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전히 꽃을 보기 위해 산과 들로 간다. 그 시작을 떠올려 보면 나만의 그럴싸한 이유를 댈 수 있는 것은 없지만 한가지는 확실하다. 

식물은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때문이다.

이런저런 세상살이에 지쳐 있을 때 찾아가면 언제나 환한 미소로 반겨주지만 찾아온 이유를 묻지 않아서 좋았다. 이것은 순전히 내가 식물에 기대는 것이라서 식물들은 어떤지는 모른다. 짝사랑도 이런 짝사랑이 없다.

"세상과 멀어진 내가
세상으로 난 길 쪽으로
한 뼘씩 기울어 가는 일"

*김부조의 '소중한 일'이라는 시에서 만난 이 싯구가 한동안 머리에서 빠져나가지 않고 자꾸만 지난 삶을 돌아보게 한다. 

꽃이 안내한 길을 걷다보니 '세상과 멀어진 내가 세상으로 난 길 쪽으로 한 뼘씩 기울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중심에 산과 들에서 만난 꽃이 있었다. 아니 더 정확히는 꽃으로 난 길을 걷다가 만난 사람이 있었다. 

서툴지만 너무 느리지 않게 세상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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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닭개비'
아침에 일어나 산책하듯 뜰을 거닌다. 아침을 깨우는 새들만큼 부지런한 꽃이 환한 미소로 반긴다. 인근에 사는 분이 나눔해준 꽃이 1년 사이에 제법 범위를 넓혔다.


색의 조화가 만들어낸 절묘함이다. 어울림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라는 듯 멋과 맛을 함께 보여준다. 만개한 널 보려면 햇살 환하게 비치는 아침이 좋다.


꽃은 5월경에 피기 시작하고 자줏빛이 돌며 꽃줄기 끝에 모여달린다. 꽃받침조각과 꽃잎은 3개씩이고 수술은 6개이며 수술대에 청자색 털이 있다. 꽃은 아침에 피었다가 날이 흐리거나 오후가 되면 시든다.


식물체를 통해 환경의 상태를 알아낼 수 있는 식물을 지표식물이라고 하는데 자주닭개비가 방사선에 대한 지표식물이다. 오랜 기간 동안의 방사선의 노출정도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원자력발전소의 주변에 심고 있다고 한다.


자주달개비라고도 불리지만 국가표준식물목록에는 자주닭개비가 추천명이다. 이 곱기만 한 꽃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보았을까 '외로운 추억', '짧은 즐거움'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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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맞춤이다. 숲에 들면 한없이 느려지는 걸음에 익숙하다. 좌우를 살피고 위아래도 봐야하며 지나온 길에 돌아도 봐야 한다. 높이를 달리하고 속도가 변하면 일상에서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거기에 있다. 일부러 그렇게 봐야할 이유를 밝히기 전에 당연시되는 행동이다. 숲에 들어 생명을 만나기 시작한 후로 달라진 태도다.

문득 눈을 들어 몇 걸음 앞 허공에 멈춘 꽃을 본다. 희미한 빛을 품고서 자신이 본래 간직한 순한 빛을 발하고 있다.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순간이다. 사소한 변화도 놓치지 않으려는 세심한 눈길이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한 눈맞춤이다. 느린 움직임을 멈추고 내쉬는 숨마져도 조심스럽게 가만히 바라본다.

적절한 때와 장소 그리고 그 앞에 멈춘 내가 하나되어 꽃이 되는 순간이다. 순백의 지극한 아름다움에 가슴이 먹먹하다.

꽃이 핀다고 그 꽃이 저절로 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제는 안다. 관련된 모든 인연의 정성을 다한 수고로움으로 꽃이 피듯 사람의 만남도 그러하다. 사람과의 만남, 그 만남으로 인해 형성되는 공감, 이 모두는 시간과 공간이 어우러져 꽃으로 피는 그것과 다르지 않다.

