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 들어 눈여겨보는 것이 나무다. 그 숲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오래된 나무만이 갖고 있는 특유의 기운을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 보다 큰 이유다.


전라북도 순창의 회문산 서어나무다. 회백색의 수피가 아름다운 서어나무는 그 품의 두께에서 수령을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제법 거리를 두고 나무와 마주섰다. 한참을 상하좌우에 주변까지 눈으로 살펴 살아온 시간을 어렴풋이나마 짐작이라도 해볼요량이지만 가당치도 않은 듯하여 조심스럽게 나무 곁으로 다가선다. 다소 차가운 느낌을 전해주는 굴곡이 심한 수피를 손으로 만져본다. 굴곡을 따라 쥐어보기도 하고 손바닥을 펴 쓰다듬기도하면서 나무가 전하는 온도를 공유한다. 마음에 품듯 두손을 활짝 펴고 안아보며 겹으로 쌓인 시간의 기운을 느껴보고자 하지만 역부족이다. 한동안 멈추었던 길을 다시 오르며 뒤돌아본 나무는 그자리 그대로다. 하지만, 팔을 벌려 서로에게로 닿으며 알듯모를듯 전해진 온도는 내게 남았다.


나무가 시간을 겹으로 쌓아온 그것처럼 이제 나는 내 시간 속으로 나무를 그렇게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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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여뀌'
어쩌 이리도 붉을 수가 있을까. 드러내놓고 붉지도 못하는 것이 은근함으로 깊이 파고든다. 화끈하게 자신을 싸질러버리는 꽃보다 이렇게 있는듯없는듯 다가와 오랫동안 잊히지 않은 존재의 소중함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긴 줄기를 쑤욱 내밀었다. 그 줄기에 여유로우면서도 드물지 않게 아주 작은 꽃을 달고 붉게 핀다. 반그늘이고 습기가 많은 풀숲에서 흔하게 자라서 어디서나 볼 수 있다.


꽃이 이삭처럼 달린 여뀌라고 해서 이삭여뀌다. 잡초로 여기지만 눈여겨봐주지 않지만 예로부터 식용, 약용 등으로 그 쓰임세는 실로 다양했다고 한다. 붉고 이쁘게 피는 꽃만 보기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어 보인다.


여뀌의 종류로는 여뀌, 개여뀌, 꽃여뀌, 산여뀌, 물여뀌, 바보여뀌, 장대여뀌, 가시여뀌, 털여뀌 등 30여 종류가 있다고 한다. 여전히 구분하기 쉽지 않지만 유심히 살피면 각각의 특성으로 인해 제법 재미있는 놀이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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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산 기슭만 보여도 가슴이 뛰기 시작하고 머뭇머뭇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 꽃이 피어날 몸짓을 감지한 까닭이다. 멀리서 꽃소식 들려오기도 전에 몸은 이미 꽃몸살을 앓기 시작한 것이다.


한겨울 눈이 내리면서부터 시작된 매화꽃 향기를 떠올리며 남쪽으로 난 창을 열고 물끄러미 바라보듯, 한여름 끝자락 이슬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땅으로만 내려앉을 때가되면 꽃몽우리 맺혀 부풀어 오를 것을 이미 알고 이제나 필까 저제나 필까 꽃소식 기다리다 고개가 다 틀어질지경에 이른다. 다 꽃을 마음에 둔 이들이 꽃과 눈맞춤하기 위한 통과의례다.


이때 쯤이면 아무도 찾지않을 산기슭에 홀로 꽃 수를 놓고서도 스스로를 비춰볼 물그림자를 찾지 못해 하염없어 해지는 서쪽 하늘만 바라볼 고귀한 꽃이 눈 앞에 어른거리만 한다.


"아침 꽃은 어리석어 보이고, 한낮의 꽃은 고뇌하는 듯하고, 저녁 꽃은 화창하게 보인다. 비에 젖은 꽃은 파리해 보이고, 바람을 맞이한 꽃은 고개를 숙인 듯하고, 안개에 젖은 꽃은 꿈꾸는 듯하고, 이내 낀 꽃은 원망하는 듯하고, 이슬을 머금은 꽃은 뻐기는 듯하다. 달빛을 받은 꽃은 요염하고, 돌 위의 꽃은 고고하고, 물가의 꽃은 한가롭고, 길가의 꽃은 어여쁘고, 담장 밖으로 나온 꽃은 손쉽게 접근할 수 있고, 수풀 속에 숨은 꽃은 가까이 하기가 어렵다."


*조선시대를 살았던 이옥李鈺의 글이다. 꽃을 가슴에 품고 꽃몸살을 앓아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이다. 대상이 무엇이든 그 대상에게 몰입해본 이의 마음자리에 꽃이 피었다.


물매화 꽃몽우리가 맺혔다. 북쪽에서 들려온 꽃 피었다는 소식에 자꾸 먼 산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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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천에 뜬 새벽달은 안개 속으로 숨어들어 눈맞춤을 외면하고, 물 위에는 물이 되고싶은 안개만 가득하다. 겨우 물과 물 아닌 것의 경계만을 보여주는 저수지의 표면은 꿈틀대며 허공에 손을 내밀고 있다. 내밀면 닿을듯 지척인 산그림자가 아득하다.

보고자 찾아온 물안개는 오리무중이다. 피어오르기 위해선 아침 햇살이 필요한데 아직은 안개에 갇힌 해는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 이제나저제나 조바심 내는 마음을 두고가는 더딘 발걸음은 혹시나 하며 자꾸만 뒤돌아 본다.

까실까실한 햇볕을 기대해도 좋을 가을날의 하루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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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싸리'
애써 신경쓰지 않아도 문득 눈에 들어온 것들이 있다. 평소 관심 가지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경우겠지만 그런 순간이 오면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라면 걸음을 멈추거나 차를 멈추고 기꺼이 시간을 할애한다.


그런 순간을 지나치고 다시 기회가 올 것이란 기대가 허물어지기를 반복했던 지난 경험으로부터 얻는 교훈이기도 하다.


햐얀 나비가 와서 앉았을까. 실같이 가는 꽃대가 길게 나와 끝부분에 몇개의 꽃이 달렸다. 흰색 꽃잎 가운데에 붉은색의 선이 있다. 앙증맞도록 작은 꽃이 풀숲에서 바람따라 나풀나풀 춤을 추는듯 싶다.


한국이 원산인 좀싸리는 싸리 종류인데 작다라는 의미의 좀이 붙었다. 좀은 대부분 작고 앙증맞은 크기의 식물에 이름이 붙여 그 의미를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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