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산 기슭만 보아도 가슴이 뛰기 시작하고 머뭇머뭇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 꽃이 피어날 몸짓을 감지한 까닭이다. 꽃벗들의 꽃소식 들려오기도 전에 몸은 이미 꽃몸살을 앓기 시작한 것이다.

한겨울 눈이 내리면서부터 시작된 매화꽃 향기를 떠올리며 남쪽으로 난 창을 열고 물끄러미 바라보듯, 여름 끝자락에 이슬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땅으로만 내려앉을 때가 되면 꽃몽우리 맺혀 부풀어 오를 것을 이미 알고 있기에, 이제나 필까 저제나 필까 꽃소식 기다리다 고개가 다 틀어질지경에 이른다. 다 꽃을 마음에 둔 이들이 꽃과 눈맞춤하기 위해 이 꽃몸살은 통과의례다.

이때 쯤이면 아무도 찾지않을 산기슭에 홀로 또는 무리지어 꽃 수를 놓고서도 스스로를 비춰볼 물그림자를 찾지 못해 하염없어 해지는 서쪽 하늘만 바라볼 고귀한 꽃이 눈 앞에 어른거리만 한다.

"나는 알겠노라. 푸른 것은 그것이 버드나무인 줄 알겠고, 노란 것은 그것이 산수유꽃·구라화인 줄 알겠고, 흰 것은 그것이 매화꽃·배꽃·오얏꽃·능금꽃·벚꽃·귀룽화·복사꽃 중 벽도화碧桃花인 줄 알겠다. 붉은 것은 그것이 진달래꽃·철쭉꽃·홍백합꽃·홍도화紅桃花인 줄 알겠고, 희고도 붉거나 붉고도 흰 것은 그것이 살구꽃·앵두꽃·복사꽃·사과꽃인 줄 알겠으며, 자줏빛은 그것이 오직 정향화丁香花인 줄 알겠다."

"아침 꽃은 어리석어 보이고, 한낮의 꽃은 고뇌하는 듯하고, 저녁 꽃은 화창하게 보인다. 비에 젖은 꽃은 파리해 보이고, 바람을 맞이한 꽃은 고개를 숙인 듯하고, 안개에 젖은 꽃은 꿈꾸는 듯하고, 이내 낀 꽃은 원망하는 듯하고, 이슬을 머금은 꽃은 뻐기는 듯하다. 달빛을 받은 꽃은 요염하고, 돌 위의 꽃은 고고하고, 물가의 꽃은 한가롭고, 길가의 꽃은 어여쁘고, 담장 밖으로 나온 꽃은 손쉽게 접근할 수 있고, 수풀 속에 숨은 꽃은 가까이 하기가 어렵다."

*조선시대를 살았던 이옥李鈺의 글 '화설花說'의 일부를 옮겨왔다. 꽃을 가슴에 품고 꽃몸살을 앓아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이다. 대상이 무엇이든 그 대상에게 몰입해본 이의 마음자리에 꽃이 피었다.

올해는 높은 산에서 유독 일찍 봐서린 꽃이라 이 꽃에 대한 기다림이 덜할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가까이 두고 살피는 꽃의 더딘 움직임이 간절함을 더하기만 한다.

이곳 저곳에서 들리는 물매화 피었다는 소식에 자꾸 먼 산만 바라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물들다 染'
생명있는 모든 것은 자신만의 고유의 색을 가진다. 그 색으로 자신을 드러내기도 하고 상대와 교감의 증거로 스며들어 물들고 또 물들이기도 한다.

물들이고 또는 물든다는 것은 자신의 고유성에 틈을 허용하고 상대방의 색이 나에게 스며드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말이다. 하여, 스며드는 색으로 자신을 탈바꿈하든가 서로의 색이 스며들어 전혀 새로운 색으로 질적변환을 맞이하기도 한다.

꽃이 열매맺어 영글어가는 과정이 바로 이와 같다. 붉고, 노랗고, 빨갛고, 파랗고?. 영글수록 짙어지는 색은 자신이 받아들인 햇볕과 바람, 물기에 의지한 결과다. 

벽을 헐고 담을 낮추는 수고로움을 견뎌 두 마음이 서로에게 물들어가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밝고 따스하며 붉고 뜨거운 기운으로 서로의 가슴을 채워가는 것, 그대와 나의 사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야고'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속내를 밝히면 이런 색일까? 다 붉지도 못하는 애달픔이 아닐까도 싶다. 무엇하나 혼자 저절로 이뤄지는 것 없음을 알기에 자연이 담고 있는 그 오묘함에 다시금 놀란다.


잔디의 뿌리의 도움으로 꽃피고 열매 맺는 타래난초처럼 억새의 뿌리의 도움으로 꽃을 피운다. 연분홍 속살을 오롯이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제 할일을 다 했다는 듯 빙그레 웃는다.