그대는 이미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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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쪽의 풍경은 환한가'
-심보선, 문학동네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 묻는 글들이다. 당신이 있는 곳을 돌아보기를, 내가 있는 ‘이쪽’의 풍경은 어떤지 바라보기를, 그리하여 나와 너,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 어떤 움직임이 될 수 있을지, 어떤 세계를 보여줄 수 있을지 묻는."

모험이다. 첫만남의 은근한 기대와 그에 걸맞는 부담이 함께 있다. 저자와 처음 만남이라 사전정보는 없다. 책 제목에 이끌려 손에 든 책이다. 이런 제목을 달 정도의 안목이라면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는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그날 그 자리에 있을 사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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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살 이덕무
이덕무 지음, 정민 옮김 / 민음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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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으로 내 삶의 거울을 삼아야 할까

옛사람들의 글을 읽다가 내가 사는 이 시대와는 사뭇 다른 삶을 살아간 모습에 보면서 종종 놀라는 일이 있다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상상을 초월하는 삶의 태도를 접할 때가 그 중 하나다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태도를 보면 지금의 나이와는 비교가 불가할 정도로 차이가 난다무엇이 그런 차이를 만드는 것일까사람들이 삶을 영위하는 생각과 태도는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를 반영하기 마련이다.그렇다면 205여 년을 사이에 둔 차이를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맞을지 여전히 의문이다.

 

이런 의문을 갖는 까닭은 열여덟 살 이덕무가 지었다는 글을 읽으면서 드는 당혹스러움으로 시작된다이덕무의 무인편戊寅篇은 실린 짧은 문장들에 담긴 자기성찰의 내용은 현대 나이로 열여덟 살과 비교가 가능한 일일까열여덟 살이 아니라 중년의 나이에 들어선 나 스스로를 돌아봐도 쉽지 않은 내용들이다.

 

이덕무(李德懋, 1741~1793)는 18세기 조선의 문예 부흥을 주도한 문장가이자 북학파 실학자이다홍대용,박지원박제가유득공 등과 교류하였으며 사가시인(四家詩人)의 한 사람으로 청나라에도 이름을 알렸다.정조에 의해 규장각 검서관으로 발탁되어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활동하였다사후에 어명으로 유고집 아정유고(雅亭遺稿)’가 규장각에서 간행되었으며여러 저작을 묶은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가 있다.

 

이 책 열여덟 살 이덕무는 이덕무가 "열여덟 살에서스물세 살 나던 젊은 5년간의 기록들이다이를 정민 교수가 옮겨 번역하고 자신의 해설을 엮어 발간한 책이다여기에 수록된 글은 무인편戊寅篇’, ‘세정석담歲精惜譚’, ‘적언찬適言讚’, ‘매훈妹訓’ 으로 젊은 날 이덕무가 세상과 스스로를 바라본 태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이야기 되는 글들이다.

 

여기서 관심이 가는 글은 공부하며 스스로 경계로 삼아야 할 내용을 짤막한 글로 써서 모은 무인편과 쾌적한 인생을 살기 위한 여덟 단계 적언찬이다특히무인편의 첫 번째 글인 거울과 먹줄은 길게 잡더라도 반평생을 훌쩍 넘긴 사람이 읽어도 자성하게 만드는 내용에 머리가 서늘해진다.

 

여기에 적언찬병서(適言讚幷序)에 담긴 식진(植眞), 관명(觀命), 병효(病?), 둔훼(遯毁), 이령(怡靈), 누진(?陣), 간유(簡遊), 희환(??등 여덟 가지 단서는 진실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적언찬병서(適言讚幷序)는 이덕무가 벗인 삼소자 윤가기의 책 적언(適言)‘의 여덟 장절에 자신이 시를 지어 선물했던 내용이다.

 

나이를 무색하게 만드는 간담이 서늘해지는 내용들을 접하며 이덕무의 삶을 한층 더 가깝게 볼 수 있는 기회다무엇으로 남은 삶을 꾸려가야 할지 성찰의 시간을 제공해주는 이덕무의 젊은 날의 초상이 서늘하게 다가온다이덕무의 무인편 첫 번째 글을 다시 읽는다.

 

거울을 닦듯 마음을 닦고먹줄을 치듯 몸가짐을 곧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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