알았어요, 좀 쉬고 다시 잘 사랑해볼게요.” 이렇게 주변사람이나 자신에게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런 현실이다 보니 오르빌의 사람들이 달라 보이기 마련이다. 떨어진 꽃을 주워 거름을 만드는 일, 사람들에게 안마를 해주는 일, 아이들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주는 밴드 마스터, 비온 뒤 흙탕물을 뒤집어쓴 나뭇잎을 닦아주는 일 등 이 모든 일들이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 아니다. 그곳 사람들이 하는 일에는 사회적 장치나 남의 시선을 넘어선 행복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한마디로 행복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 오로빌이라는 것이다.

무엇하나 확정된 것이 없는 것이 사람들의 삶이다. 이것 아니면 곧 죽을 것 같은 것으로부터 한발 물러나 행복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잃어버린 자신의 참 모습을 찾아보는 것, 이것이 작가 김선우가 오로빌에서 우리들에게 보내는 마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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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도서관 - 책과 영혼이 만나는 마법 같은 공간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강주헌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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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모든 마음이 담긴 도서관의 모든 것
오랜 꿈이 이뤄지는 중이다. 도시의 콘크리트 벽을 탈출하여 넉넉함이 있는 시골생활을 꿈꿔 온지 오래되었는데 지금 시골집을 장만하고 수리중이다. 집을 수리하며 가장 먼저 고려한 것은 ‘나만의 서재’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지대가 낮은 평지 마을이라 시야 확보에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멀리에 우뚝 솟아 있는 산봉우리를 마루에 앉아 볼 수 있어 참으로 다행이다. 오래된 한옥의 본체를 살기에 불편함만 줄이는 선에서 수리하고 마당 한 쪽에 서재 공간을 만들었다.

기존 담장을 이용하여 바닥을 고르고 기중을 세워 판넬로 지붕과 남은 벽을 마무리 하고 한쪽은 유리로 마감을 하니 제법 넓은 공간이 생겼다. 10여 평이 조금 넘은 이 공간을 이제 어떻게 채워가야 할지 마음부터 설렌다. 아파트 거실 양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그러고도 남아 이 방 저 방에 쌓여 있는 책으로 채워가는 멋진 공감연출이 기대된다. 판자로 책장을 만들어 벽에 붙이고 5000여 권의 책을 분류해서 하나 둘 채워 가면 그 공간은 앞으로 살아갈 집의 생활중심이 될 것이다. 비록 지극히 사적인 공간이지만 서재의 이름도 붙여주고 마음 나눌 벗들이라도 가끔 찾아 준다면 이보다 더 좋은 곳이 또 있을까 싶다.

책을 좋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음속 자신만의 공간을 꿈꾼다. 그곳은 이름이 어떻게 불리든 공간의 크고 작음도 상관없이 책과 더불어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공간을 소망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담아 놓은 책이 있다. 알베르토 망구엘의 ‘밤의 도서관’은 책과 영혼이 만나는 마법 같은 공간이라는 설명과 함께 저자가 자신의 도서관을 만들어가면서 도서관의 역사를 비롯하여 도서관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도서관의 기원에 대해 추적하면서 시작하고 있다. 신화, 정리, 공간, 힘, 그림자, 형상, 우련, 일터, 정신, 섬, 생존, 망각, 상상, 정체성, 집 이 모든 것은 저자가 도서관과 관련되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심축이다. 이러한 축을 바탕으로 그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도서관이 인류에게 미친 영향이다. 이미 사라져 버린 책과 도서관, 누구도 찾지 않은 책일지라도 사람의 역사와 그 맥을 함께해 온 것이 도서관이다. 이렇듯 도서관이 갖는 고유한 기능에서부터 역사적 변천과정, 사회적 기능과 역할 그리고 다가올 미래에 대한 전망까지 아우르고 있다. 아무리 시대적 환경이 변하더라도 도서관이 갖는 그 역할은 그렇게 큰 변화를 겪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오늘날 전자책이라는 편리하고 시간성에 거의 제약을 받지 않는 도구가 발달하면서 출판시장이나 책의 유통 경로에 그리고 도서관이 가지는 근본적인 기능에 구조적 변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저자의 견해에 주목하게 된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사용 환경의 편리성이 종이책보다 월등한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책장 사이를 거닐거나 책장에 자리 잡은 책의 제목만으로도 여행이 충분하며 묵은 잉크냄새가 베어나는 종이책 중심의 도서관이 주는 향수는 강하게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빼곡히 들어선 책장들 사이로 숨겨진 이야기들은 무엇일까? 세상에는 어떤 도서관들이 존재했고, 어떤 이유로 사라졌을까? 그리고 그런 도서관을 사랑했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저자가 느끼는 지극히 개인적인 도서관에 대한 감성적 표현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야기를 전개하는 모든 과정에서 원론적인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도서관을 어떻게 꾸미고 이용하며 그 속에서 스스로 얻게 되는 감정상의 다양한 이야기와 함께하고 있다. 그렇기에 다소 무거운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 흐름이 한결 정답게 느껴지도록 한다.

"책이 우리 고통을 덜어주지 못할 수도 있다. 책이 우리를 악에서 보호해주지 못할 수도 있다. 책을 읽어도 우리는 무엇이 좋은 것이고 무엇이 아름다운 것인지 모를 수 있다. 책이 죽음이라는 공통된 운명에서 우리를 지켜주지 못하는 것은 확실하다.(중략) 잘 쓰인 책이라도 이라크나 르완다의 비극을 덜어줄 수 없지만, 엉터리로 쓰인 책이라도 운명적으로 맞는 독자에게는 통찰의 순간을 허락할 수 있다." 

“책이 그렇게 좋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주변사람들이 이렇게 묻는다. 딱히 설명한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해 난감할 때 저자 알베르토 망구엘의 이 말 한마디면 해결될 수도 있을 듯싶다. 이것으로도 다 말하지 못한다면 “그냥 읽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이든 그렇겠지만 마음 다해 무엇에 흠뻑 빠져본 사람이라면 이 말이 주는 깊고 무거운 감동을 다 알 것이기 때문이다.

여름 무척이나 덥지만 그 더위를 책과 더불어 이겨내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다. 책이 주는 무한 감동의 세계와 그 책이 살아가고 있는 도서관이 가지는 의미를 말이다. 아직 지붕에 벽체만 완성된 서재지만 그 안에 담겨질 세상이 어떨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내 서재의 미래가 보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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