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봉선'둘둘 말린 꼬리에 꿀을 담고 한껏 입을 벌려 물로 가는 꿈을 꾸는지도 모르겠다. 꿈을 찾아 뭍으로 올라와 물로 돌아가지 못한 물고기의 물에 대한 그리움이 깊은 것일까? 내 눈에 보이기에는 영낙없이 물고기를 닮은 모습이다.
숲길에 여전히 제 철인양 무리지에 피어있다. 전해지는 소식으론 노랑색의 모습도 많던데 내가 있는 곳에선 좀처럼 볼 수가 없다. 다른 많은 식물과 그랬듯 언젠가 마주칠 날이 있겠지. 꽃 하나 조심스럽게 따서 꼬리를 자르고 입으로 가져간다. 단맛이 입안에 번진다.
'물봉선'은 산골짜기의 물가나 습지에서 무리지어 자라는 한해살이풀이다. 줄기는 곧게 서고, 많은 가지가 갈라지며, 잎은 어긋난다.
꽃은 8∼9월에 붉은빛이 강한 자주색으로 피고 가지 윗부분에 달린다. 꿀주머니는 넓으며 끝이 안쪽으로 말린다. 짙은 자주색의 꽃이 피는 것을 가야물봉선, 흰색 꽃이 피는 것을 흰물봉선이라고 한다. 600m 이상의 높은 곳에서 자라며 노랑색의 꽃이 피는 노랑물봉선도 있다.
봉선화 하면 우리 자생화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지만 귀화식물이다. 그에비해 물봉선은 봉선화와는 같은 집안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에 나는 전형적인 자생식물이다.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라는 꽃말을 가졌다.
'고산자 대동여지도'
박범신의 2009 년 소설 '고산자'와 2016년 강우석의 '고산자 대동여지도'가 만나다.
박범신의 '고산자'는 '통찰력이 뛰어난 인문학자였고, 조국을 깊이 사랑했던 산인(山人)이었으며, 집념이 강한 예술가였다'라고 평가한 김정호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홍경례의 난 등 사회적으로 어지러웠던 조선말기 아버지의 실종을 밝혀 달라고 산벗나무 꽃피던 어느 봄날 관아의 높다란 대문 앞에서 무릎 꿇고 매달리던 한 소년이 고향을 등지고 전국을 떠돌며 삶을 이어가 결국에 자신의 소망을 이뤘지만 그게 다 부질없음을 알고 사랑하는 피붙인 딸과 조용히 사라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어버지의 죽음, 부패한 권력, 외세의 침입, 천주교라는 낯선 사상의 도입, 실사구시 학문의 대두, 벗의 사귐과 그들의 죽음을 선고하는 만장 등 이는 고산자 김정호가 살았던 시대, 그가 직면한 현실을 나타내는 단어들이다. 저자는 이러한 매개를 이용하여 발 딛고 살아가는 산천의 주인이 백성임을 알고 백성들의 삶의 시작과 끝이 되는 산천을 온전히 담아내 백성들 품으로 돌려주고자 했던 김정호의 마음을 읽어간다. 한 사람의 삶을 외롭고(孤), 높으며(高), 옛산을 담고자 하는 마음(古)으로 풀어내고 있다.
깅우석의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김정호가 대동여지도의 초판을 완성한 이휴의 이야기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지도가 곧 권력이자 목숨이었던 시대"를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조선후기 대원군을 중심으로 한 안동김씨와의 정치권력과의 갈등 속의 김정호가 그려지고 있다.
이 나라 곳곳의 아름다운 모습이 영상으로 펼쳐지고 그 풍경 속을 외롭게 걷는고산자 김정호의 모습이 그려지는 것은 영화의 특성상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김정호는 생몰연대를 알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러기에 상상하기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있다. 그 가능성으로부터 김정호를 보고자하는 이의 마음에 따라 달리 그려질 것이다. 강우석의 '고산자 대동여지도'에는 박범신의 그 김정호와는 당연하듯 사뭇 다른 사람이다.
강우석 감독은 '고산자 대동여지도'를 통해 김정호의 무엇을 보고자 했을까?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도 그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정갈하다'자연스럽다는 것 속에는 사람의 손길이 닿았지만 억지를 부려 욕심내지 않은 상태를 포함한다. 또한 시간을 거스르는 것이 아닌 앞서거니 뒷서거니 그 시간과 동행하는 것이니라. 그 가운에 정갈함이 머문다.나무둥치 위에 가즈러히 흰고무신 한컬레 놓였다. 뒷축을 실로 꼬맨자리가 어설퍼 보이지만 단정함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닫힌 문을 열어볼 마음을 내 보지도 못하고 머리 위 글귀를 따라 읽는다.살어리살어리랏다청산에살어리랏다멀위랑다래랑먹고청산에살어리랏다토방에 놓인 고무신이 정갈한 주인의 마음자리를 닮았으리라. 굳이 청산별곡을 읊조리지 않아도 이미 마음은 청산 그 한가운데 머문다.가만히 흰고무신을 들었다. 두 손으로 가슴에 대어보고 그 자리에 놓아본다. 주인의 정갈한 마음자리가 내 마음 속으로 들어왔다.
'민주엽나무'태어나고 자란 고향마을에 나무 한그루 있다. 어린시절 놀이터였으며 마을을 들고나는 군내버스를 기다리는 정자나무이기도 했다. 이 나무의 2세대가 건너마을에가 터를 잡았다. 대도시로 유학을 나온 후론 고향집에 갈 때마다 나무 그늘에 들어 쉬었다 오곤 했던 나무다.
어느해 여름 태풍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 후 찾은 고향마을은 텅비어버린 느낌이었다. 그후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마을 앞 방앗간이 헐린 자리에 같은 종류의 어린 묘목이 자라고 있었다. 건너마을로 갔던 2세대의 후손이라고 하니 3세대 나무인 셈이다. 지금은 제법 틀을 잡아가며 키와 몸집을 키워가고 있다. 다시 마을을 찾을 때마다 눈맞춤 한다.
이 모든 1, 2, 3세대의 나무를 심고 가꾸신 분이 돌아가신 아버님이다. 이제 아버님은 뵙지 못하게 되었지만 이 나무와 눈맞춤할 때마다 아버님을 떠올린다. 이 마을을 지키며 함께 오랫동안 눈맞춤할 수 있길 소망한다.
마을에 이 나무의 이름을 아는이가 없어 물어봐도 알지 못하다. 어렵사리 이름을 알았다. 나무 이름을 적고 사연을 담아 이름표를 세워두고자 한다.
'민주엽나무'는 한국 특산종으로 전국에 분포하며 낙엽지는 큰키나무다. 산골짜기나 냇가에서 자란다. 높이는 20m 정도이다. 굵은 가지가 사방으로 뻗으며 자라고 작은 가지에 가시가 없다.
꽃은 5~6월에 노란색을 띤 황녹색 작은 꽃들이 빽빽하게 달린다. 열매는 길이 20~30cm 정도 납작하고 뒤틀린 꼬투리다. 주엽나무랑 같은데 전체에 가시가 없는게 특징이다.
'고산자 김정호'-우일문, 인문서원김정호(金正浩, 1804~1866 추정), 호 고산자(古山子), 조선시대 가장 많은 지도를 제작하였고, 가장 많은 지리지를 편찬한 지리학자이다.생몰년도가 미상이다. 대단한 업적을 남긴 사람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마음이 반영된 탓일까? 역설적으로 이 모호함이 다양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김정호는 옥사했는가? 이 물음에서 시작하는 이 작품도 그런 상상력의 산물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