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사귀 하나가 가지를 놓는다 한 세월 그냥 버티다보면 덩달아 뿌리 내려 나무가 될 줄 알았다"

보름을 지난 달이 앞산을 서성대며 넘어왔다. 달빛이 환한 봄 밤이었다. 봄맞이로 애절한 목소리의 노래를 듣는다. 흰머리가 잘 어울리는 가수다. 나이들어 더 깊어지는 마음 속 응어리를 툭 내뱉듯 터지는 노랫말이 마음에 걸려 숨쉬기가 버겁다.

역驛

잎사귀 하나가
가지를 놓는다
한 세월 그냥 버티다보면
덩달아 뿌리 내려
나무가 될 줄 알았다
기적이 운다
꿈속까지 따라와 서성댄다
세상은 다시 모두 역일 뿐이다
희미한 불빛 아래
비껴가는 차창을 바라보다가
가파른 속도에 지친 눈길
겨우 기댄다
잎사귀 하나가
기어이 또
가지를 놓는다

*노랫말을 찾아보니 김승기 시인의 역驛이라는 시에 장사익이 곡을 붙이고 부른 노래다.

무엇이 그토록 서럽게 남아 가슴에 얹히는 것일까. 딱히 이유를 알 수 없으니 그냥 나이들어가는 탓이려니 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만 가는 시간 앞에 잠시 머물다 가는 기차나 한철 푸르렀다 지고마는 낙엽이나 다를바없음을 익히 알지만 때론 그 순간에 멈춰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침잠할 때도 있다. 

보앓이를 하는 것이다. 봄앓이는 한해를 살아갈 힘을 마련하는 약과도 같기에 거르고 지나가서도 안되고 시늉만 내서도 안되는 통과의례다.

"잎사귀 하나가 가지를 놓는다 한 세월 그냥 버티다보면 덩달아 뿌리 내려 나무가 될 줄 알았다"

하여, 난 지금 봄앓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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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봄인 게다'
모든 생명의 그 본성은 붉다. 제 아무리 꽃들이 화려한 몸짓으로 봄을 불러온다지만 그것은 다 서막에 불과하다. 봄은 언땅을 뚫고 올리오는 새순의 붉음을 보아야 비로소 시작된다. 봄을 새로운 희망으로 보는 출발이 여기에 있다.

봄앓이가 서럽도록 아름다운 것은 붉은 생명의 속내가 꿈틀대기 때문이다. 붉은 생명의 기운이 생동하는 작약의 새순으로 내 봄을 맞이하는 근본을 삼아도 좋으리라.

내 속이 붉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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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홍매화'
큰 일 마치고 집에 온다는 딸아이 소식에 불쑥 길을 나섰다. 하늘도 흐리고 비소식까지 있어 날씨는 꽃구경 길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 구비구비 산길을 넘는동안 눈에 들어온 구례의 산수유는 이미 노란빛을 잃어가고 있다.


산수유는 지나가는 길목에 눈요기꺼리고 목적은 화엄사 홍매화에 있다. 화엄사 홍매화는 '장육전丈六殿이 있던 자리에 조선 숙종 때 각황전覺皇殿을 중건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계파桂波선사께서 심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장육화丈六花라고도 하며, 다른 홍매화보다 꽃이 검붉어 흑매화黑梅花로 불리기도 한다.'


선암사 선암매, 백양사 고불매, 오죽헌의 율곡매와 더불어 화엄사 화엄매 등이 탐매객들의 관심의 대상이 된다. 그외 여러 고매古梅들이 전국에 산재해 있다.


화엄사 화엄매는 아직 일러 만개한 화엄매를 보려면 조급한 마음을 잘 다독여야 될듯 싶다. 300번이 넘는 동안 봄날을 붉게 물들였던 매화가 피는 속도보다 그 붉은매화를 보고싶은 사람들의 마음이 급했나 보다. 고매에 핀 꽃보다 나무 곁을 서성이는 사람 숫자가 더 많다.


매화향기 음매할 틈도, 흑매라 부를만큼 검붉은 매화빛을 볼 짬도, 꽃그늘에 스며들어 하늘 한번 올려다볼 여유도 없이 크고 작은 카메라의 액정만 쳐다보기 바쁘다. 향기도 빛깔도 아니라면 여기에 무엇하러 왔을까?


모처럼 동행한 딸아이 마음에 붉은 매화향기 스며들었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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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컴맹 2017-03-30 14: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3년전 갔더랬습니다. 일러 보진 못하고 연륜에 그리움 더한 큰 망울만 보고 그보다 그걸 기다리는 초로의 카메라를 봤었죠. 그런 명사로 남은 홍매
봄마다 찾아오네요

무진無盡 2017-03-30 14:23   좋아요 0 | URL
많은 이들이 화엄매의 붉은빛을 담아 가더라구요. 모두의 마음에 그렇게 불이 켜지길 바래봅니다.
 

봄은 색으로 온다.
아직도 서리 내리는 아침의 알싸함이 있지만 한낮의 볕은 온기를 가득 담았다. 갈피를 못잡는 바람 끝에 차가움이 있고 하늘은 높아만 간다. 피부에 닿는 기온의 변화도 분명하게 달라지는 것으로 봄이 왔음도 알지만 무엇보다 갯버들 연녹색 꽃과 수양버들 물오른 가지끝에 초록으로 봄은 온다.

파아란 하늘에 물오른 나무가지 끝 초록이 좋은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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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은부채'
꽃소식따라 몸이 움직이는 사람들에게도 머리 속에서만 존재하는 식물이 있다. 알지 못하는 것이라면 이야기 꺼리도 못되지만 먼 곳이거나 가까이 있어도 제 때를 놓치면 볼 수 없어 언젠가 볼 수 있는 날을 기다리게 된다.


눈을 녹이면서도 생명의 열정을 보여주는 앉은부채도 그렇게 보고 싶은 식물에 속했다. 지난 겨울에서야 멀지 않은 곳에 자생지가 있다는 것을 접하고 두 번째 발품을 팔아 눈맞춤 했다. 조금 늦은 때라 새 잎이 올라온 것까지 볼 수 있어 이제는 잎을 보고도 알아볼 수 있겠다.


'앉은부채'라는 이름은 가부좌를 틀고 앉은 부처님과 닮아서 '앉은부처'라고 부르던 것이 바뀐 것이라고 하고, 잎이 땅에 붙어 있고 부채처럼 넓게 펼쳐진 모양 때문에 앉은부채라는 이름이 생겼다고도 한다.


꽃은 3~5월에 피며 타원형의 꽃덮개佛焰苞에 싸여있다. 꽃을 자세히 살피면 꼭 도깨비방망이 끝 부분같이 보이기도 하고 스님 머리모양을 닮기도 했다.


앉은부채는 꽃을 피울 때 스스로 열을 내고 온도를 조절하는 신비한 식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눈을 녹이면서 꽃을 피울 수 있나 보다.


우엉취·삿부채풀·삿부채잎이라고도 하는 앉은부채의 꽃말은 '그냥 내버려 두세요'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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