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온 바다에 왔다. 소설가 박완서 선생님이 개펄에서 일하는 아낙들을 바라보며 ‘봄날의 꽃보다도 와온 바다의 개펄이 더 아름답다’고 했다던 그 바다다.


해는
이곳에 와서 쉰다
전생과 후생
최초의 휴식이다


당신의 슬픈 이야기는 언제나 나의 이야기다
구부정한 허리의 인간이 개펄 위를 기어와 낡고 해진 해의 발바닥을 주무른다


*곽재구의 시 '와온 바다'의 일부다. 곽재구의 '길귀신의 노래'로 와온을 알고 긴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몇번의 기회를 놓치고 이제서야 만날 수 있었다.


다행이 와온은 민낯을 보여주지 않는다. 첫만남에 다 보여주는 것은 민망함을 아는 것이리라. 가득찬 바닷물은 호수보다 잔잔하고 그 바다가 어둠 속에 묻혀가는 사이 객으로 선 이는 스스로 와온 바다를 품는다.


다시 만날 그 때를 기약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가시여뀌'
사진 속 눈으로만 익혀온 식물을 숲이나 들에서 직접 만나 확인하는 즐거움은 상상을 초월한다. 자라는 환경이 달라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식물의 경우가 그렇다. 꽃을 보러 먼 길을 다니는 이유 중 하나다.


가을로 접어들며 인근 들판이나 산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 고마리를 비롯한 여뀌 종류다. 여뀌, 개여뀌, 바보여뀌, 흰꽃여뀌, 장대여뀌, 기생여뀌 등 자잘한 꽃들이 피어 허리를 숙이고 조심스런 눈맞춤을 하게 된다.


붉다. 연한 붉은 색의 꽃을 드문드문 달고 있는 줄기에 붉은색 털이 가시처럼 달렸다. 꽃도 붉고 줄기도 붉으니 그늘에서도 붉은색이 주는 느낌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가시여뀌는 줄기와 꽃자루에는 붉은색 선모가 마치 가시처럼 빽빽하게 난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별여뀌'라고도 부르는 가시여뀌를 처음으로 찾아간 백운산 응달진 숲길에서 반가운 눈맞춤을 했다. 여뀌 종류의 꽃말이 '학업의 마침'이라는데 연상되는 유래가 궁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손을 뻗어 하늘을 향한다. 낮은 곳으로 향하는 구름이 닿을듯말듯 딱 그 높이에서 머뭇거린다. 어쩌면 닿을 수도 있을 것만 같은 하늘이라 망상을 펼쳐도 민망하지 않다.


물결치는 바다가 하늘로 올랐나 보다. 너울성 파도가 일렁이다 용솟음치고는 이내 스러지듯 구름이 가슴으로 파고들며 너울진다.


동쪽을 등지며 햇볕바라기를 한다. 바람결에 전해지는 차가움이 품속으로 파고드는 것을 피해보자는 심사다. 멍하니 바라본 하늘에서 며칠전 남쪽바다 위에서 보냈던 하룻밤낮을 그리워하고 있는 중이다.


손에 든 책 표지에 쓰인 문장에 기대어 안부를 묻는다.


"저기요, 내마음 잘 도착했나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꽃향유'
발길이 닿는 숲 언저리에 자주빛 색의 향연이 펼쳐진다. 가을이 무르 익어간다는 신호로 받아 들인다. 까실한 가을 볕을 한껏 품고 속내를 드러내는 빛이 곱기만 하다. 한가로운 산길에 느린 발걸음을 더 더디게 하는 꽃이다.


분홍빛이 나는 자주색의 신비로움에 감미로운 향기까지 놓치기 아까운 가을 꽃이다. 꽃이 줄기의 한쪽 방향으로만 빽빽하게 뭉쳐서 핀 독특한 모양이다. 무리지어 혹은 혼자 피어 귀한 가을볕을 한껏 받고 빛나는 모습이 곱기도 하다.


꽃향유는 향유보다 꽃이 훨씬 더 짙은 색을 띠어서 꽃향유라고 부른다고 한다. 향유와 비슷한 꽃으로는 백색의 꽃이 피는 흰향유가 있고, 꽃이 크고 훨씬 붉은 꽃향유, 잎이 선형인 가는잎향유, 꽃차례가 짧으며 잎 뒷면에 선점이 있는 좀향유 등이 있다. 구분이 쉽지 않다.


붉은향유라고도 하는 꽃향유에는 여물어가는 가을 숲의 성숙함이 그대로 담겨 있다. 곱게 나이든 여인네의 모습이 연상되기도 한다. '조숙', '성숙'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당신의 편지 - 붙잡고 싶었던 당신과의 그 모든 순간들
이인석 지음 / 라온북 / 201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편지기다림을 전재로 한 소통

빨간 우체통에 빨간 자전거를 탄 우체부 아저씨를 기다렸던 시절이 있었다별다른 통신수단이 없을 때 유일하게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는 수단으로 가장 친근한 것이 이 우편배달이었기 때문이다지금은 점차 사라져가는 모습으로 각종 택배가 그것을 대신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하지만마음 한구석 손편지에 대한 향수는 여전히 유효한 감정을 불러 오기에 충분한 기억을 가졌다.

 

"저기요내 마음 잘 도착했나요?" 라고 묻는 듯 이 책 당신의 편지는 아련한 기억 속에 머물러있는 옛 시절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하다이 당신의 편지는 한 사람이 우표가 좋아서 시작된 수집활동이 편지로 이어지고 그렇게 모으다보니 좋고 신기해서 모으기 시작했던 편지가 15만 개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말로야 쉽게 15만 개라고 하지만 이것이 보통의 숫자를 넘어선 무엇이 있다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당신의 편지는 이 편지 중에서 부부연애부모자식친지친구라는 테마를 선정하고 골라서 엮은 69개의 편지 모음 글이다시대적 상황을 보면 경제개발이 한창이던 때 중동 파견근로자들로부터 베트남 전쟁에 이르기까지 주로 본국을 떠나 해외에 체류하는 시기에 가족이나 연인 부모 자식과 친구들 사이에 주고받았던 편지들이 대부분이다.

 

편지를 주고받는 대상에 따라 달라지는 내용뿐 아니라 시대상을 반영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어 아련한 향수를 불러온다부부간의 사랑과 믿음 때론 원망에 이르는 마음 나눔과 모르는 남녀 사이 편지로 알아가는 펜팔부모와 자식 간의 끈끈한 정이 담긴 이야기들에서 시대를 뛰어 넘어 사람 사는 모습의 본래자리를 만나듯 반갑고 애틋한 감정이 교차하기도 한다.

 

손편지는 무엇보다 '기다림'으로 기억된다마음을 담고 이 마음이 담긴 편지가 그 사람에게 닿을 때까지의 시간이 고스란히 간직된다주고받는 과정까지가 포함된 손편지의 애틋함을 잃어가는 시대에 마음 속 아련함을 불러온다이는 손편지를 주고받아 본 사람들만이 가지는 공통된 정서로부터 출발하고 있기에 편지 하나하나를 그냥 넘길 수 없는 머뭇거림을 동반하게 된다.

 

어쩌면 이 책의 저자는 독자들로 하여금 서랍 속 깊숙히 묻어둔 편지를 꺼내볼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절절한 사랑의 마음이든안타까움으로 안부를 물었던 부모자식 간이었든이성에 대한 설렘으로 조심스런 마음을 수줍게 내보였던 펜팔이었던 그 어느 것 하나라도 추억할 수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꿈틀거리게 만들고 있다내게도 그런 때가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