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情으로 지은 세상'

내가 그리는 어떤 세상이 있어
우리들 마음속에 늘 품고 사는 세상
이 나라 이 땅 머물다 간
다정했던 이들 지으려 애쓰던 세상
다가올 날에도 티끌처럼 많은 이들
짓고 또 지으려 애쓸 세상

마른 나무에 새 속잎 나고
꽃이 필 제 올지도 모르는 세상
산천초목 짐승벌레 미물까지
엄마와 아기처럼 다정한 세상
아 어머니 마음 같은 세상
정으로 지은 세상이야

마을과 마을의 닭이 우는 소리
서로 접하여 들려오는 세상
추하고 악한 것은 다 스스로 소멸하고
감미로운 과실나무 향기로운 꽃과 풀만
그 땅에 피어나리라

탐하는 마음 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 자라나지 아니하고
천하느니 귀하느니 차별함이 전혀 없이
선하고 고운 말만 오가고
서로 보게 됨에 즐거워하는 세상

금은보배 부귀영화를 일컬어 서로가 말하기를
옛날에 사람들이 이것으로 말미암아
서로 상하게 하고 서로 해롭게 하여
무수한 고통이 있었는데
이제는 부귀가 쓸모없는 돌 조각 같아서
탐내거나 아끼는 사람이 없게 되었노라 하는 세상
권세 없는 평등 세상 눈물처럼 순수한 세상




https://youtu.be/uw8sNKsOW8I

*요즘 한승석과 정재일의 음악에 푹 빠져 지낸다. '자장가'에 이어 '끝내 바다에' 음반에 실린 '그대를 생각하다 웃습니다'와 '정으로 지은 세상'을 시도때도 없이 무한 반복 중이다.

'내가 그리는 어떤 세상'은 '선하고 고운 말만 오가고 서로 보게 됨에 즐거워하는 세상'으로 '마른 나무에 새 속잎 나고 꽃이 필 제 올지도 모르는 세상'이지만' 끝내 오고야말 세상이다.

멜로디와 가사, 음색이 어루러져 전해지는 느낌은 가슴 깊은 곳, 숨겨둔 감정을 속절없이 끄집어 내게 하기에 무방비로 당하지만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이제는 그 당혹스러움을 즐기고 있다. 

아침 차가운 기온과는 달리 한낮은 온기 가득 담은 볕이 참 좋다. '가슴에 손' 얹고 그 온기를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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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나무'
윗지방에는 눈이 왔다지만 남쪽은 포근한 날의 연속이라 곳곳에 늦가을의 정취가 남아있다. 그 정취를 누리는 마음에는 열매가 주는 이미지도 한몫한다.


꽃보다 열매다. 꽃이 있어야 열매로 맺지만 꽃에 주목하지 못하는 것은 아주 작아 잘 보이지 않거나 주목할 만한 특별한 특성 보이지 않아서 간과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꽃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듯 독특하고 강렬한 색의 열매를 남긴다.


이 붉디붉은 속내가 어디에 숨었다가 드러나는 것일까. 여리디여린 잎과 연초록의 꽃으로는 짐작되지 않은 색감이다. 붉게 물든 잎이 떨어지며 남긴 아쉬움까지 덤으로 담아 열매는 더 붉어지는 것일까. 어쩌면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코르크로 한껏 부풀린 가지와는 상반된 이미지다. 쉽게 보여야 열매의 몫을 다할 수 있다는 것이리라.


화살나무는 나뭇가지에 화살 깃털을 닮은 회갈색의 코르크 날개를 달고 있다. 이 특별한 모양새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화살나무의 이른 봄에 나는 새싹은 보드랍고 약간 쌉쌀한 맛이 나 나물로도 식용한다.


