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거리며 비가 내린다. 그것도 하루 종일 같은 속도 같은 무게다. 숨 쉴 틈도 없이 내리는 비는 어떤 말을 전하고 싶은 걸까.

내린 비가 모두 쌓이면 그곳에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멀어졌거나 떠났거나 잊혀졌을지도 모를 그 사람에게로 다리를 놓고자 가을이 애를 쓰는 흔적이 이처럼 비로 쌓이고 있다. 잠시든 꽤 오랫동안이든 아니면 제법 긴 시간을 건너온 사람과 사람 사이 마음의 틈을 메우기에 가을처럼 좋은 때도 없다. 그래서 가을날 내리는 비는 지는 낙엽과 낙엽과 더불어 휑한 가슴과 가슴에 온기가 필요함을 느끼게하는 적절한 방편 중 하나다. 

이 모든 것을 인정하더라도 오늘 내리고 있는 비는 과하다. 하여 하늘로만 향하던 나무를 거꾸로 세운다. 그것도 모자라 쌓인 빗물에 가뒀다.

괜히 나무만 힘들게 되었다. 다 가을비 탓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나도송이풀'
처음으로 들어선 숲으로난 길가에 반가운 모습이 보인다. 처음 걷는 낯선 길이지만 오래된듯 익숙하고 편안한 이유는 이미 눈으로 익숙한 꽃과 나무들이 반겨주기 때문이다. 어디를 가든 그렇게 반겨 웃어주는 벗들이 있다는 것, 얼마나 다행인가.


연한 홍자색 꽃이 줄기에 붙어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핀다. 벌린 입이 유독 크게 보이는데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자라는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지 색이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송이풀을 닮아 '나도'라는 명칭이 붙었다. 송이풀은 이 풀의 꽃이 피어나기 시작하면 송이를 따기 시작한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식물이름에 '나도'라는 말이 붙으면 꽃이나 열매, 잎 등의 모양새는 비슷하지만 다른 식물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면 된다.


비교 대상이 되는 송이풀에 대한 간절함이 있는 것으로 보았을까. '욕심'이라는 꽃말을 붙인 사람들의 마음에서 짐작되는 바가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당신의 편지'
- 이인식, 라온북


"저기요, 내 마음 잘 도착했나요?"

한 사람이 좋아서 신기해서 모으기 시작했던 15만 개의 편지 중 골라서 엮은 69개의 편지다. 여기에는 부부, 연애, 부모자식, 친지, 친구 등 다양한 사람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손편지는 무엇보다 '기다림'으로 기억된다. 마음을 담고 이 마음이 담긴 편지가 그 사람에게 닿을 때까지의 시간이 고스란히 간직된다. 주고 받는 과정까지가 포함된 손편지의 애뜻함을 잃어가는 시대에 마음 속 아련함을 불러온다.


어쩌면 이 책의 저자는 서랍 속 깊숙히 묻어둔 편지를 꺼내볼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게도 그런 때가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꽃 題三十二花帖'


초목의 꽃, 공작새의 깃, 저녁 하늘의 노을, 아름다운 여인


이 네가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깔인데, 그 중에서도 꽃이 색깔로는 제일 다양하다. 미인을 그리는 경우 입술은 붉게, 눈동자는 검게, 두 볼은 발그레하게 그리고나면 그만이고, 저녁 노을을 그릴 때는 붉지도 푸르지도 않게 어둑어둑한 색을 엷게 칠하면 그만이며, 공작새의 깃을 그리는 것도 빛나는 금빛에다 초록색을 군데군데 찍어 놓으면 그뿐이다.


꽃을 그릴 적에는 몇가지 색을 써야 하는지 나는 모른다. 김군金君이 그린 서른 두 폭의 꽃 그림은 초목의 꽃을 다 헤아린다면 천이나 백 가운데 한 둘 정도에 불과하지만 오색五色도 다 쓰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공작새의 깃ᆞ저녁노을ᆞ아름다운 여인의 빛깔이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아하! 한 채 훌륭한 정자를 지어 미인을 들여앉히고 병에는 공작새 깃을 꽂고 정원에는 화초를 심어두고서, 난간에 기대어 저무는 저녁 노을을 바라보는 이가 세상에 몇이나 될꼬? 하나 미인은 쉬이 늙고 노을은 쉽게 사그라지니, 나는 김군에게서 이 화첩花帖을 빌려 근심을 잊으련다.


*조선 후기를 살았던 유득공柳得恭(1748~1807)의 글이다. 북학파 계열의 실학자로, 정조가 발탁한 네 명의 규장각 초대 검서관 중의 한 사람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김군金君은 박제가의 '꽃에 미친 김군'에 나오는 김군과 동일인인 김덕형으로 본다.


아침이슬이 곱게 내려앉은 물매화다. 봄을 대표하는 매화에 견주어 가을을 대표한 꽃으로 꼽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귀한 모습이다. 더욱 봄의 매화는 쉽게 만날 수 있지만 이 물매화는 만나기가 쉽지 않다.


이 꽃을 만나면서부터 매년 때를 기다려 눈맞춤하고자 애를 쓴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정을 전하는 꽃의 표정에 넋을 잃고 바라보는 시간이 늘어만 간다. 외출하기 전 눈맞춤은 당연하고 돌아와 곁을 떠났던 짧은 시간 동안 변한 모습까지 놓치고 싶지않은 마음이다. 나이들어 무엇을 대하며 이런 마음이 생길 수 있을까. 꽃은 늘 깨어 있는 마음을 불어온다. 애써 찾아 꽃을 보는 이유 중 하나다.


꽃을 그린 김군이나 그 그림을 보고 심회를 글로 옮긴 유득공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오늘도 저물어가는 시간 이 꽃을 보러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개쑥부쟁이'
지천으로 피었기에 눈여겨봐주지 않은다. 때론 제 이름으로도 불리우지 못하고 늘상 다른 것과 구분하는 비교대상으로 존재하며는 서러움이 있지만 꿋꿋히 때를 기다려 핀다. 가을날 까실한 볕에 살랑이는 바람의 리듬에 몸을 맡기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연보라색 꽃이 가지 끝에 모여 풍성하게 핀다. 쑥부쟁이의 한 종류로, 꽃 모양, 색깔 등이 쑥부쟁이와 거의 비슷하다. 다만, 잎의 톱니나 꽃이 진 뒤 봉오리에 털, 꽃받침의 모양 등으로 구분한다. 식물학자가 아닌 이상 굳이 구별이 필요할까 싶을 정도로 닮았다.


개쑥부쟁이와 유사한 꽃을 가진 것으로는 버드쟁이나물, 민쑥부쟁이, 가새쑥부쟁, 갯쑥부쟁이, 가는쑥부쟁이, 섬쑥부쟁이, 누운개쑥부쟁이, 단양쑥부쟁이 등이 있다.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식물의 이름 앞에 '개' 가 붙은 것은 볼품없고 흔하다는 의미로 붙인다고는 하지만 개망초가 그렇듯 꽃의 모습은 더 풍성하여 전체적인 모습은 훨씬 보기 좋은 경우가 많다. 쑥부쟁이의 꽃말이 '평범한 진리'라고 하니 짐작되는 바가 있긴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