'야고'는 억새에 의해 반그늘이 진 곳의 풀숲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 기생식물이다. 꽃은 8∼9월에 연한 홍자색으로 원줄기 위에 한 개의 꽃이 옆을 향한다.


제주도 한라산 남쪽의 억새밭에서 나는데 서울 난지도에 최근 야고가 피었다. 이는 억새를 제주도에서 가지고 온 후 거기에 씨앗이 남아 있어 핀 것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이 야고는 광주광역시 무각사가 있는 공원 산책로의 인공틀 안에 이식된 억새에서 만났다.


담뱃대더부살이·사탕수수겨우살이라고도 한다. 꽃이 피었을 때 꽃대와 꽃 모양이 담뱃대처럼 생겨 담뱃대더부살이라는 별칭이 생겼다.


야고는 한자로 野菰라 쓰는데, 들에서 자라는 줄풀이라는 의미이다. '더부살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이청득심以聽得心'
귀 기울여 경청하는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최고의 지혜라는 뜻으로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마음을 얻기 위해 귀 기울인다는 것의 본 바탕은 공존共存에 있다. 홀로 우뚝 서 자신만을 드러내기 보다는 곁에서 함께 한다는 의미로 이해한다. 이는 너그러운 마음을 가질 때 가능해지는 일이며, 너그러운 마음 자세를 관용寬容이라 한다.

관용에는 네가지 단계가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나와 다른 것을 이해하는 것'
두 번째는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는 것'
세 번째는 '나와 다른 것을 받아들이는 것'
네 번째는 '나와 다른 것과 함께하는 것'이다.

자신의 장점을 모르면 세상살이가 팍팍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자신만의 맛과 멋을 다른 이와 더불어 누릴 수 있다면 모두가 추구하는 행복한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마음을 얻고자 하는 근본 바탕은 공존이 있고, 상대방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것이 그 시작이다.

이 가을엔 나에게 오는 이의 심장 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남자가 가을을 슬퍼하는 이유'
경금자는 말하였다."내가 저녁을 슬퍼하면서, 가을을 슬퍼하는 것이 없는데도 슬퍼지는 것을 알았다. 서쪽 산이 붉어지고 뜰의 나뭇잎이 잠잠해지고, 날개를 접은 새가 처마를 엿보고, 창연히 어두운 빛이 먼 마을로부터 이른다면 그 광경에 처한 자는 반드시 슬퍼하여 그 기쁨을 잃어버릴 것이니, 지는 해가 아껴서가 아니요, 그 기운을 슬퍼하는 것이다. 하루의 저녁도 오히려 슬퍼할 만한데, 일 년의 저녁을 어찌 슬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 일찍이 사람이 노쇠함을 슬퍼하는 것을 보니, 사십 오십에 머리털이 비로소 희어지고 기혈이 점차 말라간다면 그것을 슬퍼함이 반드시 칠십 팔십이 되어 이미 노쇠한 자의 갑절은 되는 것이다. 아마도 이미 노인된 자는 어찌 할 수 없다고 여겨서 다시 슬퍼하지 않는 것인데 사십 오십에 비로소 쇠약함을 느낀 자는 유독 슬픔을 느끼는 것이니라. 사람이 밤은 슬퍼하지 않으면서 저녁은 슬퍼하고, 겨울은 슬퍼하지 않으면서 유독 가을을 슬퍼 하는 것은, 어쩌면 또한 사십 오십된 자들이 노쇠해감을 슬퍼하는 것과 같으리라!

아! 천지는 사람과 한 몸이요, 십이회十二會는 일 년이다. 내가 천지의 회를 알지못하니, 이미 가을인가 아닌가? 어찌 지나 버렸는가? 내가 가만히 그것을 슬퍼하노라.

*조선시대를 살았던 이옥李鈺(1760~1815)의 글 '남자가 가을을 슬퍼하는 이유'를 일부 옮겨왔다. 지나온 시간에 비추어 자신을 돌아보는 가을이다. 이 가을에 제대로 슬퍼할 수 있어야 겨울을 온전히 건널 수 있은 힘을 얻을 수 있다.

이래저래 뒤숭숭한 몇주가 흘렀다. 그 사이 가을은 이미 이렇게 곁에 와 머문다. 나와 무관한 세상사는 없지만 내 일이라 여기며 공감하는 것은 극히 일부다. 그 일부일망정 제때에 제몫을 해내는 이 역시 드물다. 은행나무 열매가 떨어지는 때가 온 것처럼 물고 뜯고 아우성치는 그 모든 것도 끝날 때가 반드시 온다. 

이제 뚜벅뚜벅 제 길을 가면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