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 그 황홀한 빛의 숲에 들다. 이른 시간 숲은 이미 빛의 세상이다. 한낯 햇살의 뜨거운 기운이 맹위를 떨치기 전 숲으로 파고드는 햇살의 느긋함이 담긴 때의 숲이 좋다. 터벅터벅 적막을 깨는 스스로의 발자국 소리의 리듬에 귀 기울이는 시간으로의 나들이다.


계곡 돌틈에 떨어진 꽃잎 위의 빛, 정상의 이야기를 전하는 바람 소리, 반가움과 경계를 넘나드는 새의 울음, 눈 보다는 코의 예민함을 건드리는 숲의 향기에 넘실대는 산그림자의 손짓, 오랜만에 만난 동무를 반기는 다람쥐와 앞서거니 뒷서거니 숲 속 한 식구가 누리는 시간의 공유다.


숲, 숨에 틈을 내는 시공時空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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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사람의 무늬'
-이순호, 글상걸상

적당한(?) 집을 발견하고는 앞 뒤 재볼 생각도 없이 샀다. 사는데 필요한 부분만 손보고 나서 이사를 오면서부터 집을 가꾸기 시작했다.

전 주인과 나의 사는 방식이 다르니 집의 모습은 분명하게 달라진다. 그것을 살아가는 동안 수시로 느낀다. '집은 사는 사람의 결'을 닮아가는 것'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집은 짓는 것보다 가꾸는 것이 더 중요하다. 너무 크거나 화려하고, 넓고 복잡한 집은 시간을 낭비하고 잡아먹는 사치이며, 쏟아야할 노력과 에너지를 소비하는 귀신(욕심)일 따름이다. 그 순간 집은 사람에게 폭력적이고 착취적일 수밖에 없다."

제주도에서 손으로 책을 엮는 사람, 글상걸상의 대표 이순호의 집 짓는 이야기를 담은 책 '집, 사람의 무늬'는 그런 의미를 잘 담아내고 있다. 섬 머슴 같은 외모와는 전혀 다른 감성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이기에 사람을 만나는 마음으로 책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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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充實之謂美 충실지위미'
충실充實한 것을 아름다움이라고 한다.


"하고자 할 만한 것을 '선善'이라 하고, 선을 지속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을 '신信'이라 하며, 선이 몸속에 가득 차서 실하게 된 것을 '미美'라 하고, 가득 차서 빛을 발함이 있는 것을 '대大'라 하며, 대의 상태가 되어 남을 변화시키는 것을 '성聖'이라 하고, 성스러우면서 알 수 없는 것을 '신神'이라 한다."


*맹자孟子 진심하盡心下편에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선善, 신信, 미美, 대大, 성聖, 신神"의 여섯 단계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이 말에 비추어 내가 추구하는 아름다움美은 무엇일까.


책을 손에서 놓치 않으나 문자에만 집착해 겨우 읽는 수준이고, 애써 발품 팔아 꽃을 보나 겨우 한 개체의 아름다움에 빠지고, 가슴을 울리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몰입하나 그 찰라에 머물뿐이다. 이렇게 지극히 개인적이고 단순하게 대상을 한정시켜서 아름다움을 보는 것에 나를 맡긴다면 스스로에게 미안할 일이 아닐까.


마른 땅을 뚫고 솟아나는 죽순에서 지극한 아름다움을 본다. 숨죽여 기다렸을 시간과 때를 알아 뚫고 나오는 힘 속에 아름다움의 근원인 충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꽃을 보러 발품 파는 이유도 모든 꽃이 그 충실의 결과임을 알기 때문이다.


애써서 다독여온 감정이 어느 한순간에 무너지는 경험은 스스로를 무척이나 당혹스럽게 한다. 쌓아온 시간에 수고로움의 부족을 개탄하지만 매번 스스로에게 지고 만다. 그렇더라도 다시 충실에 주목하는 이유는 스스로를 이기는 힘도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다.


