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미꽃
낯선 숲길은 언제나 한눈 팔기에 좋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익숙한듯 하면서도 늘 새로운 생명들이 있어 숲을 찾는 이들을 반긴다. 한눈에 알아본다. 제법 오랜 시간 동안 사진을 보고 눈에 익힌 결과다.


작은 꽃대를 곧추 세웠다. 반듯한 모습에서 알 수 없는 기품을 느낀다. 꽃봉우리를 만들어 자잘한 꽃들을 달아 주목받는다. 키도 작고 꽃도 작은 것이 홀로 또는 무리지어 피어 꽃대를 받치는 초록의 두툼한 잎과 멋진 조화를 이룬다.


모내기가 끝난 논에 어슬렁거리며 먹이를 찾는 그 새를 닮았다. 꽃의 잎과 잎맥 모양이 두루미가 날개를 넓게 펼친 것과 비슷해서 두루미꽃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영낙없는 그 모습이다.


지난해 첫눈맞춤하고 다시 찾은 세석에서는 마치 오기를 기다렸다는듯 반겨준다. 두루미의 고고한 자태를 닮은 것과는 달리 '화려함', '변덕'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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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학자의 인문 여행
이영민 지음 / 아날로그(글담)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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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위해서는 알아야 한다.

해질 무렵이면 노을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곳이 있다서쪽으로 난 길을 올라 그 길이 끝나는 곳에 소나무 가지가 머리 위로 늘어진 바위 끝에 오른다호남고속도로 한 줄기가 아득히 펼쳐지고 그 길을 감싸듯이 산들이 늘어선 곳이다그 도로를 따라가던 해가 산을 넘어가는 시간에 맞춰서 바위 끝에 서면 붉은 노을에 물들어가는 자신과 만날 수 있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다그 장소만이 가진 특별함으로 때맞춰 찾게 되는 공간이다.

 

이처럼 장소가 주는 특별함이 극대화 되는 것은 여행만한 것이 또 있을까장소와 장소를 잇는 시간의 흐름을 쌓아가는 것이 여행이라 생각한다그만큼 여행에서 장소가 차지하는 의미는 크다우리는 여행에서 장소가 차지하는 비중만큼 장소에 대해 적절한 준비를 하고 있는 걸까?

 

지리학자의 인문여행은 여행지를 고르지만 말고 어떻게 바라볼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하는 여행하는 지리학자 이영민이 인문지리학적 관점으로 장소와 그곳 사람들을 바라보는 여행기이다장소가 갖는 특별함을 놓치지 않고 경험할 수 있으려면 적절한 준비가 따라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그 중심에 인문지리학적 관점이 있다.

 

이 책 지리학자의 인문여행은 이화여자대학교의 [여행과 지리글로벌화의 지역 탐색]이라는 강의를 바탕으로 엮어진 책이다이화여대 학생뿐 아니가 인근 학교 학생들까지 청강을 올 정도로 인기 있었던 강의였다고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역으로 생각하면 보기 위해서는 알아야 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이야기한다여행이 보편화된 시대에 각기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여행을 꾸려갈 것이다하지만 준비된 여행과 그저 따라만 가는 여행은 분명 차이가 있다준비된 여행에서 장소에 대한 사전 준비 정도에 따라 여행의 내용은 달라 질 것이 분명하다여행에서 장소와 사람들을 왜 충분히 알아야 하는지또 어떻게 바라보고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관심을 갖자는 것이다.

 

이영민의 지리학자의 인문여행은 드러난 것을 본다는 의미의 ''이 아니라 눈을 크게 뜨고 깊이를 더하여 자세히 본다는 ''에 더 가깝다자연환경이 주는 아름다음에 사람들의 삶이 어우러짐이 더해져 만들어지는 그 장소만의 독특함을 알아볼 수 있어야 가치 있는 여행이 될 수 있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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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명향 煮茗香

呼兒響落松蘿霧 호아향락송나무
煮茗香傳石徑風 자명향전석경풍

아이 부르는 소리는 송나를 스치는 안개 속에 들려오고
차 달이는 향기는 돌길의 바람을 타고 전해오네.

*진각국사가 스승인 보조국사가 있는 억보산 백운암을 찾아 갔을 때, 산 아래에서 스승의 목소리를 듣고 읊은 시라고 한다.

송나松蘿를 쓴 스님의 모습에는 이미 차향 가득할테니 들고나는 모든 소리 역시 차향이 배어있으리라. 차 달이는 향기라는 단어에 매료되어 찾아본 글 귀다.