화살나무와 비슷한 나무로 여러 종류가 있다. 회잎나무, 참회나무, 회나무, 나래회나무, 참빗살나무 등이 있으며 열매, 코르크 등이 비슷비슷하여 구분이 쉽지는 않다. 이름과 함께 연상해보면 이해가되는 '위험하 장난'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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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시간
-김민식, 브레드

경남의 어느 대학 건물 벽에서 보았다. '나무의 시간'이라는 제목에 이끌려 사진을 찍어두고 책을 찾아 구입했다. 순전히 나무 때문이다.

"톨스토이, 고흐부터 박경리, 안도 다다오, 호크니까지
나무로 만나는 역사, 건축, 과학, 문학, 예술 이야기"

40여년 전 세계의 나무를 따라다닌 독특한 이력에 강원도 어디쯤에 '내촌목공소'라는 간판을 걸었다는 것이 이 책과 관련하여 내가 아는 전부다.

나무에 대한 다른 접근, 무엇이 담겨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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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자덩굴'
때 아닌 때 꽃이 꽃 피었다는 소식을 듣고 망설이다가 먼 길을 나섰다. 꽃과 함께 열매를 볼 수 있다는 것은 흔치않은 경험이라 나선 길이지만 꽃은 보지 못했다. 지난해 본 꽃으로 대신 한다.


꽃 보고 열매까지 확인했다. 수많은 꽃을 만나지만 꽃과 열매 둘 다를 확인할 수 있는 식물은 그리 많지 않다. 시간과 거리가 주는 부담감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꽃에 더 주목하는 이유가 더 클 것이다.


"호자라는 이름은 가시가 날카로워 호랑이도 찌른다고 해서 호자虎刺라는 이름이 붙은 호자나무에서 유래한다. 잎과 빨간 열매가 비슷하지만 호자덩굴은 덩굴성이며 풀이라 호자나무와는 다르다."


붉은색의 둥근 열매에는 두 개의 흔적이 있다. 꽃이 맺혔던 흔적일까. 다른 열매와 구분되는 특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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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한파라고 아침은 올 입동 이후 가장 추웠다. 바람결에 실려온 냉기는 옷깃을 여미게 한다. 그것도 잠시 한낮의 볕은 따스하기 그지없다. 바람을 피해 볕이 오롯이 들어오는 양달에 앉아 볕바라기 하기에 딱 좋은 볕이다.

무엇에 쫒기는 것처럼 바쁜 것도 아니었는데 단풍이 다 지도록 단풍놀이 한번 못하고 지나가는 것은 아닌가 싶어 괜히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페이스북은 여기저기서 울긋불긋 다양한 모습으로 여는 창마다 요란하다. 하늘 아래 모든 것이 불타듯 노랗고 빨갛게 물들어가는 동안 하늘 한번 올려다보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의 흔적 일 것이다. 어쩌면 지나가버린 시간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막바지 겨울로 가는 단풍보다 더 분주한 발걸음으로 마음만 더 부산스럽다.

나도, 볕이 잘드는 인적 드문 숲으로 가 이미 떨어진 낙엽으로 포근한 자리에 앉아 미쳐 땅과 만나지 못한 낙엽을 한동안 바라다 보고 싶다. 그것이 여의치않다면 시골 마을 한 모퉁이에 자리잡고 넉넉한 품으로 오가는 사람들의 벗이 되었을 나무 그늘에 들어 한나절 그 나무의 벗이 되고 싶기도 하다. 그것도 아니라면 온통 머리털이 세어서도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 여전히 부끄러운 억새와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며 들길을 서너시간 쯤 걷다 지칠만할 때 돌아오면 좋겠다. 그것도 과분하다면 오후 볕을 깊숙히 끌여들여 오랫동안 품고자 서쪽을 온통 창으로 만든 모월당慕月堂 긴 책장에 기대어 산을 넘는 햇볕의 끝자락을 잡고서 잠시 조는 것으로 대신해도 좋겠다.

느긋한 기다림이라 애써 다독이던 마음에 아직은 늦지 않았다는듯 담쟁이덩굴에 한줌 볕이 들었다. 이 볕 한줌 덜어내어 품속 깊숙히 넣어두어야겠다. 내 마음에 볕이 필요한 그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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