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어인鑑於人'
무감어수 감어인無鑑於水 鑑於人에서 온 말로 '자신을 사람에게 비추어 보라'는 말이다. 겉모습에 집착하지 말고 속내를 바로 보자는 의미로 이해한다.


보여지는 모습으로 거의 전부를 판단하는 세상이라고 한탄들 한다. 그렇다면 보여지는 모습을 전부 무시하란 말인가. 보여지는 모습은 속내를 드러내는 중요한 방편이니 그 드러남을 통해 속내를 보는 통로로 삼는다면 드러남은 백분 활용해야할 측면이 된다.


속이든 겉이든 보여야 알 수 있다. 꽃들이 앞을 다투어 화려하고 특이한 자신만의 모양과 색으로 치장하는 이유는 그 속내를 드러내어 주어진 사명을 다하고자 함에 있다. 그러기에 드러냄은 꽃에게는 곧 사명을 완수하는 중요한 수단인 것이다.


사람이 자기를 가장 잘 비출 수 있는 곳은 역시 사람이다. 나를 비춰주는 사람, 내가 비춰줄 사람을 얻고, 그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보자. 하여, 외롭고 힘든 세상살이에 조금은 위로 받고 의지하며 산다면 이 또한 좋지 않겠는가.


어둠이 내린 골목길에 등불을 밝혔다. 늦은 사람이 돌아올 길을 밝히는 것이며 혹, 걷는 사람 없더라도 스스로 밝힌 불로 골목은 외롭지 않다. 골목을 지키는 가로등 처럼 누군가를 위해, 또는 스스로를 돌아보기 위해 본성의 불을 밝히고자 한다. 그 기준으로 삼는 것이 사람이다.


'감어인'鑑於人, 내 스스로를 돌아보는 방식이며 본질로 나아가는 기준으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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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터에서'
-김훈, 해냄

작가 김훈의 아홉 번째 장편소설 '공터에서'다. 그간 작품 모두를 한번도 놓치지 않고 발간 되기가 무섭게 손에 들었던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미루기를 반복하다가 이제서야 손에 들었다.

왜 그런것지 이유는 모른다. 책에 대한 어떤 이야기일지라도 애써 귀를 닫았고 이제 막상 손에 들었지만 아직 표지도 열어보지 못했으니 무슨 내용인지도 모른다.

세상을 향해 가슴을 열어 두며 때를 놓치지 않고 지성인의 목소리 냈던 김훈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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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정楚亭을 질책하여주오
與李洛瑞書九書


"이 못난 사람은 단것에 대해서만은 성성이(오랑우탄)가 술을 좋아하고, 긴팔원숭이가 과일을 좋아하듯 사족을 못 쓴다오. 그래서 내 동지들은 단것을 보기만 하면 나를 생각하고, 단것만 나타나면 내게 주지요.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초정(박제가)은 인정머리 없이 세 번이나 단것을 얻고서 나를 생각지도 않았고 주지도 않았소. 그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내게 준 단것을 몰래 먹기까지 했소. 친구의 의리란 잘못이 있으면 깨우쳐주는 법이니, 그대가 초정을 단단히 질책하여주기 바라오."


*형암 이덕무가 낙서 이서구에게 초정 박제가를 흉보느라 보낸 편지다. 피식피식 웃음이 나는 건 참을 도리가 없다. 솔직하고 담백하다. 기지와 해학이 넘치는 문장이 막힘없이 읽힌다.


조선 후기를 살았던 소위 백탑파(박지원, 박제가, 홍대용, 이덕무, 유득공, 이서구, 백동수, 서유구 등)로 일컬어지는 벗들의 사람 사귐이 이와같았다. 백탑파는 원각사지 10층석탑을 중심으로 형성된 일련의 지식인 무리를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박지원과 홍대용은 노론 명망가 출신의 양반이었고,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서상수 등은 서얼 출신이었지만 신분의 차이를 넘어 함께 스승이자 제자로, 벗이자 동지로 삶과 학문, 여가를 뜨거운 가슴으로 나눴다.


사람의 관계가 어쩌면 이리도 아름다울 수 있을까? 역사 속 먼 이야기만은 아니다. 감정과 의지가 하나로 모아진 사람의 관계는 언제나 이런 아름다움이 있어 왔고, 지금도 여전히 이런 만남을 누리고 사는 이들이 적지 않다. 묵묵히 따뜻한 마음을 나누지만 일부러 드러내지 않아서 더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내게도 이런 꿈이 있다. 습기많은 여름 숲에 잠시 살다가는 버섯이 피었다. 한자리에 이웃하여 나서 같은 시간을 살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온 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 시간 기댈 수 있는 벗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꿈은 꾸는 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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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요등'
여름이 무르익어 가을로 가는 길목 언저리 즈음에 유독 향기로 존재를 알리는 식물들이 있다. 비오는 날이나 달밝은 밤엔 더 진한 향기로 발걸음을 붙잡는다. 향기는 사람마다 기호에 따라 차이가 있어 호불호가 나뉘지만 은근히 전해지는 이 향기가 그리 싫지 많은 않다.


