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덕산(575m)에 올랐다. 사람을 밀어내지 않은 고만고만한 산들 사이에 사람들은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분주한 일상을 산다. 발 아래 펼쳐진 풍경이 시원하다. 높은 산이 부럽지 않은 풍경이다.

백아산에서 모후산, 만연산, 무등산을 지나 병풍산, 용구산, 추월산에 이르는 하늘이 옅은 구름 속에서 햇살을 품었다.

이제 숲은 여름이다. 우거진 풀은 길을 막고 하늘을 가린 나뭇잎은 겨우 햇살이 스미는 틈만 벌렸다. 숲에서 부는 바람에 찬기운이 서려 있는 것이 숲의 향기와 어우려져 심호흡하기에 적당하다. 

가슴 속 깊은 곳에 맑은 숲 향기를 담는다. 산에 오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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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름의 5월도 끝자락이다. 매서운 겨울의 눈보라가 봄의 화려한 꽃잔치를 준비했듯이 나풀거렸던 봄향기로 맺은 열매는 여름의 폭염이 영글게 할 것이다.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길목이다. 짐작되는 변화보다 예측할 수 없이 당면해야하는 하루하루가 버거울지도 모른다. 그때마다 그 길 위에 서거나, 길 위에 서 있었던 시간을 떠올리며 숲이 전해준 위안을 꺼내보며 스스로를 다독일 것이다.

나란히 걷자. 길 모퉁이 돌아가면 반겨 맞이할 무엇을 기대하기 보다는 그 길 위를 함께걷는 그대가 곁에 있음을 더 큰 위안으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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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풀'
여름으로 들어서며 초록으로 물든 들판에 유독 돋보이는 보랏빛 꽃이 피었다. 꽃 하나 따서 입에 넣고 빨면 달콤한 꿀이 군침을 돌게 한다. 얼마나 많은 꿀을 담고 있으멷 이름에 꿀자를 달았을까. 꽃 중에서 '꿀'자가 들어간 꽃은 꿀풀 뿐이라고 한다.


산기슭이나 들의 양지바른 곳에 입술처럼 생긴 꽃이 다닥다닥 붙어서 많이도 피었다. 붉은색을 띤 보라색으로 피는 꽃이 층을 이루고 있다. 하얀색으로 피는 꽃도 드물게 보인다고 한다.


한 여름 무더워지면 꽃은 떨어지며 시들게 된다고 하여 하고초라고도 부른다. 흔하지만 볼수록 매력적인 꽃이다. '너를 위한 사랑', '추억'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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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이휴영 處陰以休影
처정이식적 處靜以息迹
그늘에 들어가야 그림자가 쉬고
고요한 데 머물러야 발자국이 쉰다

*장자 잡편 어부 장에 나오는 강에서 물고기를 잡는 어부가 공자를 타이르는 내용이다. "자신을 따라다니는 그림자影와 발자국迹은 열심히 뛸수록 더 따라붙는다. 그늘에 들어가야 그림자가 쉬고, 고요한 데 머무러야만 발자국이 쉰다."

*휴일 집 근처 산에 올랐다. 사람들 북적이는 틈이 버거워 서둘러 다녀오려던 것이 때죽나무 꽃그늘 아래서 꽃향기에 취하다보니 등산 인파에 묻혔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꽃그늘, 향기에는 관심이 없고 시끄러운 말소리와 어지러운 발걸음에 치일뻔 했다. 인파를 피해 내려선 계곡에서 꽃무덤을 발견하고 어수선했던 마음에 쉼의 시간을 더한다.

가물어 물소리 끝긴 계곡 웅덩이에 꽃잎이 떨어졌다. 마침 나뭇잎을 뚫고 들어온 햇살이 그림자를 만들었다. 꽃은 쉬고자 하나 그림자가 발길을 서두른다. 

나는 그림자 따라가기 바쁜 꽃잎을 잡아둘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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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비싸리'
계절이 여름으로 옮겨가는 숲에는 특유의 빛이 있다. 초록이 짙어져 무게를 더하고 그 사이로 파고드는 햇빛이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색의 향연이 그것이다. 여름으로 건너가기 위해 분주한 숲에서 유독 땅 가까이에서 빛나는 식물들이 있어 허리를 숙여 눈맞춤 한다.


연자주색의 꽃이 햇살을 머금었다. 붉은 것이 더 붉어져 자태를 뽑낸다. 가녀리면서도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식물이다. 햇볕이 잘드는 어느 곳에서나 잘 자라는 식물이다.


싸리 닮은 것이 땅 가까이 자란다고 해서 땅비싸리일까. 다양한 싸리 종류 중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운다. 이렇게 부지런한 이유는 키큰 식물들이 자라 햇살을 막아버리기 전에 씨앗을 맺기 위함이라고 하니 안쓰럽기도 하다.


볕이 좋은 날 하루를 마무리하는 햇살에 드러낸 땅비싸리의 붉은 속내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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