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능스님 4주기 기념음악회


범능 정세현, 음악에 물들다


2017. 9. 23(토) 오후 6시30분
화순 개천사


*까만밤 절로 오르는 숲길에 반딧불이가 길안내라도 하듯 앞선다. 세상과 벽을 두르듯 하늘만 빤히 보이는 깊은 산 속에 단정하게 앉은 절, 개천사開天寺다.


소리로 맺어진 속세의 인연들이 한자리에 모여 생전 스님의 뜻이 사후에도 넓고 깊게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등불 하나하나를 밝히나 보다.


밤도 깊어가고 가을도 깊어가는 시간, 사람들의 마음에 켠 등불이 모여 산 속 절은 밝아지고 깊고 푸른 밤하늘로 올라가는 소리공양은 청아하다. 간혹 반딧불이가 밤의 허공을 가로지른다.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전각에 갇혔던 천불千佛이 절마당에 나투어 합장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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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달

나는 그믐달을 사랑한다. 그믐달은 요염하여 감히 손을 잡을 수도 없고 말을 붙일 수도 없이 깜찍하게 예쁜 계집같은 달인 동시에, 가슴이 저리고 쓰린 가련한 달이다.


서산 위에 잠깐 나타났다 숨어 버리는 초생달은 세상을 후려 삼키려는 독부毒婦가 아니면, 철모르는 처녀 같은 달이지마는, 그믐달은 세상의 갖은 풍상을 다 겪고 나중에는 그 무슨 원한을 품고서 애처롭게 쓰러지는 원부怨婦와 같이 애절하고 애절한 맛이 있다. 보름에 둥근 달은 모든 영화와 끝없는 숭배를 받는 여왕과도 같은 달이지마는, 그믐달은 애인을 잃고 쫓겨남을 당한 공주와 같은 달이다.


초생달이나 보름달은 보는 이가 많지마는, 그믐달은 보는 이가 적어 그만큼 외로운 달이다. 객창客窓 한등에 정든 임 그리워 잠 못들어 하는 분이나, 못 견디게 쓰린 가슴을 움켜 잡은 무슨 한 있는 사람이 아니면 그 달을 보아주는 이가 별로이 없을 것이다. 그는 고요한 꿈나라에서 평화롭게 잠들은 세상을 저주하며, 홀로이 머리를 흩뜨리고 우는 청상과 같은 달이다. 내 눈에는 초생달 빛은 따뜻한 황금빛에 날카로운 쇳소리가 나는 듯하고, 보름달은 치어다 보면 하얀 얼굴이 언제든지 웃는 듯하지마는, 그믐달은 공중에서 번듯하는 날카로운 비수匕首와 같이 푸른 빛이 있어 보인다. 내가 한이 있는 사람이 되어서 그러한지는 모르지만, 내가 그 달을 많이 보고 또 보기를 원하지만, 그 달은 한 있는 사람만 보아주는 것이 아니라, 늦게 돌아가는 술 주정꾼과 노름하다 오줌누러 나온 사람도 혹 어떤 때는 도둑놈도 보는 것이다.


어떻든지 그믐달은 가장 정있는 사람이 보는 동시에, 또는 가장 한 있는 사람이 보아주고, 또 가장 무정한 사람이 보는 동시에 가장 무서운 사람들이 많이 보아 준다. 내가 만일 여자로 태어날 수 있다면 그믐달 같은 여자로 태어나고 싶다.


*나도향의 수필 '그믐달'이다. 몇달 사이 번번이 그믐달을 보지 못하여 달없어 이 글 '그믐달'만 읽으며 아쉬움을 다독였다. 그렇게 애만 태우던 그 그믐달이 달의 벗이랑 함께 버젓이 나타나 눈맞춤 한다.


밝아오는 동쪽 고운 하늘 이마 위에 '깜찍하고 예쁜 계집같은' 딱 그 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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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리'
자세히 보아야 한다. 자세를 낮추고 숨도 죽일만큼 가만가만 눈을 마주칠 일이다. 그래야 하는 것이 어찌 너 뿐이겠느냐마는 널 마주하는 내 마음이 그렇다. 순백에 연분홍으로 점까지 찍어두었기에 마음 설레기에 충분하다.