길쭉한 원통형에 붉은 속내로 가득 채우고서 혼자서는 부끄러워 무리를 지었나 보다. 꽃통의 윗부분은 다섯 개로 갈라지고 하얗게 핀다. 안쪽은 붉은빛으로 곱게 물들어 있고, 제법 긴 털이 촘촘히 뻗쳐 있다.


계요등의 계는 닭을 의미한다. 닭의장풀이나 닭의난초 등 어쩌다 닭과 관련된 이름을 얻었을까. 사는 곳이나 모양, 냄새 등으로 닭을 연상하는 무엇에 주목한 결과다. 계요등은 잎을 따서 손으로 비벼 보면 약간 구린 냄새가 난다. 이 냄새가 양계장에서 풍기는 진한 닭똥 냄새와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작고 예쁜꽃이 옹기종기 모여 가을로 가는 길목에 향기를 전하고 있다. 혹, 가을내음이 여기로부터 시작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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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나무가 있는 국경
김인자 지음 / 푸른영토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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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마음속에 함께 머무는 시간

삶 자체가 여행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일상이 오늘의 환경과 조건에 묶여 마음조차도 자유롭지 못한 현실에서 다른 이의 여행이 주는 맛으로나마 내 삶을 음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이 맛에 풍미를 더하여 내 삶의 맛으로 가져오는 것은 다 내 몫이기에 여행에세이를 통해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가도 내 몫이다.

 

여행의 본래 가치는 어디에 두어야할까아니 본래 가치라고 부를만한 것이 있기나 할까사람마다 제 가치관에 의해 사물을 대하고 그것에 의해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것이 다르듯 여행 역시 같은 시각으로 본다면 본래적인 가치는 없을지도 모른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치를 찾는다면 그 가치의 본래 목적을 사람에 두고자 한다목적을 어디에 두었는가는 차치하더라도 여행이라는 길 위의 시선을 늘 사람에게 있는 까닭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관령에 오시려거든이라는 책으로 만나 독특한 시각에 매료되었던 김이자의 이 책 사과나무가 있는 국경은 그 여행의 목적에 충실한 여행에세이로 보여 진다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저자의 시선이 닿는 중요한 곳에 사람이 있다그 사람들의 일상에 녹아들어가 그들의 삶이 가진 가차를 발견하고 인정해주는 따뜻한 시선이 그대로 담겨있기 때문이다경계의 범주를 넘어선 아이들을 향한 연민의 눈빛에서 어쩌면 삶의 종착역에 있을지도 모를 늙은이들의 주름진 얼굴 표정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시선에는 한결같이 그들의 삶 자체를 존중하는 따스함이 있다그들 모두는가진 걸 모두 주고도 아깝지 않은 이들이다.

 

이유 없이 피는 꽃이 있을까문득 피는 꽃이 있을까.” 수많은 문장 중에 다음 책장으로 넘어가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문장이다낯선 곳낯선 풍경낯선 사람들 틈으로 스스로 걸어들어 간 것을 여행으로 본다면 그 여행의 모든 것을 이루는 중심에 바로 이런 마음이 있어야 하고 또 있기에 가능했던 그 모든 깨달음이 아니었을까 싶다이 시선으로는 너와 나를 구분하지 않을 것이기에 더 이상 여행지의 이방인이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일한 사람으로 삶의 여정이라는 한 곳을 바라보고 묵묵히 걷는 여행자들인 것이다.

 

누구나 '날마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삶'을 꿈꾼다이 꿈에 여행이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효과는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치 큰 것이라는 점은 문지방을 넘어 길을 나서본 사람들만이 알 수 있다저자의 사람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대상에 그치지 않고 자기 스스로에게로 귀결되는 것은 바로 이런 여행이 준 가장 큰 혜택은 아니었을까.

 

언제부턴가 변화보다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일상이기를 바란다. '어제 같은 오늘오늘 같은 내일'이길 바라는 것이 그 마음이다여행과 같은 일상에 더 이상의 변화를 수용할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결코 돌아갈 수 없는 어제와 미리 당겨 쓸 수 없는 내일에 주목하여 오늘이 주는 의미를 소홀하게 대하지 않으리라는 다짐이다.

 

셀 수 시간과 공간에 홀로 우뚝 서서 스스로를 돌아봤을 여행자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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