나는 무엇으로 스스로를 충실充實하게 채워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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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기생꽃'
참으로 오랫동안 가보지 못해던 길을 나섰다. 근래들어 연달아 권역의 봉우리를 오르면서도 엄두가 나지 않았던 곳인데 불쑥 새벼길을 나선 것이다. 두어시간 걷는 동안 30년 전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뭉클해지기도 했다.


꽃이 무엇이길래ᆢ. 꽃의 힘이 아니라면 나서지 않았을 길이다. 첫눈맞춤할 마음에 힘든지도 모르고 여유롭게 오르다보니 새로운 것들도 눈에 자주 보인다. 꽃 때문에 달라진 마음이다.


깨긋하다. 맑고 순한 모습이 마냥 고맙다. 이렇게 피워줘서 이렇게 볼 수 있어서 말이다. 순백의 아름다움이 여기로부터 기인한듯 한동안 넋을 잃고 주변을 서성이게 만든다. 막상 대놓고 눈맞춤하기에는 미안함 마음이다.


참기생꽃, 기생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흰 꽃잎이 마치 기생의 분 바른 얼굴마냥 희다고 해서 지었다는 설이 있고, 옛날 기생들이 쓰던 화관을 닮아서 기생꽃이라고 한다는 설도 있다고 한다. 여기서 참이란 작다는 의미라고 한다.


우리나라 특산종이라고 한다. 지리 능선의 기운을 품어 더 곱게 피었나 보다. 다시, 꽃보러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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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성 남자 - 아무것도 갖지 않고 세월이 되어가는
이만근 지음 / 나비클럽 / 201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세월을 비켜가고픈 남자

애써서 무엇을 이루고자하는 것이 없다그렇다고 세상을 비관하거나 달관한 것도 아니다내 삶의 중심에 다른 무엇이 아닌 ''를 놓고 살아가고 싶은 것이다그런 사람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을 곱지만은 않다.자칫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책임을 방기하는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 그 곱지 않은 시선은 무의미해 진다.

 

'삶의 최소주의자'라는 글에서 멈추었다단어가 주는 심플함보다는 추구하는 바를 지키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았을 마음에 우선 위안을 보내고 싶다. "아무것도 갖지 않고 세월이 되어가는"에 이르러 그 이유를 짐작한다저자는 계절과 세월의 중첩된 의미가 주는 무게감을 어떻게 담아냈을까?

 

쉬운 말로만 살고 싶습니다.”

혼자 살기를 도모할수록 공존이 가능합니다.”

내가 너에 대해 뭘 알아버린 거 같아.”

그가 뒤돌아보면 매번 들키는 나는 병신.”

혼자 있기는 사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되지 못한들 어떤가누구나 세월이 되지 않습니까.”

 

책을 읽어가며 골라낸 문장은 우선 공감하는 것이 바탕이지만 이 공감에는 마냥 좋은 감정만 있는 것은 아니다가슴 시린 격정을 이겨낸 서러움과 먼 훗날일지라도 품어야할 책임과 이를 감당하기에 버거운 마음에 무리 속에 살아가지만 늘 혼자인 사람들이 가지는 감정의 리듬을 동반한다이는 세월의 무게를 속으로만 다독이는 손짓과 문장을 건너는 속도가 비슷해지기를 기다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사람도물건도옷도마음도말도소설이나 시를 짓기에는 성격상 민망해서최소한의 문장만 남겨진 글들로 이루어진 책이다애초에 무엇이 되기 위해 꿈꾸지 않았던 기질이 빚은 문장은 그의 삶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런 구구절절한 해설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문장 몇을 건너는 시간이면 앞으로 펼쳐질 계절성 남자의 이야기의 폭이 짐작되고도 남음이 있다그렇다면 '삶의 최소주의자'라는 계절성 남자에게 세월은 무엇일까?

 

내가 이해하기로는 계절이 겹으로 쌓여 그 무게를 더해가는 것이 세월이다짐짓 스스로 감당할 세월의 무게감을 알아차릴 수 있는 나이에 도달해서야 비로소 계절이 보다 명확하게 다가온다계절성 남자가 그런 의미라면 이미 목표달성에 충분히 다가섰으리라 짐작된다어쩌면 이 남자에게는 다가오는 계절은 더 이상 무게를 쌓지 않을런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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