양지바른 들이나 냇가에서 자라며 가지 끝에 연분홍색 또는 흰색 꽃이 뭉쳐서 달린다. 이게 무슨 꽃인가 싶은데 매력 덩어리다. 순박한 누이를 닮은듯 하면서도 때론 아주 고고함으로 당당하다.


고만이라고도 한다. 곡식을 키워야하는 논밭에서 질긴 생명력으로 뽑아도 뽑아도 사라지지 않은 널 보는 농부의 마음에서 이제는 제발 고만나와라는 하소연에서 붙여진 이름이 고마리라 전해지기도 한다.


무리지어 피어있는 모습이 마치 달밤에 빛나는 메밀밭을 닮아서 쌩뚱맞게도 피곤한 밤길을 걸었던 이효석의 마음이 전해지는 듯도 하다. '꿀의 원천' 이라는 꽃말은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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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맥(漂麥) 2017-09-23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마리... 사연 많은 꽃이지요...^^
 
목수 김씨의 나무 작업실
김진송 지음 / 시골생활(도솔)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물건은 그 물건을 만든 사람을 닮는다

어설프게나마 나무를 만지며 즐거움을 느끼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늘 상 나무를 만지는 목수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리라나무를 만지는 공방에서 만난 책이 절판이라 헌책방에서 겨우 찾았다나무를 먼저 만지고 그 나무와 일상을 함께하는 사람의 삶은 독특한 무엇이 있으리라는 추측도 한몫했다.

 

그렇게 찾은 책의 저자 김진송의 이력은 조금 특이하다그는 국문학과 미술사를 전공하고 미술평론가이자 전시기획자로 활동했으며출판기획자로서 근현대미술사와 문화연구에 대한 관심을 텍스트로 복원해내는 작업을 하는 등 일반적으로 말하면 소의 먹물인 셈인데 그 모든 것을 접고 나무를 만지기 시작한 것이다.

 

"상상의 공간은 현실의 공간과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현실과 상상의 틈 속에 존재한다."는 목수 김씨의 목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 책은 바로 그 저자가 나무를 처음 만져온 지난 십 년 동안 목수 일을 하면서부터 나무와 목수 일그리고 목물들에 대해 기록해온 일기와 스케치작품 사진을 담았다나무를 구하는 데서부터 그가 말하는 물건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상세히 기록이다.

 

10년의 시간새로운 무엇을 시작하여 그 시간을 채워간다는 것은 쉽지 않다저자는 그 시간동안 나무를 만지며 늘 스스로를 돌아보는 기록을 통해 내실 있는 시간을 보내온 그 결과물이 이렇게 책으로 묶을 수 있는 기반으로 보인다.

 

나무이야기를 통해 주로 사용되는 나무에 관한 경험적 정보를일상에서 주로 사용되는 나무의자나 책상을 비롯하여 다양한 물건에 얽힌 이야기뚝지노랑이책벌레곤충 등 놀라운 상상력이 발휘된 결과물목수와 연장의 불가분의 관계목수가 가지는 생각의 흐름과 방향성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쉽게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없을 정도로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넘친다.

 

목수 김씨는 어쩌면 이야기꾼이 아닐까 싶다이 책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는 이야기꾼으로 이야기를 만들고 풀어 가는 것이 나무를 다루는 것보다 더 능숙해 보이기가까지 한다그런 상상력의 결과가 물건으로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으로 보이니 목수가 만들어낸 물건이 심상치 않아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나 보다.

 

처음 나무를 만지는 사람에게 나무를 만지며 무엇인가를 만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살필 수 있는 기회가 된다완전 초보가 참고할만한 책이 없던 차에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그 유용성의 진가는 실제 경험을 잘 녹아 있다는 것과 목수로 전업하기 전 경험도 한 몫 한 것으로 보인다이 책이 10년 전 책이나 목수의 경험도 이제 20년이 되어 보다 깊은 이야기가 쌓였을 것이기에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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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천산 숲길이다. 걷기에 알맞은 흙길에 애기단풍나무 잎 사이로 적당한 볕이 들고 맑은 물소리 함께 하는 길을 걸었다. 왕복 8km 가량으로 짧지는 않지만 맨발로 걸어도 좋은 길이다.


애기단풍이 미쳐 붉은 속내를 드러내지도 못했는데 울긋불긋 단풍보다 더 붉은 사람들로 인해 길부터 물들었다. 번잡함을 피하고픈 마음을 다독이라는듯 꽃무릇이 미리 붉어졌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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