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감주나무'
무더위가 기승을부리던 어느 여름날 무주 구천동 계곡 참나무 아래서 하룻밤을 자고나서 관리사무소 앞을 지나다 만났다. 세모꼴 주머니를 열매처럼 달고 우뚝선 나무는 한동안 발길을 붙잡기에 충분했다. 도감에서만 보던 나무를 마주한 순간이다.


한번 눈에 들어온 나무는 뇌리에 박혀 어느곳을 가더라도 곧바로 알아보게 되지만 이 나무는 다시 만나는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 아주 가까운 도시의 나들목에서 발견하고 어찌나 반갑던지 매년 꽃 피고 열매맺는 동안 몇번이고 눈맞춤한다.


모감주나무의 꽃은 하늘을 향해 긴 꽃대를 세우고 촘촘하게 화려한 황금빛 꽃을 피운다. 여름의 태양이 이글거리는 그날에 맞춰 찬란히 꽃을 피우는 것이 태양과 맞짱이라도 뜨는듯 대범하게 보인다.


원뿔을 거꾸로 세운 것 같은 특별한 모양의 열매는 초록색에서 갈색으로 변하면서 얇은 종이 같은 껍질이 셋으로 길게 갈라진다. 꽃보다 더 멋진 모습을 만들어 내 두번 피는 꽃처럼 주목된다. 안에는 콩알보다 작은 까만 씨앗이 보통 세 개씩 들어 있다. 이 열매로 염주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불가능해 보인다. 아마도 무환자나무 열매와 헷갈린 것이 아닌가 싶다.


꽃과 열매를 보기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듯 '자유로운 마음', '기다림'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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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싸한 아침이다. 매우 추운면 코끝에 매운기가 스며드는데 오늘 아침이 그렇다. 땅마져 꽁꽁얼고 햇살이 번지는 곳에도 서리는 녹지 않고 온 몸으로 버티는 중이다.

이미 산을 넘어 온 해와 아직 산을 넘지 못한 달이 한 하늘에 같이 보인다. 요즘처럼 보름이 갓 지난 며칠 간이다. 아침을 반겨 맞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머리는 맑아지고 가슴 속으로 파고드는 시원함이 개운한 하루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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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러지는 달이 느즈막히 떠오른다. 달도 서둘지 않으니 달을 보는 이의 마음도 느긋하다. 늦은밤에서야 눈썹 위쯤에나 올라오는 달을 보기 위해 뜰로 나선다. 차가운 겨울밤 기온이 품으로 파고드는 것이 싫지만은 않다. 달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입술을 닫은 한밤중
잔별 몇 개 따라 나와
밤의 한 귀퉁이 조금 더 윤이 나는데
남은 몇 모금의 환한 시간을 아껴 마시며
반쯤 저문 달 바라본다

저물 날만 남았어도 환하다는 것이 고맙다"

*도종환의 '하현'이라는 시의 일부다. 저물어가는 달을 바라보며 깊어가는 겨울밤 따뜻한 차 한잔 내어놓고 어둠이 더 짙어질 시간을 누린다. '저물 날만 남았어도 환하다는 것'이 달 뿐이 아님을 안다. 삶의 시간도 저물 날만 바라보는 때다.

물리적 시간의 한계를 넘어 환하게 빛날 무엇에 주목한다. "저물 날만 남았어도 환하다는 것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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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과나무'
무엇보다 향기로 기억되는 나무다. 울퉁불퉁하게 생긴 열매가 담고 있는 모과 향은 적당히 강하고 달콤하며 때로는 상큼하기까지 하다.


구름무늬 모양으로 얼룩진 나무껍질의 아름다움에 통과의례처럼 손으로 쓰다듬는다. 무늬가 선명하고 색감이 전하는 느낌도 좋다. 사계절 차가움을 전하는 시원함도 한몫한다. 붉그스레한 꽃도, 노오란 열매도 때마다 놓칠 수 없는 즐거움으로 눈맞춤 한다.


중국이 원산지인 모과는 "나에게 모과를 보내주었으니 아름다운 패옥으로 보답코자 하나니······"로 시작하는 시경의 위풍편에 실려있을 정도로 오래된 과일나무다. 이처럼 모과는 친구나 애인 사이에 사랑의 증표로 주고받았다는 것이다. 2~3천 년 전에도 모과는 이렇게 귀한 물건이었다고 한다.


모개나무·목과(木果)라고도 한다. 못 생긴 열매에서 의외의 향기를 얻어서일까. '괴짜', '조숙'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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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거꾸로 매달려 있는 게 아니로구나
내 이마를 후려치고,
꼬리지느러미로 허공을 치고 하늘로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로구나"

*안도현의 시 '고드름'의 일부다. 따뜻함으로 낯선 겨울을 보내는 동안 흔하게 볼 수 있었던 풍경을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올 겨울들어 처마밑으로 첫 고드름이 매달렸다. 푸른 하늘을 배경삼은 조그마한 고드름이 귀엽기만 하다.

땅을 향해 점점 커가는 운명이지만 꿈마져 곤두박질칠 수 없는 일이기에 통째로 하늘을 품었다. 고드름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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