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무꽃'자주색으로 빛나는 꽃이 옹기종기 여럿이 모여 맵시를 뽑낸다. 어느 하나 뒤질 것 없다는듯 아우성치지만 밉상이 아니다. 활짝 벌린 잎에 무엇이라도 찾아와 머물다 갈 수 있게 틈을 주었다.
깊은 가을 양지바른 곳에 봄처럼 화사하게 피었다. 맑고 밝아서 더 곱다. 새색시 고운 얼굴에 연지를 찍은듯 짙은 점이 있어 더 정겹게 보인다. 봄꽃을 가을에 만나는 반가움과 낯설음이 함께 한다.
골무꽃은 숲 가장자리 풀밭, 길가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전체에 길고 퍼진 털이 많으며, 원줄기는 둔한 사각형이다. 잎은 마주나고 넓은 심장 모양으로 가장자리에 부드러운 톱니가 있다.
꽃은 5~6월에 보라색 꽃이 줄기 상단부에서 꽃대가 나와서 꽃이 아래에서 위쪽으로 올라가며 핀다.
골무꽃의 종류는 그늘골무꽃, 흰골무꽃, 연지골무꽃, 좀골무꽃, 광릉골무꽃, 참골무꽃 등 종류가 많다. 대부분 잎과 꽃을 보고 구분한다지만 쉽지않다.
골무꽃이라는 이름은 옛날 여인들이 바느질을 할 때 손가락에 끼고 바늘을 꾹꾹 누르던 것이 골무다. 꽃이 진 다음 열매를 감싸고 있는 꽃받침통의 모양이 골무를 닮아서 붙여진 것이다.
소박하고 은은한 멋으로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하는 골무꽃은 '의협심'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꽃으로 피어난 시의 향기를 담는다
"짧은 시의 미학 김일로 시집 '송산하' 읽기"라는 테마의 에세이다. 시인 '김일로'라면 처음 듣는 시인의 이름으로 낯설기만 하다. 시인 송일로(1911~1984)는 광주 전남 아동문학 1세대로 평가되는 시인으로 전라남도 문화상, 성옥 문화대상을 수상했으며 목포와 서울에서 수차례 시화전을 열었다고 한다. 예총 목포지부장, 한국아동문학가협회 이사를 역임했고, 동시집 ‘꽃씨’와 더불어 한글 시와 한문시를 결합한 독특한 형식의 시집 ‘송산하頌山河’가 있다.
전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김병기 교수의 ‘꽃씨 하나 얻으려고 일 년 그 꽃 보려고 다시 일 년’이 책은 바로 김일로 시인의 시집 ‘송산하頌山河’를 그대로 옮겨와 그 시에 있는 한문시를 해석하고 아주 조심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곁들여 담아 놓은 시 해설서 겸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김병기 교수의 마음 자세가 드러나는 조심스럽다는 표현은 김일로 시인의 시가 갖는 숭고한 정신을 훼손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김병기 교수의 마음의 표현으로 보인다. 그만큼 김일로 시인의 시를 좋아하고 아낀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그 마음의 표현이 ‘번역하고 보충하여 서술했다’는 의미로 ‘역보譯輔’라는 이름을 조심스럽게 붙였다.
꽃씨 하나
얻으려고 일 년
그
꽃
보려고
다시 일 년
一花難見日常事(일화난견일상사)
꽃 한 송이 보기도
쉽지 않은 게
우리네 삶이련만
모두 이런 모습으로 시집 ‘송산하頌山河’의 시 132편이 고스란히 옮겨 오고 한문시에 직역에 가까운 해석을 달았다. 김일로 시인의 짧은 시가 주는 매력이 가히 세상을 뒤집을 만큼 혁명적이다. 어떻게 이런 표현이 가능한 것일까. 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여기에 칠언절구의 한문구절은 또 어떤가. 어렵지 않은 한자를 통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 둘의 어울림이 환상적이다. 여기에 김병기 교수의 한문시 해석과 더불어 시에 대한 해설 또한 김일로 시의 감성과 뜻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다. 시인과 시를 주제로 에세이를 남긴 해설가의 만남이 궁합도 이렇에 잘 어울리는 궁합이 없다.
이제부터 이 책을 머리맡에 고이 모셔두고 눈 뜨는 새벽 자리에서 일어나 정좌하고서 한 편의 시와 마주할 것이다. 그 정갈하고 고운 감성을 이어받아 하루를 열어간다면 그 하루가 시로 꽃 피어나지 않겠는가.
모처럼 햇살이 스며든다. 고추, 가지, 깻잎 등 남은 텃밭 정리하고, 감을 따고 나면 뒷산 여전히 고울 물매화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가을이 여물어가는 숲 속에 무엇이 더 있을지 늦은 걸음으로 올라가 볼 것이다.툇마루를 건너 온 새들의 재잘거림, 마루를 지나 스며드는 햇살로 눈부신 하루를 연다.
오랫만에 햇살이었다. 한 낮 그 햇볕의 따스함을 그대로 담아 거리에 서는 사람들의 가슴에 온기로 가득하길 소망한다.
백성이 역사의 주인으로 당당했던 그 거리에 다시 그때의 그 백성이 선다.
'나 홀로 가는 길'贈李聖徵令公赴京序누런 것은 스스로 누렇다 하고, 푸른 것은 스스로 푸르다 하는데, 그 누렇고 푸른 것이 과연 그 본성이겠는가? 갑에게 물으면 갑이 옳고 을은 그르다 하고, 을에게 물으면 을이 옳고 갑은 그르다고 한다. 그 둘 다 옳은 것인가? 아니면 둘 다 그른 것인가? 갑과 을이 둘 다 옳을 수는 없는 것인가?나는 혼자다. 지금의 선비를 보건데 나처럼 혼자인 자가 있는가. 나 혼자서 세상길을 가나니, 벗 사귀는 도리를 어찌 어느 한 편에 빌붙으랴. 한 편에 붙지 않기에 나머지 넷, 다섯이 모두 나의 벗이 된다. 그런즉 나의 도리가 또한 넓지 않은가. 그 차가움은 얼음을 얼릴 정도지만 내가 떨지 않고, 그 뜨거움은 흙을 태울 정도이나 내가 애태우지 않는다. 가한 것도 불가한 것도 없이 오직 내 마음을 따라 행동할 뿐이다. 마음이 돌아가는 바는 오직 나 한 개인에게 있을 뿐이니, 나의 거취가 느긋하게 여유가 있지 않겠는가.*유몽인柳夢寅(1559∼1623). 조선 중기의 문신·설화 문학가다. 이글은 북인에 속하는 유몽인인 서인인 이정구와의 우정을 회고하고 진정한 우정의 소중함을 담고 있는 '贈李聖徵令公赴京序'의 일부다.섭정攝政의 시대, 잃어버린 것이 어디 정치에 그치랴. 세상이 하수상하니 꽃도 제 철을 모르고 핀다. 봄 꽃이 가을에 피어 그 붉음을 더하니 보는 이의 마음에 무서리가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