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직한 비가 깊게도 내린다. 밤을 가로지르는 빗소리에 끝내 참지 못하고 골목 끝 가로등 밑에 서서 어둠 속 하늘을 쳐다보았다. 비는 내리는지 솟는지 모르게 머리도 발도 모두를 적시고도 남아 흥건히 고였다.


"온몸을 적실만큼
가을비를 맞으면
그대는 무슨 옷으로 다시
갈아입고 내일을 가야 하는가"


*용혜원의 시 '가을비를 맞으며'의 일부다. 언제부턴가 내리는 비도 온전히 맞지 못하는 시간을 살고 있다. 이유야 없진 않지만 오는대로 다 맞았던 옛날의 그 비는 기억 속에만 잠들어 있다.


하지만, 몸은 그 때의 비를 기억하고 있나 보다. 그 빗소리에 마음도 몸도 어둠 속으로 내딛는다. 까만밤 내리는 비를 붙잡아두는 곳에 멈춰 비와 마주한다. 불빛을 품은 비가 쉼의 공간에 가까스로 멈춘 지점이다.


오늘밤도 품은 빛을 어쩌지 못하고 속으로만 밝아지는 비와 마주한다. 비로소 갈아 입을 옷 걱정을 내려놓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흰진범'
가을로 가는 숲 속에서 독특한 생김새로 유독 눈을 사로잡는 꽃들이 있다. 그 선두에 투구꽃이 그것이며 생긴 모양으로 보면 진범 역시 한몫 한다.


연한 노랑색의 꽃이 오리를 닮은듯 독특한 모양으로 꽃대 끝에 모여 봉우리를 이루며 피었다. 보기에 따라서는 오리들이 떼로 모여있는듯 보이기도 한다. 비슷한 꽃으로 진범이 있는데 진범은 꽃 색깔이 연한 자주색인데 비해 흰진범의 꽃은 흰색이다.


진범이라는 이름은 사연이 많아 보인다. '오독도기'라고 하던 것을 일제강점기 때 한자로 옮기면서 '진범秦范'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진범을 진교라고도 하는데 진교란 진秦나라에서 많이 생산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뿌리가 그물처럼 서로 얽혀 있다는 뜻으로 교자를 써서 진교라고 했다고 한다.


투구꽃과 같은 종류로 분류되는데 이것으로부터 유래한 것인지는 모르나 꽃말이 '용사의 모자'라고 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별이랑 2017-10-12 12: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감상하고 갑니다~ 정말 작은 새들이 앉아 있는것 같아요.

무진無盡 2017-10-12 18:28   좋아요 1 | URL
세상에 어느것 하나 같은게 없더라구요. 사람도 마찬가지구요~ ^^
 

마알간 햇살이 곱다. 그 햇살이 사물의 온전한 본색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속내를 드러내고서야 비로소 환해지는 순수함이 여기에 있다. 햇살품은 가슴이 더없이 맑아지는 시간이다.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가을 들녘이 걸음을 멈추게 하는 때가 동터오른 이른 아침과 저물녘의 햇살이 반짝이는 시간이다.


그래, 딱 이때다. 햇살에 스스로를 드러내는 벼이삭이 그러듯 그 햇살을 품은 내 마음도 벼이삭처럼 영글어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해국'
색감과 질감이 남다르다. 태생이 바다 바람을 벗하고 살아서 그런 것일까. 바다를 품었음직한 파란색의 과하지 않음이 묵직한 질감에서 오는지도 모른다. 두툼하고 풍서한 꽃잎과 잎은 포근함으로 전한다.


정작 바다에 가서는 보지도 못하고 내 뜰에 핀 꽃을 통해 바다에 두고 온 아쉬움을 위로 한다. 떠나온 곳 바다를 향한 간절함이 깊고 짙어서일까? 아니면 바닷물이 그리워 바다보다 더 파랗게 물이들었나 보다.


'해변국'이라고도 한다. 잎은 아침 나절에 꼿꼿하고 한낮에 생기를 잃다가 해가 지면 활기를 되찾는다. 깊어가는 가을 차가워져가는 바람따라 바닷가를 찾아가는 것은 오로지 너를 보기 위함이다.


척박한 땅에서 모진 바닷바람을 견디며 꽃을 피울 날을 기다린 바로 너의 마음이 오롯이 담긴 듯 '기다림'이란 꽃말을가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살갗에 닿는 볕이 부드럽다. 넉넉함으로 곡식과 열매를 여물게하는 그 볕의 한없이 넓고 깊은 품에 살포시 기대어 본다. 좋다 싫다 구별하지 않은 볕의 너그러움이 그대로 스며들어 가슴에 온기를 전한다.


소나무 몸통의 터진 껍질 사이로 볕이 들었다. 다소 시간의 짬이 나는 오후면 가끔 소나무 그늘에 들어 갈라진 껍질을 만져본다. 까칠한 소나무 껍질은 소나무의 시간이지만 내 시간을 확인하는 도구로 삼아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소나무는 속을 부풀리며 스스로를 둘러싼 껍질을 버린다. 몸통에 난 골이 깊어지는 만큼 소나무는 성장하는 것이다.


소나무와는 달리 내 마음을 키워내는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겨우 늘어나는 흰머리와 눈가의 주름살로 대신하지만 그것으로는 다 알 수 없어 대신할 무엇을 찾는다. 까칠한 소나무 껍질을 만지며 어쩌면 그것과 다르지 않을 내 시간의 흔적을 짐작해 보는 것이다.


여름의 볕은 피하게 하고 겨울의 볕은 탐하게 하지만 가을날 오후의 볕은 조건없이 곁을 허락하는 여유를 가졌다. 크지 않은 소나무에 잠깐 들어앉은 여유로운 볕으로 가을날의 넉넉함을 누린다.


품을 키워가는 낮달과 함께 까실까실한 볕이 참 좋은 가을날의 오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