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보서百花譜序
사람이 벽癖이 없으면 그 사람은 버림받은 자이다. 벽이란 글자는 질병과 치우침으로 구성되어, “편벽된 병을 앓는다”는 의미가 된다. 벽이 편벽된 병을 뜻하지만, 고독하게 새로운 것을 개척하고 전문기예를 익히는 것은 오직 벽을 가진 사람만이 가능하다. 

김군이 화원을 만들었다. 김군은 꽃을 주시한 채 하루 종일 눈 한번 꿈쩍하지 않는다. 꽃 아래에 자리를 마련하여 누운 채 꼼짝도 않고, 손님이 와도 말 한 마디 건네지 않는다. 그런 김군을 보고 미친 놈 아니면 멍청이라고 생각하여 손가락질하고 비웃는 자가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그를 비웃는 웃음소리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그 웃음소리는 공허한 메아리만 남기고 생기가 싹 가시게 되리라.

*북학의를 쓴 초정 박제가의 글의 일부다. 독특한 시각에서 남과는 다른 재주를 가진 사람의 가치를 있는 그대로 봐 주는 것이 글쓴이의 심성을 짐작케 한다. '꽃에 미친 김군' 이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김군은 규장각 서리를 지낸 김덕형으로 본다.

무려 다섯 번의 청을 넣었다. 지난해 초겨울 우연히 방문한 산골에서 물매화 소식을 듣고 다음해를 기약했다. 꽃피면 소식 달라고 했으나 마음이 급한 건 언제나 청을 넣은 사람이다. 가을이 되어서도 오지 않은 꽃피었다는 소식은 몸도 마음도 조급해질 수밖에 없다. 급기야는 일방적으로 일시를 통보하고서야 청에 대한 답이 왔다.

억지 청을 넣었다는 민망함에도 불구하고 소 만한 등치에 커다란 눈의 순박하기 그지없는 안내자를 반가움으로 만났다. 머쓱한 속내를 드러내니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는 미소로 반기는 그를 따라 나섰다.

무리지어 핀 물매화를 보니 어찌나 반갑던지 마음은 앞서나 몸은 한발짝 물러선다. 조심스럽기도 하지만 햇빛들어오는 방향과 자생지의 모습, 꽃봉우리 맺힌것 활짝 핀 것 등 군락지의 전체 판세를 파악해야하기 때문이다. 멀리서 가까이서 윗쪽 아래쪽 살피다가 가까이 있는 꽃부터 눈맞춤을 사작한다. 무리지어 또는 홀로 핀 개체들이 충분히 눈에 익을 무렵에서야 손에 들었던 카메라의 전원을 켠다.

박제가의 '백화보서百花譜序'에 등장하는 '꽃에 미친 김군'에는 미치지 못할지라도 그 마음만은 넘치고도 남을 것이다. 하여, 여러 사람들이 벽癖이 있다 눈치할지라도 기꺼이 감당할 마음이다.

옛사람의 글에서 꽃보는 마음을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이 꽃보는 마음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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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_읽는_하루

활짝

꽃이 나에게 말했지
너도 나처럼 꽃이 되고 싶거든
크게 웃어봐, 활짝

*신기용의 시 '활짝'이다. 맑고 경쾌하다. 가을볕의 뽀송함에 눅눅함이 물러가듯 마음 속에 볕이 들어온다. 그 가을볕 닮은 환한 웃음으로 스스로를 꽃으로 피워볼 일이다. 활짝~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수놓는_농가찻집 #핸드드립커피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리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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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 하늘을 날고, 물고기가 물 속을 헤엄치고, 동물들이 땅을 어슬렁거린다. 문득, 동물이 하늘을 보고, 새가 물 속을 기웃거리고, 물고기가 허공으로 솟구친다.

나무로 태어나 물고기로 환생을 꿈꾸는 이의 소망이 담겼을까. 물고기는 벽에 매달려 뜬 눈으로 다음 생을 기다리는 중이다. 꿈을 꾸는 이유다. 

꿈으로 인해 내일이 있으니 그 꿈을 믿어 다시 오늘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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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나물'
꽃이 아니었으면 가지 않았을 산을 내려오다 만났다. 자주 찾는 숲에서 이미 얼굴을 익혔으니 여기서도 보는구나 하는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가을 볕을 받은 꽃이 살랑거리는 바람결에 하늘을 날듯이 가벼운 몸짓이다. 여기서 연한 보라색을 빼면 상상이 안될 정도로 잘 어울리는 색이다.


나비나물의 나비는 이름 마주보며 달리는 턱잎은 2장이 나비가 날개를 편 모습과 비슷하다는 것에서 유래된듯 하다. 나물은 어린잎을 식용으로 사용했다는 말이다.


큰나비나물, 애기나비나물, 광양나비나물, 긴잎나비나물, 꽂나비나물 등이 있다는데 실물은 확인하지 못했다. 말너울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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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 몸을 길러 살찐 자가 있고, 입을 길러 살찐 자가 있으며, 눈을 길러 살찐 자가 있고, 귀를 길러 살찐 자가 있습니다. 
지붕이 높이 솟고 거처가 훌륭하며 화려한 큰 집에서 쉬고 아름답게 수놓은 방안에서 즐기면서도 그 모습이 비쩍 마른 사람을 그대는 본 적이 있는지요?
일천 개의 술잔과 일백 개의 솥을 벌여 놓고 생선을 굽고 고기를 삶아 육지와 바다에서 나는 산해진미를 다 가져와 즐기는데도 그 모습이 야윈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남위와 서시 같은 미인이 한 일백여 명쯤 주옥을 두르고 한 집에 살면서 살짝 눈웃음을 지으면서 그윽한 눈길로 마음을 허락한다고 할 때 이러고도 그 모습이 파리한 사람이 있던가요?
오나라와 월나라의 노랫가락에 백아의 거문고와 영윤의 피리 소리가 성대하게 어우러져 무리 지어 늘어섰는데도 그 낯빛에 고달픈 기색이 있는 자가 있습디까?

이 네 가지는 사람을 살찌우는 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사는 집이 화려하면 편안해서 살이 찌고, 음식이 사치스러우면 맛이 있어서 살이 찌고, 용모가 아름답고 보니 기뻐서 살이 찌고, 소리의 가락이 어여뿐지라 즐거워서 살이 찌지요. 이 네 가지를 몸에 지니면 살 찌기를 애써 구하지 않더라도 살찌는 것이 당연합니다.

*김석주(1634~1684)의 '의훈醫訓'이라는 글의 일부다. 몇 달 동안 병을 앓고 난 이가 바짝 마른 자신을 본 주변 사람들의 염려하는 말을 하자 의원을 찾아가 해법을 묻는 이에게 의원이 들려준 이야기 형식의 글이다. 몸을 고치려 갔다가 마음을 고치게 된 내력을 담았다.

위 네 가지 살찌는 이유 중 한가지도 해당하지 않은데 가을이라고 여기저기서 살찐다는 소리가 들린다. 우스개 소리로 들리기도 하지만 웃을 수만도 없는 이야기라 행간을 살펴볼 필요가 있어 길게 인용한다. 

거친 바람결이 옷깃을 파고든다. 한기를 느끼는 몸이 자꾸만 볕을 찾아가자고 조른다. 파아란 하늘빛에 볕까지 좋으니 저절로 마음에 살이 오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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