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벽에 걸린 부채에 쓰여진 글 귀를 보다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속내를 들킨 것 같기도 하고 속으로 웃는 자신이 웃기기도 해서 글 귀를 찾아 보았다.

시인 본색(本色)

누가 듣기 좋은 말을 한답시고 저런 학 같은 시인하고 살면 사는 게 다 시가 아니겠냐고 이 말 듣고 속이 불편해진 마누라가 그 자리에서 내색은 못하고 집에 돌아와 혼자 구시렁거리는데 학 좋아하네 지가 살아봤냐고 학은 무슨 학 닭이다 닭 중에도 오골계(烏骨鷄)!

*정희성의 시 '시인 본색' 전문이다. 굳이 시인이 아니어도 또 공감하는 속내가 다를지라도 슬그머니 미소짓는 사람들 참으로 많겠구나 싶다.

"학 좋아하네 지가 살아봤냐고" 
아니면
"한 달만 같이 살아봐라 그런 말이 나오나"
그것도 아니면
"그러는 댁이 함께 살아보던지"

비슷비슷한 말을 들어본 경험이 있는 나로선 내놓고 웃지도 못하며 속으로만 웃을듯말듯 덜떨어진 표정을 짓게 된다.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선택한 이도 절반의 책임은 있는 것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벽에 걸린 부채를 바라보며 웃음이 나는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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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꽃'
여름 강한 햇볕을 의지하지만 스스로는 해를 닮은 강렬한 모습에서 한발 벗어나 있다. 해바라기나 나팔꽃의 도발적인 색보다는 깊은 속내를 감출줄 아는 순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겼다.


한여름을 상징하는 꽃으로 나팔꽃이 인도가 원산인 외래종이라면 메꽃은 토종이다. 햇빛이 나면 꽃잎을 펴고, 해가 지면 오므리는 모습으로 해 바라기를 한다. 여름 내내 꽃을 볼 수 있어 아주 친근하다.


메꽃은 특이하게 같은 그루의 꽃끼리는 수정하지 않고 다른 그루의 꽃과 수정해야만 열매를 맺는다고 한다. 메, 좁은잎메꽃, 가는잎메꽃, 가는메꽃이라고도 한다.


순박한 누이의 모습은 닮은 메꽃은 '충성', '속박', '수줍음'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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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족濯足'
더위를 피하는 이 만한 방법이 또 있을까. 궁여지책으로 집에서 대야에 물을 떠놓고 발을 담그는 것은 세족洗足을 한다하더라도 그늘진 계곡의 물에 발을 담그고 더위를 쫓는 탁족의 그 맛과 멋에는 결코 미치지 못한다.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창랑의 물이 맑거든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거든 발을 씻는다"

굴원(屈原)의 이 고사에서 유래한 이 말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신을 벗고 흐르는 계곡물에 발을 씻어본 사람들은 다 공감할 수 있는 감흥일 것이다.

옅은 안개로 덮힌 하늘아래 바람도 잠들어 무더위에 갇혀버린 초복에 탁족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지사가 아닐런지. 상상만으로도 충분한 탁족의 세계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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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쏟았다. 간헐적으로 쏟아내는 하늘엔 그 흔적도 남지 않는다. 흩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다시 모이고 쏟아내는가 싶더니 더 짙어진다.

감은 자신을 있게 한 꽃을 떨구어야 성숙해지는 것을 안다. 꽃이 필무렵 가뭄으로 떨어지지 못하고 까맣게 말라버린 감꽃이 그 마지막을 버티고 있다. 품을 키워 속을 채워가는 감이 비에 흠뻑 젖었다.

마알개진 하늘에 이내 햇살이 번진다. 그 사이를 다시 구름이 몰려온다. 무희舞姬의 춤사위가 이렇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까. 곁눈으로 훔쳐타는 리듬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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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댕강나무'
길게 고개를 내밀었다. 감추거나 내어주고 싶은 것이 있어서 그럴까. 순백의 색으로도 모자란 마음을 고개를 내밀어 길게 뽑았나 보다. 그 앙증맞고 이쁜 모습을 보고자 내 뜰에 들이고 두번째 꽃을 피웠다. 이른 여름부터 늦은 가을까지 피고지는 네 모습을 볼 수 있어 내 뜰의 벗으로 삼았다.


청춘의 시기를 고스란히 보낸 도시의 인도에 많이 심어져 있다. 매주 한번씩 방문하는 때에 일부러 먼 길 돌아가 꽃과의 눈맞춤을 한다.


흰색의 화사한 꽃이 핀다. 꽃과 함께 붉은 빛이 도는 갈색의 꽃받침도 꽃만큼 아름답다. 6~10월까지 오랫동안 피고 지고를 반복한다. 그때문에 도로 주변이나 울타리 등의 경계에 많이 심는다.


우리나라 고유종인 댕강나무는 가지를 꺾으면 '댕강' 하는 소리가 나서 댕강나무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이 댕강나무를 중국에서 원예종으로 개발한 것이 '꽃댕강나무'라고 한다.


'아벨리아'라고도 부르는 꽃댕강나무는 꽃과 향기가 전하는 느낌 그대로 '편안함'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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