한껏 주목 받을 수 있었던 화려함을 버리고 나니 감춰진 자신과 직면한다. '이쁘다', '화려하다', '이름값 한다'는 요란스러웠던 공치사는 메아리로도 남지 않았다. 무엇이 '나'인가라는 물음 역시 진즉 산을 넘었다. 꽃이 떨어지는 후 돌아보는 않은 모습에 주목한다. 걸음을 멈추고 눈맞춤하는 이유는 생명을 품고 있는 꽃의 마음에 향기를 쫒는 이의 마음을 담아 '헌화가'를 부르기 위함이다

자명향 煮茗香,
'차 달이는 향기'를 볼 수 있다면 헌화가를 부르는 마음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꽃이 진 자리에 향기가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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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로 쓰기 - 김훈 산문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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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겉돌지 않는다

출간 소식이 늘 반갑지만 막상 책을 손에 들고도 선 듯 나서지 못하는 작가가 있다그럴듯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주저하면서도 건너뛰지 못하는 매력이 함께 있는 경우가 그렇다나에게 작가 김훈은 손 내밀면 금방이라도 닿을 듯 한 발치에 있다작품 이외에는 인연이 없는 순수한 독자로써 작가를 대하는 내 마음이 그렇다는 것이다.

 

이유는 뭘까이 수필집 연필로 쓰기를 읽으며 짧은 문장 하나를 만나고 나서야 겨우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할매는 몸으로 시를 쓴다”(칠곡곡성양양순천 할매들의 글을 읽고)에 등장하는 문장으로 그것은 바로 말은 겉돌지 않는다이다.

 

지금까지 읽었던 작가 김훈의 소설과 수필의 공통점을 찾으라면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그의 글은 어떤 이야기를 하든 하고자 하는 주제가 그 실체와 겉돌지 않는다는 점이다손에 들면 쉽게 놓을 수 없게 하는 작가 김훈의 글의 힘이 나는 여기로부터 출발하고 있다고 본다.

 

연필로 쓰기에 실린 3부로 나누어진 서른 네 편의 글은 길고 짧은 것과는 상관없이 매 글마다 단숨에 읽히지만 막상 읽고 나면 긴 여운을 갖게 하는 힘이 있다보고 듣는 사람들의 지극히 사소한 일상이나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이야기하지만 그것의 실체는 삶의 본질에 선을 대고 있다그렇기에 할매는 몸으로 시를 쓴다에 인용한 할머니들의 문장과 작가 김훈의 글은 서로 다르지 않게 읽힌다.

 

기회를 만들어보고자 한다작가 김훈의 그간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탐독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다소 시간이 걸리는 일이겠지만 아주 특별한 경험이 되리라 생각한다비로소 한발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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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꽃나무'
모든 꽃은 아름답고 이쁘다. 꽃이라는 이유만으로 마땅히 주목 받아야 한다. 잠시 피는 꽃이지만 꽃이 피기까지의 수고로움과 열매 맺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의 결과임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모든 꽃이 동등하게 주목 받지는 못한다. 사람마다 취향의 호불호가 다르고 보는 목적이 달라서다. 나 역시 수많은 꽃을 찾아 발품팔면서도 유독 마음이 가는 꽃은 따로 있다. 그 중 이 함박꽃나무가 선두다.


깨끗하고 탐스러우며 특유의 향기 또한 은근하고 깊다. 꽃잎의 백색과 붉은 빛이 도는 수술에 꽃밥의 밝은 홍색의 어우러짐이 환상적이면서도 기품있는 단아함을 보여준다. 모양, 색, 향기까지 무엇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을 가졌다.


때를 기다려 높은 산을 올라 기어이 보고나서야 비로소 여름을 맞이한다는 의미를 부여한다. 나에게는 봄과 여름을 가르는 나름 시금석 같은 꽃이다. 매년 이 꽃을 핑개로 무등산을 올르며 보았는데 올해는 지리산에서 눈맞춤 했다.


전국 숲에서 자라지만 눈여겨 보는 이가 많지 않다. 비교적 해발 고도가 높은 지역에서 사는 이유도 한몫 한다. '산에 자라는 목련'이라는 뜻으로 '산목련'이라고도 하며, 북한에서는 '목란'이라 부르며, 국화로 지정하고 있다. 정식 명칭은 함박꽃나무다.


곱다. 하얀 꽃잎도 그 꽃잎에 쌓인 붉디붉은 꽃술도 적절한 어울림으로 한눈에 마음을 사로잡는다. 흰 꽃이 잎이 난 다음에 밑을 향해 달려 피는데 향기가 좋다. 꽃그늘아래 있다보면 꽃향기에 취해 나무 곁을 벗어나기 힘들 정도다. 함박꽃나무, 입안에 머무는 이름이 꽃만큼이나 좋은 여운을 남긴다.


백련의 숭고함도 아니고 백모란의 원숙미와도 다르다. 순백의 꽃잎을 살포시 열며 보일듯 말듯 미소 짓는 자태가 중년으로 접어드는 여인이 곱게 단장하고 옅은 미소를 띈 모습으로 연상된다. '수줍음'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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