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치지도 않나 보다. 밤이 깊어갈수록 무게를 더해가는 비다. 처마를 두드리는 빗소리는 귓가를 또렷하게 맴돌고 갓내린 커피향에 책장을 넘기는 손은 더디기만 하다.

연암의 '취답운종교기' 문장 속 벗들은 3경이 지났지만 밤 깊은 줄도 모르고 운종가를 지나 광통교에서 노닐다가 수표교 위에서 멈추고 밝아오는 새벽을 맞는다. 

깊은 밤 잠들지 못하고 방황하는 모습이야 옛사람과 비슷하다지만 어찌 그 속내까지 닮을수 있으랴. 밤은 깊은데 잠은 달아나 버린 까닭이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 때문만은 아니다. 문장 속 옛사람의 벗을 대하는 애틋한 마음이 마냥 부러운 때문이다.

뜰의 디딤돌 위에 머무는 젖은 불빛을 바라보며 애꿎은 가을비만 탓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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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十月의 첫날이다.
十月로 쓰고도 시월時越로 이해하고자 한다. 여름과 겨울, 뜨겁고 차가운 사이의 시간이지만 오히려 그로인해 더 민감해지는 마음 깃에 그 시간을 초월해버리고 싶은 간절함이 있기 때문이다.

더없이 맑고 한없이 깊으면서도 무엇보다 가벼운 시월의 시간과 마주한다. 

시월時越에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 나와 다른 나와 같은 관계, 사이와 틈에 주목한다. 그 안에서 무엇을 만나 어떤 향기로 남을지는 지금 이 마음으로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十月로 쓰고도 시월時越로 이해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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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국'
파랗다. 색감과 질감이 남다르다. 파란색의 과하지 않음이 묵직한 질감에서 오는지도 모른다. 두툼하고 풍서한 꽃잎과 잎은 포근함 마져 전한다.


어제만 해도 꽃봉우리 맺히기만 했더니 오늘아침 배시시 웃는다. 고금도 어느 바닷가에서 내 뜰에 온 녀석이다. 떠나온 곳 바다를 향한 간절함이 깊고 짙어서일까? 아니면 바닷물이 그리워 바다보다 더 파랗게 물이들었나 보다.


'해국'은 우리나라 중부 이남의 해변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울릉도와 독도가 원산지로 바닷가의 햇볕이 잘 드는 암벽이나 경사진 곳에서 자라는 한국 자생식물이다.


'해변국'이라고도 한다. 잎은 아침나절에 꼿꼿하고 한낮에 생기를 잃다가 해가 지면 활기를 되찾는다. 깊어가는 가을 차가워져가는 바람따라 바닷가를 찾아가는 것은 오로지 너를 보기 위함이다.


척박한 땅에서 모진 바닷바람을 견디며 꽃을 피울 날을 기다린 바로 너의 마음이 오롯이 담긴 듯 '기다림'이란 꽃말을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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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해마다 피는 꽃이라도
같은 모습은 아니다
그 꽃을 바라보는 나는 같지 않다

* 시인 이정하의 시집 '다시 사랑이 온다'에 실린 '지금'이라는 시의 일부다. 

달콤한 향기를 가득 담은 금목서가 어제는 피는가 싶더니 오늘은 무게를 더하는 가을비에 속절없이 떨어지고 만다. 시인의 말처럼 매해 반복적으로 눈맞춤하는 같은 이름의 꽃도 나도 같지 않다. 피는 꽃도 새로운 생명이며 꽃을 바라보는 나도 무엇하나 같은게 없다. 비로소 민낯의 자신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늦은 봄 노각나무에서 문턱을 넘어선 가을 금목서까지 올해는 유독 떨어진 꽃에 눈길이 간다. 떨어지고서야 비로소 온전히 다시 꽃으로 피어나 제 사명을 다하는 꽃에서 다시없을 소중한 순간을 주목하게 된다.

오늘, 지금, 이 순간이 담고 있는 소중한 가치를 온전히 품을 수 있다면 모든 생명은 매 순간은 꽃이 아닌 때가 없다. 떨어진 꽃은 자신을 떨군 이 가을비 보다 더 무거운 향기로 계절의 깊이를 더하고 스스로 온 곳으로 가는 중이다.

꽃으로 피었다 지며 향기로 남을 우리 모두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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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분취'
발톱을 세워 무엇을 노리고 있을까. 색과 모양에서 특이함이 눈을 사로잡는다. 은색 분을 칠한 듯 잎 뒷면이 하얗다. 키를 훌쩍 키워 풀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비교적 높은 산의 숲길에서 만나 이리보고 저리보다 결국 잎을 뒤집어보기까지 한다. 한동안 곁에 머무르게 된다.


'은분취'는 볕이 잘 드는 건조한 풀밭에서 흔히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잎은 뾰족하며 가장자리에 이 모양의 톱니가 있다. 겉면은 붉은빛이 도는 녹색이고 뒷면에는 흰 털이 빽빽이 난다.


실수리취, 개취, 산은분취라고도 하는 은분취는 꽃과 줄기 잎파리에 은색이 들어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분취, 은분취, 가야산은분취, 백운취, 그늘취, 솜분취, 버들분취, 구와취 등 종류도 많은 분취를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지 아직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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