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릴만한 고집'
남과 나를 구분하는 기준이며 자신으로 살아온 근거다. 꼭 필요하지만 대부분은 자신을 가두는 벽으로 통할 때가 더 많다. 누군가에겐 거리를 둬야한다는 신호이며, 누군가를 곁에 머물도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제의 견디기 힘들었던 아픔은 오늘 잠시 누리는 조그마한 위안으로 다독여 진다. 그로인해 오늘을 버티고 내일을 맞이할 수 있다. 늘상 같은 자리를 멤돌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지만 그것도 '부릴만한 고집'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되돌이표를 찍는 일상이지만 그 속에서 내가 나로 그대곁에 머물 수 있는 이유는 '부릴만한 고집'을 부려서이고 그대가 '부릴만한 고집'을 인정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여, 나도 그대의 그 고집을 인정한다.

연일 이어지는 포근한 날씨에 이미 맺힌 히어리의 겨울눈에 온기가 돈다. 춥고 매마른 긴 겨울을 건너가는 동안 애를 써서 품고 키워야할 새생명의 모습이다. 잔뜩 웅크려 힘을 길러야할 때에 서투른 속내를 보인다는 것이 안쓰럽다. 때를 거스르면 된서리를 맞을 것을 알면서도 때론 '미련한 고집'이 필요할 때도 있다.

지금 이 마음이 '물러서야할 고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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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素'
겨울 첫날을 맞이하는 마음가짐이라고 했다. 서예가 박덕준님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기에 안으로만 파고드는 소리로 가만히 읊조린다.

소素=맑다. 희다. 깨끗하다. 
근본, 바탕, 본래 등의 뜻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 근본 자리가 항백恒白이다.

겨울의 첫날이 가슴 시리도록 푸른 하늘이다. 손끝이 저린 차가움으로 하루를 열더니 이내 풀어져 봄날의 따스함과 가을날의 푸르름을 그대로 품었다. 맑고 푸르러 더욱 깊어진 자리에 명징明澄함이 있다. 소素, 항백恒白을 떠올리는 겨울 첫날이 더없이 여여如如하다. 

소素, 겨울 한복판으로 걸어가는 첫자리에 글자 하나를 놓는다.

*1년 전 오늘의 일이다. 그날과는 달리 하늘은 흐리지만 포근한 날이다. 1년 전 그날이나 오늘이나 지향하는 삶의 태도는 다르지 않다. 쌓인 시간의 무게의 반영이 지금의 마음자리일까. 항백 박덕준 서예가의 소素를 그 자리에 다시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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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복惜福'
-정민, 김영사

누릴 복을 아끼라고 한다. 채우지 말고 비우고, 움켜쥐는 대신 내려놓아야 한단다.

마음 간수, 공부의 요령, 발밑의 행복, 바로 보고 멀리 보자 등 네 가지 테마로 사자성어를 엮었다. 세상과 스스로를 돌아보는 기회로 삼는다.

정민 선생님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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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이다.
"기다림은 세상을 보는 눈을 찾는 일이다." 최준영의 책 '동사의 삶'에 나오는 문장이다. 틀에 얶매이지 않고 본질로 다가가는 시각이 새롭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는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을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황지우의 시 '너를 기다리는 동안'과 함께 떠올려 본다. 누군가를 몹시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만이 아는 무엇을 이야기 한다. 그 중심에 그리움이 있다. "너였다가/너였다가,/너 일 것이었다가/"

곱고 청초함으로 가을날의 중심에 있던 꽃, 물매화가 진 자리다. 맺힌 씨방이 익어서 다음을 예고 한다. 이슬과 서리 몇번에 어쩌면 눈까지 맞으며 의연하게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출근 전 하루를 시작하는 의식을 치르듯 아침마다 눈맞춤한다.

시간을 들여 지켜보는 그 중심에 기다림이 있다. 새싹을 품고 다음을 기다리는 씨방과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 사이에 형성되는 감정의 교류다. 봄이든, 희망이든, 시간이든, 너이든ᆢ. 다른 무엇을 담아 기억하고, 보고, 찾고, 생각하며 내 안에 뜸을 들이는 일이 기다림이다. 그렇게 공구한 기다림 끝에는 새로이 펼쳐질 세상에 대한 믿음이다.

꽃을 볼 기회가 궁한 때다. 안 보이던 곳이 보이고 미치지 못했던 것에 생각이 닿는다. 

"기다림은 세상을 보는 눈을 찾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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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비 탁자 나비클럽 소설선
공원국 지음 / 나비클럽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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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모랑마에 오르는 법

손에서 책을 놓고도 꽤 긴 시간을 요구한다각기 다른 삶의 경로를 걸어온 사람들이 한 곳에서 만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것은 이야기 속 주인공들만은 아니다작가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보다는 독자인 내가 무엇을 보고자 하는가에 초점을 맞춰본다.

 

시한부 도시’ 강녕이 예정된 운명을 맞이한다강녕에 부여한 이미지는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의 집약이다자연과 인간과거와 현대인간의 욕망이 첨예하게 충돌하는 현장이다이곳에 다른 길을 걷는 듯 하지만 한 방향을 향한 사람들이 시차를 두고서 모여든다모두 살고자하는 몸부림이다영혼이 사는 것과 육체가 죽은 것은 다른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무엇이 사는가는 차후의 문제다.

 

네 명으로 집중된 사람들의 모습은 겉모양만 다를 뿐 속내는 흔하게 접하는 유형이다일면서도 모른척하거나 암묵적인 동의 속에서 관행으로 인정된 일상과 다르지 않다그러기에 작가는 사람들은 소설을 허구라 한다하지만 21세기에는 소설만이 진실이다.” 라고 이야기 한다집약된 현실을 직면하는 내면의 불편함의 무게만큼 소설이 말하는 진실에 가가워지는 것이다.

 

주목했던 키워드는 세 가지다소설의 제목으로 등장한 가문비 탁자가 만들어 낸 공간이다단단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강한 나무와 그 나무로 만든 탁자가 만들어 준 공간이 주는 희망이 하나다시한부 도시와 대별되는 이미지로 읽힌다그것은 지난 세대의 목수가 집을 지을 때의 고집과 연결되며 모래땅 위에 고층건물을 짓는 것과 대척점에 서 있다생명을 살려낸 공간과 가문비나무가 갖는 이미지와 조화롭다.

 

다른 하나는 허지우 · 왕빈 · 체링 · 장인우’ 네 사람으로 집중된 이야기 속에서 이들을 내용적으로 연결 짓는 인물로 페마를 보는 일이다. “어떤 이들은 남의 마음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가르치죠그러나 남의 마음으로 들어가지 않은 영혼은 자기 가죽 안에 갇혀 있는 포로 아닌가요그래서 남의 마음속으로 여행하지 않는 영혼은 말라비틀어지죠물을 벗어난 물고기처럼.” 페마가 허지우에게 했던 이 말에 주목한다자신의 삶이지만 그 삶에서 겉도는 이들의 내면이 고스란히 담겨진 문장으로 읽힌다.

 

마지막으로 에베레스트 산의 다른 이름인 초모랑마이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티베트의 고원에서 초모랑마가 담고 있는 대지의 여신이라는 이미지와 각기 다른 삶을 살아온 이들이 궁극적으로 지향점을 잡아야한다면 이 초모랑마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다음 물음에 무엇이라 답할 수 있을까.

 

너 초모랑마에 오르는 법을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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