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보다는 무겁고 구름보다는 가벼운, 산과 마을의 들판 사이를 가득 채운 공기가 더디게만 흐른다. 더디기만 한 바람이 거미줄에 걸린 물방울을 닮았다. 얼기설기 엮어진 거미줄에 무게를 덜어내고서도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는듯 머뭇거리기만 한다.


바람의 속도보다 더 더디게 열리는 하루다. 이러다 비라도 내린다면 가을 속으로 큰발걸음 내딛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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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이슬'
한번 눈맞춤하여 이름을 불러주고 나면 다시 만날 기회가 많아진다. 어쩌면 늘상 만나던 것이었는지도 모르지만 눈여겨보지 않았던 까닭이리라. 겨울에 동네에서 만났던 털이슬을 남덕유산을 오르며 다시 만났다.


눈이 제법 내린 겨울날의 숲에서 낯선 열매를 보고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경외감을 느꼈다. 하얀 눈을 배경으로 수십개의 발을 달고 기어가는 듯한 열매는 생소하기만 했다. 우여곡절 끝에 알고나니 의외로 독특한 모습이 정겹게 다가온다.


자잘한 꽃이 긴 꽃술을 삐쭉하 내밀며 하얗게 핀다. 하나로는 알 수 없을만큼 작지만 모여 피니 금방 알아볼 수 있다. 꽃보다는 특이한 모습의 열매에 주목하게 된다.


이슬처럼 매달린 열매에 털이 잔뜩 난 모습에서 털이슬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초록의 숲에서도 특이하게 보이지만 겨울 눈 속에서 보는 열매의 모습은 장관이다.


털을 잔득 달고 있는 열매는 곁을 지나가는 짐승의 몸에 붙어 씨앗을 옮기는 것으로 보인다. 그 기다림은 생존의 본능일 것이다. '기다림'이라는 꽃말이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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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치듯 보았다. 다시 볼 요량으로 고개를 돌리는 사이 바람에 흔들린 나뭇잎에 사라져버린 빛이다. 언제 다시 올지몰라 꽃짝하지 못하고 눈여겨 보지만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모든 기다림이 늘 안타까운 이유다.

가을 속으로 질주하는 숲은 소란스럽다. 수고로움으로 건너온 시간의 마침표를 찍기 위해 더딘 발걸음일망정 멈추지 말아야함을 알기 때문이다. 나무도 풀도 시간과 사간을 이어주는 분주함에 몸을 맡기고 제 할일을 한다.

큰키나무 아래 터를 잡아 바람의 도움으로 어쩌다 볕과 마주하는 꽃무릇이 붉다. 콫대를 올리기 전부터 붉었을 속내가 잠깐의 빛으로 오롯이 돋보인다. 봐주는 이 없어도 저절로 붉어져야 하는 것이 숙명임을 알기에 찰라의 빛마져 고맙기만 하다.

머물러 있음이 소중한 것은 시간이 지난 후 그 자리가 빛났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 빛남을 찾으려해도 다시 기회를 얻기란 쉽지 않다. 하여, 그 순간에 집중해야 함을 배운다.

빛이 내려앉은 순간, 그 간절했던 소망을 비로소 불사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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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벼룩아재비'
가을로 가는 숲 언저리 양지바른 잔디밭에 앙증맞은 꽃들이 무리지어 피었다. 아주 작은 크기지만 녹색의 풀속에 흰색이 모여 있어 금방 눈에 띈다. 발길에 밟히기라도 어쩌랴싶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환한 미소를 보낸다.


이른봄 봄맞이 있다면 가을을 맞이하는 꽃으로 벼룩아재비가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꽃의 크기도 색깔도 비슷하다. 계절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마음을 알아주는듯 반갑다.


벼룩아재비와 유사한 꽃인데 구분하기 위해 큰벼룩아재비라는 이름을 붙였을 것으로 짐작한다. 아직 벼룩아재비 실물을 접하지 못한 이유도 있지만 둘이 많이 흡사하여 구분이 어렵다. 야생에서 흔하게 관찰되는 것이 큰벼룩아재비라고 한다.


이런 식물을 만날 수 있도록 마주하는 순간을 지나치지 않고 걸음을 멈추어 눈맞춤할 수 있어 참으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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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베어낸 잔디 함줌한큼 가벼워졌다. 어쩌면 이 한줌정도 무게를 덜어내고자 새벽길을 나서서 6시간 동안 그곳에 머무른 것은 아닌가 싶다.


개운하다. 자란 잔디를 벗어버린 묘역도 단정해진 모역을 바라보는 어미의 눈도 그 어미를 등 너머에서 엿보는 지식의 마음자리도 다르지 않다. 한줌 덜어낸 마음의 무게보다 백배는 무거워진 몸을 일으켜 이제 다시 내 자리로 간다.


겨우 할 일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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