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은부채'
꽃소식따라 몸이 움직이는 사람들에게도 머리 속에서만 존재하는 식물이 있다. 알지 못하는 것이라면 이야기 꺼리도 못되지만 먼 곳이거나 가까이 있어도 제 때를 놓치면 볼 수 없어 언젠가 볼 수 있는 날을 기다리게 된다.


눈을 녹이면서도 생명의 열정을 보여주는 앉은부채도 그렇게 보고 싶은 식물에 속했다. 지난 겨울에서야 멀지 않은 곳에 자생지가 있다는 것을 접하고 두 번째 발품을 팔아 눈맞춤 했다. 조금 늦은 때라 새 잎이 올라온 것까지 볼 수 있어 이제는 잎을 보고도 알아볼 수 있겠다.


'앉은부채'라는 이름은 가부좌를 틀고 앉은 부처님과 닮아서 '앉은부처'라고 부르던 것이 바뀐 것이라고 하고, 잎이 땅에 붙어 있고 부채처럼 넓게 펼쳐진 모양 때문에 앉은부채라는 이름이 생겼다고도 한다.


꽃은 3~5월에 피며 타원형의 꽃덮개佛焰苞에 싸여있다. 꽃을 자세히 살피면 꼭 도깨비방망이 끝 부분같이 보이기도 하고 스님 머리모양을 닮기도 했다.


앉은부채는 꽃을 피울 때 스스로 열을 내고 온도를 조절하는 신비한 식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눈을 녹이면서 꽃을 피울 수 있나 보다.


우엉취·삿부채풀·삿부채잎이라고도 하는 앉은부채의 꽃말은 '그냥 내버려 두세요'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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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앵담 - 나른한 화요일을 깨우는 새콤달콤한 앵두 맛 이야기 요일들의 이야기 2
안영실 지음 / 헤르츠나인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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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익은 붉은 앵두 맛 같은 이야기들

지극히 짧은 이야기에서 긴 여운이 오랫동안 남는다많은 말을 한다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만한 나이가 되었다구구절절 풀어놓지 않아도 몇 마디 말로 전해지는 가슴 깊은 울림은 그 말이 담고 있는 감정과 의지를 충분히 공감할만한 준비가 되었을 때 가능해 진다말하기 보다는 듣기에 주목하고자신을 둘러싼 환경이나 조건의 변화와 같은 외부적 상황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울리는 심장의 반응에 주목할 수 있을 때 절제된 말이 가지는 참다운 의미를 알게 된다.

 

참으로 오랜만에 맛깔스러운 이야기를 만났다나른한 화요일을 깨우는 새콤달콤한 앵두 맛 이야기이라는 작가 안영실의 화요앵담은 지극히 짧지만 긴 여운이 오랫동안 남는 이야기들로 묶어진 소설집이다일상의 익숙한 이야기를 펼치듯 자연스럽게 흐르는 작품들이 한 바구니에 가득 담겨 있다.

 

아리도록 단단한 57편의 이야기가 네 가지 테마로 묶여 잘 포장되어 있다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세월의 무게감을 적당하게 감당할 수 있는 이의 자전적 에세이를 대하듯 친숙한 이야기들이다기억 저편에 가물거리듯 존재하면서 불쑥불쑥 현실로 드러나는 추억이거나감정 이입된 특정 대상을 통해 잊어지길 강요받았던 생의 어느 한 자락자신이 속한 다양한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온 시간과 같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무엇인가를 전달하고자 하는 강한 목적성을 내비치지 않고서도 절제된 이야기는 담고 싶은 감정의 깊이와 전하고 싶은 의지를 아주 자연스러우면서도 능숙하게 전달한다짧은 이야기를 짧게 읽지만 쉽게 다음 이야기로 넘어갈 수 없는 긴 사색의 시간을 만들게 하고 있다글이 자체적인 힘을 가지는 경우가 바로 여기로부터 출발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등단 20년 차인 작가의 내공이 여실히 드러나는 글이라 여겨진다.

 

화요앵담’ 속 다양한 이야기는 새콤달콤한 맛에 취해 아무 생각 없이 앵두를 먹다 보면 꼭 단단한 씨앗을 씹게 된다는 작가의 표현 그대로 붉은 앵두 맛 그것과 꼭 닮아 있다새로운 희망으로 꿈을 꿔가는 봄,곁에 두고 틈틈이 펼쳐도 좋을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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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나 본다?'
봄, 여기까지 왔음을 알고 다가올 시간을 상상한다. 붉디붉은 꽃잎에 샛노란 꽃술이 절묘한 어울림으로 각인된 그 꽃이다. 누구는 '목단'이라고도 하고 '모란'으로도 부르는 풍성하고 화사한 꽃이 이제 막 겨울눈을 벗어나고 있다. 저 속에 그 무궁무진한 꽃의 세계가 있음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저 피어나면 보고 감탄할 뿐이다.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라는 나른 노래한 시인의 속내도 미루어 짐작한다.

'꽃이나 보고 꽃 사진이나 올린다' 고 말하는 이가 있다. 지극히 오만한 편견으로 자신을 옹호하고자 하는 이의 독설이다. 꽃을 꽃 그 자체의 생명으로 보지 않고 사람의 가치보다 헐값으로 본다고 사람 사는 세상이 지금보다 더 나아질까? 사람 사는 모양도 꽃이 피고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오히려 그 속에서 사람의 오만과 곡해로 얼룩진 세태의 해법을 찾을 수도 있다. 꽃이 피지 않으면 사람은 살 수 없다는 것도 여기로부터 출발한다. 사람의 오만이 꽃이 꽃을 피우고도 열매맺지 못하는 환경을 만들어왔고, 그 결과가 가져올 참담함도 그 꽃의 생을 보고서야 안다.

'꽃이나 보고'라는 말로 이미 초라해저버린 스스로를 포장할 수 없음도 알까? 나는 오늘도 그 '꽃이나 보고'자 사람을 사람으로 키워준 자연을 살핀다. 

모란이 피어야 봄이 무르익어 여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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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
때를 기다리는 마음이 이토록 간절했을까? 어제밤부터 전해지는 바다 소식에 애써 억눌러왔던 감정이 틈을 냈나 보다. 그 바다와 그 바다를 가슴에 묻은 이들에게 다시 희망을 이야기해도 어색하지 않을 봄을 맞이하고 싶다. 아이들이 향했던 그곳도 바닷길을 따라 노오란 수선화가 피었을 것이다. 그 마음에 수선화 한송이 놓는다.


수선水仙이란 중국명이며 하늘에 있는 것을 천선天仙, 땅에 있는 것을 지선地仙, 그리고 물에 있는 것을 수선이라고 하였다.


'수선화에게'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의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시인 정호승도 수선화에게 기대어 울었다. 어쩌면 외로움의 본질은 나르시스의 그것일지도 모를일이다. 유독 봄앓이로 먼산을 자주 보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설중화·수선水仙이라고도 한다. 품종에 따라 다르며 흰색, 주황색, 노란색 등이 있다. 꽃이 아름다워 관상용으로 가꾸며 줄기, 꽃 등을 약용한다. 나르시스 그것처럼 목숨을 걸어도 좋은 것이다. '자존심', '자기사랑', '고결', '신비' 등의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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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黎明
문득 여기의 이순간을 마주하고 싶었다. 까닭모를 충동이 일어 서둘러 집을 나서 들판 한가운데서 맞이한 아침이다. 산을 넘어온 해를 마주하며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번지는 빛처럼 아득하게 깨어나는 하루가 몸과 마음에 그대로 스며든다. 

잠시 머물며 길게 호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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