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덜미를 스치는 바람결에 한기가 엄습한다. 애써 움츠러드는 어께를 펴며 먼산을 넘어오는 '는개'를 시린 가슴으로 바라본다. 비가 전하는 마음이 서늘타.

비가 오신다

서울이나 광주에서는 
비가 온다는 말의 뜻을
알 수가 없다
비가 온다는 말은
장흥이나 강진 그도 아니면
구강포를 가야 이해가 된다
내리는 비야 내리는 비이지만 비가
걸어서 오거나 달려오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어떨 때 비는 싸우러 오는 병사처럼
씩씩거리며 다가오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그 병사의 아내가
지아비를 전쟁터에 보내고 돌아서서
골목길로 걸어오는
그 터벅거림으로 온다
그리고 또 어떨 때는 
새색시 기다리는 신랑처럼
풀 나무 잎술이 보타 있을 때
산모롱이에 얼비치는 진달래 치마로
멀미나는 꽃내를
몰고 오시기도 하는 것이다.

*이대흠의 시 '비가 오신다'의 전문이다. 걸어오는 비와 맞짱이라도 뜰 것처럼 호기를 부르던 때가 있었다.

비를 품고 비를 맞고 비를 바라보다 비를 기다리며 비와 눈맞춤해본 이들은 다 알 수 있는 감성이다. 일없이 오며가며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정을 다 쏟아내지도 못하면서 는개와 몸의 언어로 대화를 나눈다. 

"내리는 비야 내리는 비이지만 비가
걸어서 오거나 달려오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는개의 일없다 다독거리는 마음이 흰머리에 은방울꽃으로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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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꽃나무'
꽃을 보기 위해 하루를 투자하고 7시간을 걸어 해발 1100m를 올랐다. 동에서 서로, 북에서 남으로 하루에 수백 km를 달리는 꽃쟁이들의 수고와 정성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꽃을 향한 마음은 비슷할 것이라 짐작만 한다.


곱다. 하얀 꽃잎도 그 꽃잎에 쌓인 붉디붉은 꽃술도 적절한 어울림으로 한눈에 마음을 사로잡는다. 흰 꽃이 잎이 난 다음에 밑을 향해 달려 피는데 향기가 좋다. 꽃그늘아래 있다보면 꽃향기에 취해 나무 곁을 벗어나기 힘들 정도다. 함박꽃나무, 입안에 머무는 이름이 꽃만큼이나 좋은 여운을 남긴다.


크고 화사한 꽃의 모습이 함박웃음 또는 함지박 같다 하여 함박꽃으로 불리는 꽃이다. 함백이꽃, 개목련, 산목련, 옥란, 천녀목란, 대백화, 천녀화라고도 한다.


깨끗하고 순결한 모습은 앳띤 소녀라기 보다는 이제 갖 중년으로 접어드는 여인이 곱게 단장하고 옅은 미소를 띈 모습으로 연상된다. 보는 이가 나이든 탓인지도 모르겠다. '수줍음'이라는 꽃말이 이해되고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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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린 사람들의 반가운 마음과는 달리 오는듯 마는듯 차분하게도 내린다. 마른 땅에 스며들기엔 퍼붓는 소나기보다는 이렇게 차분하게 내리는 비가 좋다. 

툭툭 떨어지는 그대
자유를 갈망했는지
흩어지며 온 대지를
감질나게 적시고 마는

*이정미의 시 '능선따라 달아난 단비'의 일부다. 기다림의 간절함에 미치지 못하는 비라도 반가움이 크다.

깊어가는 밤 요란한 개구리 소리에도 묻히고 마는 빗소리지만 이렇게라도 내려주니 고맙고 또 고맙다. 그래도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토방에 서성이며 자지러지는 개구리 소리 사이로 들리는 빗소리를 찾는다.

불빛에 반짝이는 모습에 눈으로 더 반기는 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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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뭐니?
토방 창문을 쪼늗 이상한 소리에 살며시 내다보니 알 수 없는 녀석이 뜰에 들어와 방황하고 있다. 날아온 것은 아닌데 어떻게 높은 담을 넘었을까?

참 묘한 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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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잘 놀았다. 점심시간 특별히 할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빼먹기를 일삼았으니 뽀쪽한 수가 있을 수 없다. 맨날 제자리에 맴도는 소리는 나아질리가 없고 헛빵만 친다. 다 게으름의 탓이다.

다시 벚나무 그늘에 들었다. 서簧를 물에 담궈주고 사계절 매일 같은 시간에 벗이 되어 주었던 벚나무를 본다. 꽃 피는가 싶더니 이젠 까만 열매를 맺었다. 그 틈에 자리를 비웠다는 말이 된다. 

간혹 찾아왔던 그 새들도 잘 있을까. 서簧를 관대에 끼운다.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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