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쌓였고 여전히 내리는 눈이 아까워 길을 나섰다. 눈이 오는 맞바람을 안고 걷는게 고역이긴 하지만 때를 놓치면 눈에게 미안한 일이다. 기분은 어느 때보다 상쾌하니 좋다.


사계절 내게 들꽃의 향연을 펼쳐주는 보물같은 뒷산 깊숙히 발목까지 빠지는 눈길을 더딘 걸음으로 내딛는다. 마을길을 벗어나면 만나는 저수지도 꽁꽁 얼었고, 밤나무 잘려나간 산등성이에 쌓인 눈이 햇살에 눈부시다. 계곡을 건너 산길로 접어들자 사람 발자국 드문드문 이미 다녀간 사람 흔적이 반갑다. 제법 많은 눈이 왔지만 햇볕 좋은 날이 이어져 나무가지에 쌓인 눈은 이미 거의 녹고 없다. 하여, 다시 내리는 눈도 그 눈을 맞이하는 숲도 부담이 없다는듯 가벼워 보인다.


겨울 속엔 이미 봄이 자라고 있다. 부지런히 때를 준비하는 숲의 생명들에게 포근하게 내리는 눈은 잠시 쉬어가라는 하늘의 선물은 아닐까. 그 틈에 기대어 나도 쉬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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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가락하던 눈이 그치고 잠시 평화로움이 깃든 시간이다. 까만 밤하늘을 유영하는 달은 자신을 둘러싼 구름과는 무관하다는 듯 태연자약하고, 납월臘月의 밤 대지를 환하게 밝히는 쌓인눈이 아까운 이의 밤마실에 달도 앞서거니 뒷서거니 함께 걷는다. 

달과 눈, 그 사이를 오가는 이의 얼굴에 겨울 찬바람과는 상관없이 따스한 미소가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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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달 보름, 음력 12월은 계동季冬, 납월臘月, 모동暮冬, 절계節季, 막달, 썩은달, 섣달이라고도 부른다. 그 섣달의 한가운데 보름달이 떳다.


옛사람들은 유독 달에 주목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손철주는 '흥'이라는 책에서 옛그림에 등장하는 달그림을 보며 그 이유를 설명한다. 먼저, 그것은 선禪적인 깨달음을 상징한 것으로 본다. 직지인심直指人心 달을 가르키는데 달은 안보고 달을 가르키는 손을 바라본다. 여기에 선적 깨달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달을 보았다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풍류의 짝으로 달이다. 차고 이지러지는 이치가 고아한 풍취를 드러내는 풍류에 알맞는 상관물이 된다는 점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래서 달 그림은 풍류이자 깨달음의 의미를 담았다는 것이다.


옛사람이 달에 부여한 의미와는 상관없이 달을 향한 원초적 그리움과 같은 그냥 달에 이끌리는 무엇이 있다.


성근 숲에 밝은 달이 떠오르는 모습을 담은 김홍도의 '소림명월도疏林明月圖'를 가슴에 품고 달빛 서늘한 기운이 가득한 모월당慕月堂 뜰을 서성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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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꽃나들이'
죽녹원, 하늘로 향한 푸른꿈을 키워가는 대나무를 따라 눈도 제 스스로 온 곳을 향한 그리움을 함께 쌓았다. 반복하여 미끄러지더라도 대나무에 기대어 쌓은자리 다시 쌓아 비로소 대나무를 닮은 형체를 갖췄다.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이 비로소 일어났다.


예상을 빗나간 다소 미흡한 눈풍경이지만 사람들의 무리도 드물어 한적한 대나무 숲길이다. 간혹 눈 폭포도 만들고 눈사람도 만들면서 오붓한 나들이는 졸린 눈 비비고 차가운 길에 동행해준 딸아이가 있어 가능한 시간이다.


귀한 눈 아까워 눈에도 담고 가슴에도 담는다. 눈에 대한 예의를 차리는 의식이면서도 독락獨樂의 여유를 한껏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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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大寒'

그래, 눈은 이렇게 내리야 제 맛이다. 목화 솜 타서 솜 이불 누비는 할머니의 마음 속에 때 펼쳐놓은 그 포근함을 품으라고 눈은 이렇게 온다.


"춥지 않은 소한 없고 포근하지 않은 대한 없다"


예년과는 다른 겨울이라고는 하지만 대한을 맞이하는 오늘은 제대로 겨울의 맛과 멋을 전해준다. 대한은 24절기 가운데 마지막 스물네 번째 절기로 ‘큰 추위’라는 뜻이다. 하늘에서 무엇이든 내리면 가슴이 먼저 반응한다. 지난 밤부터 많은 눈이 오고 있지만 날은 포근하여 눈과 놀기 적당하다.


이 순간을 어찌 놓치랴~.
눈이 땅위에 그려놓은 그림에 눈맞춤하며 혼자만의 즐거움을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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