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속에 우뚝 섰다. 말라버린 나무가 여전히 제자리를 지킨다. 드나드는 마을 입구에 언제부턴가 안쓰러움으로 바라보는 나무다.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숨을 멈추고도 그자리에 서 있다.
나목은 때를 기다려 잎과 가지를 내어 내일을 오늘로 만들어 간다. 숨을 멈춘 나무라도 다를까. 숨을 멈춘 나무의 내일을 생각한다.
무진霧津을 무진無盡으로 읽으며 하루를 연다.
'은방울꽃'좀처럼 드러내지 않고 애써 숨는다. 크고 넓은 잎을 가졌으면서도 그늘을 좋아한다. 그것도 여의치 못하면 무리를 지어 숲을 이룬다. 초록색의 잎 사이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꽃의 모습도 일품이지만 매혹적인 향기가 빼놓을 수없는 으뜸이다.
은방울꽃이라는 이름은 보이는 모습 그대로 꽃모양이 방울처럼 생긴 데에서 유래했다. 은방울 닮아서 은방울꽃이라고 했다지만 거꾸로 은방울꽃을 보고 사람들이 은방울을 만들었다고 봐야 맞는 것은 아닐까.
꽃의 끝부분을 살짝 구부려 올린 소박한 멋이 좋다. 곧 종소리가 울릴듯 싶지만 소리보다는 향기가 먼저다. 이 꽃 역시 초록과 흰색의 어우러짐이 빛난다.
은은한 향이 종소리처럼 깊고 멀리 오랫동안 퍼지는 은방울꽃은 '순결', '다시 찾은 행복'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재주가 있고 없는 것은 내게 달렸으며, 그 재주를 쓰고 쓰지 않는 것은 남에게 달렸다. 나는 내게 달린 것을 할 뿐이다. 어찌 남에게 달린 것 때문에 궁하고 통하며 기뻐하고 슬퍼하다가 내가 하늘로부터 받은 것을 그만둘 수 있으랴?"
*조선후기를 살았던 위항시인 홍세태의 글이다. 과하다 싶을 만큼 쏟아지던 비가 그쳐가며 얇아진 구름이 한층 가벼운 몸짓으로 슬그머니 산을 넘는다. 몸이 붙잡힌 까닭으로 마음으로 불편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숲에 홀로피어 제 뜻을 펼치는 각시붓꽃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누굴 탓하랴. 오늘 내가 누려야할 몫이 그것 뿐임이 안타까울 뿐.
꽃으로 피어날ᆢ. 지극함이다. 억지부려서는 이루지 못하는 간절함이 정성의 선을 넘어서는 경지에 들어야 가능한 일이다. 하늘, 땅, 물, 햇볕, 바람ᆢ생명을 향한 모두의 의지가 발현된 결과다. 살아 숨쉬는 것과 다르지 않으며 우리가 오늘, 지금을 사는 이유다.
내 뜰에 들어와 꽃으로 피어난 그대도 이와 다르지 않다.
'등심붓꽃'유독 강한 이미지로 다가오는 꽃이 있다. 현실의 모습과 사진이 주는 간격에 차이가 있다지만 그것을 단숨에 뛰어넘는다. 먼 곳에서만 들리던 꽃소식이 눈앞에 펼쳐지지 그야말로 황홀한 세상이다.
작디작은 것이 많은 것을 담았다. 가냘픈 모양도 온기 가득한 색깔도 색감의 차이가 주는 깊이도 무엇하나 빼놓을 수 없다. 여리여리함이 주는 유혹이 강하여 손에 쥐어야할 욕망을 불러온다.
북아메리카에서 들어와 정착한 귀화식물로 관상용으로 들어온 것이 제주도를 중심으로 따뜻한 남쪽에 야생으로 퍼져 정착한 꽃이다. 한여름 결실을 맺으면 씨앗을 받아와 뜰에 들여야겠다.
자명등自明燈일까. 마음자리의 본 바탕이 이와같다는 듯 스스로 밝다. 하룻만에 피고 지는 꽃의 절정을 고스란히 표현하고 있어 더 주목받는다. '기쁜소식'이라는 꽃말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