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막사리'
식물이 씨앗을 퍼트리는 방법은 다양하다. 붙박이 식물이니 움직이는 다른 동물들의 도움을 받기 위해 여러가지 방법으로 환경에 적응해 왔다. 바람에 날리거나 새의 먹이로 제공하는 등의 방법을 비롯해서 다른 동물들의 몸에 붙어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는다.


그중 하나가 이 가막사리다. 여름부터 늦가을까지 노란색으로 피는 꽃은 줄기 끝이나 가지 끝에 1개씩 달린다. 열매는 납작하고 길며 다른 것에 붙어서 씨를 퍼뜨린다.


가막살이라고도 부르는 가막사리와 비슷한 종으로는 미국가막사리, 구와가막사리, 나래가막사리, 좁은잎가막사리, 눈가막사리 등이 있으며 구분이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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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은 어디서 그렇게 아름다운 상처를 얻어 오는가'
-김보일, 빨간소금


매일 기다려지는 글이 있다. 날마다 그림과 함께 올라오는 한편의 글에서 전해지는 울림은 은근하면서도 오랜 여운을 남긴다. 그 여운을 간직하고자 일부러 찾아 읽곤한다. 그로부터 출발한 관심이 이 책에 주목하게 되었다. 짧은 글과 독특한 그림이 어우러져 전하는 감동이 잔잔하게 전해지리라 기대한다.


"독서는 세상으로부터 끊임없이 벗어나려는 내 일탈의 욕구에 가장 적합한 놀이였다. 체계도 없고, 거창한 자기 이념도 없이 오직 책읽기의 쾌감을 좇는 나는 독서의 쾌락주의자였던 셈이다."


이처럼 남다른 남독가濫讀家로 알려진 저자는 매달 30권의 책을 사고 해마다 300권의 책을 미련 없이 버린다고 한다. 저자의 이야기 근간은 읽었던 책이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작은 책을 손에 들고 큰 이야기로 읽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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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눔의 중심'


人之相知
貴在知心


사람이 서로를 앎은 
귀함이 마음을 알아주는 데 있다.


알고 지낸 햇수가 중요하지 않다.
마음에 달려 있다.


*명나라 때 사람 장호張灝의 '학산당인보'學山堂印譜의 내용을 담은 정민의 '돌 위에 새긴 생각'에 나오는 전각과 그에 관한 풀이다.


*사람 사귐의 모습이 달라진다. 지근거리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오랜시간에 걸쳐 소통하는 것을 사귐의 바탕으로 하는 것은 여전해 유효하고 강력한 방법이다. 여기에 더하여 한번도 만나지 않고서도 공유한 시간과 공간이 일천함에도 사귐의 정이 깊어지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사람 사귐의 중심에는 마음의 공감과 소통이 있다. 정성을 다한 진솔한 마음을 나눈다는 것은 시 공간이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같은 곳을 향하는 마음과 마음이 소통하는 일이다. 문자 하나 단어 하나에도 담긴 감정과 뜻을 정성을 다해 서로에게 다가가는 이 수고로움이 알고 지낸 시간 보다 중요한 것이다.


정성을 가득 담아 내게 오는 귀한 마음, 정성을 다해 받는다. 그 마음 나눔의 중심이 지금 이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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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질빵'
식물이 사람들 일상에 어떤 내용과 형식으로 관련이 되어 있는지를 잘 알려주는 것이 이름에 포함된 이야기다. 하여, 식물의 이름만으로도 선조들의 풍속과 삶의 모습의 단면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며리와 시어머니 사이의 얽힌 갈등 관계를 며느리밑씻개, 며느리배꼽, 며느리밥풀 등과 같은 식물에서 보여주고 있다. 반면에 장모와 사위의 관계를 보여주는 식물이 이 사위질빵이다. 질빵은 짐을 질 때 사용하는 멜빵을 말한다. 곧 사위의 멜빵이라는 의미가 된다. 장모가 사위를 아끼는 마음이 반영된 것이다.


한여름 덩굴로 다른 나무나 의지할 것에 기대서 무성한 꽃을 하얗게 피운다. 네장의 꽃 받침잎을 배경으로 무수히 많은 꽃술이 있다. 꽃이 흔한 시기에 피는 꽃이라서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다가 늦가을 작은 씨앗 끝에 깃털을 단듯 한 독특한 모습의 열매에 주목하게 된다.


사람 관계에 얽힌 갈등관계를 해학적으로 담았다고 보여지는 사위질빵이라는 이름에서 '비웃음'이라는 꽃말이 나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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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진자리에 든 한줌 볕
시간과 공간에 머물렀던 지난 주말의 흔적들이 여기저기서 울긋불긋 다양한 모습으로 여는 창마다 요란하다. 하늘 아래 모든 것이 불타듯 노랗고 빨갛게 물들어가는 동안 하늘 한번 올려다보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의 흔적 일 것이다. 어쩌면 지나가버린 시간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막바지 겨울로 가는 단풍보다 더 분주한 발걸음으로 더 부산스럽다. 그 시간의 여운이 몹시도 깊어 보인다.


나도, 볕이 잘드는 인적 드문 숲으로 가 이미 떨어진 낙엽으로 포근한 자리에 앉아 미쳐 땅과 만나지 못한 낙엽을 한동안 바라다 보고 싶다. 그것이 여의치않다면 시골 마을 한 모퉁이에 자리잡고 넉넉한 품으로 오가는 사람들의 벗이 되었을 나무 그늘에 들어 한나절 그 나무의 벗이 되고 싶기도 하다. 그것도 아니라면 온통 머리털이 세어서도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 여전히 부끄러운 억새와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며 들길을 서너시간 쯤 걷다 지칠만할 때 돌아오면 좋겠다. 그것도 과분하다면 오후 볕을 깊숙히 끌여들여 오랫동안 품고자 서쪽을 온통 창으로 만든 모월당慕月堂 긴 책장에 기대어 산을 넘는 햇볕의 끝자락을 잡고서 잠시 조는 것으로 대신해도 좋겠다.


느긋한 기다림이라 애써 다독이던 마음에 꽃이 진자리를 밝히듯 한줌 볕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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